벽화는 새로운 벽지가 될 수 있을까?
벽화가 벽지를 대신할 수 있을까? 비밀스러운 의뢰인들의 부탁으로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벽지를 그려낸 전 세계 디자인 전문가들에게 솔직한 의견을 물었다.

그림 한 장이 천 마디 말을 한다. 그 말을 증명하듯 안목 있는 디자인 피플 사이에서 벽화가 인테리어 트렌드로 급부상했다. 지난 몇 년 사이 인테리어 동향이 슬금슬금 맥시멀리즘 쪽으로 기울면서, 수많은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이 벽지나 데코 스티커 대신 더 영속적인 프레스코화를 선호하는 추세다.
“벽화는 타투 같아요.” 데이트 인테리어스(DATE Interiors)의 몰리 토레스 포트노프(Molly Torres Portnof)가 말한다. “공간에 창의적인 텍스처와 컬러를 더하는 가장 세련된 방법일지도 모르죠.” 뉴욕에서 활동하는 디자이너인 포트노프는 최근 맨해튼 어퍼이스트사이드에 자리한 스튜디오의 인테리어 작업을 담당하며 벽화를 적극 활용했다. 가장 중요한 미션이 안방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불어넣는 것이었는데, 문자 그대로 집주인이 ‘꿈에서 본’ 이미지를 벽에 옮기는 것이 그의 과제였다.
“의뢰인이 꿈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한참 동안 폭포 아래에 서 있는 꿈을 꿨는데, 잠에서 깨고 나니 몹시 평화로운 기분에 사로잡혔다는 거예요. 처음엔 꿈속 분위기에 가장 부합한 벽지를 찾아 바르려고 계속 그 꿈을 떠올리며 작업하는데 ‘이거다!’ 싶은 게 없더라고요.” 끝내 포트노프는 장식 예술가 파트리스 유돈(Patrice Youdon)을 찾아가 침실의 세 벽면에 걸쳐 열대풍 오아시스를 그려달라고 부탁했다. 그런 다음 남은 벽면에는 표면을 거울로 덮은 옷장을 설치하고, 전체적으로 아쿠아마린 컬러로 포인트를 줬다. 침대에 누우면 아늑한 꿈에 둘러싸인 듯한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벽화의 시작과 끝의 경계는 모호하게 디자인했다.
만일 바닥부터 천장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벽화가 부담스럽게 느껴진다면 레베카 아미르(Rebecca Amir)의 디자인을 참고할 만하다. 2024 브루클린 하이츠 디자이너 쇼 하우스에서 선보인 어린이 방에 아미르는 로버트 크리스찬(Robert Christian)의 도움을 받아 옷장 문 두 짝을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로 활용한 벽화를 탄생시켰다. “옷장 문이 한쪽 벽면을 거의 다 차지하고 있었고, 다른 가구는 놓기 힘들 정도였어요.” 아미르가 말했다. “그 문을 벽과 같은 색상으로 칠해서 숨길 게 아니라 아예 인테리어 포인트로 활용하면 좋겠다 싶더라고요.” 블록 아일랜드의 풍경이 수놓인 빈티지 엽서에서 영감을 받아 옷장 위에 그린 꽃과 수풀로 가득한 광경은 아이 방 특유의 동화적인 느낌을 순식간에 증폭시켰다.
포트노프와 아미르 같은 디자이너들이 프레스코화에 신선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지만 벽화는 분명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인류는 4만 년 전부터 자연에서 얻은 안료를 사용해 자신만의 안식처에 사람이나 동물 그림을 그려 넣었다는 걸 상기하면 정말 놀랍죠.” 서식스와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장식 예술가 테스 뉴올(Tess Newall)이 말했다. “그 그림은 오로지 자신의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그리고 벽화를 감상하는 즐거움을 위해 그린 것이었어요.”
그 후 20세기에 들어 생활공간을 캔버스로 여기는 예술가들이 늘기 시작했다. 시인 장 콕토가 자신을 후원한 사교계 명사 프랑신 바이스바일레르(Francine Weisweiller)의 빌라에 그린 벽화와 블룸즈버리 그룹 예술가들이 찰스턴 팜하우스에 그린 그림은 전통적인 벽화를 더 친밀한 환경으로 끌어들였다. “벽화는 더 이상 숭배하는 장소만을 위한 것이 아니에요.” 뉴올의 증언이다.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누리는 주거 공간에 벽화를 그릴 수도 있고, 한편으로는 ‘그래야 한다’는 생각이 퍼져나갔죠.”

그렇다면 지금은? 손짓 한 번으로 거의 모든 것에 접근이 가능해진 세상에서 벽화는 아날로그적 장식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지를 다시 상기하는 요소로 각광받고 있다. “사람 손을 거친 흔적이야말로 모든 공간의 핵심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아미르가 말했다. “금속 마감이든 페인트칠한 마감이든, 기계가 아니라 사람이 창조한 흔적은 모든 것이 순식간에 복제되는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것을 볼 때 느껴지는 감동을 일으키죠.”
샌프란시스코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장식 예술가 캐롤라인 리자라가(Caroline Lizarraga)는 벽화는 자동화된 미래와는 대척점에 놓인 것이라고 소개했다. “의뢰인들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걸 원해요. 내가 원하는 대로, 오직 나만을 위해 만든 것을 소유하는 일은 AI가 이끌어가는 이 시대에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어요. 요즘은 누구나 끊임없이 여행을 다니면서 멋진 장소와 공간을 정말 많이 보잖아요. 그러다 보니 미적 수준이 많이 높아지고 있죠.”
인테리어계에서 벽화가 유행을 타기 시작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벽지를 대체하진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엄청난 매력을 발산하지만, 짧은 기간에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커스텀 벽화를 제작하는 건 꾸뛰르 드레스를 만드는 것과 같아요.” 리자라가의 말이다. “정말 뭐든 다 가능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벽화를 작업할 땐 고려해야 할 디테일이 많아요.” 리자라가는 위치, 채광, 벽화의 전체적인 무드 같은 요소를 결정하기 전 의뢰인과 긴밀하게 의견을 주고받는다. 그렇게 작업 방향을 결정한 후엔 커스텀 샘플이나 미니어처를 제작한다. “모든 게 공간과 잘 어우러질 것이라고 결론지을 때만 시안을 실제 벽으로 옮기는 작업에 돌입해요.”
비용 또한 중요하게 감안해야 할 요소다. 벽지의 가격대는 다양하게 형성된 반면, 리자라가의 벽화는 제곱피트당 40달러에서 250달러 사이다. 비용이 많이 들고 귀중한 작업인 만큼 아이들의 ’스파게티 묻은 손’이 최대한 닿지 않게 관리해야 한다고 아미르는 귀띔한다. “저라면 통행이 많은 공간을 위해 벽화를 의뢰하진 않을 거예요.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는 안방 침실에 작업하는 게 제일 좋겠죠.” 리자라가는 출입구나 파우더 룸, 격식 있는 다이닝 룸도 벽화를 그리기 좋은 장소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컨셉을 정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까다로운 단계일 것이다. 수많은 아이디어와 이미지가 떠오르는 가운데 어떻게 평생 질리지 않을 단 하나의 그림을 정할 수 있단 말인가? 당연한 얘기겠지만 이는 전적으로 개인의 취향에 달려 있다. 포트노프와 아미르의 벽화에서 자주 보이는 풍경화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지만, 이 외에도 벽화의 종류는 무궁무진하다고 뉴올은 강조한다. “손으로 그린 선이 이루는 패턴이나 특정 가구의 디테일을 따라 그린 그림도 전부 벽화가 될 수 있어요.” 뉴올이 덧붙였다. “문이나 창가에 그리는 벽화는 흥미로운 분위기를 더하는 동시에 공간을 독특하게 구분하면서 상상력을 자극해 더 넓은 공간으로 보이게 연출할 수 있죠.”
선택지를 좁혀나가기 위한 팁으로, 리자라가는 집의 건축양식을 참고해 벽화 분위기를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말한다. “가끔 특정 이미지에 집착하는 의뢰인이 있는데, 솔직히 집의 건축양식과 어우러지지 않아 난감할 때가 있어요.” 그가 말을 이었다. “공간만의 타고난 분위기가 있기 때문에 그걸 잘 간파해 디자인을 가미하는 것이 중요해요. 고딕 양식 건축물에 아르데코 스타일의 벽화를 새겨 넣으면 이상하잖아요.”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조언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수해도 좋다는 것이다. 벽화는 언뜻 영구적 인테리어라는 인상을 주지만, 타투와 마찬가지로 빠져나갈 구멍은 있으니 지나치게 심각하게 여기지 않아도 된다. “벽화는 일상에 아름다운 미감과 창의적인 아이디어, 즐거움을 더해줘요.” 포트노프가 말했다. “그런 점을 기대하면서 어떤 것에도 갇히지 않고 자유롭게 고민할 때 좋은 결과를 얻을 거예요.” (VL)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글
- Kelsey Mulvey
- 사진
- Simon Brown, Julie Leff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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