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제이콥스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집을 재탄생시켰다
6년 전, 마크 제이콥스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근사한 집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다. 그는 그 집을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 사랑과 헌신, 불안과 인내, 투쟁과 어렵사리 쟁취한 평화와 같았다고 전한다.

6년 전쯤 시중의 매물 리스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부지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부동산 중개인에게서 전화 한 통을 받았다. 그는 별말 없이 맨해튼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곳에 전설적인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가 지은 집이 있다고 했다. 1955년 완공된 그 집은 라이트가 자동차 수입업자인 호주계 미국인 맥스 호프만(Max Hoffman)을 위해 설계한 집이었다. 하지만 아무나 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중개인은 소유주가 주인이 될 만한 사람에게만 집을 판매할 거라고 귀띔했다.
당시만 해도 도시에서 벗어난 삶을 상상할 수 없었다. 뉴욕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로서 56년간 대도시에서 생활한 내게 교외의 삶은 평온하기보다는 스트레스라고 여겼다. 두 번째 집을 갖는다는 생각 역시 부담스러웠다. 그것이 정말 원하는 삶인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막중한 책임을 떠안는 것처럼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라이트라는 이름, 그 이름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결국 호기심이 망설임을 이겼고, 그 집을 보러 가기로 결정했다. 집을 보러 가는 길에 조수석에 앉아 있던 친한 친구 닉(Nick)은 내게 집이 아무리 마음에 들더라도 티를 내지 말라고 조언했다. 판매자 쪽 중개인 앞에서는 더더욱.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감정을 분명하게 드러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자신이 별로 없었지만 말이다.
혼자만의 다짐은 주차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캐리지 포치(현관 앞에 자동차를 세워 승강하기 위해 설치한 돌출부)를 지나 차를 세워두는 모터 코트로 들어서자, 시멘트와 철로 점철된 도시의 삶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신선한 공기를 처음 마시는 듯한 해방감이 느껴졌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는데도 그곳은 확실히 무언가 다른, 여태껏 봐온 집 가운데 가장 멋진 곳이라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집은 돌로 세운 외벽 위로 커다란 처마가 시원하게 뻗어 있는 드넓은 단층 건물이었다. 처마에는 작은 창이 있어 그 사이로 탁 트인 하늘이 보이는 동시에 지면에 근사한 건축학적 그림자를 투사하고 있었다. 이어서 몇십 년은 묵은 듯한 단풍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모든 자연이 완벽하게 다듬어지고 손질되어 있었다. 하나같이 도시에서 봐온 풍경과는 너무 다른 형상이었다.
현관으로 들어서자 집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나를 맞이했다. 우선 공기가 완전히 달랐다. 고요하지만 살아 숨 쉬는 듯했다. 벽 전체가 숨을 내쉬며 실내를 이루는 구리, 마호가니, 유리 등 갖가지 재료와 풍경이 하나가 되어 있었다. 순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비전이 명확하게 다가왔다. 건축물과 그 방향, 모든 선과 자재, 텍스처는 저마다 목적과 이유를 분명하게 품고 있었다. 이 집은 구조물과 주변 환경의 밀접한 연관성을 강조하는 라이트의 상징인 유소니언(미국을 대표하는 건축 철학으로 단순하면서도 실용적인 구조와 합리적인 비용을 앞세웠다) 하우스의 살아 있는 증거였다.
곳곳을 둘러보며 직접 경험한 집의 분위기, 라이트가 온갖 비례와 스케일을 활용한 방식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좁다란 복도는 나를 쥐어짜는 것처럼 느껴졌지만, 곧 빛과 온갖 가능성을 가득 품은 드넓은 방 덕분에 긴장이 해소됐다. 이 집은 폐가 달린 것처럼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며 내게 그간의 역사를 전해주려는 듯했다.
거실로 들어서자 남쪽과 동쪽에 천장부터 바닥까지 이어진 통창으로 자연광이 한 아름 쏟아져 들어왔다. 바깥에는 차분하고 고요하며 장엄한 롱아일랜드 사운드(해협)의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져 있었다. 나를 위해 의도적으로 창가에 놓은 듯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고, 눈앞 풍경에 빠져들었다. 그 순간 도시와 그곳의 소음, 바쁜 일상, 매일같이 느끼던 두려움과 불안이 꿈처럼 흐릿해졌다. 그러면서 지금 내가 살아 있다는 생생한 감각과 함께 더할 나위 없는 편안함이 밀려왔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그 집은 손이 많이 가는 곳이라는 사실을 어렵사리 상기했다. 보살핌과 애정,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집이며, 그래야 마땅한 곳이었다. 거기 살면 분명히 행복하겠지만, 내 집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모든 자원과 의지,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9년 3월 계약을 마무리한 나는 이 멋진 집의 공식적인 관리인이자 지킴이가 되었다. 집을 복구해야 하는 책임까지 떠안았다. 가장 먼저 집이 그간 견뎌온 부식의 정도를 정확하게 파악했다. 내려앉은 처마와 심각한 지붕의 누수, 잔뜩 마르고 갈라진 마호가니, 70년간 해협의 바닷바람을 맞아 심하게 풍화된 외부 목조를 손보는 일부터 시작했다. 본격적인 보수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친한 친구와 가족까지 40명이 참석한 가운데 아름답고 기념비적인 벽난로 앞에서 찰리 디프란시스코(Charly Defrancesco)와 결혼식을 올렸다. 앞서 조수석에서 내게 조언한, 내 삶에서 ‘이성의 목소리’를 맡고 있는 닉이 주례를 맡았다.
그해 여름 찰리와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수되기 전의 헐벗은 집에서 야영하듯 생활하며 도시 밖 생활의 리듬을 익히기로 했다. 앞으로 넘어야 할 산이 엄청나게 험난하며, 보수 작업은 시간이 아주 오래 걸리는 힘든 일이 될 것이라는 걸 점진적으로 깨달았다. 최소한의 가구, 오락가락하는 에어컨 시스템, 깜박이는 조명, 피할 수 없는 한여름의 폭풍이 닥쳤을 때를 대비한 발전기도 없는 집을 모두 감수하면서 앞으로 손봐야 할 일의 범주를 구체적으로 파악했다. 그리고 가을에 접어들며 비로소 본격적인 보수 작업에 들어갈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곧 집은 원래 지은 상태로 세심하게 분해되고, 누수가 심한 지붕은 교체되며, 바닥의 모든 석재를 조심스럽게 천천히 제거해 그 아래 설치된 기계 시스템을 손볼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보수에 필요한 작업과 장인 정신은 우리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수준으로 요구된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꿈의 프로젝트를 위해 모인 건설업자들과 건축가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물 관리단과 긴밀히 협조하면서 목공 복원 및 슬레이트 지붕 교체(원래 지붕 형태와 일치해야 했다) 전문가들을 영입하고, 뭐가 됐든 한 겹을 벗길 때마다 새로운 퍼즐이 나타나는 것 같던 전반적인 공사 현장을 성실하게 감독했다. 나는 최대한 방문을 자제하려 애썼다. 하루빨리 이 공간을 내 집으로 만들고 싶다는 조바심이 점점 더 커져서 참기 어려울 때도 많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매번 그곳을 찾을 때마다 결혼식 때 닉이 우리에게 해준 말이 떠올랐다. “이 집을 너의 인생에 들이기로 한 건 결코 충동적인 결정이 아니야. 지속적인 관심과 엄청난 인내심, 애정, 열정, 노력, 소통이 필요하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내린, 아주 신중하고 사려 깊은 결심이었지. 그리고 우리 모두가 그렇듯, 이 집의 아름다움과 유서 깊은 내력은 부인할 수 없는 것으로 부서지기 쉽고, 불완전하며, 사랑과 헌신을 필요로 하는 것이야. 이는 명백한 사실이면서 변화와 성장, 타협을 계속 수반하는 과정이지. 그러나 이 지붕 아래에서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결실을 맺은 너희 커플처럼 이 집은 상처받기 쉬운 모든 마음의 벽을 허물고 둘만의 미래로 너희를 이끌 거야.”
그리고 4년 뒤, 그간 셀 수 없이 많은 지연 상황과 예상치 못한 문제를 모두 감당한 찰리와 나는 집에서 10분 거리의 임시 숙소로부터 아직 다 완성되진 않았지만 생활할 수 있을 정도는 되는 맥스 호프만의 집으로 마침내 옮길 수 있었다. 이미 도시 밖에서 생활한 지 3년이 넘은 시점이었지만, 돌이켜보면 그때도 이런 집을 소유한다는 것이 정확히 어떤 삶을 의미하는지는 알지 못했다. 날아갈 듯 기쁘면서도 한편으로는 두려웠다. 갓 태어난 아기를 넘겨받으며 “자, 이제 네가 잘 키워봐”라는 말을 듣는 기분이었다. 설렘, 흥분과 함께 막연한 두려움이 밀려왔다. 도시 밖의 삶은 새롭고 낯설었지만, 창가에 서서 해협의 잔잔한 바다와 거위, 마멋, 땅다람쥐, 매, 왜가리, 여우, 코요테 같은 동물을 보고 있으면 이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것은 분명 인생 2막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최신을 자랑하는 편리하고 현대적인 집에서만 살아왔기에 낡은 집에 완전히 적응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새로 들인 기기 대부분이 무엇이며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도통 알 수 없었다. 처음 몇 달 동안 나는 알람 소리, 물 센서, 고장 난 에어컨과 난방 시스템, 화재경보기, 어느 문으로 드나들어야 하는지 여전히 헷갈리는 우리 개들과 분투했다. 갓 태어난 신생아처럼 하루에도 수없이 잠에서 깼다.
그러나 어떤 불편함도 매일 아침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일출을 바라보며 전에 없던 고요함을 만끽하는 행복을 앗아가진 못했다. 비록 출입문 여는 법이나 아이폰 앱으로 조명이나 TV 컨트롤하는 법, 방 안 온도를 조절하거나 오븐 켜는 법은 끝내 깨닫지 못했지만 말이다. 가끔 라이트 선생님이라면 이 모든 신기술을 어떤 식으로 적용하고 활용했을지, 이렇게 크고 모든 것을 갖춘 부엌을 어떻게 여길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가 다소 과한 느낌으로 완성된 이 지하실을 보고 인상을 찌푸리는 모습도 잠시 상상해본다. 이제 지하실은 세탁실이자 적외선 스파일 뿐 아니라 약국, 이발소 의자와 머리카락 헹구는 세면대를 갖춘 미용실, 네일 살롱, 선물 포장대, 사무용품 센터, 그리고 집에서 유일하게 ‘정상적인’ 비율로 제작한 나무 옷장이 있는 방을 모두 아우르는 복합 공간으로 활용되기 때문이다. 라이트는 주거자의 편안함이나 실용적인 생활을 그다지 감안하는 건축가가 아니었고, 지하실을 혐오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맥스 호프만이 취미 부자였기 때문에 라이트는 이 ‘낮은 수준’의 공간을 짓는 것을 용인했다. 지금 이곳을 차지한 또 다른 취미 부자에게는 참 감사한 일이다.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는 지금, 메인 침실에서 시작되는 좁은 통로를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는 안락한 서재에서 책을 읽다 일어난 참이다. 오늘은 일요일, 집에는 나 혼자뿐이다. 이런 때가 흔치는 않지만 나쁘진 않다. 방에 딸린 서재를 지나 좁다란 복도를 지나는 동안, 태양은 호박색으로 코팅된 유리창을 통해 남은 빛을 혼신을 다해 쏟아내며 마호가니 벽 위로 아름다운 빛을 드리운다. 인형의 집처럼 보이는 작은 서재를 지나치다 멈춰 최근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쿠조>부터 <죄와 벌>에 이르는 초판본과 계속 증식하는 현재와 과거에 출판된 서적 목록을 감탄하며 훑는다. 그런 다음 거실 창가의 의자에 몸을 깊이 누인 채 평화롭고 기분 좋은 고요함이 집 안 전체로 퍼져나가는 것을 느낀다. 나는 재창조된 드림 하우스에 내가 사랑하는 예술품과 공예품, 장식품, 아시아의 고미술품, 로마 시대 유물을 계속 채워 넣는 공상에 빠져든다. 해가 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못 이기는 척 넷플릭스를 한두 시간 봐야지… 내 영혼은 늘 뉴욕에 있겠지만, 내 마음은 교외의 고요한 기쁨의 집을 찾았다. (VL)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글
- MARC JACOBS
- 사진
- GREGORY CREWD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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