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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올 하우스의 왕좌에 오른 조나단 앤더슨

2025.06.04

디올 하우스의 왕좌에 오른 조나단 앤더슨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디올 CEO 델핀 아르노가 <보그 비즈니스> 인터뷰를 위해 자리에 앉으면서 말했다. “조나단 앤더슨이 디올의 남성복, 여성복, 꾸뛰르와 액세서리 라인 디자인을 총괄하게 됐습니다.”

2022년 로에베 재단 공예상 전시와 심사를 위해 한국을 찾은 조나단 앤더슨. 당시 ‘보그’ 인터뷰에서 그는 “길고 긴 로에베 역사에서 나는 손님에 불과하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건 앞으로 100년간 그 여정이 이어지도록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80년 가까운 역사의 디올 하우스, 그의 지휘 아래 과연 어떻게 달라질까?

5월 29일, 지난주 목요일이었다. 디올은 여성복과 꾸뛰르, 액세서리 부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에게 작별을 고했다. 지난 1월에는 남성복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킴 존스가 브랜드를 떠났고, 3개월 뒤인 4월에는 조나단 앤더슨을 그 자리에 임명했다. 델핀 아르노는 앤더슨이 LVMH 소유 브랜드 로에베에 합류한 2013년부터 디올 하우스에 매력을 느껴왔다는 비하인드를 밝히며, 지금 가장 재능 있는 디자이너인 그가 디올을 맡게 되어 기쁘다는 소감을 전했다.

한 명의 디자이너가 디올 남성복과 여성복을 도맡아 디자인하는 것은 무슈 디올이 사망한 1957년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제 40세밖에 되지 않은 조나단 앤더슨이 이브 생 로랑, 존 갈리아노, 에디 슬리먼, 라프 시몬스 같은 ‘위대한’ 디자이너조차 도달하지 못한 영역에 이른 것이다. 아르노는 하우스가 선보이는 모든 아이템에 일종의 일관성이 생길 것이라며, 디올이 전하는 메시지가 훨씬 더 명료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아르노는 앤더슨이 자신만의 비전을 가다듬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가 이 일에 엄청난 기대감을 품고 있다고 언급했다.

새로운 팀 구성 역시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 “디올은 실로 엄청난 팀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꾸뛰르와 레디 투 웨어 모두 세계 최고 수준이죠. 앤더슨과 오랜 기간 합을 맞춰온 인력 역시 디올에 합류합니다.” 앤더슨이 새로운 시대의 디올을 이끌어갈 적임자라고 확신하는 아르노의 말이다.

조나단 앤더슨의 로에베 데뷔 컬렉션. Loewe 2015 S/S RTW

조나단 앤더슨과 LVMH의 인연은 2013년 9월 로에베가 그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하면서부터 시작됐다. LVMH는 이와 함께 앤더슨이 2008년 론칭한 브랜드 JW 앤더슨의 소수 지분을 인수했다. 아르노는 거의 20년 전, 조나단을 처음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파리 북역 근처에 있는 쇼룸에서 그를 처음 만났죠. 조나단은 23세, 24세쯤이었을 겁니다. 벨을 누르자, 수다스럽지만 어딘가 성숙한 느낌의 청년이 문을 열어 저를 반겨주더군요. 나이에 걸맞지 않게 원대한 꿈을 갖고 있어, 깊은 인상을 받은 기억이 납니다. 바로 그날 JW 앤더슨에 투자를 결심했고, 그 후 그에게 로에베를 맡겼죠.”

크리놀린을 활용해 완성한 꾸뛰르풍 드레스. Loewe 2025 S/S RTW

조나단 앤더슨은 로에베를 전 세계에서 주목받는 럭셔리 하우스 중 하나로 탈바꿈시켰다. 사라 버튼, 피터 뮐리에, 아드리안 아피올라자, 퍼렐 윌리엄스, 그리고 ‘디올 선배’인 크리스 반 아쉐 등 그의 2025 봄/여름 컬렉션에 참석했던 수많은 동료 디자이너는 쇼가 끝나자 벌떡 일어나 손뼉을 쳤다. 금융지주회사 모건스탠리에 따르면, 로에베의 2014년 매출은 약 2억3,000만 유로였다. 얼라이언스번스틴 소속 애널리스트 루카 솔카(Luca Solca)의 조사에 따르면 조나단 앤더슨이 떠나기 직전인 2024년 매출은 약 15억~20억 유로로 추정된다. 로에베는 지난 3월 조나단 앤더슨을 떠나보낸 뒤 프로엔자 스쿨러 출신의 듀오, 잭 맥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를 새로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했다.

“그가 로에베에서 해낸 일은 무척 인상적이죠. 전통과 현대성을 적절하게 섞은 것은 물론, 브랜드에 장인 정신이라는 코드를 주입했습니다. 로에베 공예상은 이제 패션계뿐 아니라 예술계에서도 주목하는 상으로 거듭났죠.” 아르노는 앤더슨이 로에베에서 일군 모든 것에 경의를 표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로에베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가 디올에서도 마법을 부릴 수 있을까? 디올은 2017년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를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한 뒤 성장에 성장을 거듭했다. 2017년 22억 유로였던 디올의 매출은 2023년 4배 넘게 증가해 95억 유로에 이르렀다. 하지만 2024년 업계에 불황이 들이닥치며 디올의 연 매출은 87억 유로로 감소했고, 올해 역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루카 솔카는 지난 4월 <보그 비즈니스> 인터뷰에서 “디올에는 쇄신이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솔카의 말에 공감한 걸까? 디올은 지난해 10월 미우미우 CEO 출신의 베네데타 페트루초(Benedetta Petruzzo)를 전무이사로 고용했으며, 4월에는 펜디 출신의 피에르 에마뉘엘 안젤로글루(Pierre-Emmanuel Angeloglou)를 부CEO로 선임했다. 피에르 에마뉘엘과 베네데타는 델핀 아르노에게 관련 업무를 직접 보고한다.

아르노는 조나단 앤더슨이 브랜드 고유의 코드를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하우스에 새바람을 불러일으킬 적임자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앤더슨은 지난 2월 남성복 컬렉션 디자인을 시작한 이후 하우스의 아카이브를 연구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무슈 디올, 이브 생 로랑, 존 갈리아노, 라프 시몬스 등 전임자의 디자인을 살펴보며 하우스를 이해하려고 애쓰고 있죠.”

점토로 완성한 조나단 앤더슨의 '펑크적 꾸뛰르'. JW Anderson 2024 S/S RTW
점토로 완성한 조나단 앤더슨의 '펑크적 꾸뛰르'. JW Anderson 2024 S/S RTW

조나단 앤더슨에게도 디올의 ‘총책임자’ 자리는 커다란 도전이다. 꾸뛰르 컬렉션을 선보여야 하기 때문이다. 앤더슨의 디자인은 종종 “꾸뛰르를 연상시킨다”는 찬사를 받았지만, 꾸뛰르는 분명히 그에게도 낯선 분야다. 그의 생애 첫 꾸뛰르 컬렉션은 내년 1월, 2026 봄/여름 꾸뛰르 위크에 공개된다. 아르노는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그녀의 ‘고별 쇼’에 무려 20벌의 꾸뛰르 드레스를 선보였다며, 아틀리에가 숨을 돌릴 수 있도록 한 달 뒤 열릴 꾸뛰르 위크에는 쇼를 선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앤더슨의 첫 여성복 컬렉션은 오는 9월 만나볼 수 있다. “브랜드를 옮긴 수많은 디자이너가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겠죠. 정말 흥분되는 일입니다. 여러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이 분명하고요. 패션이란 결국 감정과 맞닿은 예술입니다.” 아르노는 자신 역시 25년간 패션계에서 일했지만, 최근 디자이너들의 대규모 이동처럼 급격한 변화를 목격하는 것은 처음이라며 다가올 2026 봄/여름 시즌에 대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앤더슨의 여성복 쇼는 뎀나의 구찌, 피엘파올로 피촐리의 발렌시아가, 듀란 랜팅크의 장 폴 고티에, 마티유 블라지의 샤넬, 다리오 비탈레의 베르사체 등과 함께 주목받는 컬렉션 중 하나가 될 것임이 분명하다.

6월 남성복 컬렉션, 9월 여성복 컬렉션 그리고 내년 1월 꾸뛰르 컬렉션까지. 언젠가는 디올이 남녀 컬렉션을 합치는 모습을 보게 될까? 아르노는 “당분간은 현 상태를 유지할 생각”이라며, 1년 동안 선보이는 패션쇼 횟수를 줄일 생각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렇다면 JW 앤더슨의 운명은? “그가 JW 앤더슨을 떠나는 일은 당분간 없을 겁니다. JW 앤더슨은 그에게 큰 의미를 갖는 브랜드니까요. 앤더슨의 결정에 따라 그의 역할이 조금 바뀔 수도 있겠죠.”

Elektra Kotsoni, Laure Guilbault
사진
이규원, GoRunway, InDigital Media
출처
www.voguebusines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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