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사키는 창립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엄격한 평가 기준을 통해 최상급 진주만 사용한다. 고전적인 멋은 간직하되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도록 길이를 늘인 아코야 진주 목걸이와 짧은 직선 바에 남양 진주와 다이아몬드를 살포시 얹은 ‘밸런스 클래스’ 반지가 그 아름다운 결과물이다. 자크뮈스와 협업한 옥스포드 신발은 레페토(Repetto).

2010년 타쿤 파니치갈이 론칭한 ‘밸런스’ 컬렉션. 진주를 직선 바 위에 완벽하게 올린 모던한 디자인이 특징이다. 화이트 골드 소재 ‘밸런스 패럴러’ 반지는 아코야 진주 5개가 일렬로 놓인 2개의 바가 손가락을 비대칭으로 감싼다. 흰색 데님 바지는 로렌 랄프 로렌(Lauren Ralph Lauren).

‘데인저’ 컬렉션은 식충식물의 숨겨진 위험한 매력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했다. 식충식물이 먹이를 낚아채는 순간을 포착해 주얼리 디자인에 적용한 것. ‘데인저 팡’ 목걸이와 반지는 날렵한 옐로 골드 송곳니가 달린 아코야 진주가, 모자 끝에 걸린 ‘데인저 트라이브’ 이어커프는 앙증맞은 사이즈의 진주와 가시 장식 조화가 돋보인다.

아코야 진주 3개가 세팅된 반지는 ‘밸런스 네오’, 5개가 세팅된 반지는 ‘밸런스 시그니처’ 컬렉션. 모두 화이트 골드로 된 밴드와 바를 다이아몬드로 화려하게 장식했다.

진귀한 남양 진주 목걸이에 탈착 가능한 옐로 골드 프레임을 연결한 형태의 ‘페플럼 샹들리에’ 하이 주얼리 목걸이. 다이아몬드로 장식한 프레임과 아코야 진주를 프릴처럼 연출하고, 옐로 사파이어를 매달아 샹들리에의 화려함을 표현했다. 가방은 케이트(Khaite).

아코야 진주와 옐로 골드 스파이크의 조화가 매혹적인 ‘데인저 트라이브’ 후프 귀고리는 태양을 형상화한 것처럼 보인다. 펌프스는 보테가 베네타(Bottega Veneta). 주얼리는 타사키(Tasaki).
진주라고 하면 대부분 네덜란드 화가 얀 페르메이르(Jan Vermeer)의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떠올리지만, 내게는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무적함대 초상화(The Armada Portrait)’가 먼저다. 당대 남성 군주들보다 약해 보일 것을 염려한 여왕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보석으로 덮다시피 했는데, 그림만 봐도 진주를 특별히 사랑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몸을 뒤엎은 수천 개의 진주는 피부와 드레스는 물론 머리카락 장식으로도 쓰였기 때문이다. 순결, 권위, 신성한 통치자를 상징하던 진주의 가치를 적극 활용한 것이다. “진주는 우연히 만들어지는 것이므로 그것을 발견하는 일은 세상 모든 신들이 등을 살짝 두드려주는 것과 같은 행운이었다.” 미국 소설가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1947년 작품 <진주>의 한 구절처럼 진주는 세상에서 가장 진귀한 보석이었다. 당시엔 잠수부가 목숨을 걸어야만 조개를 채취할 수 있었고, 조개를 1만 개 정도 채집해야 겨우 하나의 진주를 얻을 수 있었기에 귀하게 대접한 것은 당연했다.
진주는 지금까지도 사랑받고 있다. 1920년대 코코 샤넬이 모조 진주를 유행시켰고, 오드리 헵번 같은 패션 아이콘이 대거 등장한 1950~1960년대 진주 목걸이는 고전적인 여성미를 상징하는 필수 아이템이 됐다. 오늘날에는 알레산드로 미켈레식의 호화로운 해석과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진주 초커로 대변되는 Y2K 스타일이 모두 공존한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과거 화려하게 꽃을 피운 진주의 명성은 사그라졌다. 진주는 다시 전성기를 맞을 수 있을까? 나는 그 가능성을 타사키에서 발견했다. 진주를 반으로 자르는가 하면, 구멍을 뚫어 스터드를 박는 등 지금껏 진주를 다뤄온 방식에서 벗어난 도발적이고 창의적인 시도는 진주의 또 다른 팔색조 매력을 보여줬다. 영롱한 진주와 아주 작은 호른 모양 금뿔을 조합한 ‘데인저 호른’ 귀고리를 봤을 때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진주 주얼리를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타사키의 도전과 혁신은 특별한 자부심에서 비롯된다. 진주 양식을 비롯해 선별·가공·디자인·판매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인하우스에서 독자적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1954년 창립자 슌사쿠 타사키(Shunsaku Tasaki)가 고베에서 진주 양식 사업과 양식 진주 판매를 시작하며 탄생한 브랜드답다. 자사 연구소까지 설립해 1970년 무지갯빛을 띤 반구 형태로 ‘환상 속의 진주’라고 불리는 마베(Mabe) 진주 재배에 세계 최초로 성공할 만큼 진주 양식에도 진심이다. 연마나 성형 없이 진주조개와 사람의 힘만으로 흠집 하나 없는 아름다운 진주를 만드는 건 기적 같은 일이라고 타사키 하우스는 설명한다. 타사키는 이 귀중한 보석을 얻기 위해 사계절이 뚜렷해 영양분이 풍부한 일본 연안수를 활용한 자체 양식장을 운영하고 있다.
“여깄어요!” 한 사람의 손끝으로 시선이 모였다. 조갯살 사이로 밀어 넣은 엄지와 검지로 조심스럽게 집어 올린 것은 뽀얗고 동그란 진주. 아직 겨울의 차가운 기운이 남아 있던 지난 3월, 나가사키 구주쿠시마에 있는 타사키 양식장에서 직접 진주를 경험한 특별한 순간이다. 배 위에서 채취한 진주 6개는 비슷하면서도 모두 다른 빛깔을 품고 있었다. 1979년 설립된 나가사키 양식장은 대규모 진주 양식장 중 하나로, 매년 약 100만 마리의 진주조개와 500만 마리의 어린 조개를 키우고 있다. 연중 내내 바닷물이 잔잔하며, 다양한 해양 생물을 보호하는 구역이라 진주를 위한 완벽한 지리적 환경을 갖추고 있다. 2016년 문을 연 이세시마 양식장 역시 마찬가지다(이곳에서는 3~4mm 크기의 희귀한 어린 진주를 양식하고 있다).
진주는 조개가 분비하는 진주층이 진주핵을 겹겹이 감싸면서 만들어진다. 진주조개 모체에 삽입하는 진주핵은 진주조개 자체에서 얻는 천연 물질로, 고품질 진주 생산을 위해 아코야 진주조개에서 떼어낸 세포를 함께 삽입하는 것이 핵심. 타사키의 장인 정신이 돋보이는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육성 기간이 끝난 진주 추출은 진주 표면에 조밀한 층이 형성되는 겨울에 이루어지며, 모두 한 알씩 손으로 직접 채취한다. 진주핵 삽입에서 채취까지 1년이 걸린 진주는 ‘올해의 진주’, 2년 된 진주는 여름을 두 번 지났다는 뜻으로 ‘코시모노’라고 부른다. 어린 조개 탄생 단계부터 채취까지, 타사키 진주의 양식 기간은 총 3~4년. 수확한 진주는 공방으로 옮겨 수작업으로 선별을 거친다. 색과 광택의 미묘한 차이에 따라 진주를 구별하는 일은 기계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타사키의 평가 기준은 엄격하다. 자체 수확한 진주의 40%만 ‘타사키 퀄리티’의 기준을 충족할 정도. 다시 그 안에서 4%만 ‘최상급 진주’로 분류되며 그중 크기, 모양, 품질 등 완벽한 조합을 갖춘 1% 진주가 ‘밸런스’와 ‘데인저’ 컬렉션에 사용된다(나머지 3%는 이중으로 구멍을 뚫어야 하는 목걸이를 제외한 주얼리에 쓰인다).
어린 진주조개의 먹이를 위해 배양 중인 특수 플랑크톤, 조개의 스트레스 요인 제거를 위한 반복적인 조정 작업, 고르게 들어오는 자연광 아래 이루어지는 진주 선별 과정, 진주의 가장 예쁜 방향이 보이도록 고민하는 세팅까지 세심하고 정밀한 과정을 거쳐 하나의 진주 주얼리가 완성된다. “나가사키에 있는 진주 양식장과 주얼리가 완성되는 공방을 살펴본 후 완전히 반하고 말았습니다.” 2009년부터 타사키와 협업을 이어오고 있는 디자이너 타쿤 파니치갈(Thakoon Panichgul)은 2018년 <보그 코리아> 인터뷰에서 이렇게 답한 적 있다. 당시엔 조금 의아했는데, 지금은 깊이 공감한다. 진주를 욕심내도 좋을 그럴듯한 핑곗거리가 생겼다. (VK)
- 포토그래퍼
- 장기평
- 패션 에디터
- 김다혜
- SPONSORED BY
- TASA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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