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파이브’, 강형철 감독이 그려온 소녀들의 매력
영화 <하이파이브>는 <과속스캔들>(2008), <써니>(2011), <타짜-신의 손>(2014), <스윙키즈>(2018)를 연출한 강형철 감독의 작품이다. 영화를 보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강형철 감독의 강점은 ‘경쾌함’이다. 관객에게 익숙한 음악을 활용해 경쾌한 액션 신을 연출하고, 캐릭터들이 서로의 매력을 드러내며 보여주는 ‘티키타카’ 역시 경쾌하다.


<하이파이브>는 몸이 아팠던 평범한 사람들이 우연히 초능력자의 장기를 이식받아 건강은 물론 초월적인 능력까지 갖게 되면서 히어로로 거듭나는 이야기다. <써니>에서 일곱 소녀를 통해 보여준 ‘케미’의 매력, <스윙키즈>에서 구현된 율동의 활력, 여기에 <타짜-신의 손>에서 느낄 수 있었던 속도감과 유머가 <하이파이브>에서도 엮여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그리고 <하이파이브>는 그 기대를 충분히 충족시켰다. 음악에 맞춘 추격전은 활력이 넘쳤고, 리드미컬한 연출은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도 납득하게 만들었다. 개성 있는 캐릭터들이 하나의 팀으로 성장하는 과정 또한 보는 재미를 더했다. 슈퍼히어로 영화답게 익숙한 부분이 있지만, 그마저도 감독의 스타일로 밀어붙인다.

그런데 개인적으로 <하이파이브>를 보면서 가장 큰 매력을 느낀 부분은 따로 있었다. 영화 <사바하>와 드라마 <라켓소년단>에 출연했던 배우 이재인이 연기한 ‘완서’라는 캐릭터다. 극 중 완서는 선천적으로 심장이 약한 아이다.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아버지의 영향으로 태권도를 익혔지만, 아버지는 딸의 건강을 걱정해 무리한 활동을 반대한다. 그런 그녀가 초능력자의 심장을 이식받은 후 엄청난 괴력을 갖게 된다. 발 차기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한 수 가르쳐주겠다며 540도 돌려 차기를 했다가 건물 천장을 부숴버리고, 친구가 없다는 사실에 답답해 뛰어다니다가 하늘을 날아버린다. 그럴 때마다 당황하고 멋쩍어하는 표정이 흥미롭다. 본인의 의도보다 몸이 먼저 반응해버린 듯한 난처함이 웃음을 자아낸다.

<써니>에서 전라도 출신 할머니의 욕을 따라 했다가 상대의 기를 꺾고 친구들의 환호를 받았던 나미(심은경)의 표정이 떠오를 수도 있다. 사실 <하이파이브>의 완서는 나미뿐 아니라 <스윙키즈>의 양판래(박혜수), <과속스캔들>의 황제인(박보영)과도 그림체가 닮은 소녀다. 작은 키에 어딘가 기가 죽은 듯한 표정, 그런데도 기죽은 것을 들키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이들 모두 이전에는 접해보지 않았던 미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소녀들이라는 점이다. <써니>는 전라도 벌교에서 나고 자란 소녀가 서울로 전학해 새로운 친구들을 만나면서 겪는 이야기였고, <과속스캔들>은 미혼모인 소녀가 친아버지를 찾아 동거하며 가수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스윙키즈>의 양판래는 돈을 벌기 위해 포로수용소 댄스단의 통역을 맡았다가 춤의 매력에 빠지게 되는 인물이다. 이처럼 새로운 세계, 새로운 관계, 새로운 재미를 발견한 소녀들은 결국에는 그 판을 주도하는 인물로 성장하며 새로운 인생을 맞이한다.

이런 서사를 떠올려보면, <하이파이브>의 완서는 강형철 감독이 그려온 소녀들의 매력을 확장한 캐릭터로 보인다. 황제인에게는 말발이 있었고, 나미에게는 ‘접신’을 모사하는 연기력이 있었지만, 완서처럼 강력한 괴력을 지닌 캐릭터가 보여주는 반전 매력은 더 강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 극 중 완서가 다른 히어로들을 이끄는 리더가 되었을 때, 그리고 최종 빌런과 벌이는 가장 격렬한 액션 신의 주인공이 되었을 때, 상당히 큰 쾌감이 느껴진다. (그 와중에도 잘생긴 악당을 오빠라고 부르거나, 그 악당이 예쁘다고 말할 때 미소 짓는 순간은 특히 반짝인다.) 액션과 유머 사이를 오가는 그녀의 리듬은 강형철 감독 영화 특유의 톤과도 맞아떨어진다. 영화 후반부에 이르면 빌런의 무리수 때문에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이재인이 연기한 완서는 유쾌한 활력으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한 명의 관객으로서 <하이파이브>가 강형철 감독의 전작보다 더 흥미롭다고는 생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려낼 또 다른 소녀들을 기대하게 만든 작품인 건 분명하다. 물론, 배우 이재인의 차기작도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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