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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계속 달리고 싶다

2025.06.06

나는 계속 달리고 싶다

매일 밤 술을 마시던 내가 달리기를 시작했다. 날씨나 주변인이 달리기를 방해하면 화가 날 정도로 중독됐지만, 여기서 멈출 순 없다.

Getty Images

하루에 와인 세 잔은 마시는 친구가 “너무 많이 마시나?”라고 물은 적 있다. 가소로웠다. 겨우 세 잔 가지고? 나는 하루에 열 잔은 마신다고 말했고, 우린 둘 다 웃어버렸다.

당시 20대였던 우리는 뉴욕에 거주하면서 블로그를 운영했다. 퇴근 후 음주는 일상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말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양이 문제가 아니라 끊을 수 없는 이 욕구가 문제 아닐까? ‘와인이잖아. 뭐가 문제야. 술도 안 마시면 뭘 하고 살아?’ 이렇게 여겼지만 어쩌면 내가 살짝 통제 불능 상태는 아닐까 의구심이 커져갔고, 그 와중에도 매일 와인을 마셨다.

“좋아하는 일을 하라” “열정을 따르라”는 조언을 들으면 나는 ‘좋아, 그럼, 소믈리에가 돼볼까?’라고 결심할 정도였다. 금주는 나와는 먼 얘기였다. 지인 중에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도 드물었고, 친한 친구들 중에는 아예 없었다. 술을 끊는 것은 지루하고 너무 극단적인 일 같았다. 단점(숙취, 체중 증가, 피부 상태 악화, 기억 단절, 구토, 손 떨림, 끊임없는 사죄 같은 것들이 뭐 대수인가)이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30대가 되고 나서 나는 술을 끊었다. 2016년 5월의 어느 아침 눈을 떴는데 멈추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블로그 활동을 그만두고 나 자신을 되찾고자 도망치듯 뉴욕을 떠나) 퀴퀴한 냄새가 나는 케이프코드의 작은 집을 빌려 머물 때였다. ‘더 이상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끝내고 싶어.’ 술 때문에 정신이 혼미했고, 매일 똑같은 음울한 일상이 반복됐다. ‘이 모든 걸 완전히 끝내고 싶어.’

기적적으로 금주는 쉬웠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랬다. 몇 달 전 즉흥적으로 주문한 알렌 카(Allen Carr)의 <Stop Drinking Now>를 읽었고, 덕분에 음주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었다. 금주는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옷을 벗어버리는 거였다. 그만큼 간단했다. 술을 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정작 어려운 건 술을 마시는 대신 할 일을 찾는 거였다. 내겐 제대로 된 취미가 없었다. 과거엔 일중독에다 알코올중독이었다. 여전히 케이프코드의 곰팡내 나는 작은 집에 살면서 아침이면 말짱한 정신으로 카페에서 시간을 보냈다. 갑자기 시간이 많아졌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무엇인지 헤매고 있었다.

술을 끊은 뒤 이런 공허한 감정은 흔히 일어난다. 난 어떤 사람이지?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이 뭘까? 우선 나는 범죄 스릴러를 감상하며 간극을 메웠다. 뜨개질을 하며 유튜브로 머리 빗는 소리 ASMR을 틀어놓았다. 그런 행위가 술에 취한 듯한 최면 상태로 이끌었다. 더 나아가 심야의 바 호핑을 아침의 카페 방문으로 전환했다. 카페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고자 일기를 썼고, 그렇게 어느새 매일 아침 2시간을 커피 마시고 글을 쓰며 보냈다. 그러다 그림도 그리기 시작했다.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는 지금 내가 하는 일인 만화 일기로 바뀌었다. 나는 인스타그램에 내 만화를 올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뉴스레터로 만드는 일을 하기 위해 직장을 그만뒀다.

그러고 나서 달리기를 만났다. 달리기는 술에 취해 있던 이전의 삶과 매우 동떨어진 활동이었다. 나는 운동을 해본 적도 없고, 오히려 꺼렸다. 20대에 한 번 달려본 적이 있는데 얼굴에서 불이 나고 가슴이 터질 듯해서 죽는 줄 알았다.

케이프코드를 떠나 다시 브루클린으로 이사(새로운 생활을 원했고, 남편감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싶었다)한 뒤 집 근처 바레 학원에 등록했다. 운동 강도가 높아 아무 생각 없이 몰두할 수 있어 좋았다. 팬데믹 때문에 수업이 원격으로 전환될 때까지 계속했다.

어느 날 나의 작은 주방에서 식초병을 아령 삼아 수업을 듣는데 ‘이건 아닌데’ 싶었다.

친구의 추천으로 온라인 달리기 커뮤니티에 가입했다. 놀랍게도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나 자신에게 ‘이건 다시 느끼고 싶은 고통이야’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 후 산책 도중에 살짝살짝 뛰기 시작했고 몇 주 뒤에는 약 4.8km의 공원을 쉬지 않고 계속 달릴 수 있었다. 4개월 뒤, 나는 일주일에 약 64km를 뛰고 있었다. 여섯 번은 약 8km씩, 한 번은 더 길게 달리면서 달리기 앱 ‘스트라바(Strava)’에 매일 기록했다. 추천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달리 할 일도 없었다. 달리기가 정말 좋았다. 게다가 통증이나 부상도 없었다(나중에 그런 것이 찾아오긴 했다).

달리기는 좋은 일이다. 그것에 대해 거짓말하거나 숨길 이유가 없다. 달리기 덕에 행복해지고 삶은 나아졌다. 달리기와 음주는 공통점이 약간 있긴 하다. 예를 들면, 뛸 수 없는 날이면 욕구 때문에 몸이 근질근질하다. 그래서 쉬려고 계획한 날마다 마음이 바뀐다. ‘그냥 지금 당장 얼른 뛰고 오자. 대신 내일 쉬면 돼.’ 나는 일주일에 한두 번만 달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 ‘어째서 더 뛰지 않는 거지? 매일 달리고 싶지 않을까?’

게다가 나는 달리기 때문에 주변 사람과 다툰다. 아니, 사실은 남편과만 그럴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남편도 달리기 때문에 만났다. 팬데믹이 시작될 무렵 달리면서 웃고 있는 내 사진에 “새로운 취미인 달리기에 빠졌어요”라는 소개 글을 달아 데이트 앱에 가입했다. 그 앱에서 우리는 매칭이 되었고, 그로부터 몇 주 뒤 나는 그의 아파트에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음주와 마찬가지로 멀리서 보면 달리기 취미가 ‘아무 문제도 없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외려 엉망인지도 모른다. 특히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경우에 그렇다. 언젠가 남편이 “달리기가 생각만큼 모두를 행복하게 하지 않아. 당신의 달리기를 지원하기 위해 내가 시간을 내야 하잖아. 그러니까 비용이 아예 들지 않는 건 아니지. 또 그것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처럼 돼버리면 순수하게 건강하고 긍정적인 활동이라고만은 할 수 없어”라고 말했다.

엄마가 된 첫해에 겪은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남편이 빨리 귀가해 아이를 봐주어야 달리러 나갈 수 있었는데, 오지 않는 그를 기다리며 침대에 앉아 분을 삭였다. ‘꼭 달려야 하는데, 도대체 날 왜 이렇게 힘들게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 남자 친구와의 일도 떠올랐다. 믿기 어렵겠지만 술을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가 나에게 일주일 동안 술을 끊으라고 권유했고, 저녁 식사 데이트에서 나는 분노가 치밀었다. 내가 정말 원한 건 술이었다. 토라진 나는 테이블 한가운데 놓인 양초만 봤다. ‘넌 나를 몰라. 네가 뭔데 내가 좋아하는 것을 못하게 하지?’

나는 지금도 달리기를 하고 있다. 지금은 일주일에 약 40km를 달리지만 아름다운 농지를 가로지르다가 야생 칠면조, 흑곰, 독수리, 고슴도치와도 만나니 더 즐겁다. 여전히 ASMR을 틀어놓고 뜨개질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범죄 스릴러도 읽는다. 하지만 달리기는 다르다. 부상이 모든 걸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달리기는 내 삶이나 마찬가지다.

둘째 딸을 출산하고 집에 돌아온 후에 나간 첫 번째 달리기는 내가 상상한 대로 아주 행복했다. 2월의 찬 공기를 맞으며 느끼는 활기찬 기분을 진정으로 원했다. 회복을 위해 다음 날은 쉬어야 했지만 다시 뛰러 나가고 싶은 욕구를 참을 수 없었다. 무릎이 조금 이상했지만 종종 있는 일이므로 금방 괜찮아질 거라 여기고 그냥 달렸다. 하지만 괜찮아지지 않았다. 갑자기 발에 통증이 시작됐고, 더 이상 뛸 수 없었다. 나는 절뚝거리며 겁에 질려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후로 내 발은 예전 같지 않았다. 그래도 달리기는 계속하고 있다. 사실 달리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때로는 이런 취미로 내가 종교적 신념, 기도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끊임없는 활동도 기도에 포함된다면 말이다. 마음을 비우고 싶은 만큼 더 큰 무언가와 합일되고 싶기도 하다. 그것은 내가 바에서 와인을 마시면서 느꼈던 감정과도 같다. 달리는 동안 나는 자주 간청하거나 감사하고 싶어진다. ‘이 삶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과 남편을 만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런 마음이 절로 생겼다.

어느 날 팟캐스트에서 달리기가 음주보다 더 나은 이유를 들었다. “알코올은 출구인 반면 달리기는 입구다. 알코올은 정신이 위축되지만 달리기는 정신이 확장된다.” 많은 이가 댓글로 공감했다. 하지만 이런 댓글도 있었다. “달리기가 건강에 좋다고 해서 사람과 달리기의 관계가 반드시 건강한 건 아니죠.” 하지만 그 사실을 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어떻게 그만둘 수 있을까? 나는 그러고 싶지 않다. 계속 달리고 싶다. 에디스 짐머만(Edith Zimmerman) 작가, 일러스트레이터

    피처 디렉터
    김나랑
    피처 에디터
    류가영
    에디스 짐머만(Edith Zimmerman)
    사진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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