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내비게이션과 휴대폰 없이 여행을 떠났다

2025.06.07

내비게이션과 휴대폰 없이 여행을 떠났다

여행을 하고 싶은가? 내비게이션을 끄고, 지도 앱을 삭제하자. 휴대폰은 잊어버려라.

오래전 아직 아이가 태어나지 않았을 때 남편과 나는 미국 남서부를 횡단하는 자동차 여행을 떠났다. 여행에는 몇 가지 난관이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자랐음에도 내가 운전을 배운 적이 없다는 사실이 주된 이유였다. 남편과 나는 타협점을 찾았다. 그는 운전대를 잡고, 나는 방향을 알려주는 것이다.

우리는 주유소에서 상당히 큰 랜드 맥널리(Rand McNally) 도로 지도책을 샀다. 출발하면서 나는 조수석에 앉아 지도를 무릎 위에 펼쳐놓고 운전대를 틀어야 하는 곳을 표시해두었다. 하지만 가끔 우리가 어디 있는지 놓치곤 했다. 고속도로 출구를 지나치고 나서야 그곳으로 나가야 한다고 가리키던 일이 기억난다. 뒤돌아보면 나의 방향감각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비효율적이었다. 하지만 그 여행의 모든 것은 내 마음속에 온갖 노스탤지어로 맺혀 있다. 길을 돌아가는 즐거움, 뜻하지 않은 발견의 반가움, 길을 잃은 기쁨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서려 있는 것이다.

이제 여행은 과거와 많이 달라져 길을 잃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하는 것은 더 쉬워졌다. 하지만 이런 효율성의 대가는 세상 어디에 있든 수많은 블로그와 릴스를 통해 이미 여행한 것처럼 익숙한 길을 따라간다는 느낌을 받게 한다. 우리는 방향감각을 완전히 상실하면서 발견하는 기쁨을 잊어버렸다. 내비게이션 추천 경로에서 벗어나면서 뛰어들게 되는 모험을 잊었다.

최근 나는 15년 만에 일본으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남편, 두 아이와 함께했다. 그곳을 돌아다니는 일이나 서툰 일본어를 구사하는 일이 모두 오랜만이었다. 그래서 길을 잃거나 의사소통에 실패할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가 그곳에 없는 동안 사람들의 영어 실력이 전반적으로 좋아진 데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일본 여행에도 갖가지 테크놀로지가 등장했기 때문이다. 어느 도시에 가든 온갖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앱 사용이 가능하고, 거기서 나오는 기계 음성이 어떤 출구로 나가야 하는지 지겹도록 반복해서 알려준다. 이제 국제전화 요금 걱정 없이 왓츠앱을 통해 친구와 가족에게 연락할 수 있으며, 구글 번역기를 사용하면 간단한 휴대폰 조작만으로도 249개 언어로 소통할 수 있다.

이제 더는 길을 잃을 이유가 없다. 다시 말해, 길을 잃을 수 있는 메커니즘이 애초에 없는 거나 다름없다. 하지만 여행법이 발달해도 변치 않는 사실도 있다. 아직 모든 것이 GPS에 담기지 않았다는 것. 여행 막바지에 우리는 휴대폰의 도움을 받으며 도쿄와 교토를 돌아다닌 뒤, 도쿄 외곽의 산장 휴양지에서 엄마와 이모를 만났다. 할아버지가 소유했던 휴가용 별장에서 산림욕을 즐기기 위해서였다. 엄마와 이모는 50여 년 전 그곳에서 여름휴가를 보냈다.

오래전 일이라 엄마와 이모 누구도 주소를 기억하지 못했다. 둘은 한동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이메일과 문자를 확인하고 거리 이름을 기억해내기 위해 애썼지만 아무 성과가 없었다. 결국 이모는 차를 타고 동네를 돌아보며 찾자고 제안했다. 우리는 택시에 올라타 숲을 가로지르며 택시 기사에게 마구잡이로 방향을 알려주었다.

엄마와 이모는 차창 너머로 익숙한 풍경을 찾으려 했다. “죄다 바뀌었네”라고 엄마가 말했다. 택시 기사가 우리의 어이없는 탐험에 지칠 때쯤, 이모가 소리쳤다. 뭔가 알아본 것이었다. 기억이 어떤 형체를 건져 올렸다! 이모는 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방향을 알려주기 시작했고, 마침내 택시 기사에게 세워달라고 말했다. “여기야”라고 이모가 말했다. “여기가 맞는 것 같아.” 언덕 위에는 조그마한 흰색 목조 주택이 있었다. 나무에 가려져 걸어서만 갈 수 있는 곳이었다.

“대체 어떻게 찾은 거지?”라고 엄마가 물었다. “도로에서도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야.” 당연히 그 답은 기억 속에 있었다. 과거에 했던 수백 번의 여행, 그 경로와 여정이 남긴 기억의 편린, 클라우드나 데이터 로그가 아니라 뇌의 피질에 존재하는 흔적에서 나온 것이다. 그것은 업데이트하기 어렵고 가끔은 떠올리기 힘들지만, 우리 가족의 얼굴에 드러나듯, 찾기만 하면 그 무엇보다 달콤하다. (VL)

    피처 디렉터
    김나랑
    KATIE KITAMURA
    사진
    ANTON CORBIJ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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