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과 따분함이 조화를 이룬 화가 샘 맥키니스의 집
유명인의 이미지에 투영된 개인의 욕망에 주목해온 화가 샘 맥키니스가 화려함과 따분함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코네티컷의 새집을 꾸미며 집에 대한 스스로의 마음을 확인했다.

내가 화가 샘 맥키니스(Sam McKinniss)에 대해 처음 안 사실은 그가 ‘가짜’를 좋아한다는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대중문화의 친숙한 이미지를 모티브로 한 회화 작업으로 명성을 얻은 이 서른아홉 살의 화가는 진실과는 무관할지도 모를, 왠지 모르게 불안정하고 분열되어 보이는 이미지에서 매력을 느껴왔다. 그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가 그린 그림은 친숙하게 느낄 게 분명하다. 연민, 경멸, 애정, 멸시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그 이미지는 미디어에 수없이 노출되며 어느새 대중의 잠재의식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맥키니스의 새집은 코네티컷에 자리한다. 17세기에 지은 오두막처럼 보이는 그의 안식처는 물론 집으로 기능하지만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예술 프로젝트처럼 보였다. 길고 낮은 형태에 거칠게 다듬은 기둥 몇 개가 건물을 위태롭게 받치고 있는 이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굴뚝에서 뿜어 나오는 연기가 목재 패널 위에 잔잔히 퍼지고 창문에는 미묘한 물 자국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가을에 진입한 시점이라 나무는 이미 잎사귀를 다 떨군 상태였고, 집 앞에는 겨울을 대비한 장작더미가 가슴 높이까지 쌓여 있었다.

“1969년에 지은 집이에요.” 브룩스 브라더스 팬츠에 새하얀 옥스퍼드 셔츠, 새빨간 슬리퍼와 검은색 카디건을 어깨에 걸친 깔끔하면서도 캐주얼한 차림으로 맥키니스가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 파트너 마이클 론드레스(Michael Londres)와 함께 살고 있는 이 집은 맥키니스의 작품과 친구들의 작품, 그가 존경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두 아우르는 각종 그림과 화려한 벽지, 화병에 담긴 국화로 가득했다. 내게는 총천연색과 갖은 패턴이 폭발하는 화려한 칵테일처럼 보였다. 맥키니스의 작품을 소장한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의 데이비드 코단스키(David Kordansky)는 이 집이 맥키니스 그 자체라고 표현했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뭔가와 대중적인 요소가 아주 매력적으로 결합된 공간이잖아요. 화려한 것과 따분한 것이 독특한 방식으로 조화를 이루죠. 샘의 그림처럼요.”

4형제 중 셋째로 태어난 맥키니스는 아버지가 지역 목사로 활동한 코네티컷의 하트퍼드 카운티에서 자랐다. “매주 일요일마다 연단에 서는 아버지를 보면서 온갖 수사법과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법, 평정심에 대해 많이 배웠어요.” 맥키니스가 말했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실제 모델을 앞에 두고 이루어지는 스케치 수업을 받기 위해 미술 학원을 다녔고, 하트퍼드 아트 스쿨에 장학생으로 진학했다. 대학 졸업 후에는 남자 친구를 따라 보스턴으로 갔다. 몇몇 상점에서 일했지만 충분히 만족스럽진 않았다. “그래도 유명 서점 브래틀 북 숍에서 일한 것은 행복한 경험이었어요.” 당시 그는 동성애자의 삶을 있는 그대로, 그러나 다정한 시선으로 포착한 작품으로 명성을 얻은 사진가 낸 골딘과 잭 피어슨의 작업에서 영감을 받아 주변 친구들을 그리기 시작했고, 소소하게 입소문이 나자 1년에 몇 점 정도 그림을 파는 화가가 됐다.
2011년에는 뉴욕대학교에 다니기 위해 뉴욕에 정착했다. “타인의 눈길을 끌기 위해 애쓰던 바보 같은 시간이었죠.” 그가 말했다. 맥키니스의 대학 동기이자 작업실 이웃이었던 화가 릴리 스톡먼(Lily Stockman)은 맥키니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샘은 쿨한 카리스마와 지적인 자신감을 갖췄어요. 모임에서 늘 리더였죠. 어리석은 짓을 절대 용납하지 않고, 논쟁을 벌이는 데 주저함이 없었어요. 농담, 토론, 건설적인 논쟁을 즐겼죠. 게으름, 일을 대충 처리하는 것, 걸어가면서 뭘 먹는 사람들을 싫어했고요. 샘은 한편으로는 정말 신사예요.”
맥키니스가 브루클린 창고와 다운타운 클럽 등에서 열리던 파티에 자주 드나들기 시작했을 때, 그는 한 DJ와 사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뉴욕 팀 갤러리, 이어 트라이베카에 자리한 재스민 T. 추의 전시 공간 JTT에서 작품을 선보이며 마니아 팬층을 형성했다. “샘은 사람들의 그런 행동에 관심을 보였어요. 유명인을 바라볼 때 자신의 욕망을 투영하는 것에 대해서요. 샘이 그린 그림을 보기 전까지 관람객은 그 이미지를 둘러싼 자신의 욕망이 얼마나 강렬한지 깨닫지 못하죠.” 추의 설명이다. 같은 시기 맥키니스는 19세기 프랑스 화가 앙리 팡탱 라투르(Henri Fantin-Latour)를 연상시키는 회화 작업에 열중하기 시작했다. “그의 꽃 그림이 어찌나 얌전하던지 껄렁한 애들이 아주 싫어했어요. 물론 샘은 그 반응을 즐겼죠.” 스톡먼이 회상했다. “샘에게는 엄청나게 가톨릭스러운 측면도 있어요.”
2015년에 서른 살이 된 맥키니스는 “밤새 약에 취해 밖에서 노는 일이 더 이상 재밌게 느껴지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는 언제나 ‘쓰레기 같은 곳’에서 살았지만, 성공적인 개인전을 몇 차례 선보인 후 경제적으로 안정되며 2019년에는 그린포인트의 아파트 한 층 전체를 임대했다. (그런 다음 가수 로드의 2017년 앨범 <Melodrama>의 커버를 그린 일로 한동안 갑작스럽게 유명해졌다. 그는 로드에 관해 “둘 다 공통적으로 아는 친구 한 명이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그린포인트 아파트는 이제까지 살았던 곳 중 가장 호화로운 편이었지만, 팬데믹 시기에 폐소공포증이 찾아온 후 그 호감은 한층 시들해졌다. 맥키니스는 집을 돌보는 대신 앤티크 가구와 소품 등을 사 모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머지않아 그 모든 소장품을 전시할 새로운 집이 필요하다는 결심이 섰다. 친구들이 곧바로 그가 새로운 보금자리를 물색하는 일을 도와주었고, 2021년 마침내 켄트에 자리한 이 집을 찾아낸 것이다. 목공소를 운영하는 고등학교 동창들이 많은 곳을 직접 손봐주었다.

현재 이 집에서 거슬리는 보수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현관에 바른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벽지가 낡은 벽을 말끔히 가리고, 근처에는 볼캡 24개가 세심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맥키니스는 이어 토마토 수프처럼 새빨갛게 칠한 세탁실을 보여주었다. 갑작스럽게 툭 튀어나온 천장 일부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집을 지은 로저 곤잘레스라는 사람은 지인들이 그 부분을 지적할 때마다 그게 애초에 이 집의 경계였다는 흥미로운 역사를 들려주곤 했대요.” 맥키니스가 이야기했다. “지금 집은 그로부터 엄청나게 증축된 버전이라고 말하면서요.” 이어 연식이 느껴지는 놋쇠 촛대 한 무더기가 눈에 들어왔다. “개당 5달러에 샀어요.” 앤티크 유리창도 중고로 구입했다. 광택감이 느껴지는 거실 벽은 초록색 래커를 칠했는데, 신고전주의 시대 유산인 역사적 명소 마운트버넌에서 영감을 받았다. 선명한 초록색이 미국 식민지 시대 스타일에 바치는 오마주처럼 보이는 동시에 조금 과장해서 <오즈의 마법사>에 등장하는 에메랄드 시티가 실제로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일까 싶었다.

“이 집이 인테리어 디자이너 도로시 드레이퍼(Dorothy Draper)를 떠올리면 좋겠다고 여겼어요.” 애시드 그린, 플라밍고 핑크 같은 쨍한 색에 클래식한 디테일을 더하는 방식으로 미드 센추리 바로크 스타일을 시도한 맥키니스가 설명했다. 이 작업을 위해 맥키니스는 드레이프의 방대한 포트폴리오 중 몇몇 작품을 참고했다. 부지가 5,665만6,000㎡에 달하며 모든 객실이 코닥크롬(미국에서 탄생한 최초의 컬러 필름) 광고처럼 보이는 웨스트버지니아의 그린브라이어 리조트와 1942년 영화 <홀리데이 인>이 대표적이다. “과거 할리우드에서 ‘미국 식민지 시대 스타일’이라고 일컫던 스타일인 동시에 뉴앵글랜드 시절로 되돌아간 듯한 느낌이 감도는 집으로 꾸미고 싶었어요.” 맥키니스가 이야기했다. 그런 다음 우린 레몬색 천장과 스웨덴 벽지 회사 샌드버그의 그래픽적인 꽃무늬 벽지로 꾸민 햇살이 깊숙이 스민 응접실로 함께 들어섰다.


집 현관에서 고작 100걸음 떨어진 헛간을 개조해 완성한 작업실의 첫인상은 예상한 것보다 훨씬 절제된 느낌이었다. 갖가지 그림이 걸려 있으며 거대한 석고판과 다름없는 벽은 전부 새하얗고, 그가 작업하며 물감을 덜어낸 흔적만 캔버스 가장자리에 후광처럼 남아 있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다. 맥키니스의 그림은 그의 집과 마찬가지로, 시각 문화가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불러일으킨다. 작업실에서 목격한 맥키니스의 신작은 피오나 애플의 1996년 앨범 <Tidal>의 커버, 미드 <프렌즈>의 주인공들이 지닌 이미지, 다이빙 선수 그렉 루가니스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예수님 같은 자세로 두 팔을 벌린 채 거꾸로 떨어지는 사진에서 영감을 받아 그린 것들이었다. 전부 완성된 상태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지난 1월 열린 개인전 <완료 시제(The Perfect Tense)>를 위해 로스앤젤레스의 데이비드 코단스키 갤러리로 보냈다.
당연하게도 그의 신작은 전작과 비슷한 분위기를 뿜어낸다. 맥키니스는 이를 두고 “전처럼 오락적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그는 그림에 상실과 애도의 이미지가 더해지길 바랐다. “개인적인 슬픔의 경험이 공적인 영역에서 공유될 수 있다는 개념을 발전시킨 전시를 목표로 했어요.” 맥키니스가 뒤이어 설명했다. “그래서 죽음 혹은 삶에 닥친 위기를 연상시키는 작품을 만든 거죠.” (그가 그린 피오나 애플은 정신병을 앓았으며, <프렌즈>의 이미지는 오늘날 매튜 페리의 비극적인 죽음이 상기되고, 그렉 루가니스는 HIV 병력을 비밀로 했다는 것을 밝힌 뒤 논란에 휩싸인 것을 떠올려보라.)
목가적인 분위기가 넘치는 이 집에서 지내다 보니 맥키니스는 20대와 30대에 비해 사색적으로 변해가는 듯하다고 터놓았다. 그는 오전 9시에 작업을 시작해 마이클과 점심을 먹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마이클은 지금껏 만난 사람 중 가장 온화하고 점잖은 사람이에요.”), 꾸준히 독서를 하며(그의 침대 옆 협탁에는 예술 비평가 데이브 히키, 타네히시 코츠, 가즈오 이시구로의 책이 놓여 있었다), 오랫동안 산책을 즐긴다. 그러나 여전히 쾌활한 친구들과만 어울린다. (맥키니스는 발이 굉장히 넓은데, 인터뷰 중 어쩌다 동화 작가 리처드 스캐리 이야기가 나왔을 때 그는 그의 손녀와도 아는 사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방문하기 전에는 40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놀러 와 거실에 있는 그랜드피아노를 치고, 마이클이 구운 진저브레드와 애플케이크를 먹으며 즐거운 주말을 보내고 갔다. 맥키니스는 마이클과 함께 대부분 이곳에서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다가 때때로 뉴욕 튜더 시티에 있는 아파트를 돌보기 위해 종종 도시로 나간다.

새로운 삶의 리듬은 작업에도 영향을 미쳤다. 맥키니스는 최근 소 연작을 그리게 된 배경에 대해 들려주었다. 그 그림은 그가 예정된 전시를 위해 한동안 작업에만 몰두하느라 무리한 뒤 “예술을 통해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즐거움을 다시 경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그리게 된 것들이다. 이전 작품과는 확실히 분위기가 다른 이 그림에는 “옛날 그림이 품고 있는 모든 이상과 환상, 오래전 뉴잉글랜드에 살았던 화가가 즐겨 그렸을 법한 판타지적 풍경”이 응축돼 있다. 켄트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맥키니스는 ‘휴대용 이젤을 들고 그 집 농장에 자주 드나들기 위해’ 현지 낙농업자와 친하게 지낼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그는 진짜 소를 보고 그리는 대신 인터넷에서 찾아 출력한 소 이미지를 그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픽셀이 묘사한 자연의 모습이 자신의 그림 속에서 또 한 번 변형된, 그러나 여전히 묘하게 친숙한 그 이미지가 낯설면서도 새롭게 느껴졌다. “맨 처음 그린 소 연작이 위키피디아에서 찾은 젖소의 섬네일 이미지였거든요.” 그것은 변함없이 명징한 맥키니스의 취향과 욕망이었다. (VL)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글
- CHLOE SCHAMA
- 사진
- STEFAN RU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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