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당신의 오감이 전시를 완성합니다

2025.06.12

당신의 오감이 전시를 완성합니다

지난해 가을 런던 출장 때 현지에서 본 숱한 전시 중 단연 안소니 맥콜(Anthony McCALL)의 개인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각종 미술사로 촘촘하게 채워진 유서 깊은 미술관, 테이트 모던에서 모든 미술 이론을 비워낸 채 온전히 감각할 수 있는 자리였기 때문입니다. 어두컴컴한 공간을 빛으로 조각해내던 솜씨에 실로 놀라움을 금치 못했지요. 희뿌연 안개 속 예리한 빛이 공간에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습니다. 설치작품이지만 동시에 조각이기도, 또 회화이기도 한 이 작업을 서울에서 다시 본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푸투라 서울에서 <안소니 맥콜: Works 1972-2020>(9월 7일까지) 전시가 열린다는 소식에, 마치 누군가와 마음이 통한 것처럼 기쁠 수밖에요.

전시장을 방문한 안소니 맥콜.

전시 홍보 글에서 ‘21세기에 먼저 도착한 아티스트’라는 문구를 발견하고 무릎을 쳤습니다. 안소니 맥콜에게 매우 적절한 문장이기 때문입니다. 1946년생인 맥콜은 시대를 한참 앞서간 작가입니다. 지난 1970년대에 이미 ‘필름’이라는 매체의 물리성과 시간성에 주목했습니다. 1979년부터 20여 년간 작업을 중단했던 그는 활동을 재개한 후 전통적인 필름 형식의 경계를 넘어 설치, 조각, 드로잉 등 예술 요소를 융합한 ‘확장 시네마(Expanded Cinema)’를 선보였습니다. 특히 ‘솔리드 라이트(Solid Light)’ 연작을 통해 빛과 시간을 작업의 요소로 활용하되, 스크린을 제거하고 실질적, 물리적인 공간에 빛을 투사한 것이죠. 이는 현대미술을 둘러싼 실험과 시도, 그리고 관계에 대한 맥콜만의 혁신적인 정의입니다.

1973년도 전시 모습.
'써큘레이션 피겨스', 1972.
안소니 맥콜.

이번 전시에서는 이러한 맥콜의 작업 세계를 총체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단서와도 같은 작품들을 소개합니다. 1972년에 런던에서 처음 설치된 사운드 작업 ‘트래블링 웨이브’가 감각의 파동을 느끼는 법을 전해주고요. 같은 해 작가가 불이라는 비물질적인 요소를 활용한 이후 ‘솔리드 라이트’의 기반이 된 영상 ‘불의 풍경’도 선보입니다. 신문이라는 매체이자 물질을 전면에 내세운 퍼포먼스 ‘써큘레이션 피겨스’ 역시 반가운 초기작이죠. 특히 이 작품은 맥콜의 고유한 개념인 ‘확장 시네마’의 대표작으로도 알려졌습니다. 여기에, ‘솔리드 라이트’의 드로잉 격인 ‘숨결 III’과 아카이브 자료 등도 맥콜의 작업 세계를 비추는 돋보기가 되어줍니다.

‘숨결 III’, 2011, 풋프린트 드로잉, 7점 세트, 종이에 목탄, 각 35.6×28cm.
‘안소니 맥콜: Works 1972-2020’ 展 아카이브룸.

맥콜의 초기작과 아카이브가 품은 놀라운 세계는 설치작품인 ‘당신과 나 사이’를 통해 절정에 다다릅니다. “숭고함이란 경이로움의 아이디어를 담고 있으며, 이는 무한하고 형체 없는 공간 앞에서 느껴지는 감정이다”라는 작가의 말을 가장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죠. 높은 천장에서 쏟아지는 빛의 도형, 그 안에 잠시 머물러보시기를 권합니다. 구체적으로 형언할 수 없는 감각과 감흥이 몸을 감쌀 거라 확신합니다. 가끔 저는 이러한 몰입형 전시들을 보면서, 어른의 놀이동산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맥콜의 이번 전시는 이러한 편견을 넘어 감각하는 예술의 가장 순수한 경지를 보여줍니다. 작가는 자기 작업의 중요한 주체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몸의 감각이 현대미술을 얼마나 풍성하게 하는지, 그 본질을 잘 알고 있는 예술가를 만날 기회입니다.

‘당신과 나 사이’, 2006, 2개의 디지털 비디오 프로젝션, 헤이즈 머신, 32분, 반복 상영.
2012년도 전시 모습.
정윤원(미술 애호가, 문화 평론가)
사진
푸투라 서울(FUTURA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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