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사각의 콜로세움을 거닐며, 펜디의 100년

‘이탈리아 문명의 궁전’으로 불리며 ‘사각의 콜로세움’이라는 별칭까지 붙은 밀라노 펜디 하우스. “역사는 늘 새롭게 다시 쓰인다. 그리하여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칼 L. 베커(Carl L. Becker)의 말처럼 펜디 1세기의 역사가 54개 아치가 대칭적으로 배치된 이 건물에서 다시 기록될 준비를 마쳤다.

패션 화보

사각의 콜로세움을 거닐며, 펜디의 100년

‘이탈리아 문명의 궁전’으로 불리며 ‘사각의 콜로세움’이라는 별칭까지 붙은 밀라노 펜디 하우스. “역사는 늘 새롭게 다시 쓰인다. 그리하여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칼 L. 베커(Carl L. Becker)의 말처럼 펜디 1세기의 역사가 54개 아치가 대칭적으로 배치된 이 건물에서 다시 기록될 준비를 마쳤다.

콜로세오 콰드라토(Colosseo Quadrato)에서 펜디(Fendi)의 100년 역사를 훑어본다. 화보에 등장하는 모든 룩은 이 역사적인 이탈리아 메종에 대한 경의를 나타낸다. 검정 라피아 드레스는 2019 가을/겨울 꾸뛰르 컬렉션, 목걸이처럼 연출한 벨트는 1991 봄/여름 컬렉션.

세 가지 색이 교차되는 헤링본 패턴 밍크 코트는 1966 가을/겨울 컬렉션, 염소가죽 드레스는 2001 가을/겨울 컬렉션, 두 모델이 착용한 양털 모자는 2019 가을/겨울 컬렉션.

섬세하게 짜인 레이스 드레스와 여우털이 장식된 노랑 새틴 스커트, 분홍색 오버사이즈 비니와 새틴 소재 ‘펜디 스파이’ 가방, 독특한 형태의 굽이 달린 가죽 부츠는 2025 가을/겨울 컬렉션.

레이스와 벨벳 소재에 시어링 밍크로 만든 꽃 장식을 더한 드레스는 2017 가을 꾸뛰르 컬렉션, 금빛 목걸이는 1990 봄/여름 컬렉션.

리본 장식이 달린 라이크라 소재 수영복은 1994 봄/여름 컬렉션, 모피 머플러는 2001 가을/겨울 컬렉션, 검정 스트랩으로 연결된 메탈 목걸이와 팔찌는 1991 가을/겨울 컬렉션, 빨강 페이턴트 레더 샌들은 1991 봄/여름 컬렉션.

퍼프 소매 재킷은 2005 봄/여름 컬렉션, 크리스털과 프린지 장식으로 에스닉 무드를 더한 반투명 스커트는 2000 봄/여름 컬렉션.

밑단을 여우털로 장식한 뷔스티에 드레스는 2001 가을/겨울 컬렉션, 흰색 나파 가죽 장갑은 2014 가을/겨울 컬렉션, 귀고리를 착용한 것처럼 보이는 메탈과 유리 장식 헤어피스는 2021 봄 꾸뛰르 컬렉션, 벨벳 소재의 드로스트링 가방은 1989 봄/여름 컬렉션, 다홍색 새틴 슈즈는 1991 봄/여름 컬렉션. 1980년대 말, 칼 라거펠트는 벼룩시장에서 구입한 빈티지 망토에서 영감을 받았는데, 이는 패션 디자이너이자 텍스타일 디자이너 마리아 모나치 갈렌가(Maria Monaci Gallenga)의 작품이었다. 펜디는 이 원단을 바탕으로 재단사 티렐리(Tirelli)와의 협업을 통해 화보 속 가방 같은 실크 벨벳 소재의 포켓 클러치 시리즈를 제작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완성 상태로 오랫동안 버려진 건물을 건축가 지오반니 궤리니, 에르네스토 브루노 라 파둘라, 마리오 로마노가 합작해 1937년에 완공한 건축물은 오늘날 로마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았다. 염소털 장식의 크레퐁 소재 기모노 가운은 2002 가을/겨울 컬렉션, 밑단에 모피 장식을 더한 실크 바지는 1992 가을/겨울 컬렉션, 큼지막한 태슬 장식이 달린 타원형 나무 클러치는 1974 가을/겨울 컬렉션, 벨벳 플랫 샌들은 2005 봄/여름 컬렉션, 기하학무늬의 메탈 버클이 달린 실크와 코튼 소재 터번은 1969 가을/겨울 컬렉션.

(왼쪽부터) 짙은 밤색 양털 재킷은 1974년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폭력과 열정> 속 실바나 망가노를 위해 의상 디자이너 피에로 토시(Piero Tosi)가 디자인한 작품, 흰색 송아지 가죽 치마는 2013 가을/겨울 컬렉션, 줄무늬 모피 모자는 1990 가을/겨울 컬렉션, 흰색 펌프스는 2001 가을/겨울 컬렉션. 밍크 재킷과 흰색 스커트는 2001 가을/겨울 컬렉션, 모피 모자는 1990 가을/겨울 컬렉션, 아크릴 목걸이와 빨간 스웨이드 장갑, 밍크와 가죽 프린지가 번갈아 배치된 미니 사이즈 ‘피카부’ 가방은 2017 가을/겨울 컬렉션, 새틴 펌프스는 2001 가을/겨울 컬렉션.

화려한 격자무늬 밍크 재킷은 2000 가을/겨울 ‘인레이드 폴리크로미스(Inlaid Polychromies)’ 컬렉션. 당시 이 컬렉션에서 선보인 모피 의상은 스카프 무늬를 더한 반투명 안감을 통해 내부의 인타르시아(모피 조각을 이어 붙이는 기법) 작업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민트색 모자는2001 가을/겨울 컬렉션.

크리스털 장식과 패치워크로 물결무늬를 표현한 모피 케이프는 2015 가을 꾸뛰르 컬렉션, 자수 장식 부츠는 2021 봄/여름 컬렉션.

펜디 본사에 도착하니 ‘형이상학적’ 감동이 밀려온다. 로마의 맑고 푸른 아침 하늘 아래 우뚝 솟은 새하얀 석회암 벽면이 눈부신 빛을 반사한다. ‘사각의 콜로세움’으로 불리는 이 합리주의 건축양식의 건물은 1930년대 지오반니 궤리니(Giovanni Guerrini), 에르네스토 브루노 라 파둘라(Ernesto Bruno La Padula), 마리오 로마노(Mario Romano)가 설계했으며, 도시의 상징 중 하나다. 로베르토 로셀리니의 <무방비 도시>(1945), 페데리코 펠리니의 <8과 1/2>(1963) 같은 영화의 배경이 된 이 건물은 2015년부터 펜디 본사로 사용되고 있으며, 로마 에우르(EUR) 지구 중심부에 있다.

올해, 창립 100주년을 맞은 펜디는 메종의 아카이브를 <보그>에 특별히 공개한다. <보그>는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일련의 룩을 선정해 우리가 지금 들어서는 이 건물을 배경으로 촬영을 진행하며 펜디의 창의적인 여정에 경의를 표한다.

긴 복도를 지나 아카이브에 도착하자,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1974년 작품 <폭력과 열정> 속 실바나 망가노(Silvana Mangano)의 대형 사진이 우리를 맞이한다. 그녀가 입은 모피 의상을 제작한 펜디 자매를 기념한 것이다. 거대한 양피지 트렁크와 하우스의 클래식한 페퀸 스트라이프 천으로 덧입힌 마네킹 사이로, 철통 보안을 자랑하는 감옥을 연상케 하는 슬라이딩 도어가 달린 거대한 철제 옷장이 나타난다. 문을 열자 ‘칼 라거펠트 스케치(Karl Lagerfeld Sketches)’라고 적힌 산화 방지 상자가 끝없이 늘어서 있다.

무수한 패션쇼 스케치 사이로, 지금껏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는 1980년대 드로잉이 모습을 드러낸다. 다섯 자매가 칼 라거펠트와 미래적인 화상 통화를 하는 모습을 담은 스케치, 로마 여성 교통경찰을 위한 ‘날개 달린’ 유니폼 디자인, 그리고 ‘보디 레볼루션(The Body Revolution)’이라는 의미심장한 제목 아래 20세기에 변화를 거듭해온 다양한 실루엣을 담은 스케치 등이 그것이다.

어느 순간, 또 다른 드로잉에 시선이 쏠린다. 머리에 사각의 콜로세움을 이고 있는 여성의 흉상이 그려져 있다. 펜디가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Palazzo della Civiltà Italiana, 이탈리아 문명의 궁전)로 본사를 이전한 2015년이 아니라 1990년 작품이다. 믿기 힘든 우연이다. 라거펠트는 바로 그해 월드컵 폐막식에 맞춰 종이 공예로 만든 로마의 주요 기념물을 머리에 장식한 모델을 런웨이에 세운 적이 있었던 것이다. 콜로세움과 포로 로마노, 트리니타 데이 몬티,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옆에는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나씩 열리는 옷장 속에 수백 개의 가방, 주얼리, 모피, 옷이 가득하다. 1960년대 옵티컬 밍크 코트부터 강렬한 색감의 시퀸으로 뒤덮인 바게트 백, 1990년대 초 칼 라거펠트가 배우 모아나 포치(Moana Pozzi)를 위해 디자인한 수영복, 그리고 실비아 벤투리니 펜디(Silvia Venturini Fendi)가 비밀을 하나하나 직접 밝혀주는 최신 컬렉션 룩까지. 그 범위는 실로 폭넓다.

100주년 컬렉션은 어떻게 시작했나요?

‘감정’입니다. 단순히 자료를 수집한 회고전 같은 컬렉션은 피하고 싶었어요. 내가 아카이브를 바라보는 방식은 과학적이지 않습니다. 그럴 수도 없고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어머니가 입었던 옷 한 벌, 카를라(Carla) 이모가 입었던 모피 코트에서 그런 기억이 자연스럽게 떠오르죠. 그리고 이런 태도를 ‘펜디니스(Fendiness)’라고 부르는 걸 좋아합니다. 이번 컬렉션을 구상하면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사람들이 쇼를 보고 나서 나만큼 펜디를 사랑하면 좋겠다.” 펜디 100주년을 기념하면서, 다음 100년도 사람들을 매료하고 싶거든요.

성공했다고 느낀 순간은 언제인가요?

팬들이 보내준 편지와 댓글을 읽을 때입니다. 기대한 만큼 이뤘다고 느끼지만, 무엇보다 가장 감동적인 것은 내 작업에 대해 누구보다 냉정한 평가를 내리는 두 사람, 어머니 안나(Anna)와 파올라(Paola) 이모의 따뜻한 포옹이었죠.

처음 회사에서 일한 순간을 기억하나요?

13~14세 때쯤 의무교육을 마치자마자 공부를 그만두고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당시 집안의 중심이셨던 아델레(Adele) 할머니께 말씀드렸더니, “좋아, 문제없어. 하지만 밑바닥부터 시작해야 해. 내일 교환원이 결근하니까 그 일부터 시작해”라고 하셨죠. 딱 하루 교환원 일을 해보고는 제 일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학교로 돌아갔어요.

할머니께서 정말 지혜로우셨군요. 또 어떤 가르침을 주셨나요?

일에 대한 헌신입니다. 할머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작업실에 제일 먼저 도착하고, 제일 마지막에 나가야 해. 그래야 좋은 본보기가 되지.”

강한 개성과 대담함을 지닌 다섯 자매는 매우 달랐지만 현명함, 통찰력, 엄청난 노력이라는 공통 자질을 갖고 있습니다.

창작 스튜디오에 가득했던 흥분과 아드레날린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컬렉션 준비 과정을 지켜보고, 어머니와 이모들의 대화를 듣는 건 놀라운 경험이었죠. 때로는 논쟁으로 이어졌지만, 결국은 늘 한 방향으로 뜻을 모았다는 것이 가장 놀라웠습니다. 각자 성격도, 전문 분야도 달랐으니까요. 파올라 이모는 모피 전문가였고, 어머니는 창의력이 뛰어났습니다. 카를라 이모는 커뮤니케이션 천재였고요. 그들이 나누는 대화를 들으며 다양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그런 다섯 자매 곁에 칼 라거펠트가 합류했죠.

늘 알고 지낸 사람이에요. 삼촌 같은 존재였죠. 1965년 가족의 친구이자 유명한 홍보 담당자였던 프랑코 사보렐리 디 라우리아노(Franco Savorelli di Lauriano)의 소개로 펜디와 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어머니와 이모들은 쿠바 출신 디자이너 미겔 크루스(Miguel Cruz)와 치노 베르트(Chino Bert)의 자문을 받아 모피 라인을 만들고 있었는데, 사보렐리가 젊은 독일 디자이너를 소개한 거죠. 모피 가공 방식과 기술에서 끊임없이 혁신을 추구하던 자매들과의 협업을 통해, 칼은 단 몇 시즌 만에 두 경쟁자를 제치고 고급 모피의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놓았습니다. 가볍고 착용하기 쉬운 옷으로요.

그에게 배운 것이 있다면?

정말 많습니다. 인간적으로나 직업적으로요. 칼은 비범한 지성의 소유자였고, 늘 미래를 내다봤습니다. 자기 복제를 하지 않으려는 강박에 가까운 집념을 가진 사람이었어요. 좋아했던 그의 모습 중 하나는,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않는 태도였습니다. ‘이 정도면 됐다’고 여기지 않았죠. 재능을 바탕으로 늘 더 나은 것을 해내고자 했고, 그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의 모든 컬렉션은 언제나 ‘처음’이어야 했어요.

예술과의 연계는 펜디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무려 40년 전인 1985년, 로마 국립 현대미술관(GNAM)에서 전시를 열며 브랜드 헤리티지라는 개념을 개척했습니다.

그 전시는 패션을 이야기하는 방식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작업의 여정. 펜디-칼 라거펠트(Un Percorso di Lavoro. Fendi-Karl Lagerfeld)’라는 제목의 전시로, 칼과의 협업 2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죠. 당시만 해도 패션을 그리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이탈리아 패션 브랜드가 미술관에 입성한 첫 사례였죠. 엄청난 반향이 일었습니다. 많은 미술 평론가가 극찬했지만, 패션이 미술관에 들어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던 이들의 반발도 컸습니다. 의회에서 이의가 제기되기도 했어요. 나에겐 정말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단순한 회고전도 아니었고,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전시도 아니었죠. 제자리에서 회전하는 기계식 마네킹, 스케치, 놀라운 모피 가공 기술을 보여주는 샘플이 전시된 모습이 아직도 기억나요.

디자인은 어디서부터 시작하나요?

특별한 규칙이나 공식은 없어요. 내면의 소리를 듣는 것, 그게 정말 중요합니다. 특히 지금처럼 수많은 자극이 우리를 끊임없이 덮쳐오는 시대에는 더 그렇죠. 남들이 무엇을 하는지 보려 해서는 안 돼요. 흐름을 거스르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가끔은 순응하지 않는 것이 위대한 성공으로 이어지는 길이니까요.

‘잇 백’의 원조인 바게트 백이 그런 경우인가요?

맞습니다. 미니멀리즘이 한창인 1990년대였어요. 회사에서는 단순하고 수납력 좋은 가방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죠. 그런데 제가 작고 정교한 바게트 백을 디자인한 거예요. 마케팅 철칙을 완전히 거스르는 결과물이었습니다.

로마에 살며 일한다는 건 창작자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엄청난 특권입니다. 이 도시는 내 뿌리이자, 우리 역사이며, 창의성의 원천이에요. 펜디의 창작물은 로마의 하늘, 자연, 예술에서 생명력을 얻습니다. 로마 특유의 정신을 아주 좋아해요. 이 도시의 일부로 살아간다는 것이 정말 기쁩니다.

<폭력과 열정>의 실바나 망가노부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틸다 스윈튼까지, ‘펜디니스’의 뮤즈 중에는 극과 극인 여성도 있습니다. 한때 모아나 포치도 칼의 수영복 모델이었고요.

1980년대 일이군요. 칼은 그녀가 아름답다고 생각했고, 그녀에게 흥미를 많이 느꼈어요. 작업실에 올 때면 그녀는 세련된 상류층 스타일을 보여주었죠.

펜디 가문에서 ‘불가능’이라는 말이 금기어였다고 들었습니다.

도전은 우리 집안의 강박과도 같아요. 우리는 모든 것을 해봤고, 언제나 큰 열정을 가지고 임했습니다. 이브닝 드레스처럼 가벼운 리버서블 모피, 초콜릿 포장지처럼 반짝이는 안감을 덧댄 밍크, 열처리로 고정한 라인스톤, 숨은 지퍼로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옷 등 다양한 혁신을 만들어냈습니다. “이건 불가능해요. 누구도 해본 적 없어요.” 몇몇 공급업체나 기술자들이 말했어요. 하지만 ‘안 된다’는 그 말이 오히려 규칙을 깨고 싶게 만들잖아요. 그러면 이렇게 말하게 되죠. “그럼 내가 해볼게요.”

지난 25년 동안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 피엘파올로 피촐리, 알레산드로 미켈레, 마르코 드 빈센조 같은 인물과 함께 ‘로마 르네상스’라는 말이 자주 등장했습니다.

정말 많은 디자이너가 로마를 거쳐 갔고, 그들 모두 펜디에서 보낸 시간을 큰 배움의 시기로 기억합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 친구 사이죠.

다섯 세대, 다섯 자매, 그리고 하우스를 창립한 1925년, 칼이 합류한 1965년, GNAM 전시를 연 1985년, 팔라초 펜디를 오픈한 2005년, 팔라초 델라 치빌타 이탈리아나로 본사를 옮긴 2015년 등 ‘5’는 펜디 역사에 자주 반복되는 중요한 숫자입니다. ‘5’라는 숫자와 함께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인가요?

FENDI. 바로 펜디를 이루는 다섯 글자죠. 그게 곧 우리의 만트라(주문)입니다. (VK)

    포토그래퍼
    THÉO DE GUELTZ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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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델
    STELLA HANAN, CLARA DEN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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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UCA GALA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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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UGENE SOULEI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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