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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과 건축이 시게마츠 쇼헤이를 만날 때

2025.06.27

패션과 건축이 시게마츠 쇼헤이를 만날 때

패션과 건축이 꿈과 이상을 나누면 설득력을 더 얻는다. 두 세계를 자유자재로 연결하며 패션 하우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온 건축가 시게마츠 쇼헤이를 동대문에서 만났다.

DDP에서 7월 13일까지 펼쳐지는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 전시장에서 건축가 시게마츠 쇼헤이를 마주했다. 달항아리를 모티브로 만든 전시장 의자에 그가 앉아 있다.

시게마츠 쇼헤이(Shohei Shigematsu)는 젊은 건축가임에도 활동 영역이 누구보다 광대하다. 한 영역에 치중하지 않고 건축과 패션, 예술과 기술 등 여러 분야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프로젝트를 반긴다. 그 교차로에서 공간 경험을 혁신하고 재정의할 기회를 누리는 것은 그가 자신의 직업에서 가장 사랑하는 지점이다. 건축은 단순히 건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기에 그의 탐구는 멈추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그가 디올 전시의 디자인을 담당하게 된 것은 필연적 운명이었다.

때로는 패션 전시가 미술품보다 훨씬 더 아름답다는 걸 인정한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7월 13일까지 열리는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Christian Dior: Designer of Dreams)>를 처음 감상한 후 또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시가 디올의 역사적인 아카이브를 소개할 뿐 아니라 무대 미술(Scenography)의 새 장을 열었다는 호평은 사실이었다. 이 전시 공간을 창조한 주인공은 미국을 본진으로 활동하는 건축가 시게마츠 쇼헤이다. 오프닝을 위해 서울을 방문한 그와 함께 디올 전시를 관람했다. 이 전시는 파리 장식 미술관을 시작으로 런던, 상하이, 청두, 뉴욕, 도하, 도쿄, 리야드를 거쳐 서울에 왔는데, 전시 디자인과 아카이브가 도시마다 달랐다. “디올과 함께 펼치는 네 번째 시노그래피입니다. 2016년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전시를 담당한 큐레이터 플로렌스 뮬러(Florence Müller)와 인연을 맺었고, 그녀의 제안으로 2017년 덴버 아트 뮤지엄에서 열린 디올 전시의 공간 디자인을 담당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크리스챤 디올: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의 댈러스, 도쿄, 서울 전시를 연달아 책임지게 되어 무척 기뻐요.”

쇼헤이의 한국 데뷔는 2009년 경희궁에서 열린 <프라다 트랜스포머> 전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채로운 건축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는 그가 한국에서는 두 번 연속으로 패션 전시를 선보인다는 것이 흥미롭다. 뉴욕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그는 일본 후쿠오카 출신이기에 한국이 친근하다고 고백했다. 경희궁 전시 이후 한국에서 또 다른 프로젝트를 선보이고 싶던 차에 오랜만에 기회가 찾아왔기에 준비 단계부터 열성적이었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DDP는 아무것도 없는 완전한 박스 공간입니다. 높이가 16m에 달하는 공간이지만 기둥은 하나도 없는 완전히 빈 공간이죠. 그래서 건물 안에 건물을 만드는 형식으로 설계를 시작했어요. 영화 세트장을 만드는 것처럼 접근했죠. 외부는 물론 내부도 아이코닉하게 지어진 공간을 자유롭게 설계할 수 있어 흥미로웠어요. 어떤 형태와 크기의 디자인이라도 마음대로 그려낼 수 있었죠. 그렇게 전체 주제 아래 각각의 구역을 하나로 연결하면서 이야기가 흐르는 11개 공간을 완성했습니다.”

쇼헤이의 시노그래피는 디올 하우스의 전시 수준을 다시 한번 높였다. 그는 좋은 전시를 선보이기 위해서는 결국 그 나라 커뮤니티와의 결속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패션 하우스뿐 아니라 건축가, 작가, 미술가, 장인 등이 의기투합해야 예술가의 창의성이 온전히 발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전시를 디올과 ‘친구들’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담아내는 협업 플랫폼으로 여겼다. “뻔하지 않은 한국적 시노그래피를 보여주고 싶었어요. 아시아 전시에서 유럽 패션 하우스라면 당연하게 보여줄 법한 클리셰는 지양하고, 한국 예술가와의 협업을 통해 기존과 다른 전시를 시도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조사를 진행했고, 한국 작가들과 얼마나 긴밀한 협력했는지 전시를 통해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쇼헤이는 어린 시절 후쿠오카에 살 때부터 간접 경험한 한국 문화에서 영감을 받아 보자기, 겹겹이 쌓은 패브릭, 아름다운 비율을 지닌 달항아리 같은 한국의 미를 전시와 결합했다. 특히 2개의 구를 위아래로 붙여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는 달항아리의 제작 방식에 깊이 매료됐다. 그 원리를 적용한 전시장의 아름다운 정원은 관람객이 꼽는 인기 스폿이다. 패션 전시이기 때문에 드레스가 최대한 잘 보이는 것을 목표로 하면서도 디올 하우스와 공간의 조화에도 공을 들였다.

11개 주제로 갈리는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한국적 감성을 대대적으로 반영한 디올 정원(The Dior Garden)과 보자기에서 영감을 받아 설계한 전설적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들의 공간이다. 크리스챤 디올의 꽃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정원은 위에서 언급했듯 달항아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설계했다. 전시에서 가장 높은 층고를 자랑하는 달항아리 정원에서는 하얀 도자기 안에 들어간 것처럼 느껴졌다. 김현주 작가가 한지로 정교하게 제작한 새하얀 꽃이 만발한 가운데 그 위로 디올의 역사를 담은 드레스가 떠올랐다. 고개를 더 높이 들면 한국의 뚜렷한 사계절을 담은 영상 작품이 흐르는 하늘과 마주하게 된다. 이는 중정의 연못에 비친 그림자를 연상케 했다.

“한국은 다채로운 문화를 가진 나라입니다. 디올 전시는 늘 현지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 특징이기에 리서치를 많이 했습니다. 한국에만 존재하는 달항아리는 하우스의 환상적 공간을 구현하기에 완벽한 영감이었습니다. 항아리의 색깔과 비례에서 정원을 떠올렸고, 그 우아한 형상 안에 우주 같은 거대한 세계를 담고 싶었어요. 또한 한국의 패브릭에도 관심이 높습니다. 한복과 보자기의 패브릭을 겹겹이 레이어드할 때 탄생하는 복합적인 질감을 좋아했거든요. 사각의 천을 이어 새로운 패턴을 만들어내는 조각보도 예술적이에요. 조각보 같은 패치워크 디자인은 하우스가 드레스를 만드는 과정과 비슷한 시너지 효과를 내죠.”

한복 천의 투명성이 가진 흥미로운 효과는 디올의 레거시 공간에 적용했다. 지금의 디올을 만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7인의 유산을 이해하기 쉽게 연대기로 펼쳐 보이면서, 브랜드의 연속성을 보여주기 위해 조각보 형태의 반투명 패브릭으로 공간을 연결했다. 패브릭 장식의 끝자락에는 터너상 후보에 오른 한국계 작가 제이디 차(Zadie Xa)가 최근 완성한 크리스챤 디올의 초상화가 관람객을 반긴다. 마지막 무도회 공간도 빼놓을 수 없다. 첫 전시장에서 관람객을 반긴 몽테뉴가 30번지의 전설적인 나선 계단을 무도회장으로 재해석한 다음 분위기를 띄우는 화려한 의상을 배치했다. 반짝이는 거울 효과와 신비로운 음악이 어우러져 웅장한 여운을 남기는 이곳은 가장 건축적인 디자인 공간이라고 단언할 만큼 매혹적이다. 전시장 끝에는 수 써니 박(Soo Sunny Park)의 키네틱 조각과 존 갈리아노가 만든 건축적 디자인의 드레스가 어우러진다. 공간을 지배하는 곡선 요소와 잘 맞는 피스다.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를 위한 루이 비통 파빌리온. 루이 비통의 장인 정신과 창의성에서 영감을 받았다.

사실 쇼헤이는 디올뿐 아니라 루이 비통, 티파니 등 여러 브랜드와 함께 프로젝트를 시도했다. 지난달에는 2025 오사카·간사이 엑스포 프랑스관을 통해 소개된 루이 비통 전시를 작업했다. 하지만 디올은 그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오뜨 꾸뛰르 드레스를 만든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문화적 의미를 갖습니다. 꾸뛰르 드레스는 대량생산을 단념하고, 단 한 사람을 위한 아름다움을 고려한다는 것이 특징이지요. 예술과 패션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 특별한 작품은 하우스 역사를 기념할 뿐 아니라 미래 혁신과 장인 정신을 이야기합니다. 하우스 유산을 기반으로 탄생하는 꾸뛰르는 여전히 희귀하고 절묘합니다. 그런 면에서 디올은 패션을 건축과 미술 영역으로 끌어들인 최초의 패션 하우스입니다. 이렇듯 아카이브 전시를 실험적으로 활용하면서요.”

쇼헤이는 2017년 덴버 아트 뮤지엄과 2018년 댈러스 뮤지엄에서 열린 디올의 첫 번째 미국 회고전 공간도 디자인했는데, 이번 서울 전시는 이전과 또 달랐다. 먼저 미국 전시는 미술관에서 직접 주최한 전시였기에 규모가 크지 않았다. 도쿄 전시는 서울 DDP와 비슷한 대규모 공간에서 몰입감 있는 시노그래피를 보여줄 수 있는 기회였다. 게다가 모국에서 선보인 전시여서 더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그 후 쇼헤이가 선보인 모든 전시는 계속 진화 중이다.

시게마츠 쇼헤이가 2022년 모국 도쿄에서 선보인 ‘디자이너 오브 드림스’의 아름다운 전시 전경. 75년 디올 역사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환상적인 디자인을 선보였다.

“서울 전시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시노그래피를 꼽는 건 어려운 일입니다. 이제까지 도맡은 건축 프로젝트 중에서 단 하나만 고르라는 것과 비슷하죠. 하지만 굳이 선택해야 한다면 달항아리 정원과 무도회장을 꼽겠습니다. 정원의 독창성과 볼륨감은 높이와 크기의 제한이 있는 미술관에서는 쉽게 경험하기 힘드니까요. 달항아리에 관람객이 들어간다는 발상은 독특하고 유쾌합니다. 저는 늘 관람객의 다양한 감정을 이끌어내는 일에 보람을 느낍니다. 전시 마지막 파트에서 만나게 되는 무도회장은 연극 무대처럼 보이는데, 하우스의 역사를 한눈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층계는 많은 영화와 오페라에서 드라마틱한 순간을 연출하는 효율적 장치로 쓰이죠. 자하 하디드가 DDP를 설계할 때 동대문 대지와 상호작용하는 건축 디자인을 지향했듯 저도 자연 요소를 끌어오고 싶었습니다. DDP와 전시 모두 디지털 미디어 아트와의 접목을 시도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게마츠 쇼헤이와 렘 콜하스가 함께 설계한 뉴욕 뉴 뮤지엄이 개관을 앞두고 있다. 전시 공간을 두 배로 늘리고,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공간도 넉넉하게 확충했다.

쇼헤이는 미술관 건축에도 꾸준히 참여해왔다. 뉴 뮤지엄, 퀘벡 국립 미술관의 새 박물관, 소더비 뉴욕, 올브라이트 녹스 갤러리를 확장 개조한 버펄로 AKG 미술관, 에르미타주 뮤지엄 리노베이션 등 미술관 설계 단계부터 적극적으로 기여한다. “과거에는 미술관과 박물관을 설계하는 일이 전시 자체를 이해하는 것과 그다지 관련 없는 일이라고 여겼어요. 하지만 이제 미술관을 통해 시노그래피가 더 풍부해지는 상호작용에 대해 깨달았죠. 설계에 의미를 부여하고 다양한 요소를 첨가할 수 있어 즐겁습니다.”

오드리 어마스 파빌리온(Audrey Irmas Pavilion)은 2022년 미국 로스앤젤레스 윌셔 블러바드 템플에 시게마츠 쇼헤이가 설계한 문화 공간이다.

그의 첫 미술관 건축은 퀘벡 국립 미술관이었고, 지금은 건축 기업 OMA의 책임 파트너로서 렘 콜하스와 함께 뉴욕 뉴 뮤지엄 프로젝트를 총괄하고 있다. 1998년부터 렘 콜하스와 미술관 건축 설계 협업을 해왔기에 두 사람의 관계는 특별하다. 렘은 주로 로테르담에 머물고, 쇼헤이는 뉴욕에서 지내기에 아주 매끄러운 협업은 아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공동의 가치를 수행하며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뉴 뮤지엄은 올가을 개관한다. “최근 우린 박물관의 미래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뉴 뮤지엄은 공공성이 더 확장되고, 커뮤니티 및 지역사회와 교류하는 교육적인 면을 강조하는 박물관이 늘어나는 시점인 지금 개관한다는 점에서 타이밍이 더없이 좋았습니다.” 그는 미술관과 같은 공공 건축뿐 아니라 상업 건물에도 공공성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쇼헤이가 최근 완공한 도쿄의 마천루 도라노몬 힐스가 좋은 예다. 미술관은 공공 건축의 꽃으로 불리지만, 그는 공공성과 프라이빗한 공간의 경계를 넘나드는 프로젝트에도 관심이 많다. 도라노몬 힐스가 상업 활동을 목적으로 한 건물이지만 그곳에도 미술관이 있고, 사무실도 함께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다. 전형적인 미술관으로 설계된 곳보다는 다양한 유형의 공간이 함께 어우러진 새로운 건축이 언제나 쇼헤이를 매혹한다. 상업 공간에 공공장소를 삽입하는 디자인을 흥미롭게 여기기에 그는 매 순간 건축의 진화를 추구할 수밖에 없다.

“건축가로서 패션 전시에 참여하는 것도 이런 목표와 간접적으로 연관이 있어요. 여러 영역의 교차점에 개방된 태도를 갖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고, 다른 영역과 맞닿는 일에 적극적으로 임할수록 더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결과물 자체의 수준을 높이는 것을 넘어 불가능하다고 느낀 목표 또한 이룰 수 있지요.”

그의 작품 세계가 강렬한 전환점을 맞이하게 된 것은 2000년 휘트니 뮤지엄 확장 프로젝트 공모였다. 뉴욕을 대표하는 미술관의 의뢰를 받은 것이라 뜻깊었고, 그로 인해 렘 콜하스와의 협업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그의 삶에서 중요한 기점이 된 순간이다. 아이디어가 최종적으로 채택되진 못했지만, 그는 젊은 건축가로서 공모에 도전한 경험과 실패가 자양분이 되어 지금의 자리에 이르렀다고 믿고 있다.

그의 원대한 야망에 맞춰 착수하는 모든 프로젝트는 패션과 미술에 국한되지 않고 다채로운 영역에서 창의성을 필요로 한다. 캘리포니아 페이스북의 윌로 캠퍼스, 샌타모니카 복합 용도 개발, 콜롬비아 보고타 시민센터, 허리케인 샌디 이후의 뉴저지 수자원 전략, 북미 최대 규모 대중교통 중심 개발 등 굵직한 공공 공간 설계도 동시다발적으로 이끌고 있다. 21세기를 이끄는 건축가로 성장한 시게마츠 쇼헤이의 행보를 앞으로 더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VK)

    포토그래퍼
    김형상
    피처 에디터
    류가영
    이소영(미술 전문 칼럼니스트)
    사진
    COURTESY OF OMA, DI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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