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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기억하는 땅, 사라 제우데의 개척법

2025.07.04

물이 기억하는 땅, 사라 제우데의 개척법

조경 건축가 사라 제우데에게 디아 비콘의 숨겨진 땅을 개척하라는 미션이 주어졌다. 미국에서 가장 뜨거운 조경가인 그는 전위적인 분위기로 가득한 이 갤러리의 역사와 회복력, 아름다움을 예찬하는 최고의 방식을 찾아냈다.

뉴욕 허드슨 밸리에 자리한 갤러리 디아 비콘에서 조경 건축가 사라 제우데는 접근이 다소 까다로운 장소를 역동적이고 새로운 공공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이 프로젝트는 올해 중 공개된다.

디아 비콘(Dia Beacon)을 방문한 사람들은 평생 잊지 못할 기억을 안고 떠난다. 리처드 세라(Richard Serra)의 기념비적 철제 곡선, 댄 플래빈(Dan Flavin)의 형광등 조명, 거미를 연상시키는 조각으로 어머니에게 경의를 표한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의 작품까지, 이곳 풍경은 온갖 기억과 상상을 버무린 꿈속 한 장면 같다. 그러나 갤러리 남쪽 땅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기억하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약 3만3,000㎡에 달하는 강변 부지는 오랫동안 홍수의 영향권 아래 놓여 있던 광활한 잔디밭을 둘러싼 땅으로 2012년 슈퍼 허리케인 샌디(Sandy)가 들이닥쳤을 때는 몽땅 침수되기도 했다. “멀리서는 볼 수 있지만 가까이 가기엔 위험한 풍경이라는 것을 평소 팀원들이 많이 아쉬워했죠.” 디아 예술 재단의 디렉터 제시카 모건(Jessica Morgan)은 회상한다. “방문객을 바깥으로 인도하면 훨씬 좋을 텐데 말이죠.”

디아 예술 재단의 디렉터 제시카 모건과 제우데가 서어나무 산책로에 함께 서 있다.

바로 그런 열망이 3년 전 ‘AD100’이 선정한 인재이자 각광받는 조경 건축가 사라 제우데(Sara Zewde)와의 만남을 성사시켰다. 사라 제우데는 문화적 기반을 매력적으로 드러내면서 생태적으로 활발하고, 미학적으로도 아름다운 녹지 공간을 창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장소에 깃든 역사와 그곳이 떠안은 도전 과제를 함께 고민하는 동시에 아름다움을 추구해왔습니다.” 제우데가 맨해튼을 기반으로 한 자신의 작업을 회상하며 이야기했다. 모건의 예감에 따르면, 제우데의 그런 열린 마음가짐이야말로 넓은 부지를 활용해 개념주의적이고 실험적인 작가들의 세계관을 오롯이 경험하게 해온 디아 비콘과 잘 맞는 덕목이었다. “사라는 언제나 경청하는 태도와 의미심장한 질문을 적재적소에 던지는 방식으로 협업에 임해요.” 모건의 증언이다. “우리 역시 빠르게 답을 내리는 사람보다는 함께 탐구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사람을 원하고요.”

20년이 넘는 동안 광활한 부지에서 리처드 세라, 앤디 워홀, 댄 플래빈 등 대규모 설치 작업을 선보이는 작가를 소개해온 디아 비콘이 사라 제우데의 손길을 통해 새로운 예술 환경으로 거듭나고 있다. Dia Beacon, Riggio Galleries, Beacon, New York. ©Dia Art Foundation, New York. Photo by Bill Jacobson Studio, New York. Courtesy of Dia Art Foundation, New York

곧바로 연구에 착수한 제우데는 미술관 부지에 대한 아주 중요한 통찰을 이끌어냈다. 가장 중요한 발견은 해당 지역이 역사적으로 물이 쉽게 범람하는 평야였다는 사실이다. “물이 이곳에 머물고 싶어 해요.” 제우데가 다소 철학적으로 설명했다. “원래 자리로 돌아가고 싶어 하는 것이죠.” 또한 원주민 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제우데는 그 땅이 과거 레나페(Lenape) 부족이 강을 횡단하는 경로로 사용되었음을 알게 됐다. 이 두 가지 발견은 그에게 물 자체를 인간 경험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했다. 제우데는 흑인 여성의 독특한 경험을 바탕으로 1993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의 말을 인용하며 그 깨달음을 설명한다. “‘범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긴 하지만, 사실 그건 물이 땅을 기억한다는 뜻이죠.”

제우데의 ‘풍경(Landscape)’ 프로젝트는 올해 대중에 공개될 예정으로, 세 가지 목표를 추구한다. (범람하기 쉬운) 생태적 취약성을 개선하고, 원주민의 유산을 조명하며, 방문자의 경험을 확장하는 것. 새로운 지형은 원주민의 횡단 노선을 반영할 것이며, 약 1만6,000㎡ 규모의 잔디밭은 90여 종의 식물로 구성한 초원으로 꾸민다. 또한 식물은 지하의 수분 조건을 반영해 건조할 때는 성장을 억누르다가, 습도가 높을 때는 왕성하게 자라도록 설계했다. “식물은 물이 스스로를 표현하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모든 경로를 따라 자연스럽게 땅에 길이 새겨지면서 “물이 장관을 이룰 것”이라고 제우데가 말했다. 갤러리 측은 이 초지가 2027년 봄에 가장 아름답게 조성될 것이라고 귀띔한다.

사라 제우데가 보내온 렌더링 이미지. 제우데는 건물 자체를 예술화하는 데 일가견 있는 로버트 어윈이 디아 비콘을 위해 디자인한 서어나무 숲과 이어지는 산책로를 추가로 만들었다.

핵심은 물의 유동성을 아름답게 가시화하는 것이다. “‘디아(Dia)’라는 말 자체가 여정을 의미해요.” ‘디아’는 그리스어로 ‘통해’ 혹은 ‘지나서’라는 뜻이다. 그는 이를 철학적 메시지로 삼았다. “오직 물의 흐름과 사람의 움직임만으로 형태를 그린다면, 어떤 공간이 나올까요? 물이 흐르게 하고,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그 사명에 충실하기 위해 제우데는 건물 자체를 예술화하는 데 일가견 있는 로버트 어윈(Robert Irwin)이 디아 비콘을 위해 디자인한 서어나무 숲과 이어지는 산책로를 추가로 만들었다. 그는 이 새로운 변형을 통해 어윈과 자신의 프로젝트가 풍성한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어윈의 스튜디오의 허락을 받아냈다. 그가 작고한 어윈의 저서에서 발견한 것에 따르면, 어윈이 예술적으로 그 장소에 개입하려 한 시도는 허드슨강을 따라 평행선을 달리는 유서 깊은 철로를 오마주한 것인 반면 제우데가 창조한 곡선 형태의 지형은 물의 흐름과 수직을 이루며 구부러진다. “어윈이 강을 이동 수단으로 활용하는 것에 집중했다면, 제가 파고든 원주민의 유산은 강을 가로지르는 것과 관련이 있어요.”

디아의 프로젝트는 미니멀리즘 예술을 상징하는 독창적인 설치물과 땅에 뿌리 내린 여러 작품을 통해 시간의 흐름을 전면으로 내세운다. 그렇게 탄생한 풍경에서는 환경과 예술이 낯선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새로운 개념적 출발점을 방문객에게 제공할 것이다. “디아가 후원하는 많은 작품이 되돌아가는 것(Coming Back)을 강조하고 있다고 느꼈어요. 하루 중 서로 다른 시간, 계절, 다채로운 날씨 속에서 다시 돌아오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죠. 제가 창조한 풍경 또한 그런 경험을 선물하길 바랍니다. 끊임없이 변화하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 이 장소의 본질적인 무언가로 기념되길 바라는 것이죠.” 모건도 전적으로 동의한다. “사라가 창조하는 것은 디아의 본질을 잘 보여줍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본모습이 드러날 거예요.” (VK)

    피처 에디터
    류가영
    SAM COCHRAN
    사진
    KATE S. JORDAN, COURTESY OF STUDIO ZEW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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