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시골로 향한 미나 페르호넨
“마에바시는 점점 인구가 줄고, 빠르게 노령화가 진행 중인 일본의 시골 마을이에요. 다행히 지역 곳곳에서 도시 재생 프로젝트가 한창인데, 도쿄 같은 대도시가 아니라 작은 시골 마을이 지닌 가치를 소중히 하자는 취지에 공감해 미나 페르호넨도 그곳에 매장을 열었죠. 미나 페르호넨과 함께 이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건축가로서 많은 것을 느끼고 또 배웠습니다.” 예상보다 시원한 날씨가 이어지며 업무에 활력이 돌던 지난 6월 어느 날, 일본 소도시 마에바시에 미나 페르호넨 21번째 매장을 설계한 건축가 임태희가 새로운 영감에 휩싸인 채 들뜬 어투로 근황을 전해왔다. 르메르 한남 플래그십 스토어, 더일마, TWL 숍, 오설록 티하우스 1979점 등 편안한 미학이 흐르는 공간을 디자인해온 그가 미나 페르호넨과 협업한 사연은 무엇일까? 곧바로 가벼운 답신을 보냈다. “좀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시작은 지난해 9월 중순부터 올 3월 중순까지 DDP에서 열린 전시 <미나 페르호넨 디자인 여정: 기억의 순환>. 당시 임태희를 비롯해 한국 작가 4인이 전시장 일부를 특별하게 꾸몄고, 그 만남이 계기가 되어 또 한 번 협업을 도모한 것이다. 첨부된 사진을 열자 목재와 벽돌로 마감해 한층 포근하고 아늑한 실내가 곧바로 눈에 띄었다. 푸릇푸릇한 식물로 뒤덮인 외관은 <이웃집 토토로>의 풍경을 연상시켰고, 매장 안에서 촬영한 사진에서 미나 페르호넨의 설립자 미나가와 아키라(Akira Minagawa)와 임태희가 흰옷을 맞춰 입은 채 비슷한 얼굴로 활짝 웃고 있었다. 마침 미나 페르호넨 탄생 30주년인 올해, 지난 5월 2일부터 손님을 맞이하기 시작한 미나 페르호넨 마에바시점에서는 벌써부터 크고 작은 사연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을 것이다. 임태희와 미나가와 아키라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협업의 기억을 물었다.
임태희의 기억
미나 페르호넨과의 인연에 대해 듣고 싶다. 이번 협업으로 얻은 가장 소중한 수확은?
미나 페르호넨의 오랜 팬이었다가 지난 3월 중순까지 DDP에서 열린 전시를 계기로 인간적으로 친해졌다. 일본에서 시작해 해외로 진출한 <미나 페르호넨 디자인 여정: 기억의 순환> 서울 전시에서는 특별하게 한국 작가들과 협업한 공간이 마련되어 참여 작가로 함께할 수 있었다. 그 작은 인연이 이어져 이번에 미나 페르호넨 마에바시점을 설계하게 된 것이다. 지난해에 전시를 준비하면서도 느꼈듯 이번 협업에서도 미나가와 상은 내게 절대적인 존중과 신뢰, 따뜻한 인간애를 보여줬다. 정말 멋진 어른을 만난 기분이다!
목재의 따뜻함으로 가득한 스토어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요소는 ‘집 안의 집’이다. 아담한 공간에 이와 같은 설계를 시도한 까닭은 무엇인가?
마에바시는 도쿄에서 신칸센으로 약 1시간 30분 거리에 있는 소도시다. 최근 시작한 도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유동 인구는 많지 않은 한적한 시골이다. 평일에는 더 한산하기에 키오스크 타입 매장으로 디자인해 내 집에 온 손님처럼, 방문객 한 명 한 명을 환대하는 분위기가 흐르는 공간으로 꾸몄다. 질문에서 언급한 대로 ‘집 안의 집’은 실제로 아주 많은 역할을 한다. 계산과 포장이 이뤄지고, 안팎으로 열리는 공간에서 고객과 스태프가 편리하게 소통한다.
이 밖에도 건축적으로 고심한 부분이 있나?
기능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이 공간이 주변 환경과 지역에 미칠 선한 영향에 대해서도 많은 고민을 했다. 물건을 파는 공간에 그치지 않았으면 했고, 아주 작은 매장이지만 동네 풍경과 마을 주민에게도 좋은 영향이 있길 바랐다. 매장 바로 앞에 개천이 흐르는데,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있는 그곳에 매장이 따뜻한 불빛을 드리우는 장면을 상상하며 작업했다.
건축가로서 맨 처음 짓기 시작한 공간과 비교했을 때, 여전히 바뀌지 않고 이곳에도 반영한 미학적 소신이나 원칙은?
초기 작업 중 하나인 상하농원의 건물 10동을 디자인하던 때가 떠오른다. 벌써 10년이나 된 프로젝트다. 그때부터 변하지 않은 소신이 있다면, 멋을 부리거나 유행에 편승하지 않고, 공간의 본질에 대한 고민을 담은 공간을 만들어왔다는 사실이다. 지금은 건축 설계부터 실내 디자인, 조경은 물론 전시를 기획하거나 가구를 디자인하는 등 더 폭넓은 일을 도맡고 있지만 주된 관심은 늘 ‘사람들이 이곳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인가’이다. 가능한 한 의미 있고 좋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싶다.
당신의 작업은 어디에서 시작하나? 미나 페르호넨과의 협업이 성사됐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청사진 혹은 이미지는 무엇인가?
클라이언트와의 대화, 부지를 방문했을 때 느껴지는 감각, 지극히 일상적인 순간이 모두 영감이 된다. 멀리 있는 무언가를 그리기보다 애정을 갖고 자세히 들여다보고, 살펴봐야만 보이는 세계에서 늘 훌륭한 답을 찾았다. 이번에는 미나 페르호넨과의 협업이 확정됐을 때 다녀온 사이트(Site) 트립이 좋은 계기가 됐다. 미나가와 상, 브랜드 팀원들과 함께 마을에 하루 종일 머물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따뜻하고, 마을과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도록 부추기고, 좋은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 장소를 만들자고 합심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조금 느슨하면서도 담백한 미학을 뽐내는 공간을 추구해왔다. 당신의 공간을 드나드는 사람에게 선사하고 싶은 것은?
시끄럽고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라도 마음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우리에겐 더 많이 필요하다. 처음 방문한 순간 멋있다고 느끼지 않더라도, 방문할수록 편안한 매력이 느껴지는 공간을 만들고 싶다. 또한 환경적으로 언제나 특정 공간에서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 인간에게 좋은 자극과 영감을 선사하는 공간을 꿈꾼다.
미나가와 아키라의 기억
인구가 줄고 있는 작은 마을 마에바시에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1번째 매장을 열었다. 어떤 것에 마음이 움직였나?
도시 재생 프로젝트의 리더인 다나카 히토시(Hitoshi Tanaka)의 제안이었다. 이제는 미래를 위한 도시를 만드는 데 집중해야 한다는 그의 취지에 공감했다. 재생을 위한 건축뿐 아니라 공간을 중심으로 지속 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만드는 데도 기여하고 싶다.
미나 페르호넨 마에바시점의 규모나 테마, 운영 방식은 다른 지점과 어떻게 다른가?
사진에서 볼 수 있듯 매장은 작고 아담하다. 위치는 마에바시 재생 프로젝트의 상징과도 같은 시로이야 호텔(Shiroiya Hotel) 인근이면서 아츠 마에바시(Arts Maebashi) 미술관과 가깝다. 도심에 해당하는 이 지역을 방문하는 누구나 드나들기 쉬운 매장이면서 미나 페르호넨의 세계관을 표방하는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 디자이너가 아니라 한국인 건축가 임태희에게 공간 디자인을 의뢰한 이유가 궁금하다. 협업 과정에서 느낀 그의 강점은?
DDP에서 열린 전시를 준비하며 처음 그와 교류할 때부터 임태희의 아이디어와 접근 방식에서 큰 매력을 느꼈다. 소통하는 데 지리적인 불리함이 있지만 모든 면을 고려했을 때 기대감이 가장 큰 상대였다. 늘 긍정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아이디어를 명확하게 설명해주는 데서 신뢰감을 느꼈다.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의 풍부한 경험을 바탕으로 우리의 바람을 구체화하는 모든 과정 역시 더없이 매끄러웠다. 미나 페르호넨 마에바시점은 결과적으로 우리의 예상과 기대를 훨씬 뛰어넘는 공간이다. 한국 가구 장인의 기술이 더해져 미감까지 훌륭한 매장이 탄생했다는 것도 무척 만족스럽다.
협업 과정에서 강조하거나 특별히 주문한 것은?
맨 처음 추구한 컨셉은 낯선 여행지에서 기념품을 사듯 일상의 작은 즐거움을 살 수 있는 매장을 설계하는 것이었다. 그런 밑그림을 듣고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에서 매장 안에 또 하나의 키오스크 매장을 설계한 지금의 형태를 제안했다. 또한 부드러운 인상을 줄 수 있는 나무를 주요 소재로 채택해 분위기가 더 따뜻하다.
미나 페르호넨 마에바시점에서 방문자는 어떤 영감과 에너지를 얻게 될까?
미나 페르호넨이 탄생한 지 30년이 됐지만 해외 건축 사무소와 협업한 것은 처음이었다. 개인적으로 이번 도전을 기점으로 앞으로 공간을 기획할 때 더 많은 가능성을 고려할 듯하다. 새로운 가능성과 가치, 라이프스타일을 향해 전진하는 미래 도시 마에바시에 안착한 미나 페르호넨의 새 안식처가 많은 이에게 일상의 기쁨을 선물하길 기원한다. 물론 임태희 디자인 스튜디오와의 협업도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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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포토
- Minä Perhonen OVI, Manami Takahas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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