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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하면 촌티, 성공하면 클래식 아닙니까, ‘착한 사나이’

2025.08.01

실패하면 촌티, 성공하면 클래식 아닙니까, ‘착한 사나이’

드라마 <착한 사나이>(JTBC)는 이런 대본이 어디서 잠자다가 튀어나왔나 궁금해질 만큼 올드한 이야기다. 그게 단점은 아니다. 배우 류혜영은 제작 발표회에서 ‘정말 촌스럽지만 그게 매력인 작품’이라고 표현했다. 패션에만 레트로가 있는 게 아니고, 일세를 풍미한 유행의 정수에는 일말의 보편성이 있기 마련이다. 관건은 그것을 얼마나 시의적절하게 풀어내는가다.

JTBC ‘착한 사나이’ 스틸 컷.

제작진의 목표는 ‘멜로의 서정성과 누아르의 긴장감, 가족 드라마의 공감을 아우르겠다’는 것이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2006), <파이란>(2001), <고령화 가족>(2013)의 송해성 감독, 드라마 <인간실격>(2021)의 박홍수 감독, 드라마 <유나의 거리>(2014) 김운경 작가 등 크레디트를 보면 납득이 가는 구상이다. 사회의 그늘로 떠밀려난 이들을 연민하고 그들의 생명력을 포착해내는 데 능한 창작자들이다.

주인공 박석철(이동욱)은 건달 3세다. 학창 시절 그는 시인이 되고 싶었다. 공부도 곧잘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감옥에 가는 바람에 집안을 건사하기 위해 조폭이 되었다. 성정에는 안 맞지만 실력(?)은 출중했던지, 어느덧 그는 조직의 ‘에이스’가 되었다. 워낙에도 손 씻을 기회만 보던 석철 앞에 첫사랑 강미영(이성경)이 나타나면서, 석철은 다시 한번 현실과 부딪힌다.

JTBC ‘착한 사나이’ 스틸 컷.
JTBC ‘착한 사나이’ 스틸 컷.

소재가 주는 인상과 달리 박석철 캐릭터는 요즘 한국 일상극에서 자주 관찰되는 무기력하고 소극적인 남성상의 연장선에 있다. 그는 폭력을 싫어하고 자기 분야에서 성공하겠다는 야망이 없다. 조폭이 된 것은 아버지 때문이었다고 원망도 한다. 그는 문화센터에 다니며 시를 쓴다. 그의 시는 비록 유혈 낭자한 이미지를 묘사하고 있으나 문장은 제법 섬세하다. 이 캐릭터의 차분한 호흡이 소재의 과격함을 중화한다. 낭만 건달 석철보다는 무대 공포증이 있지만 꿋꿋이 가수에 도전하는 인디 발라드 감성 여주인공이 더 전형적이고 진부해 보인다는 게 이 드라마의 반전이다.

조폭극의 현대적 변형은 남자 주인공 캐릭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 작품은 석철의 특이한 환경을 소시민의 일상처럼 심상한 톤으로 그려낸다. 석철은 의사 장기홍(문태유), 경찰 윤병수(김도윤)와 오랜 친구다. 그들은 투닥거리면서도 은근히 서로를 보살피는 훈훈한 관계다. 석철의 누나 박석경(오나라)은 이혼 후 도박에 빠져 아이를 팽개치고 가출했다. 석경을 좋아하는 경찰 병수는 이것을 석경의 귀여운 일탈 정도로 치부하며 뒤처리를 해주고 핑계 김에 플러팅을 시도한다. 경찰과 조폭의 우정, 아동 방임, 깡패들의 병원 난동, 도박장 운영자들을 찾아내고도 위협만 하고 풀어주는 경찰의 모습 따위가 이 드라마에서는 때론 애잔하게, 때론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대개는 인간미 넘치게 묘사된다. 3대째 건달 집안 막내딸 박석희(류혜영)와 의사 기홍의 연애, 동창 강미영이 사방에 생활비를 꾸러 다닐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걸 알면서 오빠 석철과 연애하도록 부추기는 석희의 모습도 이 드라마에서는 큰 호들갑 없이 소화된다.

JTBC ‘착한 사나이’ 스틸 컷.
JTBC ‘착한 사나이’ 스틸 컷.

이 작품의 탈사회화된 가치관은 3대째 건달 집안이라는 특수한 환경에서 성장한 삼 남매의 적응 기제를 드러내는 동시에, 자극적인 사건에 대한 시청자들의 민감도를 느슨하게 만든다. 그 때문에 아이러니하게도 이 조폭극은 힐링 드라마에 가까운 평온한 정서를 유발한다.

소재가 주는 비릿함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다. 석철의 조직은 주로 철거 용역 일을 한다. 윤락, 마약, 인신매매 따위 흔한 범죄가 아니라서 대중의 반감은 덜할지 몰라도 여전히 나쁜 일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시치미 뚝 떼고 석철을 향한 연민을 호소한다. 조폭 출신 철거민이 강력하게 저항하다가 방화를 시도하고, 석철이 동료들을 제지하면서 중재를 시도하다가 그를 구해내는 장면처럼 현존하는 사회적 폭력의 가해와 피해 구도를 전복하는 위험한 순간도 있다.

극 중 한 장면, 석철은 조폭이 되겠다며 찾아온 고교생들을 “<백범일지>를 읽고 독후감을 써 오면 받아주겠다”며 돌려보낸다. 학생 한 명이 진짜 독후감을 써 오자 이번에는 성적을 올리면 받아주겠다고 한다. 그런 석철이라면 이 드라마를 보고도 범죄자 미화라고 잔소리를 하겠지 싶다.

JTBC ‘착한 사나이’ 스틸 컷.

이성을 접어두고 감성에 몰입하자면, 이 드라마가 그리는 가족애, 사랑, 어둠에서 벗어나려는 석철의 몸부림은 충분히 애틋하다. 극 중반부터는 조직 안팎의 세력 다툼, 첫사랑 그녀 강미영을 둘러싼 삼각관계 등이 심화되면서 누아르 색채가 짙어진다. 영화 <클래식>(2003)에서 부모의 과거 연애 편지를 발견한 주인공(손예진)은 “촌스러워”라는 말 끝에 이렇게 덧붙인다. “클래식하다고 해주지 뭐.” 이 드라마에 어울리는 대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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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 '착한 사나이' 스틸 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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