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바텐더들에게 왜 여성 바텐더는 소수인지 물었다
여성 바텐더는 왜 소수일까. 나만의 ‘스피리츠’로 이 의아함을 돌파하는 이들이 있다. 다채로워질 바 문화를 위해 짠!
한 잔의 스토리텔러

Tomato Journey

바텐더로서 나를 정의하는 단어
‘감각적인 스토리텔링’. 내 칵테일은 기억, 장소, 감정에서 출발해 점차 텍스처, 온도, 향 등으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균형, 절제, 의도를 중시하며, 단순히 장식적인 요소는 넣지 않는다. 존재하는 모든 요소는 반드시 이유가 있어야 한다.
경력의 인상적인 순간
그간 준비해온 실험실(Lab) 컨셉의 몰입형 칵테일 바 ‘H. Bar’가 포시즌스 호텔에 7월 31일 문을 연다. 협업, 장인 정신, 호기심이 결집된 하나의 꿈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기에 언제고 가장 기억나는 순간일 것이다. 또한 바를 찾아준 이들이 한 모금에 고향이 떠올랐다고 말해주거나, 지구 반대편의 바텐더가 내 칵테일에서 영감을 받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감격이다. 바텐더는 단순한 서비스직이 아니라 서로 감정을 나누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일임을 말해주는 경험이다.
내 스타일의 지분
우리 가족은 요리에 진심이었다. 늘 새로운 맛을 실험하고, 재료를 겹겹이 쌓아 조화를 이루는 데 집중했다. 자연스럽게 나도 맛을 섬세하게 느끼고 표현하는 감각이 몸에 뱄고 지금의 바텐딩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다양한 나라에 살며 일한 경험은 세계 각국의 풍미와 문화를 섬세하게 체득하도록 돕는다. 무엇보다 가장 큰 동력은 호기심이다. “만약 이런 조합이라면 어떨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예상치 못한 기술과 전통, 재료를 발견하고 실험한다
실험 중인 칵테일
한국의 세세한 절기, 그 시간과 장소를 칵테일로 표현하는 방법에 집중하고 있다. 벚꽃, 어린 솔잎, 청매실처럼 짧은 기간에만 볼 수 있는 재료를 전통 기법과 현대 기술을 접목해 칵테일로 표현한다. 동시에 칵테일의 ‘질감’에도 관심이 많다. 정화(Clarification, 탁한 액체를 맑게 걸러내는 기술), 유화(Emulsification, 서로 섞이지 않는 액체를 균일하게 섞어 부드러운 질감을 만들어내는 기술), 탄산화(Carbonation, 음료에 탄산을 주입해 톡 쏘는 청량감을 더하는 기법) 등 기술을 활용해 ‘맛’뿐 아니라 ‘느낌’까지 높은 완성도로 전하고 싶다.
영감을 위한 노력
내 여행에는 목적이 있다. 현지 시장을 둘러보고, 지역 발효식품을 맛보며, 증류소를 방문한다. 계절의 변화, 디자인, 음악 등 예술에서도 아이디어를 얻는다.
지금 바 문화는
테루아르와 지역성에 집중하는 바의 흐름이 거세지고 있다. 지역의 맛을 진정성 있게 창의적으로 담아내는 시도다. 반면, 시각적인 화려함에만 치중해 정작 맛의 본질을 놓치는 보여주기 식 연출은 달갑지 않다. 칵테일은 기발할 수 있지만, 그 안에 ‘영혼’은 없다.
업계에 영향을 끼친 것
여러 면이 있다. 소셜 미디어는 여전히 시각 중심의 스토리텔링을 확대하는데 이는 장점이자 도전 과제다. 비용에 대한 부담은 바 운영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더 작고 효율적인 팀, 재료비에 대한 고민이 깊어졌다. 기후변화에 대한 위기감으로 재료 낭비를 최소화하고, 지역 재료 중심으로 운영하고자 한다. 팬데믹 이후 손님과 바텐더의 관계도 다시 정립되었다. 사람들은 어느 때보다 ‘진심 어린 환대’를 원한다.
지속 가능성이란 과제
단순히 ‘낭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시스템을 설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책임감 있는 재료 조달, 일회용품 재고뿐 아니라 팀에도 소싱과 폐기물 관리에 대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제철 재료는 절임, 발효, 증류, 건조 등의 방식으로 보존해 남김없이 활용하며, 수입산보다는 국산 재료를 우선적으로 사용한다.
바의 미래
화려함보다 ‘밀도 높은 경험’이 우선시된다. 코스 형식 칵테일, 오마카세 스타일 서비스, 이야기를 담은 공간처럼, 작지만 깊이 있는 경험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본질은 여전히 ‘사람’이다. 고객과의 정서적 교감, 미각에 대한 섬세한 감수성과 문화적 이해력이 칵테일 세계에서 중요한 역량이 될 것이다.
영원히 존재할 클래식
마티니, 올드 패션드, 맨해튼, 네그로니. 구성과 균형이 뛰어나고 새로운 해석으로 다양하게 변형할 수 있기에 오래 함께할 것이다.
최고의 바 경험
런던의 코노트 바(Connaught Bar)에서 마티니를 마신 순간. 그곳 바텐더들은 진정한 환대와 함께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대하며 고객을 존중했다.
바텐더의 핵심 역량
미각, 존재감, 정밀함, 그리고 가장 중요한 ‘배움에 열린 자세’.
철학
의도를 담아 서비스하는 것. 한 잔의 칵테일에도 이야기가 있어야 하고, 손님 한 분 한 분이 존중받는다고 느껴야 하며, 모든 디테일이 총체적인 경험을 향해야 한다.
고난
여전히 일부 문화권에서 리더십은 특정한 외형이나 성격을 갖춰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고, 그래서 성별에 대한 편견도 여전하다. 오랜 근무시간과 창작의 번아웃, 끊임없이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가야 한다는 압박감 역시 과제다. 하지만 회복 탄력성이란 단단함보다는 유연함에서 비롯된다고 믿는다. 외부 압박 속에서도 자신만의 중심을 지키며 우아함을 잃지 않는 것, 그것이 진짜 강함이다.
언젠가는
자연, 예를 들어 산 정상이나 숲속처럼 예상치 못한 장소에 임시 바를 열고, 모든 것을 현지에서 조달하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운영하고 싶다. 한 잔의 칵테일을 매개로 장소, 사람, 그리고 나 자신과 깊이 연결되는, 그야말로 ‘칵테일 순례’를 꿈꾼다.
액상형 인간

Hive & Dive

바텐더로서 나를 정의하는 단어
잠자는 용? 농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조용하고 차분하되 내면에는 예민한 감각이 살아 움직이기 때문이다. ‘조용한 직관’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말보다 감각이 먼저 반응하고,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내 본질을 더 깊고 직관적으로 전달하려 한다. 내 감각과 철학이 한 잔의 칵테일을 통해 조용하되 강하게 손님에게 가닿기를 바란다.
경력의 인상적인 순간
2022년은 쌀 소비 촉진 운동이 벌어질 만큼 농부들이 힘든 시기였다. 당시 월드 칵테일 배틀에 출전하면서 쌀을 이용한 음료를 칵테일에 접목하는 등 여러 시도를 했다. 오래 고민한 아이디어를 인정받아 우승으로 이어졌고, 걸어온 길이 잘못되지 않았구나 확신했다.
내 스타일의 지분
함께 시간을 쌓아온 선후배, 동료 바텐더. 각자 다른 스타일과 철학을 가진 사람들과 부딪치고 배움을 주고받으며 지금의 내가 이뤄졌다. 칭찬보다 날카로운 피드백이 동력이 됐고, 내 스타일이 흔들릴 때마다 그들이 중심을 잡아주었다. 혼자서는 이 자리에 올 수 없었다.
지금 바 문화는
분자 요리와 디저트를 칵테일화하고, 발효와 제로 웨이스트적인 접근, 한국의 전통문화를 반영하는 시도까지, 많은 트렌드가 칵테일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 흥미롭다. 반대로 이런 흐름에도 여전히 “칵테일은 달기만 하지 않나요?”라는 반응을 들으면 의아하다. 칵테일의 세계는 계속 진화하고 확장되고 있는데 말이다. 속으로 ‘이렇게 멋진데 안 드신다고요?’라고 되묻는다.
업계에 영향을 끼친 것
팬데믹 시기의 고립감. 거리 두기와 단절 시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은 디지털을 통해 연결되기 시작했다. 특히 쇼츠나 유튜브 같은 영상 플랫폼을 통해 바 문화가 자연스럽게 대중화되고, 훨씬 다양한 사람이 여기로 유입됐다. 그만큼 더 열린 시선과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분위기가 조성됐다.
지속 가능성이란 과제
거창한 움직임보다 작지만 꾸준한 실천이 중요하다. 남은 재료를 곁들이거나, 버려지는 껍질로 시럽을 만드는 활용법을 고민한다. 환경을 고려한 제품, 로컬 식재료도 의식적으로 선택한다.
바의 미래
더 단순해지고 더 책임감 있는 방향으로 흘러갈 것이다. ‘책임 있는 음주’라는 키워드가 중요해지고, 과한 장식보다는 포인트가 되는 간결한 가니시, 부담 없이 마시기 쉬운 칵테일이 중심이 된다. 바의 인테리어나 분위기 또한 정갈하고 담백하게 변화하고 있다. 화려함보다 진정성과 균형감이 더 중요한 시대가 머지않았다.
영원히 존재할 클래식
네그로니. 심플하지만 강렬한 구조를 가진 칵테일로 오랜 시간 수많은 해석과 변주를 거쳐왔지만, 그 안에 담긴 본질적인 매력은 한 번도 흐려진 적 없다. 앞으로도 시대감각에 맞춰 다양하게 재해석되겠지만, 기본이 탄탄한 클래식이기에 그 정체성과 매력은 변치 않을 거라 믿는다. 나의 어머니가 좋아했고, 지금 내 방 화장대에 자리하고 있으며, 이제 막 스무 살이 된 여성도 매력을 느끼는 샤넬 N°5 향수처럼, 시대마다 다른 사람들이 각자의 방식으로 사랑하게 되는 클래식, 네그로니다.
실험 중인 칵테일
전통과 트렌드, 클래식과 모던을 조화롭게 결합한 시그니처 칵테일 시리즈. 전통성을 진부하지 않게 유지하면서도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 감각도 놓치지 않기 위해, 각 칵테일마다 시간성과 공간성을 어떻게 담아낼지 실험 중이다. 또한 맛있다고 끝이 아니다. 놀라운 스토리도 담겨야 한다.
영감을 위한 노력
밤 생활자인 바텐더이기에 일부러 낮의 공기와 감각을 익히려 한다. 낮 시간대에 볼 수 있는 전시, 특히 시민을 위해 무료로 제공되는 행사는 사회 분위기를 보여주는 듯하다. 그곳에서 사람들이 흥미를 느끼는 대중적 요소를 발견하고 칵테일에 접목해본다. 지난해에 청와대 사랑채에서 열린 <연화, 설렘의 빛> 전시가 그랬다. 사랑채는 손님을 귀하게 대접하던 공간이다. 옛 조리서에 나올 법한 음식과 현대 칵테일을 접목해 ‘사랑채의 환대’를 표현했다.
바텐더의 핵심 역량
받아들임. 말하자면 ‘고집을 잠시 내려놓는 용기’랄까? 바의 세계는 생각보다 넓고 창의력이 필요하다. “나는 이거 하나만 잘해!”라기보다는 “어떻게 해볼 수 있을까?”라고 되묻고, 변화에 한 박자 늦더라도 자기 것으로 만들어내는 유연함이 중요하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세상 모든 재료와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액상형 인간’ 정도? 쉽진 않지만 그 유연함이 스타일과 철학을 만들고 오래가는 힘이 될 것이다.
철학
바텐더란 ‘조화와 연결을 아는 사람’이다. 칵테일 안에서는 단맛과 산미, 도수와 부드러움 사이를 조율하고, 사람 사이에서는 낯섦과 친밀함, 말과 침묵의 거리를 좁혀간다. 그 미세한 균형을 읽고 맞추는 감각이야말로 이 일의 핵심이다. 바텐딩은 결국 맛을 내는 일이기 전에, 사람의 리듬과 감정을 읽고 조율하는 섬세한 작업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내 이름의 뜻이 떠오르곤 한다. 소연의 소(素)는 흰색, 본질, 순수함을 뜻하고, 연(延)은 잇고 이어간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꾸밈없는 본질을 담담하게 이어가는 사람’. 손님에게 작지만 깊은 신뢰를 주고, 느리지만 견고하게 관계를 이어가는 사람, 담백한 한 잔이 오래 여운을 남기는 바텐더가 되고 싶다.
여성 바텐더는 왜 소수일까
현실적인 이유가 많다. 야간 중심의 노동, 체력적인 부담, 고착화된 업계 구조. 하지만 이 일을 향해 나아가는 여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어쩌면 소수이기에 더 선명히 보인다. 그렇기에 조심스럽고 부담스럽지만 동시에 더 의미 있는 역할을 할 거라 믿는다. 그 변화 속에 꿋꿋이 한몫을 해내고 싶다. 언젠가는 브랜드와 팀을 기획, 구성하고 전체를 한 방향으로 이끄는 음료 총괄자로 성장하고 싶다. 또한 나의 바 브랜드로 다양한 장르와 협업하며 칵테일 문화 확산에 일조하고 싶다.
K-칵테일 메신저

Identity 24

바텐더로서 나를 정의하는 단어
‘열정과 진정성’. 목표는 ‘독보적이고 대체 불가능한 바텐더’.
경력의 인상적인 순간
경력이 쌓일수록 가시적인 성장이 줄곤 한다. 그러던 2022년 첫 월드클래스 코리아 출전에서 톱 10에 오른 순간, 바텐더로서 막연히 바라던 목표가 현실이 되었다. 덕분에 ‘이 일을 오랫동안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생겼다.
내 스타일의 지분
맛있는 칵테일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경험치다. 체험하지 않은 것은 연상할 수도 표현할 수도 없다. 같은 칵테일을 100잔 마셔본 자와 1,000잔 마셔본 자는 차이가 크다. 바텐더로 일하는 중에도 손님으로서 다양한 바를 찾아다닌 시간은 나만의 빅 데이터가 되었다. 공간을 보는 관점, 맛을 판단하는 기준 모두 그 경험에서 나왔다. 또한 전국에 클래식 바가 불과 50여 개였던 10여 년 전, 바텐더에 도전하는 나를 믿어준 부모님께 고맙다.
지금 바 문화는
매력적인 면은 바마다 자기만의 시그니처 칵테일로 개성을 뚜렷이 드러내는 것. 의아한 부분은 클래식 칵테일에 깊이 파고드는 바가 적다는 것. 손님도 익숙한 칵테일만 주문한다.
업계에 영향을 끼친 것
팬데믹 이후 소비 패턴과 취향이 더 다양해졌다. 누군가는 더 정제된 경험을 추구하고, 누군가는 일상에서의 작은 해방감을 원한다. 다행히 지금은 두 가지 욕구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시대다.
바의 미래
바는 술을 마시는 공간을 넘어 휴식과 소통, 익숙함 속의 새로움을 경험하는 장으로 진화할 것이다. 바텐더는 맛뿐 아니라 셰프테이너 역할을 수행하며, K-칵테일 같은 새로운 문화 트렌드를 선도할 수 있다. 또한 현재 위스키 중심의 시장은 테킬라, 칼바도스 등 새로운 스피리츠의 부상과 함께 변화를 예고한다.
영원히 존재할 클래식
마티니. 재료는 간단하지만 바텐더의 성향과 기술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칵테일이다. 얼음처럼 차갑고 강렬하지만, 목 넘김 뒤의 뜨거움과 올리브의 짭짤함이 절묘하게 이어진다.
실험 중인 칵테일
얼음과 셰이킹. 간단해 보이지만 발전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영역이다. 얼음의 형태, 크기, 상태(Wet vs Dry), 셰이킹 모션까지 모든 변수가 칵테일 맛과 질감을 바꾼다. 팀과 함께 동일한 레시피로 각자의 방식대로 셰이킹을 해본 적 있는데 결과는 매번 놀랍도록 달랐다. 아주 작은 부분일 수 있지만, 집요함이 큰 차이를 만든다.
영감을 위한 노력
책에서 본 문장 한 줄, 전시장 공기, 뜨거운 날씨에 아스팔트에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등 사소한 순간에 영감이 있다. 창의성은 일상에서도 아이디어를 포착할 줄 아는 사람에게 찾아온다.
인생 최고의 바 경험
은평구 불광동 ‘기슭’에서의 시간. 한국 바 신에서 독보적인 감성과 크리에이티브를 선보인 공간으로, 손님으로서도 바텐더로서도 인상 깊었다. 팀의 에너지부터 칵테일의 창의성, 공간의 바이브까지 모든 요소가 완벽하게 어우러진 곳이었다.
바텐더의 핵심 역량
경청. 손님의 기분, 어조, 침묵까지 읽을 수 있는 감각이야말로 바텐더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이다.
철학
어제보다 나은 오늘의 레시피.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매일 조금씩 나아갈 것. 작은 변화가 모여 1년 후, 10년 후에는 성장을 이끌 거라 믿는다.
고난
직업을 얘기할 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지 매번 설명해야 한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가며 자기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체력적인 한계와 불규칙한 생활 패턴으로 인한 건강관리, 그리고 여성 바텐더로서 가끔씩 겪는 편견이나 엇갈린 시선도 여전히 넘어서야 한다.
여성 바텐더는 왜 소수일까
직업적으로 버틸 수 있는 구조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노동 강도가 높아 결혼과 출산 등 인생의 중요한 이벤트 후에 지속하기 어렵다. 내 역할은 다음 세대가 덜 망설이고 바텐더를 꿈꿀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언젠가는
패션 화보 같은 다양한 분야와 협업하고 싶다. 바텐더의 개성과 낯선 기물이 만나 새로운 시너지를 낼 것이다. 현재는 책을 집필 중이다. 바텐더라는 직업을 많은 이가 이해하고, 신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 다양한 채널을 통해 이 분야를 알려야 한다.
할머니의 동네 바

Black Time is Break Time

바텐더로서 나를 정의하는 단어
제스트, 영어 이름 레이첼, 고양이를 좋아하는 바텐더.
경력의 인상적인 순간
2021년 월드클래스 코리아에 처음 출전해 4위를 하자 기쁘면서도 신기했다. 디아지오가 주최하는 대회로 여러 단계를 거쳐 한국 챔피언을 뽑고, 그가 글로벌 대회에 진출하는 방식이다. 챌린지마다 주류가 바뀌는데, 예를 들어 1차가 ‘탱커레이 넘버텐’이라면, 2차는 ‘돈훌리오 데킬라’를 미션으로 받아 창의적인 칵테일을 완성해야 한다. 당시에 블러디 메리를 라면 버전으로 만들어 반응이 뜨거웠다. 끓인 토마토에 김치 시즈닝, 후추, 여러 향신료를 넣어 라면 맛을 냈고, 올리브 오일을 바른 말린 토마토와 라면 과자를 가니시로 했다. 지금도 심사위원들을 만나면 “너는 그 라면 칵테일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한다.
내 스타일의 지분
32세란 다소 늦은 나이에 바텐더를 시작했다. 그 전에 직장 생활 하면서 퇴근하면 바에 혼자 드나들며 스트레스를 풀었다. 물론 혼자 바에 처음 들어갈 때는 어색하고 긴장됐는데 당시 바텐더가 환대 능력이 뛰어난 친구였다. 그를 만나지 않았다면 내가 이 길로 들어섰을까 싶다. 이후 바텐더를 시작했지만 서류 면접에서 많이 떨어졌다. 나의 가능성을 알아봐준 이가 당시 앨리스 청담의 헤드 바텐더 데미다. 현재 제스트에서도 함께 일하며 영향을 주고받고 있다.
지금 바 문화는
예전보다는 확실히 한국에도 여러 컨셉의 바가 생겼다. 2025 아시아 50 베스트 바에 오른 곳들이 자리한 지역은 주로 청담·한남·연남·통인동인데 거점이 점차 넓어지고 있다.
업계에 영향을 끼친 것
바 문화를 접하는 나이대가 점점 어려진 덕분에 소셜 미디어를 통해 다양한 ‘홈텐딩’이 시도되고 있다.
바의 미래
유행을 예측하긴 어렵지만, 화려함에 피로를 느끼는 이들이 많아지면서 기본에 충실한 한 잔과 공간이 주목받을 듯하다.
영감을 위한 노력
페니실린은 본래 위스키 베이스에 생강, 꿀이 들어간 스모키한 칵테일인데, 그 이름처럼 소독약 냄새가 살짝 난다. 럼 베이스로 바꾼 레시피를 해외 SNS에서 발견하고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어 인상적이었다. 베이스를 바꾸면 칵테일의 뉘앙스가 엄청 달라지기 때문이다. 해외 바텐딩 관련 기사도 자주 체크하고, 제스트에 방문하는 게스트 바텐더에게도 영감을 얻는다.
영원히 존재할 클래식
마티니, 올드 패션드. 이들은 여러 베리에이션이 존재하지만, 결국 클래식한 버전이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받을 것이다.
지속 가능성이란 과제
제스트는 제로 웨이스트를 전적으로 지향한다. 칵테일에 쓰는 허브나 식용 꽃을 주문하면 보통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담겨온다. 그래서 쓰레기를 만들지 않고 신선한 재료를 얻기 위해 직접 농장에 가서 수확한다. 다른 셰프들도 공유하는 농장이다. 무엇보다 바에서 토닉 워터나 진저에일 등의 캔 쓰레기가 많이 배출되는데, 우리는 그것뿐 아니라 심지어 콜라까지 직접 만들어 쓴다. 동물성 레시피를 지양한 비건 칵테일 개발에도 힘쓰고 있다. 예를 들어 후무스 메뉴를 만들면 나오는 아쿠아파바(병아리콩을 삶은 물)를 달걀흰자 대신 사용한다.
바텐더의 핵심 역량
매일매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가? 반복이 바텐더의 인생을 만든다. 정리정돈과 청소를 잘하는가? 음료는 연습하면 누구나 어느 정도 만들 수 있지만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하는 습관을 가져야 바를 유지할 수 있다.
철학
바텐더는 마라토너다. 당장 성과가 없다고 해서 실망하지 말자. 성실하게 임하다 보면 언젠가는 밝은 아침을 볼 수 있으니, 우리 바텐더들, 힘내길!
고난
때론 감정 노동으로 에너지 소비가 많아 피곤하다. 아직도 바에 들어와 일부 남성 고객이 ‘아가씨’를 찾는 황당한 일도 있다. 이런 문화를 바로잡는 데 작은 역할이라도 하고 싶고, 가능하리라 믿는다. 아직도 내 고민은 ‘어떻게 하면 이 일을 오래 할 수 있을까’다. 일본만 가도 머리가 하얗게 센 바텐더를 간혹 볼 수 있다. 나도 체력 관리를 잘해서 할머니 바텐더가 되고 싶다.
여성 바텐더는 왜 소수일까
출산과 육아로 경력 단절이 많다. 후배 여성 바텐더들이 고민 상담을 해올 때가 있는데, 대부분 야간에 일하면서 체력의 부침을 토로한다. 활동 강도가 높은 서비스직의 근무시간대와 근로시간에 대한 개선이 필요하다.
언젠가는
앨리스 청담과 제스트 같은 주목받는 바에서 일했지만 결국은 나만의 ‘동네 바’를 열 것이다. 처음 바에 가서 느낀 편안한 환대가 있는, 다정한 이웃집 같은 바, 그곳의 할머니 바텐더를 꿈꾼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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