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가르마가 돌아왔다!
머리카락 사이 가느다란 선 하나가 지닌 치명적 영향력.

‘옆가르마가 돌아왔다!’ 2025년 여름을 맞아 해외 미디어는 앞다퉈 이런 토픽을 내놓았다. 그럴 수 있다. 습기 가득한 한여름에 ‘클린 걸’ 스타일 앞가르마를 고수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 Z세대 틱톡커(@rachelocool)가 ‘올더 시스터 사이드 파트(언니 옆가르마)’를 따라 하는 영상이 80만 개 가까운 ‘좋아요’를 얻고, 미국 보그닷컴이 그 표현을 받아서 “언니 옆가르마가 유행이다”라는 기사를 냈을 때는 조금 충격을 받았다. 내가 너무 오래 살았나? 솔직히 옆가르마가 ‘언니 스타일’이라 불릴 정도로 옛것이 되었다는 소식부터가 금시초문이었다. 더 솔직히는, 가르마에도 유행이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살았다.
가르마는 이마에서 정수리까지의 머리카락을 양쪽으로 갈랐을 때 생기는 금을 뜻한다. 길어야 10cm다. 그런데 이 가느다란 금이 한 끗 차이로 인상을 가른다. 하여 요즘 뉴스에서는 ‘가르마를 타다’라는 표현이 ‘입장을 정하다’는 뜻의 은어로 자주 쓰인다. 당연히 여기에는 오랜 미학, 기술, 논쟁, 이론, 믿음, 유행의 역사가 배어 있다.
가르마에 관한 최근의 뷰티 칼럼은 MZ세대 사이에서 몇 년간 앞가르마가 유행이었는데 테일러 스위프트, 사브리나 카펜터, 두아 리파, 올리비아 로드리고 등이 옆가르마를 되살리고 있다는 내용이다. 물론 마감에 맞춰 없는 유행도 만들어내야 하는 미디어 종사자의 말과 우리가 체감하는 현실은 다를 수 있다.
2022년 정중앙을 가르는 뉴진스의 앞가르마와 새카맣게 찰랑이는 생머리는 대중에게 비주얼 충격을 안겨주었다. 그런데 2025년 가장 핫한 루키인 ‘올데이 프로젝트’ 여성 멤버들의 스타일은? 달라진 게 별로 없다. 고혹적인 동양풍 앞가르마가 유행에서 밀려날까 하는 걱정은 그러니까, 아직 하지 않아도 좋다. 무엇보다, 삭발을 해도 아름다울 게 뻔한 연예인이 아니라 가르마 하나로 미추의 경계를 오락가락하는 보통 사람들에게 유행보다 중요한 건 지조다.
우리의 뇌는 때로 AI보다 복잡한 연산을 빠르게 처리한다. 가르마를 결정할 때도 그렇다. ‘이게 나한테 어울리는 것 같아’라는 느낌은 따져보면 패션, 이목구비, 얼굴 크기와 길이, 이마 라인, 두상, 가마 위치, 모질, 체형, 머리를 만지는 습관 등 수많은 요소를 종합한 결과다.
헤어 디자이너들은 머리를 감은 후 뒤로 몇 번 빗어 넘겼을 때 자연스럽게 갈라지는 선이 타고난 가르마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나의 외모와 마음의 분위기를 환기하는 가장 빠르고(1초도 안 걸린다!), 저렴하고(한 푼도 안 든다!), 효과적인 방법이 가르마 바꾸기인데 이걸 안 하고 생긴 대로만 살기는 아깝다. 그래서 탐색은 계속된다.
가르마 위치에 따른 일반적인 이미지는 이렇다. 앞가르마는 중립적이고 단정한 인상이다. 그것이 2000년대 엄정화 스타일 일자 단발과 오뚝한 콧날을 만나면 차가운 구조미로 변주되고, 아오이 유우 같은 부스스한 웨이브와 순한 얼굴을 만나면 낭만이 된다. 하지만 어느 쪽이든, 앞가르마는 얼굴이 길어 보이고 비대칭을 부각하는 부작용이 있다. 자연스럽게 얼굴형을 보완할 수 있는 건 6:4, 7:3 정도 옆가르마다. 이마 위 두상이 짧은 동양인이 볼륨으로 왕관 효과를 내는 간단한 방법이고, 부드러운 인상이다. 날카로운 이목구비의 배우 이준혁이 옆가르마를 한 후 여성 팬들의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이 때문이다.
여성의 2:8 옆가르마는 관능의 상징이다. 리타 헤이워드, 베로니카 레이크,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바 가드너 등 1940년대 누아르 영화 속 팜므 파탈이 웨이브 헤어에 2:8 가르마를 자주 했다.
헤어 제품 없이 2:8 가르마를 구현할 수 있는 두상은 거의 없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2:8은 가장 유명한 남성 가르마 비율이 되었다. 18세기 유럽에서 돼지기름을 발라 2:8로 선명하게 가르마를 탄 머리는 땀 흘려 일할 필요 없는 ‘신사’의 상징이었다. 그 상징성은 20세기 초반까지도 이어졌다. 그러나 히틀러를 거치면서 권위주의의 표식이 되었고, 반작용으로 가르마를 흐트러뜨린 히피 스타일이 대두했다. 한국은 한국대로 20세기 초반 기억이 남아서 젊은 사람이 포마드 바른 2:8 가르마를 했다가는 ‘일본 순사 같다’고 놀림받기 십상이다. 수정안은 기름기를 덜어내는 것이다. 과하지 않은 2:8 가르마는 여전히 똑똑하고 반듯하고 자기 관리 잘하고 야망 있고 클래식한 남자의 상징이다. 기업가와 정치인이 유독 이 스타일을 선호하는 건 빈약한 정수리를 감추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이처럼 각각의 장단점과 효용이 뚜렷해서, 우리에게 허락된 가르마의 이동 범위는 매우 제한적이다. 나는 1990년대 성장기를 보냈고, 그때는 홍콩 누아르의 영향으로 쇼트커트와 앞가르마의 조합이 유행이었다. 나도 별생각 없이 5:5 가르마를 하고 다녔다. 하지만 교복을 벗고 스타일을 결정해야 할 시기가 되고부터는 6:4를 지향했다. 마침 블로우 드라이와 스프레이에 대한 20여 년간의 광적인 흥분이 가라앉고 매직 스트레이트 펌으로 자연스러움을 ‘연출’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부풀린 앞머리 대신 긴 생머리가 돌아왔다. 그에 맞춰 옆가르마가 유행했다. 동서양 Y2K 아이콘인 <엽기적인 그녀>(2001)의 전지현, <퀸카로 살아남는 법>(2004)의 레이첼 맥아담스도 매끈한 생머리에 옆가르마였다.
나는 가르마가 왼쪽이냐 오른쪽이냐는 신경 쓰지 않았다. 이 글을 쓰느라 의식하고 나서야 내가 줄곧 왼쪽으로 가르마를 타왔다는 사실, 그게 나의 짝눈 중 더 가늘고 찢어진 오른쪽 눈에 그늘을 더하는 방향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의 친애하는 20년 단골 디자이너는 나만 보면 잔소리를 했다. “가르마를 자주 바꿔주지 않으면 주변 헤어 볼륨이 꺼진다고요. 두피 한 부분만 반복해서 햇볕에 노출되니까 탈모 원인이 되기도 하고요.” 20대 초반 아이돌도 무대에 설 때 가르마에 흑채를 뿌리곤 한다는 건 국가 기밀이 아니다. 그만큼 볼륨은 중요하다. 하지만 미용실에서 공들여 터준 새 가르마는 무의식중에 손으로 머리를 몇 번 쓸어 넘기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커트와 색은 바꿀지언정 가르마는 한길을 고수하는 그 완고함이야말로 ‘언니’의 특징이지 싶다.
나의 타고난 가르마가 왼쪽이라는 데 불만은 없다. 연구 내용의 참신함 때문에 신뢰성을 떠나 패션 미디어에 자주 인용되는 ‘가르마 이론’이라는 게 있다. 핵물리학과 컴퓨터과학을 전공한 존 월터, 문화인류학을 전공한 캐서린 월터 남매가 주창했다. 존은 자신이 오른쪽 가르마이던 시절 대인 관계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왼쪽으로 바꾼 후 관계가 좋아졌다고 주장한다. 남매는 1999년 ‘당신의 가르마가 당신에 대해 말해주는 것: 가르마 방향이 사회적 인식과 개인 발달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에 따르면 왼쪽 가르마는 논리, 정확성, 남성적 사고를 주관하는 좌뇌가 발달한 타입이고, 오른쪽 가르마는 감성, 창의성, 여성적 사고를 주관하는 우뇌가 발달한 타입이다. 앞가르마 혹은 가르마가 없는 스타일은 중립, 신뢰, 안정, 균형을 추구한다. 따라서 역대 미국 대통령, 국회의원 중 왼쪽 가르마가 많았다고. <슈퍼맨>(1978)의 크리스토퍼 리브는 슈퍼맨 장면에서 왼쪽 가르마, 사진기자 클락 켄트 장면에서 오른쪽 가르마를 탔다.
가르마 이론이 믿거나 말거나 같지만 “쌍가마는 결혼을 두 번 한다”는 과거 한국 속설에 비하면 통계가 성의 있다. 사람의 머리는 가마에서부터 소용돌이 모양으로 돌아 난다. 그에 따라 가르마 방향이 결정된다. 그래서 가마를 생명의 출발점과 연결 짓는 유사 과학이 과거부터 존재했다. 명리학에서는 가마 모양으로 태어난 시를 추측할 수 있다는 소수 이론이 있다. 오른쪽 가마는 양의 시(子寅辰午申戌, 자인진오신술), 왼쪽 가마는 음의 시(丑卯巳未酉亥, 축묘사미유해)에 태어난 것으로 판단한다. 쌍가마는 생월을 고려하여 결정한다. 그런데 내 가마를 대입해보니 결과가 어림없이 빗나갔다. 가마를 통해 성격, 건강, 학업, 영적 상태와 미래를 파악할 수 있으며 헤어스타일 교정으로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다. 나도 재미로 점을 보는 사람이지만 헤어스타일만은 운명론자보다 헤어 디자이너와 상의하고 싶다.
가마가 운명을 결정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거기서 뻗어 나온 가르마가 우리의 인상을 좌우하는 건 확실하다. 얼굴의 대칭, 음영, 비율을 조절하고 시선의 흐름을 지배하고 리듬을 창조함으로써 그것을 해낸다. 운명에 영향을 미치기로는 인상만 한 것이 없다. 그리하여 가르마는 유행이 아니라 자아 탐구의 영역이다. 틱톡과 쇼츠에서 ‘가르마 변신’ 전후 영상이 자주 인기를 끄는 것도, 옆가르마가 앞가르마와 사이좋게 공존할 조짐이 보인다는 것도, 그래서 반갑다. 진짜 내 마음에 드는 나를 발견할 때까지, 우리는 모험을 계속해야 한다. 그래야 미래의 완고함에도 변명거리가 생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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