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화보

터치드, 지나온 5년과 앞으로의 5년

2025.08.07

터치드, 지나온 5년과 앞으로의 5년

지난 5년 동안 터치드는 올라가는 일에 집중해왔다. 서울의 오래된 어느 아파트 옥상에 당도한 이들이 처음으로 숨을 고른다.

존비킴의 재킷은 렉토(Recto), 팬츠는 에스티유(STU). 윤민의 재킷은 에스이오(S/E/O), 글리터 데님 팬츠는 골든구스(Golden Goose), 안경은 까르띠에(Cartier). 김승빈의 재킷과 셔츠는 로에베(Loewe), 레더 팬츠는 토니웩(Tonywack). 채도현이 입은 레더 재킷은 존 바바토스(John Varvatos).

한여름에도 부츠를 신고 야외무대에서 ‘로큰롤’을 부르짖는 밴드와 그런 그들을 보며 인파 속에서도 미친 듯이 머리를 흔드는 관중의 에너지(혹은 광기)가 필요한 시점이었다. 정신없이 상반기를 떠나보내고 나니 가벼운 매너리즘이 찾아왔다. 출퇴근길에 음악과의 동행이 잦아들었고, 가을을 겨냥해 패션계에 불어닥친 신선한 영감도 내게는 닿지 못한 채 옷차림은 티셔츠와 청바지, 플립플롭에 정체돼 있었다. 그런 시즌에 밴드를 만나야겠다는 결심이 선 것은 나를 다시 일으켜 세우려는 신의 계획은 아니었을까? 이번에 마주한 밴드 세 팀은 지금 내게 필요한 활력, 삶에 대한 의지, 시대정신을 모두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윤민의 블랙 레더 재킷과 팬츠는 스포트막스(Sportmax), 골드 체인 네크리스와 왼손 검지 링은 로스트 인 에코(Lost in Echo).

감동을 주는 음악을 꿈꾸며 2020년 결성한 밴드 터치드(Touched)의 이야기에 시작부터 공감했다. “8월에 공개하는 새 EP 작업에 몰두하는 중이에요. 그런데 이거 끝나면 또 공연이 있고, 그 후에 또 다음 미션이 있고··· 사이사이 아주 소중한 추억이 많은데 되짚어볼 겨를도 없이 시간이 흘러가는군요. 터치드로 살아온 지난 5년이 그렇게 순식간에 지나갔어요.” 터치드에서 키보드를 맡고 있는 채도현이 운을 뗐다. 세인트 제임스의 스트라이프 티셔츠와 리바이스 청바지 차림에 에코 백을 무심하게 멘 채로 멤버 중 가장 먼저 스튜디오에 나타난 그에게서 나는 일찍이 존 레논의 향취를 느꼈다. (그는 수긍했다. “추구하는 스타일이긴 합니다.”) 프런트맨의 책임감을 의식하듯 미세한 감기 기운에 얼른 마스크를 착용하고 인터뷰에 임한 윤민이 덧붙였다. 귀여움과 카리스마가 공존하는 묘한 얼굴이었다. “마라톤을 하는 기분이에요. 다만 결승점이 아주 멀리 있는···”(웃음) 다시 “장기 연애를 한 기분”이라는 채도현의 말에 날카로운 인상을 지닌 베이스의 존비킴이 맞장구쳤다. “장기 연애라고 부를 만한 시점이 오긴 했는데, 그러다가도 YB 선배님들을 보면 ‘우린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들의 말처럼 계속 새로운 목표를 경신하며 달려온 지난 5년이었다. 1996년생 윤민을 끌어들인 1995년생 채도현과 드러머 김승빈, 가장 마지막으로 합류한 1993년생 베이시스트 존비킴, 서울예술대학교 실용음악과 선후배 사이인 터치드는 결성 직후 2020년 제31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Blue’라는 곡으로 첫 번째 우승을 따냈다. 2022년 Mnet이 론칭한 밴드 서바이벌 프로그램 <그레이트 서울 인베이전>은 이른 시간 찾아온 터닝 포인트였다. 팬데믹이 가져온 공연계의 암흑기에도 가능성을 증명해낸 사건이었으니까. 리더 김승빈이 커다란 눈을 느리게 깜빡이며 그때를 떠올렸다. “1회가 방영될 때만 해도 우리가 충분한 경쟁력을 갖고 있다고 자신하지는 못했어요. 하지만 반응이 심상치 않았죠. 프로그램 시작부터 우리를 우승 후보로 예감한 분들이 정말 많았거든요.” 그렇게 터치드는 자작곡 ‘Hi Bully’로 1라운드를 통과한 후 승승장구했고, 마침내 헤드라이너로 페스티벌에 설 날을 꿈꾸며 쓴 곡 ‘Alive’로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6월 열린 뷰티풀 민트 라이프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로 무대에 선 터치드는 첫 곡으로 ‘Alive’를 들려줬다.) 자기만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밴드의 낭만이지만, 분명 자신감을 얻은 순간이었다. 김승빈이 말을 이었다.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대상도 그렇고, 이런 성과가 없었더라면 솔직히 해체했을지도 모르죠. 실제 성과를 얻고, 상금을 받고, 그런 좋은 결과 덕분에 분명 더 빠르게 도약할 수 있었어요.”

채도현의 에스닉 패턴 셔츠는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진주 네크리스는 로스트 인 에코(Lost in Echo), 블랙 스톤 네크리스는 톰 우드(Tom Wood), 선글라스는(Miu Miu).
채도현의 에스닉 패턴 셔츠와 레드 데님 재킷은 이자벨 마랑(Isabel Marant), 진주 네크리스와 링은 로스트 인 에코(Lost in Echo), 블랙 스톤 네크리스는 톰 우드(Tom Wood), 키 체인은 센티멍(Sentiments), 안경은 구찌(Gucci).

그 후 터치드는 5인조에서 4인조 밴드로 재편했지만, 위기는 없었다. 지난해 <복면가왕>에서 9연승 가왕에 등극한 윤민의 활약은 오히려 폭넓은 대중의 지지를 몰고 왔다. 방황하는 10대 소녀도, 조용필과 이승철 이후 한동안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았다는 70대 여성도 모두 윤민의 목소리에 매료됐다. 대외 활동을 주도하며 밴드의 인지도와 이미지를 관리하는 프런트맨으로서 윤민은 제 역할을 완벽히 해낸 셈이다. 세 명의 ‘오빠들’이 윤민이 지닌 상반된 음색의 매력을 치켜세웠다. 냉철한 분석가 채도현이 말했다. “거친 면도 있고, 아주 여린 면도 있는 지킬 앤 하이드 같은 목소리예요. 테크니컬하게 무르익은 느낌이 나는가 하면 정제되지 않은 순진한 목소리를 내기도 하죠. ‘누구 같다’는 이야기를 듣지만 완전히 그 사람 같지도 않아요.” 김승빈이 짧게 덧붙였다. “타고났죠.” 존비킴에게 윤민의 보컬은 지금 시대에 꼭 필요한 목소리다. “무척 스트레이트한 목소리라 듣기 시원해요. 요즘 그런 보컬이 많지 않은데 말이죠. 터프하고, 섹시하고, 그러다가도 발랄했다가 따뜻함이 묻어나기도 하고, 한마디로 다 잘합니다.”(웃음) 윤민이 ‘프런트맨십’을 적극적으로 발휘하는 영역은 또 있다. 바로 의상. 요지 야마모토처럼 컨셉추얼한 디자인을 애정하는 윤민의 주도로 늘 실루엣이 확실하고, 정돈된 느낌을 앞세운 터치드의 공연 의상은 어느새 팀의 정체성이 됐다. “처음 결성할 당시 홍대 밴드 신에서는 무심한 느낌의 캐주얼 룩이 유행이었는데 그것과 달라야 한다고 믿었어요. 나른하고, ‘칠(Chill)’한 느낌 말고, 처음부터 잘 갖춰 입은 모습으로 무대에 서자고 오빠들을 설득했죠.”

이번에는 윤민이 2023년 단독 콘서트 <remnant>를 회상하며 멤버들을 두둔했다. “팬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 공연 둘째 날 목소리가 안 나왔어요. 마침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힘에 부치던 시기였죠. 팬들과 멤버들이 아니었다면, 제가 솔로 가수였다면, 마지막 날 공연에 서지 못했을 거예요. 평소보다 코러스를 더 크게 불러준 오빠들과 더 열정적으로 ‘떼창’을 들려준 팬들을 보며 이 길을 저 혼자 걷고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체감했습니다.” 존비킴 역시 그 공연을 통해 팀워크가 더 돈독해졌다고 느낀다. “윤민이가 힘든 건 단순히 개인의 일이 아니잖아요. 함께 그 순간을 이겨내고, 옆에서 응원하고, 그렇게 걱정하던 걸 잘 끝냈을 때의 대견함과 뿌듯함이 엄청 컸던 순간이에요.”

존비킴의 레더 라이더 재킷은 골든구스(Golden Goose), 티셔츠는 코치(Coach), 팬츠는 에스티유(STU), 스터드 부츠는 크리스찬 루부탱(Christian Louboutin), 네크리스와 뱅글은 센티멍(Sentiments), 왼손 검지 링은 티링제이(Tee Ring Jay), 약지 링과 이어커프는 톰 우드(Tom Wood), 오른손 약지 링은 스와로브스키(Swarovski).

결국 삶과 사랑. 존비킴은 그것이야말로 터치드의 음악에서 키워드라고 이야기했다. 그렇기에 좋은 음악을 만들고 성공적인 공연을 하는 것만큼 서로를 응원하며 전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핵심은 우리 넷인 것 같아요. 음악도 음악이지만, 함께하는 과정에서 서로 소통하고, 부딪치고, 그런 순간을 잘 겪으면서 의미 있게 살고 싶어요.” 다른 멤버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채도현이 존비킴의 이야기를 음악적인 관점에 적용했다. “우리 네 명의 삶과 사랑만 얘기해도 벌써 8곡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그게 시즌마다 달라지고, 사랑하는 대상도 달라지고, 그렇게 삶과 사랑 안에서 정말 무한하게 곡을 만들면서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윤민이 덧붙였다. “말로 표현했을 때 지나치게 뾰족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타인이 받아들일 정도로 뭉툭하게 만드는 것이 음악이 지닌 힘이라고 믿어요. 물론 록 밴드이기에 과격할 만큼 모든 감정을 토해내는 음악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지만 왠지 터치드는 굳이 그런 걸 하진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들어요.” 터치드의 음악에서는 늘 현재에 대한 사랑과 타인을 향한 너그러움이 묻어난다는 내 말에 채도현이 공감했다. “‘Alive’도 그렇고, ‘Highlight’ ‘Dive(Feat. 서사무엘)’ ‘야경’ ‘Last Day’··· 만들 땐 몰랐는데 우리 안에 ‘지금을 소중하게 여기자’는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채도현의 말처럼 지금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고통에 강하고, 타인에게도 너그러울 수밖에 없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소중한 시간을 외부 요인 때문에 낭비할 순 없기 때문이다. 관객들 역시 그런 마음으로 쓰인 터치드의 노래를 목청껏 따라 부르며 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름다운 선순환이다.

김승빈의 레드 컬러 레더 재킷은 렉토(Recto), 블랙 톱과 팬츠, 벨트는 아미리(Amiri), 골드 뱅글은 루시류(Lucie-Ryu), 체인 뱅글은 센티멍(Sentiments), 진주 포인트 골드 네크리스는 로스트 인 에코(Lost in Echo).

모든 노래를 다 같은 진심으로 만들었으나 ‘야경’과 ‘Last Day’는 특히 애착이 가는 곡이다. “우리 노래를 찾아 듣지는 않는데, ‘야경’은 달랐어요.”(윤민) 다른 멤버들이 윤민의 ‘눈물 버튼’이 ‘야경’이라 덧붙였다. 존비킴이 ‘Last Day’를 언급하자 멤버들이 호응했다. “죽음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기 때문인지 비장하면서도, 찬란하고, 후련한 느낌이 드는 곡이에요.”(존비킴) 윤민이 부가 설명했다. “마지막 부분에 승빈 오빠가 쓴 ‘난 그냥 너를 안을래’라는 가사도 정말, 부를 때마다 울컥하는 부분이에요. 마음이 정말 웅장해지죠.” 김승빈이 문제의 가사에 대한 탄생 비화를 들려줬다. “마지막에는 정말 핵심적인 말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그냥 ‘그냥’이란 말을 되게 좋아해요. 이유가 없다는 거잖아요.” 윤민과 채도현이 웃음을 터뜨렸다. “방금 들으셨죠? 30초 사이에 ‘그냥’이란 단어를 네 번이나 말했거든요.” 존비킴이 이야기를 정리했다. “삶의 마지막이라는 거창한 순간에 결국 너와 나,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는 듯한 느낌이 아주 좋았어요.”

존비킴의 재킷은 렉토(Recto), 팬츠는 에스티유(STU). 윤민의 재킷은 에스이오(S/E/O), 글리터 데님 팬츠는 골든구스(Golden Goose), 안경은 까르띠에(Cartier). 채도현이 입은 레더 재킷은 존 바바토스(John Varvatos). 김승빈의 재킷과 셔츠는 로에베(Loewe), 레더 팬츠는 토니웩(Tonywack).

8월 23일부터 이틀간 일산 킨텍스에서 펼쳐지는 단독 콘서트 <ATTRACTION>은 또 하나의 의미 있는 도약이 될 것이다. “무대 밖에서도 함께 즐기고 소통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공연을 선보이겠다”고 공언한 이번 무대는 티켓 오픈 전부터 팬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윤민이 기획 의도를 설명했다. “페스티벌처럼 즐길 수 있는 공연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회사 PD님의 아이디어가 정말 마음에 들었어요. 회사 팀원들과 함께 홀로그램, VR, 네 컷 사진, F&B, 커스텀 티셔츠, 메시지 월 등 재미있는 기획을 많이 준비해서 기대가 커요. 이 공연이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또 다른 공연 문화의 선구자가 될 거고, 그건 공연계 전체에도 좋은 일이 되겠죠.” 채도현이 기대하는 미래는 또 있다. 인터뷰를 시작하자마자 그가 언급한 새 미니 앨범이다. “요즘 뭔가 달라진 느낌이 있어요. 멤버가 한 명 줄면서 어찌 됐든 다른 방향으로 해답을 찾아야 했는데, 이제야 정리되는 느낌이랄까요.” 그는 이번 새 앨범의 타이틀곡이 자신의 ‘최애’가 될 거라 선언했다. 윤민이 이 모든 흐름과 함께 터치드의 목표에 대해 언급했다. “범대중적인 사랑을 받는 곡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은 우리를 사랑해주는 분들에게만 우리 노래를 들려주고 있는 기분이라면, 앞으로는 우리가 누군지 몰라도 터치드의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기길 바랍니다.”

본격적인 더위가 시작되는 절기인 소서(小暑), 개인 촬영을 마친 멤버들이 단체 촬영을 위해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가장 빠르게 옷을 갈아입은 채도현이 먼저 자리를 잡고, 이어 훤칠한 체구를 자랑하는 김승빈과 존비킴이 우뚝 섰다. 마지막으로 타이를 정갈하게 맨 윤민이 합류하자 그림이 완성된다. 오직 서로의 존재에 의지해 지금껏 달려온 존비킴, 윤민, 김승빈, 채도현이 무더위에 굴하지 않고, 그 틈으로 미세하게 느껴지는 신선한 바람에 집중했다. 그리고 만끽했다. 지금 이 순간이 삶의 하이라이트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VK

류가영

류가영

피처 에디터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생각에 잠기는 시간이 필요하고, 무엇이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본능적인 패션 감각을 타고난 화가, 소설가, 영화감독, 셰프에게 매력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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