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불완전함의 시, 개리 코마린의 세계

2025.08.26

불완전함의 시, 개리 코마린의 세계

언어를 넘어 마음에 말을 거는 회화, 그 끝없는 여정의 기록.

개리 코마린의 회화는 언어로 설명되기 전의 세계에서 시작된다. 이름 붙지 않은 기억과 잠재의식이 색과 형태로 흘러나와 화면 위에서 스스로 생겨나고, 겹쳐지고, 사라진다. 그는 계획 없는 흔적이 실패와 우연을 거쳐 자기만의 질서를 만들 때 진짜 회화가 탄생한다고 믿는다. 그 순간 회화는 단순히 대상을 재현하는 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감정과 심리까지 드러내는 통로가 된다.

코마린의 작업은 자유로움과 즉흥성을 담으면서도 구조적 긴장을 잃지 않는다. 가정용 페인트나 바느질된 종이처럼 낯선 재료로 완성된 화면은 거칠면서도 장난스럽게 빛난다. 그 안에서 색과 형태, 기억과 이미지가 끊임없이 새롭게 얽히고 풀린다. 코마린에게 추상은 하나의 양식이 아니라, 회화가 더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도록 열어둔 문이다. 이제 그가 직접 전하는 생각을 들어볼 차례다.

회화에 종종 가정용 페인트, 꿰맨 종이, 합판, 스파클 같은 전통적이지 않은 재료를 사용합니다. 처음 이런 재료에 끌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리고 그것들이 어떻게 새로운 언어를 만들어냈나요?
저는 단순하고 본질적인 재료에 늘 매력을 느껴왔습니다. 그런 재료는 저를 집착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만들어줍니다. 철물점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스파클이나 종이 봉투 같은 재료는 값비싸지 않아서 더 과감하게 쓸 수 있죠. 저는 약간 삐뚤어진 것, 불완전함의 시에 끌립니다. 재료가 귀하지 않으면 화가도 그것에 집착하지 않게 되고, 작품은 더 큰 모험으로 확장할 수 있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이미지는 나타났다 사라지고, 다시 덧칠되고, 실패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냅니다. 작품이 스스로 숨을 쉬기 시작하는 순간은 어떤 느낌인가요?
가장 좋은 순간은 늘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작품이 스스로 호흡을 시작하는 순간, 그것은 기적 같죠. 그럴 땐 제가 할 일은 간섭하지 않고 자리를 비켜주는 것입니다. 창작의 기적은 억지로 밀어붙일 수 없습니다. 그것은 스스로의 의지로 일어나고 저는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만 하면 되는 것이죠. 무엇보다 막 태어난 것을 질식시키지 않는 게 중요합니다.

미국, 남미, 유럽, 아시아, 중동까지 다양한 지역에서 작업과 전시를 이어왔습니다. 다른 문화적 맥락이 작품 세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나요?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전시하면서 언어와 음식, 옷차림은 달라도 인간을 움직이는 본질은 같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 작업은 시각적이고 상징적이라 어느 문화권에서든 연결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감정이든, 삶의 익숙한 풍경이든 말이죠. 이것이 정말 아름답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랫동안 케이크 그림을 그려왔는데 케이크는 전 세계 어디서든 통하는 소재입니다. 길쭉하거나 둥글거나, 단정하거나 녹아내리듯 흐르거나. 누구에게나 맞는 케이크가 있죠. 특히 서울에서 저는 이 단순함 속의 풍요로움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어떤 작품은 완성되기까지 몇 달, 혹은 몇 년이 걸리기도 합니다. 당신에게 시간은 조용한 협력자인가요, 아니면 말 없는 도전일까요?
그건 끊임없는 춤과 같습니다. 조용한 협력자이자 동시에 도전이죠. 저는 작업실에서 무의식이 앞서도록 두고, 손이 먼저 움직이게 합니다. 어떤 작품은 제 곁을 떠난 듯 멀게 느껴지고 또 다른 작품은 어깨를 두드리며 “계속해”라고 속삭입니다. 최고의 작품은 스스로 그려지고 또 어떤 것들은 제 개입을 필요로 하기도 하죠. 바로 이 긴장이 저를 다시 작업실로 불러들이는 힘입니다.

작은 엽서 크기에서부터 여러 장의 종이를 이어붙인 대형 작업까지, 크기에 따라 작품의 성격이나 리듬, 호흡도 달라지나요?
저는 삶에서 늘 움직이고 유연하게 살려고 합니다. 한곳에 오래 머물지 않고 건물에서 건물로, 작업실에서 수영장으로, 시골길을 차로 오가죠. 그래서 회화의 크기에 맞춰 제 몸도 자연스럽게 조율됩니다. 큰 캔버스에서는 큰 제스처가 필요하고, 작은 캔버스에서도 큰 제스처를 할 수 있습니다. 호흡과 몸짓은 크기에 상관없이 이어집니다.

케이크 시리즈는 뉴욕에서 보낸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시작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기억은 오늘날의 캔버스에 어떻게 살아 있나요?
네, 케이크는 제 어린 시절의 기억에서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전쟁을 피해 빈에서 뉴욕으로 오셨고 제 어린 시절 내내 케이크를 많이 구워주셨거든요. 레시피를 잘 따르지 않으셔서 모양은 종종 흐르거나 삐뚤었지만 언제나 맛있고 사랑이 가득했죠. 아버지는 동유럽 출신의 건축가였는데 케이크는 그 두 세계, 건축적인 것과 가정적인 것이 결합된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작품은 1950년대 뉴욕의 색감을 담고, 또 어떤 것들은 더 엄격했던 시기를 반영해 흑백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Figure/Field’, ‘Vessel’, ‘Slipping Mary’ 같은 연작은 원시적 힘에서 가벼운 유머까지 다양한 어조를 보여줍니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발전해왔나요?
마음은 늘 끊임없이 탐구합니다. 색에서 무채색으로, 복잡함에서 단순함으로, 그리고 다시 돌아오기도 하죠. 마치 바다를 보는 것과 같습니다. 거센 파도가 이어지다가도 곧 장난스러운 작은 파도가 따라옵니다. 그것이 바로 삶의 리듬이니까요.

추상을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개방”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최근 그 개방은 어떤 가능성을 보여주었나요?
모든 예술은 어떤 수준에서는 추상적입니다. 같은 나무를 같은 시점에서 백 명의 화가가 그린다면 백 가지의 서로 다른, 그리고 각각 아름다운 그림이 나오겠죠. 저에게 케이크나 용기(Vessel)는 색과 터치가 말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골격입니다. Figure/Field 작업에서는 대형 캔버스를 자주 쓰는데, 그 속에서는 마치 떠다니는 듯한 상태가 됩니다. 작품에서 한 발 물러서면 제 마음의 바다가 드러나는 듯한 감각을 받습니다.

국내 전속 갤러리인 아줄레주 갤러리와는 2019년 첫 전시 이후 이번이 세 번째 만남이었는데요, 이번 전시에서는 어떤 점이 가장 인상 깊으셨나요?
아줄레주 전시는 정말 특별했습니다. 서울 관객들이 제 작품을 진심으로 즐겨주고 열정적인 반응을 보여준 게 큰 기쁨이었죠. 디렉터 서영과 팀은 제 작업실을 여러 차례 방문해 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했고, 그 존중과 배려 덕분에 전시가 더욱 풍성해졌습니다. 제 작품은 언어를 넘어 마음에 직접 말을 건다고 생각합니다. 전시 중 컬렉터들에게 짧은 강연을 했는데 그들이 케이크와 Figure/Field 작업에 보여준 환희와 발견의 반응은 정말 잊기 힘든 순간이었습니다.

내년에 같은 갤러리에서 다시 전시를 앞두고 있죠. 이번 전시는 어떤 점에서 달라질까요?
제 작업은 늘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움직입니다. 한 작품이 다음 작품을 끌고 가죠. 서울에서 선보였던 작업과 연결된 부분도 있을 것이고, 동시에 최근의 탐구에서 나온 새로운 색과 형태, 질감도 많을 겁니다. 모든 작품은 한 줄의 진주처럼 이어져 있습니다. 바로 그 연결성 자체가 제 창작의 중요한 원리이자 즐거움입니다.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