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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여성이 ‘베이비’ 티셔츠를 입는다는 것의 의미

2025.08.29

성인 여성이 ‘베이비’ 티셔츠를 입는다는 것의 의미

단순해 보이지만, ‘베이비 티셔츠’는 사실 복잡한 의상이에요. 베이비 티셔츠, 즉 몸에 꼭 맞고 길이가 짧은 티셔츠가 처음 인기를 얻기 시작한 건 1990년대의 일이었습니다. 당시 많은 여성은 전통적인 ‘소녀다움’이나 ‘여성성’을 상징하는 요소를 일부러 비틀어보고자 했죠. 베이비 티셔츠는 여기에 적합한 의상이었고요. 물론 모두가 같은 이유로 베이비 티셔츠를 입은 건 아니었습니다. 단순히 섹시해 보이고 싶은 사람도 많았을 거예요.

린다 멜처(Linda Meltzer)는 베이비 티셔츠를 ‘발명’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입니다. 뮤직비디오와 영화 스타일리스트였던 그녀는 1970년대 프랑스에서 출시된 어린이 티셔츠에 꽂혀 온갖 빈티지 숍을 전전하며 이를 집요하게 찾아다녔죠. 멜처는 수집에 멈추지 않고, 어린이 티셔츠에서 영감을 받은 자신만의 옷을 만들기로 결심합니다. 세어 호로위츠(Cher Horowitz)부터 브렌다 월시(Brenda Walsh), 레이첼 그린(Rachel Green) 등 1990년대 패션을 상징하는 캐릭터는 하나같이 그녀의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1995년 데이비드 레터맨의 ‘레이트 쇼’에 긴팔 베이비 티셔츠를 입고 출연한 드류 배리모어. Getty Images

어떤 사람에게 베이비 티셔츠는 유행과 별개의 스테디 아이템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지난 10여 년간은 이전에 비해 주목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죠. 요즘 분위기는 다릅니다. 런웨이뿐 아니라 길거리의 패셔니스타들 역시 베이비 티셔츠에 집중하고 있거든요. 그런데 베이비 티셔츠를 부활시킨 건 모델이나 인플루언서가 아니었습니다. 뜻밖의 주인공은 가수 로드(Lorde)였죠.

지난 6월 말 로드는 새 앨범 <버진(Virgin)>을 발표했습니다. 토성 회귀(Saturn Return), 즉 점성술에서 말하는 인생의 전환기를 맞이한 그녀의 이야기를 담았죠. 앨범에 수록된 11곡을 통해 그녀는 성장하는 동안 자신의 몸이 고스란히 기록해온 감정적이고 은유적인 흔적을 원초적이고 강렬한 가사와 함께 풀어냈습니다. 그리고 이 앨범의 중심을 차지하는 의상은 단 하나입니다. 바로 ‘베이비 티셔츠’죠. 성적인 관계 후 느낀 감정을 담은 곡 GRWM의 후렴구를 한 번 들어볼까요?

“어쩌면 이제 진짜 네가 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알게 될 거야 / 베이비 티셔츠를 입은 여자 어른 / 여자 어른 / 그 소녀는 여자 어른이야.” 음악 웹진 <피치포크>는 이 곡을 두고 “객관적으로 바보 같은 가사지만, 로드는 이를 자신 있게 표현했다”고 평가했습니다. 물론, 이 가사는 전혀 바보 같지 않아요. 오히려 천재적이죠!

반짝이는 베이비 티셔츠를 이길 수 있는 아이템이 있을까요? Blumarine Pre-Fall 2025 RTW
이세이 미야케의 세련된 베이비 티셔츠 레이어링. Issey Miyake Fall 2025 RTW
장난기 가득한 코치의 베이비 티셔츠. Coach Fall 2025 RTW
예술적인 감각의 베이비 티셔츠. S.S. Daley Fall 2025 RTW

저는 청소년기부터 20대 초반까지 베이비 티셔츠를 열렬히 입고 다녔습니다. 지난 10여 년간은 패션계에서 일하는 많은 사람이 그랬듯 거대한 오버사이즈 티셔츠를 선호했지만 말이에요. 그럼에도 1990년대 문화와 패션에 익숙한 저였기에, 몇 시즌 전 더 로우가 달걀프라이와 베이컨이 프린트된 아주 얇은 재질의 베이비 티셔츠를 출시했을 땐 반가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베이비 티셔츠가 ‘필수템’이 될 거라고 선언하기도 했죠. 하지만 막상 입어보니 40대의 몸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그 무렵 아이도 낳았고, 그때까지만 해도 모두가 ‘거대한 옷’을 입는 게 트렌드였으니 더 그렇게 느꼈을지도 모르겠어요. 동시에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성인 여성이 베이비 티셔츠를 입는 걸 누가 존중해줄까요?

의문은 로드의 ‘GRWM’을 듣고 해소됐습니다. 성인 여성으로서 베이비 티셔츠를 입는다는 건, 자기 안의 모순을 받아들이는 일이었던 거예요. 성장하기 위해서는 내가 갖고 있던 어떤 부분을 버려야 하지만, 때로는 그 부분을 안고 함께 가야 할 때도 있습니다. 아무리 어른이라도, 뭘 버려야 하고 뭘 안고 가야 하는지 모를 때도 있을 거예요. 하지만 그건 그것대로 멋지다고 인정하는 것, 베이비 티셔츠에 얽힌 질문에 대한 답이었어요. <버진>의 첫 트랙에서 로드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난 다시 태어난 것 같아 / 모든 답을 모른다고 느낄 준비가 됐어 / 우리 머리 위 혼란 속에 평화가 있어 / 위로, 위로, 위로 들어 올려줘.”

1996년 아이코닉한 ‘걸’ 베이비 티셔츠를 입은 파멜라 앤더슨. Getty Images
2024년 리던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베이비 티셔츠를 리메이크한 파멜라 앤더슨. Courtesy of Re/Done

1996년 배우 파멜라 앤더슨은 행사에 참석해 걸프(Gulf, 걸프 정유사) 로고가 새겨진 베이비 티셔츠를 입었습니다. 로고는 걸프였지만, 거기에 적힌 글자는 ‘걸(Girl)’이었죠. 언어유희가 담긴 그 로고는 그녀의 큰 가슴 위에서 더 돋보였습니다. 당시 청소년이던 저는 10대 소녀를 위한 잡지에서 그 사진을 봤는데, 그 아래에는 “굳이 알려줘서 고마워, 네가 소녀라는 걸 잊을 뻔했지 뭐야!”라는 멘트가 달려 있었어요. 매우 냉소적인 말투여서 기억에 남는군요.

지난해 앤더슨은 리던과의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이 티셔츠를 다시 선보였습니다. 같은 디자인이었지만, 이번에는 로고가 훨씬 반짝이고 있었죠. 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채 머리를 풀어 헤치고 반짝이는 ‘걸’ 티셔츠를 입은 57세의 앤더슨은 1990년대 청소년이 품은 꿈과 희망 같은 모습이었어요. 나이 불문, 성인 여성이 베이비 티셔츠를 입은 모습이 충분히 멋지다는 걸 증명하는 듯 말이에요.

Laia Garcia-Furtado
사진
Getty Images, GoRunway, Courtesy of Re/Done
출처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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