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가 넘칠수록 옷은 몸에 닿아야 한다, 어거스트 배런
디자이너도 경력직 시대. 2025 LVMH 프라이즈 파이널 진출자 중 3개 브랜드에 물었다. 경쟁적인 패션계에서 이름을 알리고 브랜드를 키워나간다는 것에 대하여.

“휴대폰 충전기 좀 빌릴 수 있을까요.” 디자이너 브로르 어거스트 베스트보(Bror August Vestbø)와 사진작가 벤자민 배런(Benjamin Barron)의 첫 만남은 지난 10년을 상상하지 못할 만큼 사소했다. 2015년 8월, 벤자민이 매거진 <올인(ALL-IN)>을 론칭하는 파티장이었다. 둘은 그 후 올인이라는 이름의 매거진과 의류 브랜드를 공동 운영하며 여덟 권의 매거진과 다섯 시즌의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리고 2025년 8월 25일, 둘의 성을 합친 ‘어거스트 배런(August Barron)’으로 다시 시작했다. 두 사람이 쌓아온 시간을 공식적으로 각인한 타이틀이다.


비공식 타이틀이 있다면 ‘호더(Hoarder)’다. 스스로 호더라 부르며 스튜디오 한쪽에 쌓인 낡은 옷더미를 끝내 버리지 못한다. 빈티지 혹은 데드스톡에서 영감을 얻고, 그것을 뜯고 다시 이어 붙여 옷을 만든다. 갈아입기보다 차라리 덧입기를 택한다. 그리고 실패와 우연, 모순과 집착을 포개 쌓는다. 그 축적이 캐릭터가 되고, 캐릭터는 다시 옷이 된다. 그렇게 구축된 면면은 2025 LVMH 프라이즈 파이널리스트에 오르며 전 세계에 소개되었다.
벤자민과 브로르는 이미지에 둘러싸여 자란 세대다. 이미지 구사가 모국어처럼 자연스럽다. 그래서 묻는다. 이미지가 차고 넘치는 시대에도 옷은 결국 손끝에서 다시 확인되는 것이어야 하지 않느냐고. 질문은 다시 옷을 살피고, 뜯고, 잇는 방식으로 돌아온다. 손에 잡히지 않는 세계를 짐작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당장 눈앞의 옷에 집중한다. 미래를 점치는 자와 만드는 자가 있다면, 이들은 단연코 후자다.


<보그> 코리아 독자들에게 어거스트 배런을 소개해달라.
벤자민 배런(이하 BB) 어거스트 배런은 매거진 <올인>에서 출발한 브랜드다. 처음엔 의류를 판매할 계획이 없었다. 화보를 위해 직접 만든 옷이 컬렉션의 물꼬를 텄다. 매거진과 컬렉션은 같은 주제를 두고 서로 대화하듯 이어진다. 우리는 빈티지나 데드스톡을 해체하고 재조립하면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다. 특히 뭔가를 대표하려 애쓰는 인물, 그리고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성공과 실패에 관심이 많다.
올인에서 어거스트 배런으로 브랜드 이름을 바꿨다.
BB 2015년 8월 <올인> 첫 호를 낸 후 10년이 흘렀다. 브랜드도, 우리도 달라졌다. 우리 둘의 성을 합친 ‘어거스트 배런’이 지금의 위치와 앞으로의 방향을 더 잘 담아낸다. 매거진은 <올인>이라는 이름을 유지한다.
두 사람의 인연은 매거진 론칭 파티에서 시작됐다.
브로르 어거스트(이하 BA) 뉴욕으로 이사한 첫 주에 페이스북에서 파티 플라이어를 봤다.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지만 무작정 갔지. 벤자민에게 휴대폰 충전기 좀 빌려달라고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No”였다. 나는 그가 호스트인지도 몰랐다.

예상치 못한 일이 삶을 풍부하게 만들기도 한다. 처음엔 의류 브랜드를 론칭할 계획도 없었는데, 이제는 LVMH 파이널리스트다.
BA 모든 일이 자연스럽게 굴러왔지만, 동시에 우리가 쫓아가기 벅찰 만큼 빠르기도 했다. 하우스에 소속된 적이 없으니,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부딪히며 배웠다. 그 과정에서 주변 친구들의 도움이 컸다.
BB 지금은 실제로 누군가의 옷장 속에서 ‘살아가는 옷’을 만든다는 감각이 애틋하다.
두 사람은 어떻게 역할을 나누고, 아이디어를 주고받나.
BA 모든 일을 같이 한다. 굳이 나누자면 벤자민은 브랜드 바깥을, 나는 안쪽을 살핀다. 한집에 살고, 같이 일하기 때문에 아이디어는 늘 흘러넘친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면서 고함치듯 아이디어를 주고받기도 하고.
영감은 주로 어디서 받고, 작업은 어떻게 시작하나.
BB 옷을 입히고 싶은 캐릭터를 구상한 뒤 재료가 될 옷을 찾거나, 반대로 옷에서 캐릭터에 대한 영감을 얻을 때도 많다.
BA 영감은 예측 불가능한 순간에 여기저기서 툭 튀어나오지만, 음악과 영화의 지분이 확실히 크다.



‘다운타운 걸(Downtown Girl)’, ‘업타운 걸(Uptown Girl)’, ‘미스 프랑스(Miss France)’ 등 컬렉션마다 특정 캐릭터를 짐작하게 하는 이름이 있다.
BB 보통은 과장된 대표성을 그러모은 여성들이다. 그들이 추구하는 이미지, 열망하는 역할을 좇는 시도가 흥미롭다. 지난 컬렉션 ‘업타운 걸(Uptown Girl)’은 영화 <워킹걸>(1988)의 멜라니 그리피스가 맡은 캐릭터에서 출발했다. 일자리를 찾아 맨해튼으로 상경한 여자가 자신의 보스를 흉내 내는 모습이 인상 깊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 캐릭터는 옷을 갈아입지 않고 계속 겹쳐 입는다. 실제 자기 정체성과 갖고 싶은 정체성이 한 몸에 동시에 쌓인다.
그 캐릭터들은 낯익은 듯하면서도 딱 잘라 말하긴 애매하다. 관객이 컬렉션명을 처음 봤을 때도 각자 떠올리는 이미지가 다를 것이다. 여기서 많은 호응을 얻는 이유는 무엇일까.
BA 우리는 가지각색 레퍼런스를 섞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든다. 그 과정에서 원래 이미지와 의미가 흐려지기도 한다. 누구나 자신에게 모순적인 면이 있고, 딱 잘라 규정하기 어렵다는 걸 안다. 그래서 캐릭터가 극단적일 때조차 친근한 구석을 하나쯤 찾아내는 거 아닐까.


빈티지든 데드스톡이든, 일단 옷을 스튜디오로 들여오는 게 작업의 시작이다. 옷을 모아두는 기준이 있다면.
BB 우리는 ‘호더’다. 쌓아둔 게 너무 많아 이제는 덜어내야 할 지경이다.
BA 나는 스튜디오를 정리하며 쓰지 않을 옷은 내보내려 하는 편이다. 예를 들어 얼룩지고 낡은 탱크 톱. 그런데 벤자민은 그 옷을 보며 “너무 아름다워!”라고 말한다.
업사이클링 방식을 이어가고 있다. 그 매력은 무엇이고, 앞으로도 계속될까.
BA 옷에서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 자체에 푹 빠져 있다. 수년간 그냥 스쳐 지나던 아이템의 쓸모가 갑자기 눈에 들어올 때의 쾌감이란. 이 방식을 끝까지 파고들고 싶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모르지만,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우린 매 순간 짜릿한 일을 좇을 거라는 것. 늘 그래 왔듯이!


패션의 다음 혁명은 어디에서 올까. 짐작해보자면.
BA 정확히 예측하긴 어렵다. 하지만 당장 주변을 살펴보면 이미지가 넘쳐흐른다. 그 과잉이 오히려 사람들에게 옷과의 촉각적 관계, 그러니까 손끝으로 더듬고 등뼈에 스치는 관계로 되돌아가고 싶게 만들지 모른다.
LVMH 프라이즈가 끝난 뒤 당장 다음 챕터는.
BB 언제나 가능성을 열어두고 싶다. 아직 전례가 없지만 결국 만들어내고 싶은 시스템이 무수하다. 특히 데드스톡을 생산 공정에 활용하는 방식을 더 구체화하고, 확장하고 싶다. 창고를 거쳐 가는 옷이 워낙 많고, 그 속에 엄청난 가능성이 숨어 있다고 느낀다.
마지막 질문이다. 가장 유력한 우승 후보는 누구라고 생각하나.
BA 글쎄. 추리 영화를 볼 때도 범인 맞히는 실력이 영 엉터리라!


2025 LVMH 프라이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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