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켄스탁은 ‘신발’ 브랜드가 아니다

나의 첫 버켄스탁은 중학교 3학년 때 신은 ‘보스턴’이었다. 당시엔 버켄스탁을 학교 실내화로 신는 것이 유행이었고, 엄마에게 “슬리퍼를 사야 하니 카드를 달라”고 하고 10만원이 훌쩍 넘는 보스턴을 가져가 엄마와 아빠를 모두 놀라게 만들었다(혼났다). 그 후로 ‘마드리드’ ‘아리조나’ ‘취리히’ ‘토키오’ 등 다양한 모델을 전전했고, 종착지는 역시 보스턴이었다. 열여섯 살 때와 비교해보면 스타일은 많이 달라졌지만, 버켄스탁만큼은 이상할 정도로 질리지 않았다. 집 앞 편의점에 잠깐 나갈 때도, <보그> 사무실에서도, 파리 패션 위크에 갈 때도 버켄스탁에 자꾸만 손이 갔다. 그리고 버켄스탁 뮌헨 오피스를 찾았을 때는 ‘런던’을, 이 기사를 쓰고 있는 지금은 ‘교토’를 신고 있다.
오랫동안 버켄스탁을 신어왔지만, 독일의 버켄스탁 공장 두 곳과 본사를 방문하고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 버켄스탁은 ‘풋웨어’ 브랜드가 아니라는 거다. 버켄스탁의 CCO 요헨 구치(Jochen Gutzy)는 버켄스탁을 이렇게 정의했다. “우리는 ‘풋베드’를 중심으로 하는 브랜드입니다. 샌들이든, 클로그든 모든 것은 그저 풋베드를 실현하는 형태일 뿐입니다. 그래서 버켄스탁은 신발이지만, 단순히 신발로만 설명할 수 없는 브랜드입니다.” 디올, 마크 제이콥스, 마놀로 블라닉 등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면서도 ‘풋베드’만은 불가침의 영역이었다. 절대로 바꿀 수 없는 것, 버켄스탁 고유의 기반 말이다. “흥미롭게도 진짜 크리에이터일수록 그걸 도전이라고 받아들입니다. 하나의 캔버스처럼 여기는 거죠. 우리에게 협업은 제품을 다시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우리의 가치를 재해석하는 과정입니다.”
버켄스탁이 풋베드에 엄격한 이유는 간단하다. 가장 자연스러운 걸음과 발 건강을 위해 브랜드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칼 버켄스탁은 저서 <Foot Orthopedics>에서 이렇게 적었다. “맨발 걷기는 끊임없는 마사지와 같습니다. 교정과 치유 효과를 지닌 가장 자연스러운 풋 테라피입니다.” 이 철학이 바로 버켄스탁 풋베드의 출발점이다. 와인 코르크를 만들고 남은 재료를 활용한 코르크에 천연 라텍스를 접착제로 섞어 100°C에서 ‘굽는다’. 풋베드는 체중을 고르게 분산해 압박점을 제거하고 발의 세 아치를 정확히 지지해 올바른 자세를 유도하며, 충격을 흡수해 관절과 근육의 부담을 완화한다. 요약하면, 지면의 이점을 일상으로 가져온 셈이다. 그런 이유로 버켄스탁의 CEO 올리버 라이헤르트(Oliver Reichert)는 버켄스탁을 “맨발 다음으로 좋은 선택”이라고 덧붙였다.
사실 풋베드뿐 아니라 버켄스탁은 모든 분야에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한다. 협업할 때도 마케팅을 위한 이유가 전부가 아니다. 올리버 라이헤르트는 “1 더하기 1은 반드시 3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데, 그처럼 방향성이 일치하면서도 버켄스탁에 새로운 시각을 불어넣는 브랜드와의 협업만 진행한다. 생산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1980년대 이후 비용적인 이점을 이유로 신발 산업이 해외 생산으로 기울었을 때도, 버켄스탁은 수직 통합 제조(한 기업이 제품 생산의 여러 단계를 직접 소유하고 통제하는 방식)를 고집해왔다. 독일에 있는 직영 공장 여섯 곳에서 제품의 90% 이상을 조립하고, 나머지 역시 EU 내에서 제작한다. 물론 모든 풋베드는 독일에서 만든다. 공장 설비와 자동화 시스템도 자체적으로 설계하고 제작한 맞춤형 장비가 대부분일 정도다. 이렇게까지 ‘독일 생산’과 수직 통합 구조를 고수하는 이유는 전 생산 과정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해 일관된 품질을 보장하기 위함이다.
나는 패션계에서 버켄스탁의 지정학적 위치가 몹시 흥미롭다고 여겨왔다. 버켄스탁은 기능적이면서, 클래식이고, (케이트 모스가 버켄스탁 아리조나를 신고 촬영한 1990년 7월호 <The Face> 매거진의 화보에서처럼) 문화적인 의미 역시 지닌 아이템이다. 초창기엔 ‘아름답게 못생긴(Beautifully Ugly)’ 신발로 주목받았고, 지금은 마트나 쇼장에서 신어도 어색하지 않은 아주 보편적인 신발이 되었다. 도대체 무엇이 이 신발을 패셔너블하게 만드는 걸까? 어쩌면 패션에 전혀 집착하지 않는 태도가 패션이 그들을 원하게 만드는 것일지도 모른다. 올리버 라이헤르트의 답 역시 그랬다.
“패션은 본래 기능에서 비롯됐습니다. 유니폼, 직업, 사회적 지위처럼 실용성과 목적이 있었죠. 오늘날에도 진정성 있는 패션은 여전히 존재 이유를 가집니다. 버켄스탁의 풋베드는 단순한 스타일을 넘어서는 기능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 기능은 모든 패션의 기반이 되는 ‘보편성’에서 출발합니다. 우리는 세상 모든 사람을 고객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발을 위한 풋베드는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이니까요. 패션을 좋아하지 않아도 우리 제품은 변함없이 그 사람의 일상에 꼭 맞는 신발이 될 수 있습니다. 기능 그 자체로 설득력을 지니기 때문이죠. 그것이 바로 우리가 패션쇼의 런웨이 모델에게도, 퇴근길 택시 운전사에게도 모두 어울리는 브랜드가 될 수 있는 이유입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이렇게까지 오랜 시간 버켄스탁을 애정하는 데는 아주 단순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트렌드와 관계없이 예뻐서, 그리고 편해서다. 그 두 가지 이유, ‘예뻐서’와 ‘편해서’가 그들에겐 동의어인 셈이다. 그들은 기능, 품질, 전통이라는 가치 위에서 신발과 풋베드를 만들어왔고, 그 철학이야말로 버켄스탁을 멋지게 만드는 이유다. VK
- 디지털 디렉터
- 권민지
- 포토
- COURTESY OF BIRKENSTOCK
- SPONSORED BY
- BIRKENSTOCK
추천기사
-
워치&주얼리
에디터 푼미 페토와 함께한 불가리 홀리데이 기프트 쇼핑
2025.12.04by 이재은
-
여행
홍콩에서 만나는 모든 예술, 홍콩 슈퍼 마치
2025.03.14by 이정미
-
패션 아이템
매일 닳도록 들 검정 가방! 한 끗 차이로 결정됩니다
2025.12.11by 하솔휘, Julia Storm, Peter Bevan
-
셀러브리티 스타일
셀럽들의 겨울나기 모자, 장갑, 목도리! #패션인스타그램
2025.12.08by 하솔휘
-
푸드
불에 그을린 요리와 데킬라, 그 환상적인 페어링의 세계
2025.04.03by VOGUE
-
패션 아이템
치마보다 우아한 슬랙스! 안젤리나 졸리처럼 흐르거나, 딱 떨어지거나
2025.12.05by 하솔휘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