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의 시집
<보그> 교열자 정수완이 첫 시집을 출간했습니다.

영화 <패터슨>에서 버스 운전사인 주인공 ‘패터슨’은 쳇바퀴 같은 일상을 살아가는 와중에 꾸준히 시를 씁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예술이 되죠.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주인공의 일주일을 좇아간 끝에 관객인 우리가 깨닫는 것은 일상은 시가 되기에 충분하다는 것, 그러니 누구나 시인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수에서 태어나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신문사 교열부와 방송 작가를 거쳐 2013년 10월호부터 <보그>와 함께해온 교열자 정수완은 어릴 때부터 시를 읽고 쓰기를 즐겼습니다. 무엇이 되고자, 무엇을 이루고자 그런 것이 아니라 시를 쓰는 순간이 좋았고, 이채를 띠는 언어와 함께 그 순간에 머무는 것이 좋았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첫 시집 <미완의 시집-결별을 위한 랩소디>에는 치기 어린 20대부터 갱년기를 앓는 50대까지 그녀를 거쳐간 소소한 생각과 감정을 담은 시 71편이 실렸습니다. 2호선 지하철에서, 꿈속에서, 커피를 마시며, 두부를 보면서, 빗속에서, 생일날, 이른 봄을 느끼며, 파도를 바라보며 정수완은 매번 아름다운 문장을 떠올렸고, 그 순간은 시가 되어 남았습니다.
본문 11쪽 ‘결별을 위한 랩소디’ 中
엉킨 시간의 검불을 뒤지며
누군가 떠나고 있다
부적처럼 달려 있는
플라타너스
야윈 손들
하늑하늑
바람에 이울어지면
관 속의 널
못질하며
나는
사랑은 치기 어린 열정이라
새겨진 포스터를
가슴에 도배하고
눈앞 아찔한 유형(流刑)의 계단에 설 때
입안 가득 차오르는 슬픔을 마시며
우리의 아름다운 배반을 위하여
건배를.
첫 시로 수록한 ‘결별을 위한 랩소디’를 읽자마자 느낄 수 있듯 정수완의 시는 모두의 일상에 어렵지 않게 스며듭니다. “짝사랑하듯 시를 흠모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시를 공부하는 건 어쩐지 맞지 않다고 여겼습니다. 그런 생각에 묻혀 있으니 시는 더 나아지지 않아 ‘미완성’인 채로 시집을 내게 됐습니다. 미완성작이라도 나름의 의미는 있지 않을까, 민망함을 눌러봅니다.” 기분 좋은 바람이 책장 넘어가는 소리에 추진력을 더하는 요즘, 정수완의 시로 일상에 소박한 낭만을 더해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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