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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계절을 맞이하는, 낭만적인 4권

2025.09.01

책의 계절을 맞이하는, 낭만적인 4권

@_rachaelreads

<오춘실의 사계절> – 김효선(낮은산)

자유수영 프로그램의 ‘자유’라는 말에 엄마는 매료되었다. (…) 진짜 다 마음대로 하면 되는 거냐고 재차 물었다. “맘대로 하셔.” “그럼 내 세상이네?” “오춘실의 세상이네.” “내 세상이야!”

새로 나온 책을 구경하다가 흥미로운 표지가 눈에 들어와 펼쳐 보니, 낯익은 얼굴이 수줍게 웃고 있었다. 초보 영업자로 서점을 드나들던 시절, 아무리 책을 읽어도 소개는 늘 서툴렀다. 한참을 더듬다 결국 “못하겠다”며 편집자가 쓴 보도 자료를 그냥 읽어달라 능청을 부린 적도 여러 번. 그럴 때마다 효선 씨는 별말 없이 표지 속 그 표정처럼 잔잔히 웃으며 다음 말을 기다려주곤 했다. 어쩐지 그 기억이 아직도 선하다. 사적으로 가까워질 기회는 없었지만, 3년 넘게 한국문학 신간을 소개하러 갈 때마다 효선 씨를 만났다. 이렇게 책을 통해 다시 소식을 들으니 매우 반가웠다. 아는 사람의 에세이를 읽는 일은 묘하다. 괜히 속속들이 알게 되는 것 같아 불편해지기도 하고, 막연한 호감이 선명한 우정으로 바뀌기도 한다. 이 책은 분명 후자다. 이야기는 청소 노동자로 일하다 척추 부상으로 갑작스럽게 퇴직한 환경미화원 춘실과 적응 장애 진단을 받고 술에 기대어 잠들던 서점 편집자 효선이 함께 수영을 다니며 서로를 다시 알아가고, 몸과 마음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평생 악착같이 살아온 엄마가 인생의 끝자락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며 또 다른 사람이 되어가는 순간, 결코 가볍지 않은 삶 속에서도 소소한 행복을 가뿐하게 찾아내어 단단히 붙잡아내는 춘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대견해하며 기록으로 남긴 딸 효선의 이야기. 이 책을 좋아하지 않을 이유를 나는 도무지 찾지 못했다. 지상에서는 무겁고 감추고만 싶던 통통하고 둥근 몸이 물속에서는 오히려 더 잘 뜨듯, 책을 읽는 동안 버겁던 나의 마음도 효선, 춘실과 함께 가뿐히 물 위에 떠오르는 듯했다.

<자몽살구클럽> – 한로로(어센틱)

한로로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마 그녀가 쓰는 가사를 좋아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어떻게 이런 문장을, 이런 노랫말을 쓸 수 있을까 궁금해 찾아보면 역시 국문과 출신에 작가가 꿈이었다는 설명이 눈에 띈다. 그리고 이번엔 드디어 앨범 발매와 함께 소설을 펴냈다. 손바닥만 한 작은 판형의 <자몽살구클럽>.

<자몽살구클럽>은 죽고 싶지만 살고 싶은 네 명의 고등학생이 만든 비밀 클럽 이야기다. 가족조차 멀게만 느껴지고 세상에 혼자 버려진 듯한 아이들이 서로를 붙잡으며 “살아보자”고 다짐한다. 아이들의 에피소드는 우리의 성장기 어딘가와 맞닿아 있고, 누구나 한 번쯤 겪었을 외로움과 절망, 그럼에도 누군가와 함께여서 견뎌낼 수 있었던 기적 같은 시간을 떠올린다. 전에 없던 특별한 이야기라고 할 순 없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고 응원하고 싶어진다.

소설은 그녀의 음악과도 닮았다. 조금은 슬프지만, 그 안에 늦여름 햇살 같은 따스함이 깃든 것. 단순하고 평범한 말로 쓰여 있지만 한로로 특유의 사랑스럽고 담담한 말투가 반영된 것이 그렇다. 어떤 이야기는 누가 쓰느냐에 따라 더 큰 힘을 갖는 것 같다. 음악으로 위로를 전해온 한로로가 쓴 소설이기에 만들어내는 시너지와 울림이 있다. 좋은 음악을 하는 아티스트가 위로를 건네는 소설을 쓰는 판타지를, 결국 현실로 만들어낸 그녀의 여정을 더 크게 응원하고 싶다.

<죽은 자들은 말한다> – 필리프 복소 지음/최정수 옮김(민음사)

이 책은 죽음을 수사하는 직업인 법의학자 필리프 복소의 치열한 업무 일지이자, 대중에게 법의학 지식을 전하는 탁월한 논픽션이다. ‘CSI’ 시리즈의 긴장감과 다큐멘터리의 사실성을 절묘하게 옮겨놓은 듯하다. 벨기에 법의학자 필리프 복소는 30년 넘게 시신 앞에 서서 마지막 흔적을 읽어온 사람이다. 자살과 타살을 가르는 미세한 단서, 장례식 도중 살아 돌아온 딸의 사건, 아내를 돼지의 먹이로 삼은 남편과 곤충학으로 밝혀낸 사망 시각까지. 그가 기록한 현실은 범죄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때로는 잔혹하다. 하지만 법의학자의 임무는 단순히 ‘왜 죽었는가’를 밝히는 데 있지 않다. 진정한 과제는 ‘무엇이 죽음의 진실임을 입증하는가’를 귀납적으로 추적하는 일이다. 복소는 성급한 추론이 곧 진실을 놓치는 길임을 강조하며, 독자에게 범죄 현장의 생생한 기록과 함께 법의학의 기본 원리를 전한다. 동시에 죽음을 대하는 그의 태도에서 과학적인 냉정함과 인간적인 예의가 어떻게 공존할 수 있는지도 드러난다. 작은 출판사에서 출간되어 오직 입소문만으로 프랑스 논픽션 분야 1위를 차지한 이 책은 스릴과 지적 호기심, 직업윤리,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에 가독성까지 잡은 육각형 논픽션이다.

<오늘부터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 김키미(휴머니스트)

추천하고 싶은 책이 많다는 것과 책 추천 글을 마감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마감이 다가오면 나는 괜히 더 많이 자거나, 미뤄둔 청소를 시작하거나, 성인 ADHD 관련 영상에 빠져들곤 한다. 그러고 나면 그런 나 자신이 한심해 보여 더 심하게 다그쳐가며 꾸역꾸역 일을 해낸다. 혼내지 말아야지 하다가도 혼내지 않으면 더 한심한 어른이 될까 봐 결국 스스로를 더 몰아붙인다.

김키미의 <오늘부터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는 바로 나 같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라며 늘 자책하는 완벽주의자에게 저자는 작은 실천, 곧 ‘칭찬일기’를 권한다. 저자 역시 대기업 마케터이자 작가로 겉보기엔 성공한 사람처럼 보였지만, 내면에서는 불안과 자기혐오에 시달렸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 하고 쉰 나, 칭찬해!”라는 소박한 시도에서부터 삶이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물론 아직도 ‘칭찬보다는 혼나야 그래도 뭔가 하는 거 아닐까’라는 불안이 남아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장점은 무조건적인 위로나 추상적인 긍정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매뉴얼처럼 ‘칭찬의 루틴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보여준다는 점이다. 책 속의 칭찬일기는 단순히 자기 위안에 머물지 않고, 일상에서 나를 돌보는 습관이 되며, 타인과의 관계를 건강하게 바꾸고, 더 나아가 사회적 실천으로 확장된다. 무엇보다 저자가 직접 써 내려간 경험담과 실제 ‘칭찬 문장’이 담겨 있어, ‘칭찬일기’는 그저 멋진 말이 아니라 누구나 따라 할 수 있는 생활 습관처럼 다가온다.

“올해도 망했구나…”라는 말 대신, 작은 칭찬 하나로 버티고 나아가는 하반기였으면 한다. (이렇게 <오늘부터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책을 추천한 나 자신도 크게 칭찬하며.)

@danaboulos

민음사 조아란 부장이 추천하는 9월의 책

김효선 <오춘실의 사계절>
한로로 <자몽살구클럽>
필리프 복소 <죽은 자들은 말한다>
김키미 <오늘부터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 필리프 복소 저/최정수 역 죽은 자들은 말한다

    (2025,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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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키미오늘부터 나를 칭찬하기로 했다

    (2025, 휴머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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