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티 트렌드

새로운 텍스처, 남다른 포뮬러, 감촉 좋은 새로운 뷰티 트렌드

2025.09.04

새로운 텍스처, 남다른 포뮬러, 감촉 좋은 새로운 뷰티 트렌드

거품으로 하는 팩, 찰떡 질감의 클렌저, 낫토 실을 닮은 에센스 등 피부는 물론 눈으로도 화장품을 바르는 시대가 왔다. 촉 좋은 브랜드가 선사하는 새로운 감각의 향연, 제형 이야기.

(왼손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안드로니코(Ahndronico), 몽담(Mondam), 오에이알(OAR), 셀뮤트(Cellmute). (오른손 위에서부터 순서대로) 1064 스튜디오(1064 Studio), 셀뮤트, 몽담.

클렌징과 팩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비누, C 세안팩은 한때 화장품 연구원들 사이에 뜨거운 감자였다. ‘세정하며 케어한다’는 기획은 흔한 것이지만 막상 사용해보니 제형의 새로움이 범상치 않았던 것이다. 고체 비누에 물을 묻혀 문지르면 끈적한 점액질 거품이 일어나는데 그 형태가 생알로에를 갓 잘라 뽑아낸 진액 같았다. 쭉 늘어나는 점액이 촉촉하게 롤링되는 신기한 사용감은 금세 입소문이 났고, 타 브랜드는 즉시 전 성분표 해부에 돌입했다. 당시 분석을 의뢰받은 연구원들이 혼란에 빠졌던 이유는 리스트 어디에서도 점증제를 찾을 수 없었기 때문. 화학 성분 없이 단순한 성분의 시너지만으로 점액 포뮬러를 연출해내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한참을 고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 비밀이 밝혀졌을 땐 다소 허탈했다. “일종의 트릭이었어요. 가끔 여러 성분을 복합체로 묶어 하나의 이름으로 표기하는데, C 세안팩 역시 이런 방식으로 점증제를 감춰두었던 것이죠.” 나에게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준 연구원은 이것이 요즘 뷰티 시장 트렌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설명했다. 7인치 미만 화면의 숏폼 영상으로 전 세계 화장품을 대리 경험하는 시대에는 어쩔 수 없이 시각적으로 특이한 텍스처를 갈구하게 된다. 그리고 구매욕을 자극하는 새로움은 즉시 벤치마킹의 타깃이 돼버린다. 신묘한 제형의 비밀이 흔한 점증제였다는 사실은 실망스럽지만, 레시피를 숨겨 ‘듀프’, 즉 모방을 수비해야 했던 절박함에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텍스처는 곧 텍스트

화장품은 물과 기름으로 만든 화학물이다. 물과 기름의 비율, 섞는 방식, 더하는 성분의 변주에 따라 보이는 형상과 만져지는 질감이 달라지는데 우리는 이것을 포뮬러, 제형 또는 텍스처라고 부른다. ‘부드럽다’ ‘시원하다’ ‘흡수가 빠르다’ ‘탄력이 생긴 것 같다’ 등 화장품이 피부에 처음 닿는 순간부터 펴 발라 흡수된 후 느끼게 되는 모든 감각이 여기 속한다. 포뮬러는 화장품 개발자가 소비자에게 건네는 언어와도 같다. 아모레퍼시픽 R&I 센터 최소웅 책임 연구원은 모든 텍스처에는 의도가 담긴다고 말한다. 따라서 잘 설계된 제형은 유효 성분이 효과를 발휘하기 전, 바르는 즉시 제품의 엔드 베네핏을 감각하게 해준다. 예를 들어 탄력 크림을 발랐더니 쫀쫀하게 땅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든지, 지성용 수분 크림의 청량한 질감 덕분에 ‘기름지지 않을 것 같다’고 안심하게 되는 것은 연구원의 의도가 전달된 결과다. 텍스처가 곧 텍스트라면 시대에 따라 소통의 톤 앤 매너 역시 달라지는 것이 인지상정. 요즘 우리를 사로잡는 화법은 자극적인 축약어다. 화장품의 기승전결을 숏폼 콘텐츠로 전달할 수 있는 시대에는 빨리 알아차리기 쉬운, 직관적이고 유니크한 제형이 구매의 킥이 될 테니까.

아렌시아의 떡솝 클렌저는 찰진 텍스처 하나로 출시하자마자 솔드 아웃을 기록했다. 이 클렌저의 바이럴 영상은 어시
(Earthy) 컬러 앞치마를 두른 여성이 아담한 절구에 ‘1,000번 치대 만든 클렌저’를 찧고 있는 모습으로 시작된다. 진짜 떡메를 치는 것처럼 찰진 포뮬러가 쭉쭉 딸려 올라올 때마다 구매욕이 샘솟는다. 원래 떡이라는 음식은 빻은 곡식을 주원료로 하니 평소 꺼리던 스크럽 알갱이가 보여도 그러려니 하는 너그러움까지 생긴다. 케이크 레시피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휩드 팩클렌저 시리즈 역시 보는 재미가 있다. 500회 이상 저어 만들었다는 미세 휘핑 텍스처를 블렌더로 휘젓다가 케이크 장식용 파이핑 백을 이용해 옮겨 담는 모습은 홈 베이킹 과정을 연상시킨다. 입술과 혀가 기억하는 휘핑크림의 폭신하고 부드러운 촉감, 녹아내릴 듯한 스윗함이 그대로 구현된 듯한 착시에 지갑이 절로 열린다.

카테고리를 넘나드는 텍스처 아이디어로 존재감을 알린 브랜드도 있다. 메노킨의 30초 퀵 버블 마스크는 ‘거품은 곧 세안’이라는 클리셰를 깼다. 메노킨의 이보경 대표는 워킹 맘인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쉽고 빠른 팩의 형태를 고민하다 ‘거품 마스크’를 탄생시키게 됐다고 설명한다. “시트 마스크를 붙이고 기다리는 20분조차 벅찰 때가 있잖아요.” 그래서 거품으로 에센스를 피부에 머물게 하는 방법을 고안했다. “각기 다른 유효 성분의 버블을 몇 번이고 덧발라 효능을 빌드 업 하는 사용법 또한 에센스 거품이라는 특허 제형을 사용했기에 가능했습니다.”

믹순 콩 에센스 역시 실처럼 쭉쭉 늘어나는 낫토 텍스처로 아마존 스킨케어 카테고리 상위 랭커에 등극했다. 믹순 황주업 대표는 “발효의 특성을 즉시 알아차리게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발효 콩 원료가 피부에 이롭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것을 눈에 보이는 포뮬러로 선보일 수 있다면 완전히 새로운 장이 열릴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점증제를 사용하면 쉽고 빠르게 만들 수 있었지만 그건 발효 컨셉이지 진짜 발효 텍스처가 아니었기에 오랜 시간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습니다.” 좌충우돌 끝에 찾은 황금 레시피는 콩, 보리, 석류, 배즙의 조합. “이것들을 고주파 저온 추출법으로 72시간 발효했을 때 유효 활성도가 가장 안정적으로 유지되더라고요. 인공 점증제나 사용감을 위한 첨가물 없이, 발효 원료 자체로 점도를 잡아낸 유일무이한 제품이라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요.” 신기한 것에 반응하는 것은 만국 공통! 콩 에센스는 전 세계 틱톡커들의 타임라인을 점령했고 ‘K-글라스 스킨’ 키워드를 선점할 수 있었다.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

사실 텍스처 자체는 화장품의 효능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그래서 과거에는 유효 성분을 안정적으로 담아 피부에 전달할 수 있을 정도면 무난히 합격점을 받았다. 하지만 트렌드가 달라지자 커트라인이 높아졌다. 화장품 연구소 JOD랩의 김민경 소장은 요즘 “무조건 새롭고 신기한 것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자주 받는다. “순한 화장품이 대세일 때는 텍스처를 이루는 성분을 최소한으로 가져가며 피부에 부담을 주지 않아야 환영받았어요. 하지만 몇 년 전부터 선호도가 변하더군요.” 그래서 불필요한 데커레이션인 것을 알면서도 양념을 첨가해 ‘달라 보이는’ 텍스처를 제안하게 됐다. “화장품 제형은 이미 너무 다양하고, 한정된 재료로 세상에 없던 제형을 창작해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그래서 기존 제형을 다른 형태로 바르게 하거나 스킨케어 제형을 메이크업 제품이나 클렌저에 적용하는 등의 아이디어를 활용하죠.”

새로움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수십 년 전 과거로 눈을 돌리기도 한다. 그 결과, 시트 마스크에 밀려 고사했던 필 오프 래핑 마스크가 ‘꿀광 글로우’로 부활했고, 저자극 추구 시대에는 외면받았던 알갱이 스크럽이 다시 바이럴되기 시작했다. 엄마 세대가 쓰던 참존 콘트롤 마사지 크림을 20대 인플루언서가 리뷰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한다. 한때는 미네랄 오일이 들어 있는 화장품을 쓰면 세상이 끝날 것처럼 두려워하더니 지금은 유백색 크림이 투명하게 변하는 것에 그저 신기해하고, 문질러 마사지하면 밀려 나오는 ‘때 밀림’에 희열을 느낀다. VT 코스메틱 리들샷이 쏘아 올린 스피큘 열풍 역시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10여 년 전부터 에스테틱에서 사용되었지만 특유의 자극적인 느낌 때문에 대중화되지 못했던 컨셉을 ‘극강의 피부 소생술’로 소환했다. 모든 것은 타이밍,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을 수도 있는 것이 화장품이다.

레거시의 감

‘프리(Free)’를 외치던 클린 뷰티, ‘느좋’ 이미지에 집중하는 무드 플레이 트렌드, 바르는 재미를 추구하는 텍스처 마케팅 시대에 이르기까지, 유행이 변해도 한결같이 유효 성분을 최우선으로 주창하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프레스티지 & 럭셔리 브랜드다. 대표적인 K-뷰티 레거시, 설화수와 더후는 전 세계가 흥미진진한 트랜스포밍 텍스처에 시선을 빼앗기고 있는 지금도 진세노믹스, NAD+와 같은 에이징 케어 성분을 최우선 어젠다로 제안하고 있다. 혹시 그들에게 포뮬러는 후순위인 걸까? 절대 그렇지 않다. 력셔리 뷰티 브랜드에 ‘완벽한’ 제형은 디폴트다. 당연해서 이야기하지 않을 뿐이다. 특히 고가의 스킨케어를 구입하는 고객일수록 포뮬러에 거는 기대가 크기 때문에 누구보다 기민하게 감각의 촉을 세우고 있어야만 한다. 설화수 자음생 캡슐 세럼은 독특한 포뮬러 설계로 업계에 끊임없이 회자되는 제품이다. 최소웅 책임 연구원은 ‘글로벌 고객이 선호하는 가벼운 세럼 형태이되, 사용 후에는 크림에 맞먹는 보습과 탄력감을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크림 같은 세럼이라니, 뜨거운 아이스 아메리카노 같은 미션을 어떻게 클리어했을까? “에멀션 크림을 캡슐화해서 투명한 세럼에 분산시키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물론 과정이 순탄치 않았어요. 크림 캡슐을 일정한 크기로 만들어 세럼 속에 고르게 퍼뜨려놓는 작업이 만만치 않았거든요. 안정화까지 꼬박 2년을 투자했죠.” 그 결과 바를 땐 라이트하지만 사용 후에는 탱탱한 보습감이 피부를 꽉 채우는 제품이 탄생했다. 자연히 듀프의 타깃이 됐지만 전통적인 듯 새롭고, 낯선 듯 익숙한 이 세럼의 화법은 여간해서는 흉내 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대부분의 레거시 브랜드는 자신만의 전통적인 제형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OEM, ODM 업체에서 이미 만들어놓은 성분이나 텍스처를 제안받기보다, 유산과도 같은 성분을 뾰족하게 갈고닦은 뒤 이것을 안정적으로 증폭시켜줄 맞춤 텍스처를 개발한다. 상상 이상으로 길고 지난한 과정을 거쳐야 하지만 그렇게 탄생한 제형은 인간의 지문처럼 고유하다. 이렇게 탄생시킨 포뮬러는 개보수도 쉽지 않다. 연구원들은 “긴 시간 사랑받아온 베스트셀러를 리뉴얼하는 것이 오히려 더 까다롭다”고 입을 모은다. 럭셔리 브랜드의 고객은 자신이 충성심을 보였던 제품이 아주 약간만 변해도 금세 알아차리고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트렌드와 원료는 계속 변화하는데 기존 텍스처를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업그레이드된 새로움을 증명하라니! 어려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더후의 얼굴과도 같은 제품, 비첩 자생 에센스는 아는 맛을 더 맛있게 만들기 위해 네 번의 리뉴얼을 거쳤고 그중 3세대부터는 ‘포스트잇 제형’을 적용했다. 더후 문정혁 책임 연구원은 이 특허 포뮬러가 스킨케어 첫 단계에 사용하는 에센스를 위해 특수하게 개발됐다고 설명한다. “에이징 케어를 위한 탄력감은 유지하면서 동시에 깔끔하게 흡수돼야 했어요. 그래서 쫀쫀하게 늘어나는 폴리머 분자 사이에 보습 성분을 침투시키는 방법을 고안했죠.” 그 결과 처음에는 피부에 달라붙듯 밀착됐다가 펴 바른 후엔 산뜻하게 흡수되는 사용감이 완성됐다.

고가 중의 고가, 럭셔리 브랜드의 하이엔드 라인 제품은 어떨까? 설화수 진설크림 리치의 기획자 최효선은 텍스처를 인간관계에 비유한다. “사람을 만나다 보면 첫 만남부터 확 끌리는 경우도 있고, 처음엔 평범했지만 사귈수록 신뢰가 깊어지는 사이도 있잖아요? 화장품도 마찬가지예요.” 제품을 기획하기에 앞서 이 텍스처로 고객과 어떤 관계를 맺고 싶은지 결정해야 한다는 것. “강렬한 첫인상으로 확 끌어당길 건지, 아니면 잔잔하게 다가가 천천히 신뢰를 쌓아갈 건지 선택하는 거죠.” 진설크림 리치는 처음부터 끝까지 포르티시모로 직진하는 캐릭터! 처음 피부에 닿는 순간 영양감을 꾹꾹 눌러 담은 농축된 제형이 ‘쫩’ 달라붙듯 발리며 최고가 크림의 효능감을 쏟아낸다. 진짜 압권은 롤링할수록 살아나는 윤기와 오랫동안 유지되는 윤택한 인상! 애착을 넘어 집착에 빠지기에 충분한, 돈값 하는 감각이다.

화장품은 과학으로 출발해 사회 문화적인 맥락에서 유통되고 원초적인 감성을 건드리며 생활 속에 안착한다. 그래서 모든 뷰티 브랜드는 시대에 맞는 공감의 화법을 배우기 위해 촉을 세우고, 애정을 가득 담아 인간의 오감을 연구한다. 그렇게 내린 결론이 화장품에 담겨 우리에게 건네지는 것이다. 텍스처는 곧 텍스트, 그들의 이야기가 들린다면 대화에 동참하라. K-뷰티는 브랜드와 소비자가 함께 발전시켜온 특수한 시장! 당신의 감각이 내일의 더 좋은 텍스처를 만들 테니 잔소리 가득한 피드백도 대환영이다. VK

    컨트리뷰팅 에디터
    백지수
    포토그래퍼
    박재용
    핸드 모델
    김소영
    네일
    최지숙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