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자 리포트’, 먼저 인터뷰에 나서는 사람을 조심하라

경험상, 먼저 인터뷰를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에게는 대개 ‘꿍꿍이’가 있었다. 불가피한 사정이 있거나 정의로운 계획이 있는 경우라면 모르겠지만, 솔직히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은 편이다. 인터뷰란 본질적으로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질문과 답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다. 어떤 형태로든 얻는 것 없이 인터뷰에 나서는 인터뷰이는 없다. 인터뷰어 또한 아무런 명분 없이 인터뷰에 나서지 않는다. 그가 유명하거나 그가 던지는 메시지의 파급력이 클 때, 인터뷰를 고민하기 마련이다.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는 그처럼 서로의 ‘니즈’를 충족시켜야 하고, 세상에 나오는 모든 인터뷰는 그런 거래의 균형을 바탕으로 성립된다. 연쇄살인범과의 인터뷰를 다룬 영화 <살인자 리포트> 역시 이 위험한 거래에서 시작한다.

인터뷰를 먼저 제안한 것은 자신이 11명을 살해했다고 주장하는 이영훈(정성일)이다. 평범한 기자라면 터무니없는 허언으로 치부하거나 곧장 경찰에 알렸을 것이다. 하지만 인터뷰를 제안받은 기자 백선주(조여정)는 특종에 목말라 있다. 그가 진짜 연쇄살인범이라면 전대미문의 단독 보도가 될 것이고, 경찰과 협력한다면 그를 검거해 또 다른 피해자를 구할 수도 있다. 선주는 연인이자 강력계 형사인 한상우(김태한)와 작전을 세워 이 인터뷰에 뛰어든다. 그런데 이런 명분은 ‘기자’ 입장에서만 유효하다. 그녀는 아직 연쇄살인범이 굳이 인터뷰를 자청한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다. 다시 말해, 그는 이 인터뷰를 통해 무엇을 얻으려는 것일까. 아무것도 얻으려 하지 않는다면 단순히 범죄를 과시하려는 사이코패스일까, 아니면 속죄의 무대가 필요한 것일까. <살인자 리포트>는 바로 그 이유를 ‘떡밥’으로 던지고 관객을 끌고 간다.


인터뷰 무대는 한 호텔의 스위트룸이다. 러닝타임 내내 두 사람은 방을 거의 벗어나지 않지만, 밀폐된 공간은 오히려 긴장감을 극대화한다. 정체와 목적이 불분명한 캐릭터와 단둘이 있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는 진짜 연쇄살인범일까. 그렇다면 왜 살인을 저질렀을까. 그리고 왜 하필 선주에게 인터뷰를 제안했을까. 질문과 답이 오가는 동안 살인범은 선주의 멘탈을 흔든다. 이 인터뷰에서 확실히 밝혀지는 것은 그가 진짜 연쇄살인범이고, 이 호텔방 안에서도 언제든 사람을 죽일 수 있을 만큼 살인을 주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선주는 두려움에 인터뷰를 중단하려 하지만, 살인범은 또 다른 미끼를 던진다. 지금 인터뷰를 멈추면 오늘 밤 또 한 명이 살해될 것이라는 경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팽팽한 기싸움의 긴장감을 유지하는 것은 전적으로 조여정과 정성일, 두 배우의 힘이다. 조여정은 두려움과 특종을 향한 집착을 동시에 드러내며 복합적인 연기를 펼치고, 정성일은 끝내 읽히지 않는 인물의 ‘불가해성’을 밀도 있게 구현한다. 여기에 잠복 중인 형사의 시점이 더해지면서 서스펜스는 한층 증폭된다.


살해 동기는 초반부에 드러난다. 그는 정신과 의사로서 환자들을 병들게 한 ‘가해자’를 제거하는 방식으로 치료를 시도했다고 말한다. 그의 살인은 환자를 위한 대리 복수이자, 자신이 이루지 못한 복수의 공허감을 채우는 행위다. ‘사적 복수’는 수많은 스릴러에서 반복된 전형적인 동기다. 관객은 그의 행위가 결코 도덕적 정당성을 가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결국 그의 범죄에 동조할 수밖에 없다. <살인자 리포트>가 노리는 효과도 다르지 않다. 그런 ‘치료’를 시도하게 된 살인범과 그가 치료한 환자들의 사연은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야기이며, 그래서 관객이 더 크게 공감할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한다. 그런데 영화는 살인의 목적에 이어 ‘인터뷰의 이유’를 더 큰 미스터리로 던져놓는다. 그는 왜 하필 선주에게 인터뷰를 제안했는가. 그가 오늘 밤 노리는 대상은 선주일까, 그녀의 딸일까, 혹은 또 다른 인물일까. 의심이 다시 꼬리를 물 때쯤 영화는 반전 카드를 꺼내 든다. 엄청난 충격의 반전은 아니다. 게다가 모든 미스터리가 ‘그가 설계한 큰 그림’이었다는 설명으로 귀결되면서 힘이 빠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인터뷰라는 설정을 밀어붙인 이 영화에는 적절한 반전으로 보인다. 먼저 인터뷰에 나서는 사람은 조심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유는 들어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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