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랩을 하다 보면 이 장르로부터 내가 구원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 크리피 너츠

2025.09.15

“랩을 하다 보면 이 장르로부터 내가 구원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 크리피 너츠

새 앨범 〈LEGION〉 발표 후 아시아 투어를 앞둔 크리피 너츠. 예스24 라이브홀에서 투어의 포문을 열 그들을 〈보그〉가 먼저 도쿄에서 만났다.

DJ 마츠나가가 입은 셔츠와 팬츠는 슈타인(Ssstein). R-시테이가 입은 셔츠는 칠드런 오브 더 디스코댄스(Children of the Discordance).

J-팝의 위상이 공고하다. 아니, 오히려 거세지기만 한다. 세계를 점령하는 동시에, 한국에선 이미 수많은 J-팝 아티스트가 공연을 하고 돌아갔다. 크리피 너츠(Creepy Nuts)는 이 거대한 물결 속에서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팀이다. ‘아니메’와 ‘댄스 챌린지’를 등에 업고 정상에 등극한 이들의 음악은 현재 스포티파이에서 매월 700만 명이 청취 중이다. 하지만 크리피 너츠는 누구보다 음악적으로 단단한 팀이기도 하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곱슬머리가 시그니처인 래퍼 R-시테이(R-Shitei)는 랩 배틀 대회에서 전국을 제패한 챔피언 출신이고, 예리한 눈매를 지닌 DJ 마츠나가(DJ Matsunaga)는 DJ 세계 대회(DMC World DJ Championships 2019) 우승자다. 실제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80여 분 동안 이들에게서 느낀 것은 차트 정상의 그룹이 풍기는 성공의 냄새가 아니라, 고도의 직업 정신으로 가득한 예술가의 진지함이었다. “앞으로도 쉬지 않고 단련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크리피 너츠의 비트와 랩이 한계를 모르고 계속 진화하는 이유다.

크리피 너츠에 호응하는 이들이 점점 많아진다. 인기 비결이 뭘까?

R-시테이 사실 잘 모르겠다.(웃음) 음악 시장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하는지 여전히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어떤 것이 음악 시장에서 통할지 상상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사실 포기하고 있다. 그냥 성실하게 한 걸음 한 걸음 창작 활동을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 않을까 싶다.

지난해에 한국에서 두 번이나 공연했는데 둘 다 페스티벌이었다. 일본에서 공연할 때와 다른 느낌을 받았나?

R-시테이 두 번 다 우리가 받은 인상은 비슷했다. 한국 관객은 힙합이든 댄스든 모든 장르에 온몸으로 반응해준다. 정말로 몸을 흔들면서 춤을 같이 추는 분도 많았고 노래를 같이 불러주는 분도 많았다. 그 광경을 보면서 매우 기뻤다.

기억에 남는 특정 팬이 있었나?

R-시테이 공연할 때 직접 본 건 아니고 나중에 관객이 올려준 공연 영상을 보고 발견한 것이 있다. 우리가 라이브 하는 동안에 관객석 후방에서 우리를 보지도 않고 본인들이 아티스트인 것처럼 노래를 부르면서 그들끼리 즐기는 관객이었는데 서클 활동을 보는 것 같았다. 애드리브를 하거나 추임새를 넣으면서 우리한테서 등을 돌리고 클럽에 온 것처럼 즐기는 한국인들이 꽤 기억난다.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창작의 영감을 많이 받을 것 같다. 좋아하는 한국 작품이 있나?

R-시테이 한국 공포 영화를 좋아한다. <파묘>도 좋았고, 포스터에 귀신이 서 있는 <옥수역귀신>, 그리고 <사바하>도 재미있게 봤다.

한국 공포 영화를 좋아한다니 흥미롭다. 그렇다면 좋아하는 한국 아티스트는?

R-시테이 한국 아티스트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주변 래퍼 한 명이 한국 아티스트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그와 정보를 공유하는 편이다. 비와이나 저스디스 등도 그에게 소개받아 음악을 듣게 됐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07년이었나? 10대 시절에 MC 스나이퍼의 ‘Better Than Yesterday’를 정말 많이 들었다. 뮤직비디오도 많이 봤다. 1990년대 일본 힙합곡 중에 지브라(Zeebra)가 참여한 램프 아이(Lamp Eye)의 ‘證言(증언)’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래퍼들이 전통적인 방식으로 순서대로 랩 하는) ‘클래식 마이크 릴레이’라는 점에서 두 곡이 닮았기 때문에 더 즐겨 들었던 것 같다.

지난해에 요요기 국립 경기장에서 크리피 너츠의 콘서트를 관람했다. 놀라운 경험이었다. 게스트도 없이 둘이 2시간을 가득 채웠다. 지루할 틈도 없었고 실수도 없었다. 이런 퍼포먼스는 어떻게 가능한가? ‘수많은 연습’ 외에 무엇이 이런 완벽한 무대를 가능하게 하나?

R-시테이 고맙다. 하지만 우리는 완벽한 라이브를 한 적이 없다. 우리는 완벽함을 추구하지 않는다. 날마다 그날의 공기, 음악이 들리는 방식 등 울림 같은 것이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매번 조금씩 다른 라이브를 하고 있다. 오히려 우리 생각에는 K-팝 아티스트들이 완벽함이라는 개념에 더 가까운 것 같다. 정말 연습을 열심히 해서 완벽한 퍼포먼스를 선보이기 위해 노력하는 장르니까.

DJ 마츠나가 우리는 일상에서 있을 수 있는 인간적인 흔들림이나 어긋남 같은 것도 소중하게 여기면서 라이브에 임한다. 그렇기 때문에 준비해서 완벽하게 보여준다기보다는 그날의 100%를 우리가 다 발현할 수 있으면 좋겠다. 공연마다 플로우가 조금 바뀌거나 박자를 타는 것이 조금씩 달라진다. 이런 것을 즐기는 것도 우리의 스타일이다.

크리피 너츠를 보며 늘 흥미롭게 여기는 게 있다. 두 멤버는 각자의 분야에서 실력으로 톱을 찍은 이들이다. R-시테이는 랩 배틀 대회에서 전국을 제패했고, DJ 마츠나가는 DJ 세계 대회에서 우승했다. 그런 두 명이 팀을 만들었는데 흥행도 톱을 찍었다. 보통은 최강의 실력자들이 팀을 결성해도 ‘그러니까 차트에서도 1위를 할 거야’라고 장담할 순 없지 않나?

R-시테이 우리도 이런 상업적인 성공을 거둘 거라고는 생각 못했다. 그냥 우리 스타일대로 음악을 만들어왔기 때문에 이 정도의 성공은 계획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우리는 상업적인 부분을 염두에 두지 않고 곡 작업을 계속한다. 앞으로도 이런 성공이 계속될 거라는 확신은 없다. 성공을 위한 방법론도 잘 모른다.

DJ 마츠나가 하지만 비트를 만드는 우리의 솜씨, 랩을 하는 기술은 계속 진화한다. 우리가 그동안 축적해온 것과 진화된 새로운 부분이 함께 어우러지며 뭔가가 계속 발명되고 있다는 느낌이 있다. 젊은 층에서 선호하는 힙합이라는 장르는 새로움을 계속 반영해야 하는 음악이다. 발전이 지체되면 금방 밀려날 수도 있는 장르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부분을 꽤 잘해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열심히 해나가고, 그 과정이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진다면, 굉장한 행운이 아닐까.

이미 말했듯 DJ 마츠나가는 디제이 배틀 대회에서 우승한 경력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턴테이블리즘은 사실 대중성이나 상업적 방향성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분야다. 크리피 너츠의 사운드와 비트를 만들면서 디제이로서, 그리고 턴테이블리즘에서 배운 것을 응용한 부분이 있다면?

DJ 마츠나가 맞다. 턴테이블리즘은 마니악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디제잉 연습을 시작할 때 그런 부분을 고려해본 적은 없다. 그냥 나는 내 기술을 발전시키기 위해 열심히 디제잉을 해왔는데, 나중에 보니 디제잉 분야를 이렇게까지 철저하게 연습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른 악기에 비해 디제잉은 어지간히 잘하지 않으면 “저는 디제잉을 합니다”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기 어려운 분야 같기도 하다. 자부심을 느끼기 위해서는 계속 쉬지 않고 단련할 수밖에 없다. ‘ビリケン(빌리켄)’은 내가 만든 노래 중에 ‘디제이적인’ 발상이 더 가미된 곡이다. 두 번째 버스(Verse)에서 비트가 대담하게 전개된다. 일반적인 트랙 메이커로서는 이런 전개를 만들기 힘들다고 보는데, 내가 턴테이블리즘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런 곡을 만들 수 있었다.

오래전부터 힙합과 랩이 지닌 ‘힘’에 관심이 많다. 예를 들어, 랩이라는 형식에는 어떤 힘이 있기에 말로는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랩으로는 다 할 수가 있다고 래퍼들은 말하는 걸까. 또 힙합의 문화적 코드의 핵심은 최대한 진솔하게 자기를 드러내는 데 있다. 어찌 보면 힙합은 약점이나 열등감도 그대로 드러내 사람들의 지지를 받아온 음악이다. 그리고 크리피 너츠의 음악은 그 정확한 예라고 본다.

R-시테이 약점이나 콤플렉스는 사회적으로 보면 마이너스 요소다. 그런데 그것들을 음에 담고 라임에 맞춰서 랩으로 표현하면 플러스로 변해가는 걸 느낄 수 있다. 이런 과정이 힙합에서 느낄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요소다. 나에게도 약점이 있고, 콤플렉스가 있고, 남과 비교할 때 부족한 부분이 많다. 그런데 그렇기 때문에 랩을 하다 보면 이 장르로부터 내가 구원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랩을 하는 행위 자체가 ‘치유(테라피)’라고도 여긴다. 물론 ‘내가 넘버원이다’ ‘내가 이 세계의 왕이다’라고 말하는 랩도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는 너무 약한 인간이다’ ‘나는 부족한 인간이다’라고 랩으로 말할 수도 있다. 약하고 부족하지만, 자기애를 가지고 내가 최고라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이 랩의 희망적인 면모가 아닐까. 최근 들어 노래도 유명해졌고 공연에도 많은 관객이 오지만 나는 근본적으로 ‘나는 왜 이렇게 부족하지, 내가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이 자연스럽게 가사로 드러난다. 앞으로도 나의 이런 ‘약함’을 ‘강함’으로 바꿔나가는 작업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지난 2월에 발표한 새 앨범 <LEGION>에 대해서도 소개해달라.

R-시테이 <LEGION>은 방금 이야기한 ‘내 안의 약함’도 물론 담았지만 나의 강함, 자랑스러움, 오만함 등도 동시에 담은 작품이다. 래퍼로서 다양한 자아를 표현했고, 다양한 랩 스킬도 담겨 있다. 더불어 DJ 마츠나가가 얼마나 발전하고 진화했는지도 느낄 수 있는 앨범이다. 지금의 크리피 너츠에 대해 가장 잘 알 수 있는 작품이다. 정말 자신 있게 내놓은 앨범이다.

마지막으로 아시아 투어의 일환으로 10월 18일과 19일, 예스24 라이브홀에서 펼쳐지는 한국 공연에 대해서는 어떤 기대를 갖고 있나?

R-시테이 새 앨범 <LEGION>을 가지고 아시아 투어에 나서게 된다. 사실 한국 공연 준비와 관련해서 지금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아무래도 한국어다.(웃음) 어떤 한국어를 준비해야 할지, 한국어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준비해야 할 것 같다! VK

J ISSUE

한국과 일본이 수교 60주년을 맞았다. 가깝고도 먼 우리지만 대중문화에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생해왔다. 〈보그〉가 주목한 동시대 일본 문화 예술인들이 간극을 더 좁혀가리라 믿는다. 배우 안도 사쿠라, 영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배우 히다카 유키토, 종합 격투기 선수 미우라 코타, 뮤지션 크리피 너츠, 소설가 무라타 사야카,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 패션 디자이너 이와이 료타가 K에 보내는 J 컬처.

피처 에디터
류가영
포토그래퍼
고원태
컨트리뷰팅 패션 에디터
김봉법
김봉현(힙합 저널리스트)
스타일리스트
Yuji Yasumoto
헤어 & 메이크업
Yoko Fujii
프로덕션
Tomoko Ogaw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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