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터테인먼트

‘얼굴’ – 지워진 얼굴과 묻혀버린 진실, 연상호가 그린 처절한 비극

2025.09.15

‘얼굴’ – 지워진 얼굴과 묻혀버린 진실, 연상호가 그린 처절한 비극

*이 글에는 영화 <얼굴>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영화 ‘얼굴’ 스틸 컷.

주인공의 외모는 하나의 서사가 된다. 아름다운 주인공은 아름다움 때문에 희로애락을 겪는다. 반대로 못생긴 주인공이 마주하는 건 대부분 비극이다. 물론 못생긴 주인공이 ‘아름답게 변해’ 해피엔딩을 맞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데 그런 주인공은 대부분 실제로 못생긴 게 아니라 단지 그렇게 보였을 뿐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다. ‘진짜 못생겨서’ 세상으로부터 멸시당한 주인공이 끝내 행복을 거머쥐는 이야기는 드물다. 소설가 박민규의 2009년 작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가 보여준 것도 바로 그 불편한 진실이었다. 1980년대를 배경으로 외모가 자본주의 사회의 가장 손쉬운 숭배이자 혐오의 대상이 되는 과정을 그린 소설에서 주인공은 “남자를 얼어붙게 할 만큼” 못생긴 얼굴을 가진 여자로 묘사된다. 그리고 그녀는 사는 동안 받아온 멸시와 혐오를 이겨내지 못해 진심으로 다가온 사랑 앞에서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연상호 감독의 신작 <얼굴>은 같은 소재를 정반대의 방향에서 비춘다. 이 작품에서 여자는 도망치지 않는다. 세상이 그녀의 진심과 진실을 끝까지 묵살하면서 그녀를 비극에 묻어버린다.

영화 ‘얼굴’ 스틸 컷.

<얼굴>의 주인공은 시각장애를 딛고 전각(篆刻) 장인이 된 남자 임영규(권해효)와 그의 아들 임동환(박정민)이다. 세상은 임영규를 기적이라 부르며 칭송한다. 장애를 극복했을 뿐 아니라, 아내가 집을 떠난 뒤 홀로 아들을 키운 사연이 ‘드라마’로 소비되기 때문이다. 어느 날 아들 임동환은 경찰로부터 충격적인 전화를 받는다. 어머니 정영희의 시신이 발견됐다는 소식이다. 40년 만에 나타난 어머니의 백골 사체 앞에서 의문을 품게 된 아들은 그때부터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다닌다. 1970년대 피복 공장에서 어머니와 함께 일했던 동료, 어머니를 가족으로 대하지도 않는 형제 등에게서 나온 이야기는 모두 아들의 가슴을 찌른다. 못생겨서 괴물로 불렸던 어머니는 언제나 천대받던 여자였다.

영화 ‘얼굴’ 스틸 컷.
영화 ‘얼굴’ 스틸 컷.

영화의 첫 대사는 인상적이다. “앞을 볼 수 없는 사람도 아름다운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시각장애를 가진 임영규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그 자체로 아름답게 들린다. 누구든 아름다움을 인식할 수 있다는 뜻인 동시에 아름다움을 눈으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이 대사는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한 남자의 변명으로 변질된다. 임영규는 자신에게 다가온 정영희의 얼굴을 아름답게 상상했고, 주변에서도 그녀를 ‘절세미인’처럼 소개하자 그렇게 믿어버린다. 하지만 세상의 솔직한 시선을 마주하게 되자, 그는 자신의 상처와 그녀의 얼굴을 겹쳐놓는다. 그녀를 통해 장애인으로서 겪어온 멸시에서 벗어난 줄 알았는데, ‘못생긴’ 그녀가 자신을 더 큰 조롱과 혐오의 대상으로 만들었다는 착각이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연상호 감독은 2018년에 펴낸 동명의 그래픽노블에서 이 순간을 더욱 끔찍한 이미지로 묘사했다. 세상의 비웃음을 알게 된 순간, 임영규는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녀의 얼굴에서 촉수가 기어 나오는 환영을 떠올린다. 그 장면에서 그는 확신했을 것이다. 앞을 볼 수 없어도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하지만 그것은 자기기만에 지나지 않는다.

영화 ‘얼굴’ 스틸 컷.

<돼지의 왕>(2011), <사이비>(2013) 등 연상호의 과거 애니메이션을 좋아한 관객이라면, <얼굴>에서 익숙한 감각을 발견할 것이다. 웹툰을 원작으로 한 <지옥>(2021)과 <계시록>(2025)까지 포함해 그는 늘 ‘굳게 믿어온 세계의 붕괴’를 다뤄왔다. 다만 종교라는 틀을 활용했던 전작들과 달리, <얼굴>은 인간의 가장 본능적인 욕망을 전면에 내세운다. 아름다워지고 싶고 세상이 자신을 아름답게 봐주었으면 하는 바람, 그리고 그만큼 아름답지 않은 것을 혐오하는 마음. <얼굴>의 비극 또한 그런 본능이 만들어온 세계가 스스로 무너지면서 시작된다. 못생긴 주인공은 흔히 비극을 겪기 마련이지만, <얼굴>에서 세상은 그녀의 얼굴과 진실마저 함께 파묻어버린다. 그만큼 가혹하고 처절한 이야기다.

사진
영화 '얼굴' 스틸 컷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