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느끼는 압박을 즐긴다” – 요시다 유니
이름은 몰라도 그녀의 디자인과 사진은 한 번쯤 본 적 있을 것이다. 정교한 수작업으로 낯선 판타지를 완성하는 요시다 유니가 기묘한 세계로 우리를 초대한다.

요시다 유니(Yoshida Yuni)는 최근 일본 도넛 브랜드 아임도넛 뉴욕점과 타이완점의 비주얼 작업을 하느라 분주했다. 최근 성수동에서도 아임도넛 팝업 스토어가 열렸다. 도넛을 창의적으로 활용한 요시다 유니의 비주얼과 굿즈는 새 브랜드에 대한 기대감을 증폭시켰고, 노트와 키홀더, 곰돌이, 꽃, 우주의 이미지를 옷과 결합한 작품이 소장 욕구를 자극했다. 지난해에는 한층 진지한 작업을 완수했다. 서울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상연한 황정민 주연의 연극 <맥베스> 포스터 비주얼 작업이었다. <맥베스>는 황정민의 소속사 샘컴퍼니에서 제작했는데, 소속사 대표 김미혜가 2014년 노다 히데키가 연출한 연극 <반신>에 쓰인 요시다 유니의 비주얼 작업을 긴 시간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비로소 협업을 제안한 것이다. 당시 요시다 유니는 직접 한국을 방문하진 않았기에 한국에서 추억을 만들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일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2023년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전시를 기점으로 본격적으로 드나들기 시작했다고 회상한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감각적인 비주얼로 아임도넛의 해외 진출에 일조한 요시다 유니가 다시 한번 서울에서 포착됐다. 또 다른 흥미로운 협업을 준비 중이지만 아직 자세히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라고 설명한 요시다 유니가 이해해달라는 듯 수줍게 웃었다.
일본을 넘어 전 세계를 무대로 활약하는 아트 디렉터다. 그럼에도 아직 당신을 잘 모르는 이들에게 당신의 작업을 소개한다면?
기본적으로는 광고처럼 의뢰받아서 하는 작업을 위주로 한다. 수작업을 기반으로 한 아날로그 작업이 많다는 것이 특징이다. 분명 실제로 존재하는 현실의 세계인데 가상현실이나 환상처럼 느껴지는 작업을 추구한다.

누군가 당신의 대표작을 묻는다면?
과일로 작업한 모자이크 시리즈. 내 이름은 몰라도 그 작업을 아는 사람은 많을 것이다. 이미지 5개를 만들었는데 한국에서도 많이 알려졌다. 평소 과일 같은 자연물을 즐겨 활용하는데, 색이나 모양이 전부 세상에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사과 한 알만 하더라도 똑같은 것은 없지 않나. 금세 변색되고 부식된다는 점도 오히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겉보기엔 같은 색처럼 보였지만 과일을 잘라 모자이크처럼 연결하자 온갖 색채의 미묘한 차이가 돋보였다. 또 시간의 변화에 따라 색이 계속 달라지는데 그런 점도 드러내고 싶었다.
한국에서도 최근 많은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무엇이었나? 또 한국과 일본에서 작업할 때 느껴지는 차이가 있다면?
연극 <맥베스> 작업을 꼽고 싶다. 맥베스의 상징적인 검과 왕관을 모티브로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 버전의 두 가지 포스터를 만들었다. 이야기에서 아주 중요한 맥베스 부인의 활약상이 잘 드러나는 동시에 그녀의 색다른 면모를 암시하길 바랐다. 그렇게 탄생한 작업물이 2024년 세계 3대 광고제 클리오 어워즈(Clio Awards)의 키아트 부문에서 수상했을 때 성취감을 많이 느꼈다. 한국에서의 첫 프로젝트라 정말 긴장했지만, 비주얼을 완성하기까지 한 달밖에 주어지지 않아 오히려 집중력 있게 작업했다. 황정민 배우의 수많은 필모그래피를 인상 깊게 본 입장에서 더더욱 참여하고 싶었는데 그런 마음 덕분에 좋은 결과를 낸 것 같다. 이어지는 질문에 답하자면, 일본에서 일할 때는 계획을 세우고 진중하게 접근하고 시간을 많이 들이는 편인데, 한국에서는 일할 때 스피드와 열정, 활기가 느껴져서 좋다. 워낙 신중하게 작업하는 편이라 처음엔 한국의 속도감에 놀랐지만, 그래서 좋은 결과가 나올 때도 많다.
한국과 관련해서 가장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독특한 지형과 전통문화, 최신 문화의 공존이 매력적이다. 서울 풍경만 봐도 알 수 있다. 현대적인 건물 바로 옆에 고궁이 보이고, 산과 도심이 어우러진 경관도 재미있고 즐겁다. 일본은 의외로 평지가 많고, 도쿄에는 산이 없어서 더 흥미롭게 느껴진다. 한국에 관한 것 중 직접적으로 영향을 받은 것은 없지만 예전부터 한국 영화를 많이 봐왔기에 무의식중에 받은 영향이 분명 있을 것이다. 한국어는 못해도 영화 대사를 대충 알아듣는 정도다. 특히 <신세계> 같은 누아르 장르가 좋다. 시사회에 초대받으면 흔쾌히 응하는 편이고, 혼자 영화 보러 가는 것도 좋아한다.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하고, 포토샵을 쓰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런 작업 방식을 고수하는 이유는?
그래픽 툴을 절대 쓰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툴의 도움을 받지 않으니 더 대단하다고 과시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내가 수작업을 좋아하고, 수작업으로 뭔가를 완성하는 데 희열을 크게 느낀다. 손수 제작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이 즐겁다. 어릴 때부터 손이 빠른 편이었다. 부모님이 자동차나 완구를 사주지 않으면 똑같이 만들곤 했다. 전자오락기까지 스티로폼으로 똑같이 만들어버린 적도 있다. 그 안에 들어갈 카세트테이프도 만들고, 슈퍼 마리오 캐릭터도 만들어 붙였다. 또한 핸드메이드로 인해 작품에 온도가 생긴다는 믿음이 있다. 작품에서 따뜻함이 느껴지지 않나?

꽃과 과일, 음식을 작품에 자주 활용한다. 지극히 일상적인 것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최근 발견한 새로운 소재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모든 영감은 늘 일상에서 온다. 예를 들면 이 테이블 무늬가 무엇처럼 보이는지 돌아보고, 그런 별거 아닌 작은 것에도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숨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세상에 특별히 새로운 소재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다. 만약 있다면? 비밀로 하겠다.(웃음)
전시와 인스타그램을 통해 당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결과만 포착한 사진이기 때문에 수작업의 묘미를 온전히 느낄 수 없어 아쉽다.
사진의 한계를 알고 있다. 관람객이 수작업의 묘미를 100% 알 수 없는 건 아쉽지만, 그 결실과도 같은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특히 내 작업을 볼 때마다 느낌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
일본 대표 디자인 회사인 오누키 디자인과 우주 컨트리에서 일하다가 독립했다. 회사 생활을 하며 얻은 교훈이 있나?
어시스턴트로 시작해 정말 많은 것을 배웠다. 학교에서는 아이디어를 발전시켜서 나만의 결과물을 만드는 것에 만족했다면, 회사에서는 그 결과물을 어떤 식으로 보여줄 것인지, 어떻게 주어진 컨셉과 타깃을 만족시킬지 배움을 얻을 수 있었다.
상업광고와 개인 작업을 할 때 다르게 접근하나?
둘 다 ‘소통’을 목적으로 하며 과정 역시 동일하다. 그동안 6개의 개인 작업을 선보였는데 최근 전시를 염두에 두고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했다. 소통은 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다. 나는 예술적 이상을 추구하거나, 자기만족을 극대화하기 위해 작업을 하지 않는다. 그보다 타인이 내 작품을 어떻게 감상하는지에 더 관심이 있다. 그리고 각자의 감상을 가지고 또 다른 누군가와 소통을 시도하고 새로운 영감을 발견하는 과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서울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때는 어느 간호사의 이야기를 듣고 기쁨을 느꼈다. 내가 디자인한 유니클로의 미키 마우스 티셔츠를 입은 환자를 보며 그 그림에 관해 모두가 즐겁게 대화를 나눴다는 일화였는데 당시 그녀는 내가 누군지 몰랐지만 그 일이 계기가 되어 내 전시까지 보러 온 것이었다. 병원이라는 다소 침울한 공간에서 내가 만든 이미지를 보고 사람들이 즐겁게 얘기를 나눴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작업할 때 크고 작은 ‘제약’을 즐긴다는 게 흥미로웠다. 좀 더 자세히 설명해준다면?
제약이 있는 상황에서 느끼는 압박을 즐긴다.(웃음) 세상이 본 적 없는 새로운 이미지라든가 클라이언트는 물론 스스로도 만족하는 비주얼을 창조하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려운 일인데, 그 불가능한 목표를 향해 달려나가는 상황이 오히려 즐겁게 느껴진다. 내가 스트레스에 강한 타입일까? 그런 제약과 맞닥뜨렸을 때 생각지 못한 힘과 능력이 분출된다.
어린이의 상상력을 북돋울 수 있는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엔 혼자 놀기의 달인이었다. 그런 나와 달리 혼자서는 도대체 어떻게 놀아야 할지 모르는 아이들을 위해 일상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다양한 아이디어를 선물하고 싶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는데 자원봉사의 일환으로 유치원에 가서 함께 놀거나, 언젠가는 아이들을 초대해 멋진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은 마음도 있다. 내 작품은 늘 대중에게 작은 즐거움을 주기 위해 존재한다.
다음 목적지는 어디인가?
장기적인 계획은 없다. 지금 눈앞에 놓인 일을 하면서 좀 더 큰 세계를 목표로 다채로운 해외 작업에 도전할 계획이다.
일본과 한국을 넘어 해외로 프로젝트의 범위를 넓히고 싶다는 포부를 여러 번 밝혔다. 해외 진출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
예술가로서 더 많은 사람이 작품을 봐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 지난 서울 전시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작품을 통해 뭔가를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크게 와닿았다. 남녀노소 즐겁게 전시 작품을 감상하는 광경을 바라보며, 언어가 달라도 나의 창의성을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전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드는 순간이었다. 언어와 국적 등에 상관없이 앞으로도 더 많은 사람과 직관적으로 느끼고 소통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당신처럼 창조적인 사람이 되고 싶은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을까?
자신에게 잘 맞는 스타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작품의 오리지널리티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창조하기 위해 크고 작은 아이디어를 내는 과정을 스스로 즐겁게 느끼는지 잘 판단해야 한다. 주변 영향을 거둬내고 스스로 어떤 타입인지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에 다니는 것이 적성에 더 맞는 사람도 있다. 팀으로 일하는 것이 적합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혼자 작업할 때 능률이 더 오르는 사람도 있다. 나에게 꼭 맞는 환경을 찾으면 모든 면에서 일은 훨씬 수월해질 것이다. 반대로 결코 타협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도 돌아보는 게 좋다. 나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을 파악해서 최대한 멀리하는 것이다. 스스로를 탐구하는 과정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만 창의적인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이라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라 확신한다. VK
J ISSUE
한국과 일본이 수교 60주년을 맞았다. 가깝고도 먼 우리지만 대중문화에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생해왔다. 〈보그〉가 주목한 동시대 일본 문화 예술인들이 간극을 더 좁혀가리라 믿는다. 배우 안도 사쿠라, 영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배우 히다카 유키토, 종합 격투기 선수 미우라 코타, 뮤지션 크리피 너츠, 소설가 무라타 사야카,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 패션 디자이너 이와이 료타가 K에 보내는 J 컬처.
관련기사
-
인터뷰
“사람이 옷에 묻히는 것을 원치 않아요” – 이와이 료타
2025.09.15by 류가영
-
인터뷰
“랩을 하다 보면 이 장르로부터 내가 구원받았다는 느낌을 받는다” – 크리피 너츠
2025.09.15by 류가영
-
인터뷰
“한 가지만 파고드는 것을 칭송하는 시대는 이제 갔어요” – 미우라 코타
2025.09.15by 류가영
-
인터뷰
“‘이 장면 안에 있고 싶다’는 마음 때문에 그 작품에 끌리죠” – 안도 사쿠라
2025.09.15by 김나랑
-
인터뷰
“‘내 잘못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지킨다” – 하마구치 류스케
2025.09.15by 류가영
-
인터뷰
“스스로 세상을 녹화하는 카메라라고 여깁니다”- 무라타 사야카
2025.09.15by 류가영
-
인터뷰
“‘해피엔드’ 주인공들처럼 인간관계를 자주 생각해요”- 히다카 유키토
2025.09.15by 김나랑
추천기사
-
패션 아이템
올겨울 가장 쉽게 우아해지는 법, 청바지 대신 '레깅스' 입어보세요
2025.12.10by 김현유, Melisa Vargas
-
패션 뉴스
브루넬로 쿠치넬리의 온화한 삶, 로마의 영화적인 밤
2025.12.10by 권민지
-
뷰티 트렌드
샴푸 샌드위치? 뉴욕에서 건너온 새로운 헤어 케어 트렌드!
2025.12.04by 김주혜, Jeanne Ballion
-
패션 아이템
요즘은 또각또각 구두보다 부츠를 신죠
2025.12.12by 하솔휘, Melisa Vargas
-
엔터테인먼트
날아오는 주먹을 끝까지 응시하는 사람들의 세계, ‘아이 엠 복서’
2025.12.04by 이숙명
-
패션 뉴스
샤넬 2027 크루즈 컬렉션, 비아리츠로 향한다
2025.12.11by 오기쁨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