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해피엔드’ 주인공들처럼 인간관계를 자주 생각해요”- 히다카 유키토

2025.09.15

“‘해피엔드’ 주인공들처럼 인간관계를 자주 생각해요”- 히다카 유키토

육상 선수에서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활동하는 모델로, 이제 영화 <해피엔드>를 통해 배우로 영역을 넓혀가는 히다카 유키토의 청춘.

레더 베이스볼 셔츠와 데님 버뮤다 팬츠, 핑크 컬러 슈즈, 레오파드 벨트, 체인 네크리스, 브레이슬릿은 루이 비통(Louis Vuitton).

오늘 아침 히다카 유키토(Hidaka Yukito)는 10km를 달렸다. 육상 선수 출신인 그에게 러닝은 오랜 취미이자 습관이다. 38℃를 웃도는 도쿄의 날씨는 큰 문제가 아닌가 보다. 러닝 후 <보그 코리아>와 만나기 위해 지하철을 타고 시부야로 왔다.

온몸이 땀에 젖어 있었다. “지하철 타고 다니기 불편하지 않아요? (너무 덥기도 하고.)” ‘손풍기’를 건네며 스태프들이 물었다. “전혀요. 모델 활동을 하다 연기를 시작한 모든 과정이 갑작스럽게 이뤄졌어요. 그 속도와 달리 일상은 여전한걸요. 아직 저를 모르는 분도 많고요.(웃음)” 이 대답을 한국말로 한다. 히다카 유키토는 서울에서 지낸 3개월간 한국어를 독학했고, 이후 모델 활동을 위해 한국을 오가면서 어휘력을 길렀다. “처음엔 단어로만 대화했죠. 지금은 매일 한국어로 일기를 쓰려고 해요. 언젠가 네이티브처럼 한국어와 영어를 구사하고 싶어요.”

셔츠와 타이는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히다카 유키토는 네오 소라 감독의 영화 <해피엔드>로 데뷔했다. 이 ‘작은 영화’는 한국에서 ‘N차 관람’ 열풍을 일으키며 관객 13만 명이 들었다. 지진에 대한 공포와 이를 권력에 이용하는 기성세대, 태생에 따른 차별, 친구 관계에서의 미묘한 긴장감이 등장한다. 이 영화가 한국의 젊은 세대에게 통한 이유는 우리 역시 여력을 벗어난 난제(사회, 경제 등)로 늘 불안 속에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극 중 재일 한국인 코우와 달리, 히다카는 일본에서 나고 자랐다. 할머니가 한국과 대만 혼혈이지만 직접 뵌 적은 없다. “해외 활동을 한다면 제 뿌리 중 하나인 한국이었으면 했어요. 2023년 10월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면서 모델 일을 시작했죠.” 이후 <해피엔드>를 만났고, 감독을 포함한 배우들은 2024년 9월 베니스국제영화제에서 프리미어 개봉한 후 10여 개월간 마라케시, 베니스, 서울 등의 홍보 일정에 올랐다. “그야말로 벅차고 압도적인 나날이었어요.” 그는 이 작품이 인생을 바꿨다고 말했다. “모두가 협업해 하나의 창작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아름다워요. 촬영하며 인간관계를 어떻게 진심으로 맺는지도 배웠어요. 작품에서 만난 분들 모두 ‘친구로’ 좋아해요. 배우로서 마음가짐뿐 아니라 일상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식마저 전부 달라졌죠.” 이제 필모그래피를 시작하는 격변의 청춘에게 변하지 않는 하나는 달리기 정도다.

슬리브리스 톱과 팬츠, 네크리스는 발렌시아가(Balenciaga).

거의 매일 5~10km 달리기는 기본이라고요.

뛰고 나면 마음이 정리돼요. 스트레스를 받아도 일단 몸부터 움직여야 해소되고요. 하루 종일 가만히 있으면 근질근질해서 못 견딜걸요. 육상을 오래 해서 그런가 봐요.

중학교 때부터 대학교 1학년 때까지 육상 선수였는데, 어떻게 모델로 전향했나요?

육상을 할 때 동경하는 선수가 있었어요. 그처럼 멋지고 누군가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육상으로 열정을 이어가기 어렵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배우나 모델이 떠올랐어요. 제가 주목받는 것도, 패션도 좋아하거든요!

블랙 컬러 니트 터틀넥과 팬츠, 옷걸이에 걸린 티셔츠는 발렌티노(Valentino), 블랙 슈즈는 셀린느(Celine), 스웨이드 로퍼는 구찌(Gucci).

네오 소라 감독과 본인의 데뷔작 <해피엔드> 덕분에 한국인에겐 모델보다 배우로 익숙해요.

작품에 들어갈 땐 최선을 다하지만 일상에서는 배우라는 자각이 뚜렷하지 않아요. 실감 나지 않는달까요. 소속사와 선배님들께서 촬영뿐 아니라 평소에 어떤 태도로 지내야 하는지 조언해주셔서 배우는 중이에요.

영화 촬영하면서 “모델로서 익숙한 방식 대신 현장에 녹아들려 했다”고 말했어요.

모델은 카메라가 자신을 비출 때 모아둔 에너지를 분출하지만, 배우는 화면에 등장하지 않을 때도 그 장면에 있어야 해요. 모델 일을 할 때는 없던 신기한 감각이었어요. 물론 두 분야 모두 매력이 있죠.

더블 브레스트 재킷, 셔츠, 타이, 레더 팬츠, 부츠는 생 로랑 바이 안토니 바카렐로(Saint Laurent by Anthony Vaccarello), 뒤에 놓인 라피아 백은 셀린느(Celine).

<해피엔드>를 준비하면서 일상에서도 코우로 살았군요.

나의 감정 서랍에서 코우와 공통되는 것을 하나씩 꺼내봤어요. 예를 들어 제가 고등학교 때 도쿄로 가서 새로운 길을 가야 했던 순간, 육상을 그만두고 모델을 하겠다고 인생의 큰 결정을 한 순간··· 그때의 감정이 서랍에 있는데요, 코우라면 어떤 마음일까 상상했죠. 내가 코우처럼 재일 한국인이라면 어떨까 대입하기보단, 그걸 다른 상황과 감정으로 바꿔 가늠해보는 거죠. 그 과정 덕분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코우를 연기할 수 있었어요.

코우에게 가장 이입된 순간은요?

엄마와 둘이 걷는 장면이요. 엄마는 자식을 위해 하시는 말씀이지만, 코우는 그 마음을 알면서도 자신이 틀리지 않았다고 여기기에 쉽게 내려놓을 수 없는··· 그 감정의 저울을 재는 코우가 제 학창 시절과 닮았어요. 사춘기에 여러모로 걱정을 끼쳐드렸거든요.

그린 컬러 복서 쇼츠는 몽클레르×에이셉 라키(Moncler×A$ap Rocky), 네크리스는 셀린느(Celine).

이 부분을 어머니께 얘기해봤어요?

그보다는 오늘 촬영장에서 있었던 일, 현장에 있던 카메라와 사람 수까지 부모님과 일일이 공유했어요. 모든 게 처음이라 신기해서.(웃음)

육상을 그만두고 모델이 된다고 할 때 부모님께서 놀라지 않으셨어요?

제가 하고 싶으면 행동에 옮기고 이뤄내는 성격이라 믿어주신 것 같아요. “유키토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열심히 해봐”라고 응원하셨죠. 한번은 아버지께서 실패하면 어쩔 거냐고 물으시기에 “실패 안 할게요!”라고 받아쳤어요. 나중에 들어보니 초기엔 식사도 못하실 정도로 걱정하셨더라고요. 그 때문에라도 더 열심히 해야 해요.

레더 소재 풀오버와 팬츠, 가방, 벨트는 에르메스(Hermès).

<해피엔드>가 삶을 바꿨다고 말했어요. 특히 모두 힘을 하나로 모아서 영화를 만드는 것에 감화했다고요.

네오 소라 감독님이 7년간 써 내려간 이야기를 우리에게 맡긴다니 감동이었어요. 만약 내가 7년간 품어온 뭔가를 타인에게 맡긴다면 어떨까, 그럴 수 있을까··· 극 중 친구로 나오는 주연배우 5명 모두 열정을 갖고 진심으로 작품에 임했어요. 나중엔 진짜 친구가 돼버렸죠. 배우뿐 아니라 모든 스태프가 ‘우리가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가고 있다’는 감각이 무척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많은 분이 사랑해주시지 않았을까 싶고요.

육상 선수는 코치가 있더라도 결국 달릴 때는 혼자잖아요. 반면 영화는 그야말로 협업의 매체니 새로운 경험이었을 거예요.

그런 부분도 있죠. 또 하나, 저는 예술가에 대한 동경이 커요. 화가나 사진가, 음악가 다 멋지잖아요. 저도 그림, 사진 작업을 해보는데 꾸준히 창작하기 어렵더라고요. 네오 소라 감독님처럼 오래 매진한 분들이 대단하고 놀라워요. 특히 <해피엔드>는 정치 사회적인 메시지도 전하는데 감동까지 있잖아요. 언젠가는 그런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어요.

블랙 니트 터틀넥은 발렌티노(Valentino), 데님 쇼츠는 디올 맨(Dior Men).

주로 뭘 그리거나 사진을 찍나요?

그때그때 다르지만, 사진은 주변 요소만으로 한 장에 하나의 세계가 완성된 느낌이 좋아요. 예를 들어 같은 색이 반복되는 건 일상에서 가끔 보는 풍경이잖아요. 하지만 사진 프레임에 담기면 하나의 완성된 세계로 보여요. 도로의 컬러 콘, 자판기, 빌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서 의외로 재미있는 발견을 해요. 그 부분을 담아내고 싶은데 쉽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일단 엄청 많이 찍어요.(웃음) 하지만 지금은 연기에 집중하고 있어요.

연기 수업을 받나요?

이전에는 연기 학원에 다녔지만 이제는 현장에서 촬영을 통해 배우는 부분이 큰 것 같아요. 일상에서 느끼는 작은 감정 하나도 메모를 해요. 그렇게 나를 마주하고, 객관화하고, 세분화해야 어떤 역할이 오더라도 서랍에서 비슷한 감정을 꺼낼 수 있거든요. 또 여러 작품을 보면서 ‘이 배우는 어떤 점에 주목해 연기했을까?’ 관찰해요.

블랙 니트 터틀넥은 발렌티노(Valentino).

<여인의 향기>(1993), <올드보이>(2003), <지상의 밤>(1991)을 인생 영화로 꼽았는데 본인이 태어나기 전에 촬영된 작품이군요. 일부러라도 영화를 많이 볼 텐데 리스트 업은 어떻게 해요?

<올드보이>는 소속사 매니저님이 추천해주셔서 봤어요. 굉장했어요! 종종 주변 배우들에게 “당신의 베스트 3는 뭐예요?”라고 물어봐요. 옛날 영화라도 바로 찾아볼 수 있는 시대이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그들의 영화를 약간 ‘훔치는’ 느낌이라 미안하지만요.(웃음)

그렇게 본 작품 중에 이런 역할은 나도 해보고 싶다?

다 멋진 작품이라 출연하고 싶죠. 실제 상상도 해보고요. 하지만 그 작품에 나온 배우를 따라 할 순 없을 거예요. 그 사람만의 연기니까요. 저는 저만의 것이 있고요.

<해피엔드>가 지진 공포를 주요 소재로 가져오잖아요. 이 영화가 왜 한국 젊은이들에게 가닿았을 까 생각해보면, 우리도 막연한 불안감이 있거든요. 내 손에서 벗어난 사회, 경제 문제로 일상에서도 여진을 느끼죠. 지금 히다카에게 가장 큰 불안은 뭔가요?

현실의 저도 <해피엔드>의 주인공들처럼 인간관계를 자주 생각해요. 최근 삶에서 큰 변화가 있기도 했고, 불안할 수밖에 없는 나이 같아요. 하지만 그것에 휩싸이거나 미래를 너무 걱정하지 않으려 해요. 눈앞의 것을 차근차근 밟아나가려고요.

그중 하나가 촬영 중인 일본 드라마 <우리들은 아직 그 별의 교칙을 모른다>겠군요.

드라마는 촬영 시간이 부족한 만큼 빠르게 몰입해서 나와 마주해야 한다는 점에서 영화와는 또 다른 매력이에요.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라 제 커리어에 또 다른 전환점이 되지 않을까 해요.

2025년이 가기 전에 이루고 싶은 일은?

혼자서 훌쩍 여행을 다녀왔어요. 시즈오카의 시골에서 버스를 갈아탔는데 현지 중학생 40명 정도가 우르르 타더라고요. 만원 버스에서 학생들이 나누는 대화를 조용히 들었어요. 연애 얘기, 숙제를 하지 못한 걱정··· 각자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어요. 그들에겐 ‘일상’이지만 그곳에 훅 들어간 저는 낯선 체험을 한다는 게 흥미로웠고요. 역시 여행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해야 해요. 여행도 가고, 그때그때 사진도 찍어두고, 이 모든 것이 연기에 반영되는 순간이 있을 거라 믿어요. VK

보라색 크롭트 니트 톱과 그레이 컬러 벨벳 트레이닝 팬츠, 블랙 슈즈는 셀린느(Celine).

J ISSUE

한국과 일본이 수교 60주년을 맞았다. 가깝고도 먼 우리지만 대중문화에서는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상생해왔다. 〈보그〉가 주목한 동시대 일본 문화 예술인들이 간극을 더 좁혀가리라 믿는다. 배우 안도 사쿠라, 영화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배우 히다카 유키토, 종합 격투기 선수 미우라 코타, 뮤지션 크리피 너츠, 소설가 무라타 사야카, 아트 디렉터 요시다 유니, 패션 디자이너 이와이 료타가 K에 보내는 J 컬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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