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꽃핀 무라카미 다카시
아무도 모르게 마법을 부리는 걸까? 모든 나라와 분야를 동시다발적으로 횡단하며 초월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라카미 다카시가 서울에서 예술의 현재를 논한다.

프리즈 서울 기간에 내한한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의 일거수일투족은 실시간으로 포착되고 확산됐다. 프리즈 무대인 코엑스에서 자신이 속한 가고시안과 페로탕 갤러리, 그리고 진두지휘하는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 부스를 찬찬히 둘러봤고, 하우스 노웨어 서울에서 기묘한 찻잔에 담긴 차를 음미했으며(“그곳을 둘러보는 동안 ‘나도 많이 늙었구나’ 느꼈어요”), 호스트 페기 구를 비롯해 방탄소년단과 블랙핑크가 결집한 ‘2025 파라다이스 아트 나이트’에도 모습을 비쳤다. APMA 캐비닛에서 10월 11일까지 이어지는 그의 개인전 <서울, 귀여운 여름방학>은 가장 중요한 이벤트였다. 지금은 폐관한 삼성미술관 플라토(Plateau)에서 2013년 열린 <무라카미 다카시의 수퍼플랫 원더랜드> 이후 12년 만에 서울에서 선보이는 전시다.
<보그>와의 만남 역시 그의 공식 내한 일정 중 하나였다. ‘체력 보호’를 이유로 만나기 직전까지 촬영 가능 시간이 계속 줄어들었기에 무엇보다 다카시의 컨디션을 우려했으나 기우였다. 촬영 시작 시간보다 30분 일찍 전시장에 도착한 다카시는 1년 전 홍콩에서 마주했을 때보다 훨씬 활력 있어 보였다. (그는 “그런가요?”라며 멋쩍게 웃었으나 확실히 거동이 민첩했다.) 스태프가 의상과 촬영 소품을 정리하는 사이, 따뜻한 카푸치노를 손에 들고 흡족해하는 그와 아모레퍼시픽 라이브러리에서 대화부터 나누기로 했다.
홍콩에서와 마찬가지로 나는 그의 안부부터 물었다. 그러자 그는 갑작스럽게 예술계의 어려운 상황을 토로하기 시작했다. “올여름 뉴욕을 포함한 미국 전역에서 많은 갤러리가 문을 닫았습니다. 제가 아는 것만 해도 6~7군데예요. 세계적으로 미술 시장 전망이 어둡죠. 솔직히 말해 이번 전시에 대한 반응을 떠나서 그런 상황을 아주 심각하게 지켜보고 있어요.” 이어 그는 미술 시장과 예술계의 허물어진 벽에 대해,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 수준의 수직 상승세에 대해 이야기를 막힘없이 이어갔다. 1년 전 홍콩에서는 모든 것에 통달한 도사처럼 보였던 다카시가 이번에는 예술계의 열정적인 논객처럼 느껴졌다. 그의 개인전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은 예정된 인터뷰 시간의 반이 흘렀을 때였다.
그로부터 며칠 뒤, 페로탕 갤러리가 프리즈 서울에서 선보인 다카시 작품 13점이 151만2,000달러, 약 20억9,800만원(9월 12일 기준)에 완판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놀랍지 않았다. 그는 이미 올해 출시된 루이 비통과 무라카미 다카시 리에디션 컬렉션으로도 ‘솔드 아웃’ 소동을 일으키며 ‘상품성’을 입증했으니 말이다. 알록달록한 멀티컬러 모노그램과 슈퍼플랫 판다, 체리 블라썸 패턴이 수놓인 200점의 라인업을 아우르는 이 컬렉션은 2025년 1분기 LVMH 실적 보고서에 따르면 패션 & 가죽 제품 부문에서 ‘높은 판매율(Strong Sell-through)’을 거둔 것으로 기록됐다. 물론 예술가로서 명망도 높아진 해였다. 20년 가까이 인연을 이어온 가고시안 갤러리와 지난 5월 뉴욕에서 선보인 개인전은 다소 학구적인 스토리텔링에도 큰 인기를 끌었다(다카시의 귀띔에 따르면 판매 실적도 좋았다). 우키요에 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1797~1858)의 판화와 일본 미술에 영감을 받아 탄생한 유럽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회화를 재해석한 작품을 선보인 이 전시를 통해 그는 현대 예술의 흐름을 포착했다. 거기에 최근 <보그> 인터뷰에서 “완성 직전”이라 귀띔했던 12부작 애니메이션 <Six Hearts Princess>와 그의 회사 카이카이 키키가 이끄는 온갖 캐릭터 협업까지, 끊임없이 시간을 쪼갤 궁리를 하는 중에도 지금 예술계에 대한 예리한 촉각을 곤두세우는 무라카미 다카시가 예술에 관해 답하고, 한국에 관해 질문했다.

컨디션은 어떤가요?
좋아요. 실은··· 음··· 지난여름에 많은 갤러리가 문을 닫았거든요. 그게 무척 걱정스러울 뿐이에요. 세계적으로 예술계에 대한 전망이 그리 밝지 않다는 걸 아실 텐데요. 그래서 제 전시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예술계 전체를 민감하게 주시하는 중입니다.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상황인가요?
로스앤젤레스와 뉴욕, 도쿄에 지점을 두었던 블룸 갤러리가 문을 닫은 사건은 정말 충격적이었어요. 제가 미국에 갔을 때 예술가로서 초기 커리어를 쌓은 곳이죠. 물론 눈에는 보이지 않는 소규모 마켓이 많을 거고, 이런 흐름이 급작스럽게 뒤바뀔지도 모르지만, 지금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 안정적인 판매 구조를 다질 수 있을지 우려하고 있습니다. 가고시안 갤러리 아시아 총괄 디렉터 닉 시무노빅(Nick Simunovic)과 요즘 그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요. 닉은 작품의 타깃팅에 대해 아주 솔직하고 구체적인 의견을 주는 편이거든요.
지금은 어떤 전략을 갖고 움직이나요?
저를 대표하는 ‘꽃’ 캐릭터와 벚꽃을 앞세운 작업을 안정적으로 이어가면서 니혼가(일본 전통 회화)를 재해석한 새로운 스타일의 작업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둘 다 평단에서 호평받을 수 있길 바라고, 마케팅 측면에서도 좋은 반응을 얻었으면 좋겠어요. 그게 솔직한 목표죠. 이번 서울 전시에 내놓은 작품을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무라카미 다카시가 운영하는 갤러리로 다양한 아시아 작가를 육성하는 일에 전념하고 있다)에서 판매할 예정인데 이곳에서 제 작품을 판매하는 것은 처음이라 기대가 됩니다. 한국 작가 4인(김민희, 장가노, 이한나, 홍현준)의 작품을 프리즈 서울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 부스에서 소개한 것도 설레는 일이었어요. 부디 한국 관람객에게 좋은 인상을 남겼기를 바랍니다.
이번 전시 <서울, 귀여운 여름방학>에서는 회화와 조각 작품 11점을 소개합니다. 키워드는 ‘꽃’이죠. 30년 전 탄생한 당신의 활짝 웃는 꽃은 명랑한 비주얼 이면에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인이 경험한 집단적 트라우마와 불안을 담고 있는 캐릭터라고 알려져 왔습니다. 이 ‘꽃’을 처음 디자인한 순간을 기억하나요?
그럼요. 도쿄예술대학에서 공부를 마치고(다카시는 도쿄예술대학 일본화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뉴욕으로 건너간 첫해였을 거예요. 당시 MoMA PS1 뮤지엄에서 진행 중인 아티스트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초대받았죠. 그곳에서 저는 일본인으로서 정체성을 근사하게 표현하는 미션을 부여받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전통 일본화를 많이 그렸는데 얼마 되지 않아 고민에 사로잡혔어요. 한국, 중국과 마찬가지로 전통 일본화의 중심은 풍경인 반면 서양의 예술은 인간 중심이었거든요. 돌파구가 된 것은 당시 뉴욕에서 패리스 힐튼이 일으킨 헬로 키티 신드롬이었습니다. 거기서 착안한 효과를 전통 일본화에 적용해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거든요. 그렇게 일본 미술에서 자주 등장하는 꽃을 캐릭터화한 저의 ‘꽃’이 탄생한 겁니다.

한국에서는 당신의 캐릭터를 귀엽게만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꽃’이 지닌 어둡고 불안한 면은 외면당한 채 ‘가와이이(Kawaii)’한 매력만 부각되는 거죠.
사랑스럽다고 느끼는 것이 제 작품 세계로 진입하는 첫 번째 관문이에요. 귀여운 도상에 이끌려 엄숙한 예술계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죠. 저와 나라 요시토모, 카싱 룽(Kasing Lung)은 그런 접근을 통해 큰 사랑을 받은 작가들입니다. 요즘은 ‘라부부’가 그 비슷한 역할을 이어가는지도 모르겠군요.
전시명이 왜 ‘서울, 귀여운 여름방학’인가요?
여름방학은 일본 애니메이션에서 아주 중요한 이슈예요. 여름방학의 시작과 끝 사이에는 늘 어떤 사건이 발생하죠. 거기에 이제 세계적으로도 인정받는 일본 특유의 ‘가와이이’ 미학을 결합해 제 작품이 지닌 개성을 드러내려 했습니다.
금박 배경에 꽃을 그려 넣은 신작 ‘Tachiaoi-zu’는 지극히 전통적인 일본 회화처럼 보이더군요. 애니메이션이 연상되는 ‘슈퍼플랫’한 작품과 별개로 최근 들어 이런 전통적인 화풍을 지속적으로 시도하는 까닭은 무엇인가요?
한 해에 평균적으로 전시를 두 번 선보이는데 사람들은 보는 즉시 그에 대한 평을 내놓습니다. ‘아, 다카시는 이번에도 꽃을 그렸군’ 하는 식으로요. 물론 저 역시 그런 이미지로 예술가의 삶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기에 거기에서 벗어나는 작업을 계속 시도하는 겁니다. 예술가로 살아온 지 벌써 30년이 다 됐지만 여전히 새로운 것, 다음에 시도할 것을 궁리하며 살고 있어요. 일본 전통 화가 오가타 고린(Ogata Korin)의 그림과 닮은 ‘Tachiaoi-zu’는 그리기가 정말 까다로웠습니다.
일본 예술가 입장에서 ‘일본다운’ 것을 고민하는 일은 여전히 유의미한가요? 한국에도 그런 말이 있기는 합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
40년 전 이세이 미야케와 꼼데가르송이 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고, 요지 야마모토가 파리에 완전히 안착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일본다운 것의 매력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그 후 일본 패션의 전성기가 시작됐죠. 이후 저와 쿠사마 야요이, 나라 요시토모가 거의 비슷한 시기에 서양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붐을 지켜본 일본인들은 ‘세상에, 우리가 전 세계에 이런 위세를 떨칠 수 있구나’ 하고 깜짝 놀랐죠. 그런데 한국도 비슷한 현상을 경험했잖아요. 왜인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그런 관점이 여전히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번 전시 작품 대부분이 신작입니다.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 전시가 개막하자마자 작업을 시작했다고요. 바쁜 와중에도 전시마다 퀄리티 높은 신작을 소개하는 것이 대단하게 느껴집니다.
분명 쉬운 일은 아니죠. 하지만 인생은 짧잖아요. 제가 미대생이었을 때 장 미셸 바스키아는 뉴욕 거리를 활보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키스 해링, 바스키아가 에이즈와 마약으로 어느 날 갑자기 세상을 떠났고, 앤디 워홀도 사인은 잘 모르지만 결국 죽었죠. 이들이 살아 있을 때, 이들의 예술은 높은 가격에 거래되지 않았어요. 40년 전쯤, 워홀의 마릴린 먼로 작품이 고작 2만 달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엄청나게 싼값이었는데도 그 그림을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죠. 이후 우리가 이들의 회고전을 대형 갤러리에서 마주하기까지 아주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런 점에서 예술은 삶과 달리 수명이 아주 길죠. 그 간극을 조금이라도 메우려면 작가로서 사력을 다해야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스스로의 가치와 책임을 의식하며 더 열심히 활동하는 이유예요.
최근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막을 내린 개인전 <JAPONISME → Cognitive Revolution: Learning from Hiroshige>를 매우 중요한 전시라고 소개했습니다. 큐레이터 에드 샤드(Ed Schad)와 깊이 있는 대화를 거쳐 준비한 그 전시를 통해 당신의 예술에 관해 새롭게 깨달은 것이 있다면요?
20년 전 제가 루이 비통과 협업 프로젝트를 시도했을 당시 선보인 회화와 조형 작업이 있어요. 반응이 정말 없었고 경매 가격도 낮았지만 저 스스로는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이건 일종의 미니멀 아트이자 개념 미술’이라고 확신하면서요. 그 작품은 제가 대학교 때 공부했던 개념 미술과 사실상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마르셀 뒤샹이 포문을 열고, 1970년대에 조셉 코수스(Joseph Kosuth)와 솔 르윗(Sol LeWitt)이 명맥을 이어간 바로 그 개념 미술과 다름없었죠. 심지어 미술사를 더 거슬러 올라가면 추상회화와도 맞닿는 지점이 있었어요. 올해 가고시안 갤러리에서 선보인 개인전은 바로 그런 연결성을 파고들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발견은 유럽 인상파와 후기인상파 화가들이 일본 예술에 영감을 받았다는 사실이었어요. 당시 유럽 화가들은 1867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일본 우키요에(목판화)를 접했고, 거기에서 발견한 평면성, 비대칭 구도, 선명한 색채의 결합을 자신의 회화 속에서 탐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발견을 바탕으로 저는 20년 전 루이 비통을 위해 만든 작품을 다시 바라보며 서로 다른 시공간에서 드러난 반복적인 사이클을 확인했죠. 우타가와 히로시게의 판화와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유럽 인상파 회화를 재해석한 작품을 통해 그 순환 구조를 드러내고 싶었습니다.
일반 관람객이 완전히 이해하기에는 다소 어려웠을지도 모르겠어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판매는 잘됐어요. 그건 사람들이 뭔가를 이해했다는 뜻이겠죠. 그랬길 바랍니다. 의미 있는 발견으로 가득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거의 같은 방식으로 그 작업물을 다시 선보일 기회를 찾고 있어요.

서울의 예술 열기가 가장 뜨거운 시기에 내한했어요. 예리한 시선으로 한국 예술계를 관조하며 흥미롭게 느낀 지점이 있나요?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국의 미술품 거래 제도가 눈에 띄더군요. 제가 알기론, 사람들이 그림을 살 때 세금을 내지 않는다고 하는데 정말인가요? 그리고 작품 판매가에 대한 세금은 3%에 불과하다고요. 맞나요?
경우에 따라 세법은 상이하지만 다른 나라에 비해 미술품에 대한 세금이 낮게 책정되는 편으로 알고 있어요.
그렇군요. 일본에서는 자식에게 작품을 양도할 때 50% 넘게 과세되거든요. 사람들에게 작품 수집을 하지 말라는 것이나 다름없죠. 한국 컬렉터의 수준이 빠르게 높아진 데는 그런 세금 정책이 미친 영향이 분명 있을 겁니다. 전 세계 아트 딜러와 큐레이터가 수준 높은 동시대 예술품을 일본보다 한국으로 더 많이 가져오는 이유죠. 한국 관람객의 보는 눈도 덩달아 높아질 수밖에 없고요. 일본 관람객은 예술품을 엔터테인먼트쯤으로 치부하거나 “이게 그렇게 비싼 작품이래”라고 말하며 넘길 뿐이에요.
예술계 선배이자 갤러리 대표로서 지금 가장 주목하는 예술가는 누군가요?
카이카이 키키 갤러리 소속인 카싱 룽의 행보를 유심히 지켜보는 중이에요. 그의 회화와 조각을 많은 사람이 사고 싶어 하니까요. ‘가와이이’한 것에 대한 열망, 봉제 인형 수집 열풍이 모든 문화권 전반에서 발생하고 있어요. 아트 컬렉터도 이젠 예술품을 대하는 것과 거의 같은 수준의 진지함으로 가와이이한 봉제 인형을 주시하죠. 이런 추세는 패션계로도 확장됐고요. 이에 관한 생각이 요즘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어요. 새로운 아이디어도 떠오르고요.
언젠가 “아이들이 현실에서 벗어나 ‘아, 나도 이런 세계에 들어가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 적 있어요. 이번 가을, 서울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소개한 당신의 예술이 아이들에게 어떤 잔상을 남기길 바라나요?
직접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먼 훗날 제 작품에 대한 감상을 끄집어내는 아이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상관없어요. 갑자기 어렸을 적 부모님과 함께 고야 전시를 보러 간 일이 생각나는데요. 부모님은 아무 말 없이 작품을 보는 데 열중했고, 저는 속으로 무섭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집에 돌아와서 부모님이 어땠냐고 물었는데, 솔직히 ‘앞으로 미술관 다신 가기 싫다’는 생각만 나더군요. 그런데 결국 예술가가 됐죠. 모든 아이들은 결국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할 겁니다. 장성한 제 아이들도 똑같았어요. 그러니 만약 당신이 아이를 키우고 있다면, 이 정도로만 함께 얘기해도 충분할 겁니다. “정말 귀엽지 않니?” “그런 걸 발견했구나!” “이건 좀 화가 나 보이는데, 네가 보기에도 그래?”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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