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봄/여름 컬렉션이 패션계를 구원할 수 있을까?
‘패션계의 패러다임 시프트가 임박했다.’ 2024년 12월 31일 <보그>는 그해의 굵직한 패션 이슈를 정리하며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근거는 확실했죠. 흡사 의자 뺏기 놀이라도 하듯, 한 해 내내 디자이너들의 이동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러 브랜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를 비워둔 채 적임자를 찾아 헤맸고, 인스타그램에서는 “모 디자이너가 어디 면접을 봤다더라” 같은 진위를 가려낼 수 없는 루머가 돌고 돌았죠.
그 흐름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숨이 차는 듯했던 ‘럭셔리 업계 대개편’이 끝났습니다. 그리고 오늘 새벽, 뎀나의 구찌가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을 쏘아 올렸죠. 밀라노 패션 위크가 끝난 직후인 9월 29일부터 10월 7일까지는 ‘메인 이벤트’인 파리 패션 위크가 진행됩니다. 9일 동안 펼쳐질 수십 개 브랜드의 컬렉션이 향후 럭셔리 업계의 향방을 좌우할 만큼 거대한 변화를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뜻이죠.

우리가 주목할 것은 역시 데뷔 쇼를 앞둔 브랜드입니다. 패션은 늘 새로움에 목말라 있고, 그 갈증을 해결해줄 수 있는 것은 결국 새로운 각도에서 패션을 바라보는 인물들이니까요. 이번 시즌은 특히 샤넬, 디올, 구찌, 발렌시아가처럼 패션계 헤게모니를 쥐고 있는 메가 브랜드가 전환점을 맞이한다는 점에서 더 특별하죠. 지난 4월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로 정식 부임한 마티유 블라지는 반년 가까이 준비한 첫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마티유 블라지는 샤넬이 칼 라거펠트 이후 42년 만에 맞이하는 첫 번째 외부인이기도 합니다. 그는 ‘가장 클래식한 하우스’로 손꼽히는 샤넬을 어떻게 바꿔나갈까요? 언제나 오전 시간대의 쇼를 고집했던 샤넬이지만, 블라지의 데뷔는 파리 현지 시간 기준으로 10월 6일 오후 8시입니다.
밀라노 패션 위크 1일 차였던 바로 어제, 뎀나가 ‘뉴 구찌’의 티저를 공개했습니다. 스파이크 존즈와 할리나 레인이 감독한 30분짜리 단편영화 <더 타이거(The Tiger)>를 상영하며 새 시대를 열어젖혔죠. 에드워드 노튼, 데미 무어, 엘리엇 페이지 등 영화 출연진의 의상은 전부 며칠 전 구찌가 공개한 ‘라 파밀리아(La Famiglia)‘ 컬렉션 룩이었습니다. 2014년 베트멍을 론칭하며 상투적인 표현 그대로 ‘혜성처럼’ 등장한 뎀나. 발렌시아가에서 이미 한 차례 패러다임 시프트를 주도한 그가, 구찌에서도 패션계에 균열을 일으킬 수 있을까요? 한편 뎀나와 함께 스트리트 웨어의 유행을 주도한 발렌시아가는 ‘우아함’이라는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발렌티노 출신 디자이너 피엘파올로 피촐리를 선임하며 ‘유턴’에 대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지금의 로에베를 만든 인물 조나단 앤더슨은 무슈 디올 이후 최초로 하우스의 남성복과 여성복, 꾸뛰르 라인을 홀로 맡는 디자이너가 됐습니다. 지난 6월 남성복 컬렉션을 선보이며 이미 한 차례 호평받은 그는 10월 1일 오후 2시 30분에 첫 여성복 쇼를 앞두고 있죠. 그의 빈자리는 프로엔자 스쿨러 출신 잭 맥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가 채웁니다. 이들은 데뷔 쇼를 일주일 조금 넘게 앞둔 어제, 섬세한 관능미가 돋보이는 티저를 공개하며 기대감을 고조시켰죠. 각각 톰 포드와 지방시에서 두 번째 쇼를 선보이는 하이더 아커만과 사라 버튼 역시 하우스에 자신만의 색을 입히는 데 주력할 테고요.
질 샌더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시모네 벨로티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지난 2월 런던 패션 위크 출장 중 방문한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서 제 흥미를 끌었던 아이템 중 9할이 그가 디자인한 발리 제품이었거든요. 까르벵의 부활을 주도한 루이스 트로터는 마티유 블라지의 뒤를 이어 보테가 베네타의 수장으로서 첫선을 보일 예정이고, 트로터의 빈자리는 마크 토마스가 채우게 됐죠. 지루하지 않은 세련미를 보여준 세 브랜드가 나란히 출발선에 섰습니다. 이들은 패션계를 뒤흔들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오는 26일 소규모 프레젠테이션 형식으로 베르사체 데뷔 컬렉션을 선보일 다리오 비탈레가 ‘게임 체인저’로 급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습니다. 그의 거취에 대해 이런저런 루머가 돌고 있지만, 어쨌거나 그는 미우미우의 부흥을 이끈 인물이니까요.

1980년대와 1990년대, 2010년대를 정의한 브랜드 역시 쇄신을 선택했습니다. 1980년대 초반, 남성성과 여성성의 경계를 허무는 데 앞장선 장 폴 고티에는 듀란 랜팅크를 브랜드 역사상 최초의 ‘퍼머넌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했습니다. 듀란 랜팅크는 신세대 디자이너 중 가장 독창적인 실루엣을 만들어내는 인물인데요. 어떤 제약도, 제한도 없는 ‘장 폴 고티에 월드’는 그가 특유의 상상력을 발휘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환경입니다. 글렌 마르탱은 레이 가와쿠보와 요지 야마모토의 해체주의 정신을 성공적으로 계승하며 1990년대를 지배한 메종 마르지엘라에서 첫 기성복 컬렉션을 선보입니다. 피비 파일로와 함께 2010년대 미니멀리즘 열풍을 몰고 온 셀린느 역시 마이클 라이더의 두 번째 쇼를 앞두고 있고요. 라이더의 데뷔 컬렉션이 많은 에디터의 극찬을 받은 만큼 10월 5일 오후 12시에 있을 셀린느 쇼에도 시선이 집중될 것은 분명합니다.
이제 무대에 오를 준비가 끝났습니다. 관중은 침체기에 빠진 업계를 구원할 ‘새로운 뭔가’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고요. 이제 남은 것은 배우들의 몫입니다. 패션계의 패권은 누가 움켜쥘까요? 2010년대 중반 뎀나가 그랬듯 사람들이 옷 입는 방식을 바꿔놓을 수 있을까요? 이번 주 일요일, 파리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제 마음은 어느 때보다 희망과 기대로 가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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