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건축계의 도발적인 새 식구, 하우스 노웨어 서울
과거와 현재, 건축과 패션, 예술과 리테일, 모든 것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서울 건축 신의 도발적인 새 식구로 이제 막 집들이를 마친 하우스 노웨어 서울이 <보그>에 건넨 소회.

드니 빌뇌브의 영화가 떠오르는 미래적 배경에서 틸다 스윈튼이 격정적인 몸짓을 선보이는 영상 작업물로 존재를 알린 하우스 노웨어 서울(Haus Nowhere Seoul)이 베일을 벗었다. 젠틀몬스터를 시작으로 눈부시게 성장한 산하 브랜드와 함께 ‘어디에도 없는’ 존재감을 앞세운 아이아이컴바인드의 신사옥은 금세 문전성시를 이뤘다. 화성에 불시착한 우주선이 연상되는 외관, 로비에 가로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 거대한 강아지(선샤인), UFO와 기이한 외계 생명체를 빼닮은 키네틱 오브제, 새빨갛고 날카로운 손톱 디테일을 더한 누플랏(Nuflaat)의 테이블웨어가 번갈아 호기심을 부추기며 무서운 기세로 SNS를 잠식했다. 각 브랜드의 독특한 철학과 미학은 한 공간에서 서로 대비되고, 동시에 시너지를 이루며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힘을 확장하고 있었다.


인간은 기계가 아니다. 정보는 끝없는 바다를 이룬 지 오래고, AI는 정보의 고유성을 의심하게 하며 위험성을 지적받고 있지만 인터넷과 인공지능이 점령한 파편화된 정보 속에서 사람들은 고유의 스토리텔링을 거뜬히 간파해낸다. 매력적인 특징의 단순한 나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기승전결과 인과관계가 매끄럽게 이어지는 완결성 높은 서사만이 사람의 마음을 진정성 있게 움직인다. 도시 역시 마찬가지다. 철학,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요소가 어우러져 일관된 개성을 뿜어낼수록 도시의 서사는 매력적이라고 평가받는다. (우리가 파리를 ‘낭만의 도시’라 일컫고, 로마에서는 유난히 고대 유럽의 문화유산에 집중하는 이유다.) 건축 역시 도시의 서사를 완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인간은 특정 공간을 통해 도시의 서사를 지각하고, 경험하고,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서울만의 서사는 무엇인가? 건축계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키워드는 역동성이다. 서울의 ‘핫 스폿’이 얼마나 급변해왔나! 백화점과 대형 쇼핑몰을 거쳐 우린 종각의 종로서적, 강남역의 뉴욕제과, 가로수길과 세로수길로 향했고, 경리단길, 망리단길, 경의선숲길 등 수많은 ‘길’이 시시때때로 붐볐으며 최근에는 성수동, 한남동, 문래동, 도산대로와 서촌에 이어 신당동이 새로운 핫 플레이스로 부상 중이다. 그중 성수동은 온갖 팝업 스토어의 성지이자 키스(Kith)와 휴먼 메이드, 디올 성수와 프라다 뷰티 성수 등 수많은 해외 브랜드까지 친근하게 드나들면서 꾸준히 존재감을 입증해왔다.


성수동은 폐쇄된 공간 혹은 길에 국한된 기존 도심 공간에서 벗어나 새로운 체류 방식으로 서울의 서사를 만들어간다. 유휴 공간을 대표하는 공장 지대라는 도시 배경을 바탕으로 최신 트렌드라는 문화적 레이어를 겹쳐 입은 채 예술·건축·브랜드 경험이 결합된 무대를 선보이면서 말이다.
“2017년 아이아이컴바인드 신사옥 부지를 검토할 때만 해도 성수동은 지금과 같은 모습이 아니었어요. 젠틀몬스터, 탬버린즈, 누데이크, 어티슈, 누플랏이라는 브랜드를 아우르면서 수백 명에 이르는 직원이 함께 근무할 수 있는 14층 규모의 부지를 확보할 수 있는 곳이 성수동 외에는 없었죠. 하지만 성수동이 지닌 실험적이고 크래프트적인 지역적 특성이 회사의 정체성과 잘 맞아떨어졌기에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었습니다.” 정신없는 집들이를 치른 아이아이컴바인드가 <보그>에 독점으로 밝힌 공식 후일담이다. (특정 인물이 부각되길 원치 않았던 아이아이컴바인드는 내부 공간 팀과 함께 <보그>가 건넨 질문에 서로 머리를 맞대고 써 내려간 답을 건네왔다.) 설계사로 더 시스템 랩(The System Lab)을, 시공사로는 KCC건설을 선정한 후 각 분야의 전문가들은 서로 긴밀히 협력하며 ‘되돌아온 미래’라는 컨셉을 시각화해나갔다. 8년에 걸친 작업이었다. 외관과 서로 다른 브랜드로 채운 실내를 모두 관통하는 세계관, 기존에 없던 ‘퓨처 리테일’의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새파란 창공 아래 회색빛 위용을 자랑하며 우뚝 선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첫인상은 초현실주의 그림을 마주한 듯 생소하고 낯설었다. 보통 인간의 체구로 올려다본 건축물은 시야가 왜곡된 듯 제멋대로 부풀어 있었고, 창백한 표면과 주변에 깐 새하얀 자갈에 반사되어 오는 햇빛에 눈이 멀 지경이었다. 로마 시대부터 사용해왔고, 머나먼 미래에서도 계속 사용될 건축 재료인 콘크리트로 만들었지만 왠지 기존 건축과는 확연히 다르게 느껴졌다.
최근 영화 <브루탈리스트>를 통해 다시 그 매력을 입증한 브루탈리즘(Brutalism)은 20세기 초 모더니즘 건축에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재건 과정에서 탄생해 1970년대 초반까지 유행했던 건축양식이다. 명칭은 근대건축의 거장 르 코르뷔지에가 사용한 ‘베통 브뤼트(Béton Brut)’, 즉 굳어진 상태 그대로 남아 있는 거친 콘크리트에서 유래했다. 브루탈리즘은 효율적 기능성과 장식을 배제해 단순하면서도 강렬하고, 별도로 가공하지 않은 원초적인 콘크리트를 그대로 노출하는 방식으로 대담한 건축 공간의 예인 대규모 공공 건축이나 근대적 공동 주거에 자주 사용되었다. 그런 위용 때문에 근대사에서 특정 권력을 시각화하는 데 즐겨 활용되어오다가 최근 후기 자본주의 사회의 새로운 로드맵으로 종종 주목받게 됐다.
그러나 이전 사회를 전복한 하나의 거대하고 절대적인 힘의 상징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은 현대 브루탈리즘 건축은 더는 하나의 ‘덩어리’가 되기를 거부한다.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정신 역시 그와 맞닿아 있다. “서로 다른 공간을 점유한 각각의 브랜드 스토어는 인테리어, 가구, 조명, 오브제 측면에서 고유한 톤 앤 매너를 갖고 있어 긴장감과 대비를 일으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건축물 자체에서 느껴지는 도발적인 흐름 속에서 서로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독특한 세계관을 완성해가죠.” 성수동에 안착한 이 새로운 상징물은 거대한 고층 매스의 모놀리스(Monolith)적 강렬함이 아니라 오히려 상중하 세 부분으로 나뉜 서로 다른 이질감의 합체라는 하이브리드(Hybrid)적 매스 플레이를 보여준다. 미술에서 하나의 캔버스일 때보다 더 큰 형식적 의미를 부여받는 세폭화처럼 말이다. 외관도 마찬가지다.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저층부에 해당하는 리테일 층은 특수 거푸집을 활용한 곡면 디테일을 통해 독창성을 드러내고, 오피스 공간으로 쓰이는 중층부는 내민보와 커튼월 조합으로 입체감을 형성한다. 그리고 고층부는 UHPC(초고성능 콘크리트) 패널로 가분수 형태를 구현하며 전체적으로는 우주선이 연상된다.

육중한 건물을 파고드는 메인 출입구가 열리면서 속내를 드러내는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로비와 내부 공간은 전반적으로 키네틱 아트를 적극 활용해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를 유도한다. 론 뮤익의 작품을 닮은 인체모형과 우주적인 구조물로 영화 세트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2층 젠틀몬스터 공간, 은사와 데님을 결합해 바닥에 트위드를 수놓은 3층의 어티슈 섹션, 꽃잎을 형상화한 좌석이 돋보이는 5층의 누데이크 티하우스 등 구석구석 다채로운 디테일로 가득하다. “거칠고 묵직한 물성의 공간에 다채로운 컬러와 소재를 가미해 독창적인 긴장감을 일으키려 했습니다. ‘와일드와 엘레강스(Wild & Elegance)’라는 상반된 개념을 결합해 <블레이드 러너>, <프로메테우스>, <매드맥스>와 <듄> 시리즈에서 볼 법한 어디에도 없는 미래적인 광경을 구현했죠. 컬렉션을 선보이든, 홍보 영상을 만들든, 건물을 짓든, 공간에 세울 플로어 램프를 만들든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새로움’입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아이컴바인드가 패션과 건축을 바라보는 시각은 동일하다고 할 수 있어요.” 화물용 엘리베이터를 그대로 활용한 게스트용 엘리베이터부터 네온 오렌지 컬러로 바닥을 뒤덮은 화장실까지 모든 실내 공간을 빠짐없이 탐방하며 개인적으로 귀여운 도깨비를 떠올렸다. 뿔이 솟은 머리, 커다랗고 맹렬한 눈과 눈썹,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낸 입 등 하나씩 뜯어보면 무섭게 느껴지지만 함께 놓고 보면 어쩐지 친근한 도깨비처럼 하우스 노웨어 서울 역시 맥시멀한 디테일로 가득하지만 모든 것이 지극히 자연스럽고 일관되게 보였다.


신사옥을 디자인하는 과정에서 사실 아이아이컴바인드가 겨냥하는 또 하나의 목표가 있었다.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 파리의 팔레 드 도쿄, 밀라노의 폰다치오네 프라다처럼 독특한 미학과 철학으로 국내 건축계에 신선한 용기를 불어넣고, 모든 방문객에게 영감을 선사하는 랜드마크가 되는 것. “하우스 노웨어 서울이 대중과 예술가, 기업에 영감을 주어 앞으로 도전적인 건축물이 더 많이 등장한다면, 서울은 한층 다채롭고 흥미로운 도시가 되지 않을까요?” 서울 성수동에 안착한 최신 도시 상징물을 통해 우린 이미 랜드마크의 힘을 실감하고 있다. 원초적이며 오래된 건축 재료인 콘크리트가 지닌 날것의 매력, 초현실주의적 조형성, 브랜드의 정체성을 매력적인 실내 디자인으로 표현한 창조력을 결합한 하우스 노웨어 서울의 도전이 우리 시대의 새로운 도시적 상징을 완성해가는 과정을 즐겁게 바라보면 된다. VK
- 피처 에디터
- 류가영
- 글
- 정태종(건축 전문 칼럼니스트)
- 사진
- 최용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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