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조르지오 아르마니
조르지오 아르마니 2026 봄/여름 컬렉션은 단순히 옷을 보여주는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반세기 동안 세계 패션을 바꿔온 디자이너가 남긴 정수와 그를 향한 마지막 인사가 담겨 있었죠.

쇼는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Pinacoteca di Brera)에서 열렸습니다. 저녁 하늘 아래 은은한 조명이 빛나고 루도비코 에이나우디(Ludovico Einaudi)의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지는 순간, 이미 무대는 헌정하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이번 컬렉션의 제목은 ‘판텔레리아 밀라노(Pantelleria Milano)’. 아르마니가 사랑해 마지않았던 지중해의 섬 판텔레리아와 그가 평생 일해온 도시 밀라노에 바친 헌사였죠.
아르마니는 판텔레리아를 “다른 어딘가에서 구체화한 내 마음의 장소”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밀라노에 대해선 “내가 선택한 도시이자 나의 일부”라 말했죠. 실제로 그는 섬에서 잠시 머문 시간을 제외하면 언제나 밀라노에서 살며 작업했습니다. 바위와 바다의 대비에서 얻은 영감은 컬렉션뿐 아니라 ‘아쿠아 디 지오(Acqua di Giò)’ 같은 상징적인 향수 제품에도 드러났죠.



컬렉션은 섬의 유려함과 도시의 엄격함을 교차하며 전개됐습니다. 소재는 피부 위로 매끄럽게 흘렀고, 드레스와 수트는 길고 또렷한 라인을 그렸습니다. 여기에 밀라노 특유의 그레이지(Greige, Grey+Beige) 색조와 정교한 테일러링이 어우러지며, 바다의 유동성과 도시의 단단함이 교차하는 풍경을 만들었습니다. 낮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빛의 변화처럼, 바다의 청록부터 동양의 뉘앙스가 깃든 보라색까지 이어지며 잊을 수 없는 스펙트럼을 펼쳤습니다.
“가볍지만 강렬한 제스처, 무게감 없는 옷에서 태어나는 잊히지 않는 우아함.” 아르마니 특유의 역설적인 시그니처도 선명했습니다. 해체적이면서도 절제된 실루엣, 남성성과 여성성이 엇갈리며 만들어낸 크레셴도는 실용성과 자유로움이 공존하는 무대를 완성했습니다.


아르마니의 오랜 뮤즈와 친구들이 마지막을 함께했습니다. 케이트 블란쳇, 리차드 기어 같은 배우들부터 나데주 뒤 보스페르튀스(Nadège du Bospertus), 엘다 스카네키아(Elda Scarnecchia) 같은 모델들까지. 아르마니와 오랜 시간 인연을 이어온 이들의 눈빛에서 깊은 울림이 느껴졌죠. 로렌 허튼은 쇼가 끝난 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그는 영원히, 우리가 여기 있는 한 살아 있을 거예요.” 한 시대의 패션사를 함께 써 내려온 그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났죠.
피날레는 아르마니의 초상이 인쇄된 드레스가 장식했습니다. 드레스가 빛날 때마다 그가 하늘에서 직접 작별을 고하는 듯했죠.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음악이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쇼는 끝났습니다. 무대 위 모든 의상은 지난 50년간 우리의 옷장을 바꿔온 아르마니의 철학을 다시 한번 보여주었죠.
굿바이, 조르지오! 당신의 모든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Giorgio Arma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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