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락한 기성 세계에 도전하는 청춘의 이야기 ‘탁류’

디즈니+ 신작 드라마 <탁류>는 <추노>(2010)의 천성일 작가와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의 추창민 감독이 손잡아 이슈가 되었다. 천성일은 흥행 영화 <해적: 바다로 간 산적>(2014), <해적: 도깨비 깃발>(2022) 각본, 기획, 제작에도 참여했는데, 이번 작품 보도에서는 유독 그가 14년 만에 사극 ‘시리즈’에 복귀했다는 것이 강조된다. <추노>의 잔상이 아직 강렬하다는 의미고, <탁류>가 그 감성을 잇기 바란다는 뜻도 담겼을 거다.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처절하고, 비릿할 정도로 날것의 순정이 넘쳐흐르고, 폭력과 광기와 유머가 폭발적으로 충돌하는 매혹의 록 발라드 같은 컬트 드라마가 다시 탄생할 수 있을까? 초반은 그 기대에 비해 느리고 절제되고 혼란스러운 양상이다. 하지만 파워풀한 캐릭터를 바탕으로 서서히 끓어오르는 열기가 느껴진다.
<탁류> 첫 화는 경강(한강)에서 가장 번성한 나루터인 마포를 중심으로 물고 물리는 먹이사슬을 그린다. 곤궁한 일꾼들은 나루터에 모여들지만 그곳을 관리하는 왈패들의 횡포로 가족은커녕 제 한 입 풀칠하기가 어렵다. 왈패 안에서도 무력을 기준으로 위계가 나뉘고, 그들 위에는 부패한 양반들이 있다. 왈패에게서 직접 상납받는 종사관부터 입법권에 근접한 고관대작까지, 양반 사회도 층층이다. 상인들은 이 시스템에 돈을 대는 주체임에도 상하역 순서를 결정하는 왈패들에게 급행료를 바치며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하는 ‘을’의 입장이다. 왈패의 횡포를 관에 고발하려던 상인은 “관리보다는 왈패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경고를 듣는다. 이 시스템을 만든 게 양반이라는 뜻이다.


변화는 이 시스템의 각 단위에 속해 있으면서 기존 질서를 해체할 동인를 가진 세 청춘에 의해 촉발된다. 장시율 역의 로운은 첫 등장부터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누추한 행색에 배고픈 얼굴을 하고 일꾼들 사이에 서 있지만 군계일학의 체격과 안광이다. 왈패들이 다른 일꾼을 팰 때 그는 당황, 분노, 망설임이 뒤섞인 표정이다. 무력에 겁먹은 것 같지는 않다. 장시율이라는 인물이 모종의 이유로 정체를 감춰야 하는 무술 실력자이며, 이 불합리한 상황을 오래 참지 않으리라는 사실이 쉽게 짐작된다. 결국 장시율은 떼인 품삯을 받으려다 왈패들과 싸우고 한양을 뜨려 한다. 하지만 교활한 하급 왈패 무덕(박지환)에게 약점을 잡히는 바람에 그의 수하가 된다.
최은(신예은)은 조선 최대 상단의 외동딸이다. 아버지는 아들을 후계자로 삼고 싶지만 아들은 관직에 진출하겠다 고집을 부린다. 최은은 오빠와 다르다. 상업에 열정과 재능이 있다. 최은이 아버지의 물건을 훔쳐다가 양반 여성들에게 트렁크 쇼를 열고 높은 값을 받아오자, 여자가 무슨 장사냐고 야단만 치던 아버지의 태도가 변한다. 그리하여 후계자 수업을 받게 된 최은은 왈패를 거르고 하역 인부를 직고용했다가 시율과 대립한다. 최은은 부잣집에서 귀하게 자랐지만 밖에서는 평민이라고, 여자라고 온갖 무시를 당한다. 역시 기존 질서를 전복해야 할 뚜렷한 동기가 있다. 그의 재력, 지력, 강단이 어떻게 활용되는지가 액션 신 못지않게 흥미롭다.


썩어빠진 좌포청에 새로 부임한 종사관 정천(박서함)은 시쳇말로 ‘FM’이다. 동료들은 뇌물을 딱 잘라 거절하는 정천이 탐탁지 않다. 정천은 첫 시찰을 나갔다가 거지꼴을 하고 있는 시율을 마주친다. 둘은 얼싸안는다. 그들이 고향에서 함께 무공을 익히고 나쁜 놈들을 혼내주던 의형제 사이임이 드러난다. 관직에는 진입했으나 한미한 집안 출신이라고 다른 양반들로부터 괄시받는 정천 자신의 처지, 시율과의 브로맨스, 시율의 꿈을 좌절시킨 타락하고 불합리한 사회에 대한 분노는 정천에게도 반항심을 심어주었다.
시대상을 설명하고 캐릭터를 각인시키는 초반부는 엇비슷한 패턴과 구구절절 고생담이 연속되면서 늘어지는 대목이 있다. 민초의 삶을 그리다 보니 봉두난발과 수염, 빛바랜 옷으로 스타일이 겹치는 배역도 많다. 한국 배우들의 얼굴이 익숙지 않은 해외 시청자들에게는 집중력이 떨어질 만한 요소다. 하지만 중후반 휘몰아치는 액션과 로맨스를 기대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하다.
두 남주인공은 서로 적대 관계이거나 한쪽의 능력이 월등한 불균형 관계가 아니라 공히 정의감과 무공이 뛰어나고, 타락한 기득권이라는 외부의 적이 있다. 언젠가는 시원한 의기투합이 가능한 조합이다. 경강을 차지하려는 여진족 전사까지 등장해 이들이 싸울 대상은 차고 넘친다. 장시율은 몸싸움에 강하고 정천은 칼싸움에 강하다니 다양한 액션 신을 기대해도 좋겠다.
장시율과 최은의 관계는 초반부터 성적 긴장이 넘친다. 시율은 일꾼 시절 떼인 품삯을 받으러 상단에 갔다가 은과 대면했다. 그때 은은 시율이 어렵게 받아낸 품삯을 다른 인부들과 나누는 모습을 보고 호감을 느꼈다. 그렇기 때문에 왈패가 된 시율이 은을 막아선 순간, 은은 실망하고 시율은 부끄러워한다. 거칠 것 없던 두 청춘이 서로 앞에서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감정의 격랑을 예고한다.
<탁류>는 총 9부작으로, 디즈니+에서 9월 26일 첫 3화를 공개했고, 매주 2개씩 에피소드를 업데이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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