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수석 무용수, 서희의 20년 뉴욕 이야기
클래식 발레를 넘어 다양성을 추구하는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의 한국인 최초 수석 무용수로 입단 20주년을 맞은 서희. 존재 자체가 혁신이던 시절을 지나 발레단의 상징이 된 서희의 컬러 드로잉.

무더위가 가시지 않은 8월 21일, 뉴욕 브루클린에 자리한 스튜디오. 다소 차갑고 어두운 인더스트리얼 무드가 지배하는 이곳에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ABT)의 수석 무용수 서희가 들어섰다. 한 손에는 갈색 강아지가 포근히 안겨 있고, 샤넬 플랫 슈즈를 신고 있다. 검은색 앞코와 분홍색 트위드로 된 이 단정한 신발이 그녀의 첫인상이다. 조용하고 예의 있지만 높은 자존감으로 만만치 않은 어퍼 이스트 사이드 여성이랄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신혼집이 있는 코네티컷의 정원이 보였다. 큰맘 먹고 마련한 두 개의 정원에는 각종 채소와 꽃이 자란다. 10대 시절부터 계속된 자신과의 싸움과 투어 공연으로 쉴 틈 없는 발레리나의 삶에서 잠시 내려와 흙을 만지고 싶은 서희의 마음이 점차 엿보였다.
서희의 발레 성장기는 엘리트행 고속 열차와 같다. 체력을 키우기 위해 초등학교 6학년이라는 다소 늦은 나이에 시작한 발레는 빠르게 성장했다. 발레를 배운 지 반년 만에 선화예중 콩쿠르에 입상하고, 워싱턴 D.C.의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 3년 장학생으로 유학을 갔다. 2003년 스위스에서 열린 로잔 콩쿠르(Prix de Lausanne)에서 입상했으며, 같은 해 뉴욕의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Youth America Grand Prix)에서 대상을 탔다. 올해 ABT 최초의 한국인 수석 무용수 서희가 입단 20주년을 맞았다. 그녀가 흘린 “젊은 날의 아름다운 눈물”은 ABT 무용수 안주원, 한성우, 박선미 같은 후배들의 자리를 더 마련했을 것이다. “한곳에서 20년간 일했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좋아도 싫어도 버텨내고 살아냈죠. 그래서 지금 사람들의 시선도 온전히 즐기고 듣기 어려운 말도 흔들림 없이 받아들일 만큼 단단하지만 유연해진 것 같아요.”

<보그> 촬영은 뉴요커의 역동적인 출근 룩. 그녀 스스로 재능이라 꼽는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마음”이 옷 한 벌을 대하는 태도마다 느껴졌다. 그녀의 능숙한 ‘발레 포즈’는 포인트로 가미한 컬러 액세서리보다 스타일에 생동감을 더했다. 우리가 만난 8월 21일은 각종 투어와 촬영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날이었다. 짧은 여름휴가를 앞둔 그녀는 다소 후련해 보였다. 지중해의 화려한 빌라가 아니라 그저 빨리 코네티컷 집에서 남편과 요리하고 정원을 가꾸고 싶어 했다.
발레리나의 지난여름은 어땠을지 궁금하군요.
ABT의 뉴욕 시즌이 끝나고 투어 공연을 다녀왔어요. 후에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친구 결혼식을 축하해주고 서울로 들어가 재단(사단법인 서희) 일을 마무리한 뒤 미국으로 돌아왔죠. 오늘 <보그>가 마지막 일정이에요. 드디어! 아무 스케줄 없이 며칠 쉴 수 있어요. 남편과 저 모두 출장이나 투어 공연이 많았기에, 이제 코네티컷 집에서 강아지와 조용히 지내려고요. 결혼 후에 이 집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진 듯해요.
가을 시즌에는 어떤 작품을 준비하나요? 수백 번 임했지만 그때마다 마음이 동요할 듯합니다.
가을 시즌은 보통 새로운 작품이나 모던 발레 위주로 공연을 선보여요. 물론 <라 바야데르> <잠자는 숲속의 미녀> <라 실피드> 같은 클래식도 준비하죠. 신작이 아닌 이상 대부분 해본 작품이지만 매번 어렵고 다듬을 것이 생기기에 끝없이 이어지는 기분이에요. 다듬을수록 정제된 무용을 할 수 있지만 멀리 있는 관객에게까지 무대가 전해져야 하니, 절제와 증폭의 중간점을 찾기가 늘 어려워요.
익숙한 작품이지만 어느 순간 해석이 달라진 적이 있나요?
매번 무대에 설 때마다 달라요. 절대 안 바뀌는 신념도 있지만 상대 무용수에 따라 그것이 깨지기도 합니다. 대화와 비슷해요. 서로 하고 싶은 말만 해선 안 되고, 충분히 듣고 거기에 반응하는 것이 중요하죠.

하루 루틴을 들은 적 있어요. 아침에 카페에 들러 블랙커피와 초콜릿 크루아상을 먹은 뒤 극장까지 걸어가 클래스를 시작하고, 오후에는 재단 업무를 보고, 저녁에는 가끔 샤르도네를 한잔한다고요. 꼭 지키려 애쓰는 루틴이 있나요?
언제였는지 사치스럽게 살았군요.(웃음) 아직도 아침은 블랙커피로 시작해요. 일찍 일어나도 아침은 언제나 바쁘고 정신없기에 취침 전에 다음 날 할 일을 정리해두는 편이에요. 남편이 집에 있다면 같이 요리해서 밥 한 끼라도 나누려고 애쓰죠.
<보그> 패션 화보 촬영은 일상의 환기인가요? 발레리나는 모델과 다른 선을 보여주기에 우리가 사랑하는 피사체입니다.
발레의 아름다움은 캡처되지 않고 라이브로 관람하잖아요. 그런 면에서 사진이 만들어내는 ‘순간의 아름다움’이 경이로워요. 요즘엔 사진을 비롯한 보는 매체에 관심이 커지기도 했고요. 어느 분야나 그렇듯 스토리 있는 사진가를 좋아해요. 비비안 마이어(Vivian Maier)는 전문 사진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멋진 작가죠. 피사체에 관심을 갖고 집중해 그의 아름다움을 발견해야 마음을 움직이는 찰나를 캡처할 수 있어요. 때론 사진가들이 렌즈를 통해 보는 내 모습이 좋은 의미에서 낯설기도 하죠. 무엇보다 발레가 아닌 모든 것에 작지만 강한 호기심이 있어요.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내려놓으면 재미있게 임할 수 있고요.

거의 모든 시간을 연습실에서 보내기에 평소엔 편한 복장이겠지만, 특별한 날에는 어떤 스타일을 주로 선택하나요?
중요한 날에는 그 상황에 맞춰 브랜드에서 준비해준 옷을 입지만 보통은 너무 편안히 다녀서인지 나만의 스타일이 희미해졌어요. 그래서 요즘 다시 관심을 갖고 패션을 찾아보려고 하죠. 오버핏 버튼다운 셔츠, 청바지, 발레리나 플랫 슈즈 조합이 저의 ‘Go-to Outfit’이죠. 약속이 있을 땐 주얼리, 가방, 벨트, 스카프 같은 액세서리로 포인트를 줘요.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최근 사치한 것은 무엇인가요?
올해 큰맘 먹고 커팅 가든과 베지터블 가든을 새로 들였어요. 시즌마다 아름다운 꽃이 피고 지는 풍경을 보고 채소를 수확하면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해져요. 할머니, 엄마 모두 정원을 꾸미셨기에 제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죠. 정원은 인내심이 필요한 프로젝트라 편안한 마음으로 오래 공들여 가꾸려 해요. 물질적인 선물이라면, 올해 제가 ABT 입단 20주년이기에 발레단에서 파티와 헌정 공연을 열었어요. 그때 남편이 예거 르쿨트르 리베르소를 선물했죠.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제 뒤에서 늘 서포트하겠다는 편지와 함께.

ABT의 전 예술감독 케빈 맥켄지(Kevin McKenzie)는 “서희의 가장 큰 자산은 배역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하는 통찰력”이라고 했죠. 스스로 꼽는 자신의 큰 재능은 무엇인가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알고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것. 모든 것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세상에 대한 애정과 마음의 여유가 아닐까요?
2012년 아시아인 최초로 ABT 수석 무용수가 되었고 지금도 주역으로 활동 중이죠. 자신의 어떤 성격이 이 자리까지 오게 만들었나요?
저는 슈퍼 ‘I’인데 일을 하며 사람을 만나야 하니 선택적 ‘E’가 되는 것 같았어요. 이제 보니 무대 위에서는 ‘E’ 같아요. 사람들의 시선과 찬사를 조용히 즐깁니다.(웃음)

약한 체력을 키우기 위해 초등학교 6학년 때 배드민턴부에 들어가려다 성원이 되어 발레를 시작했죠. 다소 늦은 나이인데요. 발레를 처음 배울 때 어떤 감정이었는지 궁금해요.
선생님의 “Beautiful, Elegant”라는 칭찬이 좋았어요. 잘한다가 아니라 아름답다고 하셨는데, 이젠 그 아름다움이 얼마나 귀중하고 갖기 어려운지 알아요. 선생님과 이 얘기를 한 적 있는데, 당신께선 맛있는 음식을 “Delicious”가 아니라 “Beautiful”이라고 하신대요. 음식 안의 아름다움을 보시는 거죠. 시니어 무용수를 부러워하는 제게 “꽃은 다 피기 전에도 아름답다. 만개하지 않은 꽃봉오리에도 많은 아름다움이 있다”고 하신 말씀도 기억나요.
발레를 배운 지 반년 만에 선화예중 콩쿠르 입상, 워싱턴 D.C.의 키로프 발레 아카데미 3년 장학생, 스위스의 로잔 콩쿠르 입상, 뉴욕의 유스 아메리카 그랑프리 대상 등을 일궜죠. 글로만 써놔도 숨 가쁜데, 그 시기를 돌아보면 어떤 마음이 드나요?
시기마다 고민의 종류는 달랐지만, 그 오랜 싸움을 여태 포기하지 않은 나를 토닥토닥해주고 싶어요. 어린 서희야, 고생했고 대견하다.

독일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산하 ‘존 크랑코 발레 아카데미’에서 수학하던 중 슈투트가르트와 ABT에서 입단 제의를 받았습니다. 다른 곳이 아니라 뉴욕행, ABT를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세계의 중심에서 클래식 발레를 하고 싶었어요. 예술뿐 아니라 경제·문화·정치의 중심에서 최고의 것들을 보며 한 인간으로서도 성장하고 싶었죠.
본인이 견습생으로 있던 2005년에 비해 현재 ABT에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 무용수가 많아졌습니다. 이날이 오기까지 쉽지 않은 시간을 보냈겠죠. 유럽이나 미국 무용수보다 더 자신을 증명해야 했을 텐데요.
너무 억울해 울기도 했는데, 지나고 보니 젊음의 눈물은 아름답게 남았군요. 증명은 무대에서 한다고 여겼는데, 발레단 사람들의 인정 또한 중요하다는 기조였어요. 관객에게 인정받기도 어렵지만 100명이 넘는 전문가들의 인정은 또 다른 종류의 레벨 테스트였죠. 매일 매시간이 시험처럼 어렵고 힘들었죠.

ABT는 다양성과 혁신을 추구합니다. 현재 19개국에서 온 무용수들이 활약하고 있죠. 최초의 흑인 수석 무용수 미스티 코플랜드(Misty Copeland)를 배출했고, 여성 안무가를 비롯해 여러 국적의 예술가를 적극 기용해왔고요. 이런 ABT의 지향점을 무용수로서 어떻게 보나요?
이미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술에도 적용했을 뿐인데, 현대적인 흐름을 클래식 예술에서는 혁신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어요. 물론 여전히 ‘네가 누구든 잘하면 함께하겠다’가 미국적인 사고방식이지만 자유로워 보이는 뉴욕에도 ‘유리 천장’은 존재합니다.
ABT는 클래식뿐 아니라 컨템퍼러리 작품 공연도 많아서, 무용수들이 고전 발레 외에 재즈 등 다양한 장르를 섭렵해야 하죠. ABT의 박선미 무용수는 “재즈를 처음 해보는데 어려워서 자괴감이 들었다”고 웃으며 말하더군요.
확실한 춤꾼들이 있어요. 춤은 노력으로 안 되는 것도 있음을 보여주는 친구들이죠. 그럼에도 노력하다 보면 나만의 무언가를 찾게 되는데 그 과정이 가장 흥미로워요. 끊임없는 노력의 원천은 예술에 대한 존경입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볼 때 본인의 가장 큰 업적은 무엇인가요?
한곳에서 20년간 일했어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좋아도 싫어도 버텨내고 살아내고, 그래서 사람들의 시선도 온전히 즐기고 듣기 어려운 말도 흔들림 없이 받아들일 만큼 단단하지만 유연해진 나! 장인이 된 것 같은 느낌이죠!

무엇이 두려웠고, 어떻게 극복하려 하나요?
나이 들수록 많은 부분이 두려워요. 그렇지만 그 두려움을 다 극복할 수 있는 발레리나로서의 20년 치 경험이 제게 있죠.
어떤 사람을 존경하나요?
매일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 타인 앞에서나 뒤에서나 똑같은 사람.
발레리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묻자 “신체 조건, 체력, 정신력 모두 빼놓을 수 없지만 무용수가 된 후에는 상상력이 가장 중요하다”고 답했죠. 상상력은 어떤 의미인가요?
생각하길 좋아해요. 왜 그렇게 됐는지 알고 싶고 다르게 볼 순 없을까 고민하죠. 결국엔 관객에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정확히 간결하고 임팩트 있게 전하기 위해서예요. 하지만 그 상상에서 나를 배제해야 관객에게 가닿을 수 있어요. ‘나라면?’을 빼야 하는 순간··· 어렵죠. 내가 슬퍼하면 장면의 슬픔은 관객에게 닿지 않아요. 감성적인 장면엔 오히려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이성과 감성의 줄다리기가 팽팽해야죠. 가끔 특정 안무가들과 새 작품을 만들기가 어렵기도 해요. 안무가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야 제가 작품 속에 녹아들어 뮤즈가 될 수 있는데, 어떤 안무가들은 밑도 끝도 없이 제가 만들어내길 바라고 상상력의 소스가 없거든요.

후배를 발굴, 양성하고 도움을 주고자 설립한 비영리단체 ‘사단법인 서희’의 대표죠. 현역으로 활동하면서도 재단을 운영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요.
재밌어요. 물건을 찍어내듯이 이걸 잘해내야겠다, 성공해야겠다가 아니라 즐거움과 책임감을 선사하니까요. 10년 전에 장학금을 받은 친구들이 발레단에서 활동할 만큼 자랐어요. 알 만한 한국 무용수 중에 우리 재단을 거치지 않은 친구가 없을 정도니 자랑스럽죠. 제가 대단해서 남과 나누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시기를 거쳤지만 1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왔기 때문에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고, 저 또한 칭찬하고 싶어요.
사단법인 서희에서 가장 주력하는 프로그램은 무엇인가요?
시간이 귀해 중요하지 않은 일은 하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프로그램이 아주 많지는 않아요. 한 해로 살펴보면, 8월에는 한국 내에서 학생들을 선발하는 ‘YGP Korea’, 11월에는 무료 마스터 클래스가 있고, 4월에는 미국에서 열리는 파이널 무대에 전년 8월에 선발된 학생들을 보냅니다. 올해 재단 설립 10주년 기념 공연을 올렸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앞으로도 매년 재단이 지원하는 무용수들과 공연을 기획하려고 합니다.
가장 단기적인 목표와 가장 장기적인 목표는 무엇인가요?
단기는 오늘을 열심히 살자. 장기는 오늘 내린 나의 결정이 행복을 향한 결정이었기를 바랍니다. VK
ART & CULTURE
“일상에서 발레가 보편화되길 바랍니다. 현대인에게 얼마나 좋은 운동인데요!” 10년 전 국립발레단의 강수진 예술감독을 인터뷰할 때, 그녀는 발레야말로 우리에게 절실하다고 피력했다. 그때만 해도 발레는 우아함을 넘어 고고한 이미지, 높은 기술적 난도 때문에 선택받은 자만 입성 가능한 이상향으로 여겼고, 우리는 관람 예술로 만족했다. 하지만 최근 셀러브리티를 비롯한 많은 이가 일상에서 발레를 시도하고 있다. 발레야말로 현대인의 욕구를 충족하는 움직임이기 때문이다. 전신의 근력, 유연성, 균형 감각을 높이고 체형 교정에 유용하다는 신체적 이점 외에도, 춤과 음악, 패션이 함께해 자기표현이 가능한 매체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너 뷰티’, 동적이되 정적인 발레를 통해 내적으로 몰입하며 명상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바야흐로 명상의 시대 아닌가. 발레의 친밀한 확장을 반가워하며, 그 절정에 있는 발레리나와 패션의 만남을 주선했다. 아메리칸 발레 시어터 수석 무용수 서희, 영국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이상은, 파리 오페라 발레단 에투알 박세은, 이들이 펼쳐내는 춤 한 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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