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자벨 마랑이 킴 베커에게
“프랑스 사람도 아닌 내가, 죽여주는 파리지앵 브랜드를 맡게 되다니.” 지난 3일, 2026 봄/여름 이자벨 마랑 쇼의 피날레에 단독으로 선 킴 베커(Kim Bekker)는 지난 세월을 단 한마디로 압축했다.

2006년 네덜란드 남부 출신의 킴은 이자벨 마랑에 지원했지만, 프랑스어의 장벽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포트폴리오는 이자벨 마랑의 마음을 움직였다. “제 작업을 마음에 들어 했고, 대화가 잘 통했어요.” 2년 뒤, 피비 파일로 시절의 끌로에에서 일하던 킴은 ‘모르겠다, 그냥 해보자’는 배짱으로 이자벨 마랑에 전화를 걸었다. 프랑스어 실력도 짧은 대화를 나눌 만큼은 늘어 있었다. “그해 가을부터 단기 계약으로 일하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어요.” 다른 브랜드의 제안도 있었지만 킴은 직감에 따라 이자벨 마랑으로 향했다.
바캉스를 앞두고 처음 스튜디오를 찾았을 때, 지하 빈티지 아카이브에서 이자벨이 걸어 나왔다. 머리를 두 갈래로 땋고, 버켄스탁을 신은 채 담배를 물고 있었다. “느낌이 좋군. 휴가 끝나고 봐요.” 킴은 그 장면을 아직도 선명히 기억한다. “이자벨은 수줍은 사람이 아니었어요. 아주 분명했고 직설적이었죠.” 이자벨도 그때를 떠올렸다. “놀랄 만큼 취향이 닮았고요.”

그날 이후 킴은 피팅 자리에서 이자벨의 코멘트를 귀담아듣고, 퇴근 후 프랑스인 남자 친구에게 그대로 흉내 내며 물었다. “이 말은 무슨 뜻이야?” 언어가 완벽하게 통하지 않았지만, 킴은 손끝으로 대화했다. “결국 몸짓이 이자벨을 이해하는 진짜 언어였어요.” 말보다 빠른 손짓과 눈빛이 오가는 현장이었다. 킴은 그 치열한 틈에 자연스럽게 섞여 들었다. “이자벨은 뭘 원하는지 명백해요. 그건 언제나 머릿속에 있죠. 저는 그걸 읽어내야 했어요. 그래서 손끝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웠죠. 이자벨은 말로 설명하지 않고, 몸으로 말해요.” 이자벨이 웃음을 터뜨렸다. “맞아요. 난 성급해서 원하는 건 곧바로 표현해버리거든요.”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생 로랑에서 일한 기간을 제외하면, 킴은 줄곧 이자벨과 일했다. 피팅 현장과 제작실, 런웨이 뒤쪽을 오가며 지난 4년간 이자벨의 거울이자 스파링 파트너로 브랜드의 핵심을 구축했다. 이번 피날레는 그 세월의 무게가 뒤집힌 순간이었다. 이자벨 마랑은 1995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세운 후 처음으로 무대 인사를 하지 않았다. 백스테이지 한쪽에서 킴을 바라볼 뿐이었다. 요란한 포옹도, 눈물도, 연설도 없었다. 대신 웃음과 박수, 여유가 흘러나왔다.

“평생 패션의 광적인 리듬 속에서 살고 싶진 않았어요. 언젠가 한발 물러서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만 바라보며 지금 같은 역할은 내려놓고 싶었죠.” 이자벨은 담담했다. “지난겨울 우리 모두 일종의 번아웃 상태였어요. 그 순간 저는 인정했어요. ‘그래, 나는 휴식이 필요하고 브랜드에는 또 다른 에너지가 필요해’라고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준비한 일이에요. 거창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킴이 이어받았다. “결국 중요한 건 얼굴이 아니라 브랜드잖아요.”
이자벨 마랑의 매력은 자유분방한 태도나 파리지앵 정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여성에 의해, 여성을 중심에 두고, 여성을 위해 만든 브랜드라는 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이자벨은 늘 솔직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하는지에 대한 명료한 정직함이 있었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개념과 이론으로 옷을 설명할 때, 이자벨은 실용적인 질문을 던졌다. ‘이 옷을 입고 더 나은 하루를 보낼 수 있을까?’ 킴 역시 그 철학을 그대로 계승했다.


“이자벨이 저를 불러 일하게 했고, 제가 이 끝내주는 멋진 파리지앵 브랜드를 맡게 된다는 걸 믿어줬어요.” 킴은 웃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 브랜드를 구현해온 사람의 뒤를 잇는 건 무서운 일이죠. 그래서 우리가 만드는 게 진짜여야 해요. 이자벨은 ‘좋아’ 아니면 ‘별로야’예요. 단호하죠. 일할 때면 늘 제 머릿속에서 이자벨의 목소리가 들려요. ‘그건 안 돼, 다시.’”
“지난 10년 동안 이런 변화가 올 것을 짐작하고 있었어요.” 쉰여덟의 이자벨은 나지막이 말했다. “사람은 자기 시대에 속한다고 믿어요. 그렇게 많은 나이는 아니지만, 젊은 세대의 에너지는 다르죠. 그 세상을 여전히 이해하지만, 이제는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고 느껴요.” 이자벨 마랑은 이제 주 3일 회사에 나올 예정이다. “가능한 한 킴을 돕고 싶어요. 킴은 1년에 열 개의 컬렉션을 만들어야 하거든요. 실루엣을 리서치하고, 매장도 살펴볼 거예요. 이제는 컬렉션보다 그런 일에 더 관여하려고요.”
킴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고백하듯 말했다. “이건 제 일부가 됐어요. 이자벨의 가치를 이어가면서 지금을 나란히 걷고 싶어요. 브랜드를 입는 사람들에게 여전히 현실적이고 솔직한 방식으로 다가가기 위해서요. 요즘 젊은 세대는 우리 웨지 스니커즈로 브랜드를 다시 발견하고 있어요. ‘세상에, 이것도 이자벨 마랑이야?’ 하고 놀라죠. 그게 좋아요. 어딘가 언더그라운드 브랜드처럼 느껴지거든요. 그 감각을 지키는 게 중요해요. 다른 럭셔리 브랜드처럼 되고 싶진 않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이자벨이 이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사실은 여전히 유효해요. 5년이나 10년 뒤에도, 언제나 변치 않는 사실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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