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shion

로저 비비에의 새로운 집에서 벌어진 일

2025.10.21

로저 비비에의 새로운 집에서 벌어진 일

과거와 현재가 함께 숨 쉬는 로저 비비에의 집.

1953년부터 1963년까지 디올 쇼 신발을 디자인했던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지금도 회자되는 이브 생 로랑 1965 가을/겨울 컬렉션(흔히 ‘몬드리안 쇼’라고 불린다) 신발 디자인을 담당했으며,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용 신발도 만들었다. 신발을 액세서리가 아니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그는 로저 비비에(Roger Vivier)다.

스틸레토 힐의 창시자로 불리는 그는 1937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한다. 당대 최고의 디자이너들을 위해 신발을 만들고, 카트린 드뇌브와 오드리 헵번 등의 발끝을 장식했던 로저 비비에가 센강 앞에 새로운 공간을 마련했다. 1729년 지은 한 호텔을 개조해 완성한 ‘메종 비비에’다. 하우스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메종 비비에가 지난 10월 2일 베일을 벗었다.

지난 파리 패션 위크 일정 중 방문한 메종 비비에는 고풍스러운 외관이 눈에 띄었다. 거대한 유리문을 열자, 1990년대를 풍미했던 모델 이네스 드 라 프레상주의 큐레이션으로 완성된 ‘르 살롱 드 레리타주(Le Salon de l’Héritage)’가 환영 인사를 건넸다. 로저 비비에 하면 먼저 생각나는, 직사각형 모양 버클이 달린 벨 비비에(Belle Vivier)는 물론 쉼표를 형상화한 버귤(Virgule) 힐 등 하우스 아이콘을 감상할 수 있는 이 공간은 ‘슈즈 박물관’이나 다름없다. 르 살롱 드 레리타주에서 나와, 어딘가 비밀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철문을 거쳐 계단을 내려가자 또 다른 역사가 눈앞에 펼쳐졌다. 특정 온습도가 유지되는 ‘라 살 데 자르쉬브(La Salle des Archives)’에는 벨 비비에를 신은 모델이 커버를 장식했던 미국 <보그> 1965년 9월호 원판부터 1,000켤레 이상의 슈즈가 세세하게 분류·보관돼 있었다.

로저 비비에의 과거를 지나 나선형 계단을 오르자, 2018년부터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고 있는 게라르도 펠로니(Gherardo Felloni)가 전개 중인 하우스의 현재가 우리를 맞이했다. 벨 비비에 탄생 60주년을 기념하는 ‘벨 비비에 60’ 컬렉션이다. 펠로니는 이국적인 소재로 제작하거나 버클 장식에 특별한 디테일을 더해 불멸의 아이콘 같은 이 신발에 동시대성을 불어넣었다. 그러니까, 메종 비비에는 그 자체로 하나의 ‘매니페스토’다. 자신들이 100년 가까이 축적한 유산을 소중히 간직한 채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선언문 말이다. V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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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GER VIV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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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GER VIVI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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