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웅크리고, 비틀고, 기대앉고, 안토니 곰리의 인간

2025.10.24

웅크리고, 비틀고, 기대앉고, 안토니 곰리의 인간

올해 9월 초 미술주간은 이제 잊힌 듯하지만, 한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열린 안토니 곰리(Anthony Gormley) 전시는 여전히 기억되고 있습니다. 타데우스 로팍 서울, 화이트 큐브 서울, 그리고 뮤지엄 산까지, 2개의 갤러리와 하나의 미술관이 의기투합해 비슷한 시기, 한 작가의 개인전을 함께 선보인다는 건 흔한 일은 아니니까요. 도시와 환경이라는 공적인 공간과 인간의 몸이라는 내밀한 안식처, 둘의 연관성이 다채로운 지형도를 그려내는데요. 덕분에 우리는 각기 다른 에너지를 지닌 곰리의 신체 조각들이 다른 공간과 교감하며 형태와 장, 주체와 환경의 구분을 무너뜨리는 역동적인 풍경을 입체적으로 경험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영국 출신의 예술가인 안토니 곰리는 신체를 조각의 출발점으로 삼아, 감각과 인식이 발행하는 ‘공간’을 깊이 탐구해왔습니다. 그의 작업들은 인간의 몸을 선과 면으로 추상화함으로써, 인간 몸의 영역과 깊이, 그리고 위치한 공간과의 관계를 재정의합니다. 특히 서울에서 열리는 2개의 전시에서 작가는 도심 속 개인을 ‘살아 있는 조각’으로 바라보며, 존재와 공간 사이의 긴장과 균형을 사유하는 작업을 시도하는데요. <불가분의 관계(Inextricable)>라는 제목이 암시하듯, 인간의 신체와 서식지가 어떻게 함께 구성되는지 감각하도록 함으로써 “환경이 인간을 형성한다(The world now builds us)”라는 작가의 전언을 현실화합니다.

안토니 곰리. 타데우스 로팍 서울 제공.
안토니 곰리 개인전 ‘불가분적 관계’ 전시 모습. 타데우스 로팍 서울 제공.

이 매혹적인 ‘불가분의 관계’를 구현하기 위해, 곰리는 서울이라는 도시 및 전시장의 구조를 백분 활용한 작업들을 선보입니다. 이를테면 타데우스 로팍 전시장에서 곰리는 조각을 신체의 경계를 넘어 그것이 점유한 공간의 가장자리까지 확장시킵니다. 수평으로 혹은 수직으로 길게 뻗어간 빈 공간을 만들어낸 ‘여기(Here)’, 그리고 ‘지금(Now)’이 전시의 중심을 잡아주는데요. 인간의 신체가 공간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공간은 인간의 몸을 어떻게 품어내는지 느낄 수 있습니다. 한편 화이트 큐브 앞 인도와 차로 사이 연석 위에 세운 ‘몸틀기 IV(Swerve IV)’는 또 어떤가요. 길 가운데에서 보행자의 경로를 일시적으로 차단하고 그들의 일상에 순간 개입함으로써 인간과 예술, 예술과 도시의 감각 회로를 활성화합니다.

‘여기(Here)’, 2024, 8mm Corten steel, 233.8×769.5×211cm. 타데우스 로팍 서울 제공.
‘지금(Now)’, 2024, 8mm Corten steel, 274×594×216cm. 타데우스 로팍 서울 제공.
안토니 곰리 개인전 ‘불가분적 관계’ 모습. 화이트 큐브 제공.

안토니 곰리의 작업을 볼 때마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깊은 성찰을 제공하는지 새삼 깨닫게 됩니다. 각자의 몸은 각자가 지닌 가장 자유로우며 본질적인 공간이니까요. 나의 내면의 공간을 나를 둘러싼 환경, 도시라는 공간에 위치시킨다는 건 어쩌면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만, 그 자체로 숭고하다는 생각까지 듭니다. ‘도시의 지형은 단순히 인간을 둘러싼 환경이 아니라 우리 몸에도 흔적을 남긴다’는 전시 설명 글의 문장을 이렇게 바꿀 수 있겠더군요. ‘도시에서의 삶은 우리의 움직임과 내면의 감각적 지형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이죠. 우리의 몸은, 신체는 공간 안에 있기에 또 다른 공간을 만들어낼 수 있고, 이것이 바로 신체가 품은 가장 큰 가능성일 겁니다.

그래서일까요. 특히 저는 이번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곰리의 조각들에 마음이 가더군요. 타데우스 로팍의 ‘EARTH’와 화이트 큐브의 ‘쉼 XIII(Cotch XIII)’을 보면서, 다름 아닌 저 자신을 떠올렸습니다. 이들의 몸은 비록 정지되어 있지만, 가만히 보면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안과 밖을 끝없이 이어내고 있습니다. 몸을 매개로 세상을 이해한다는 곰리의 작업 세계는 세상에 앞서 나 자신을 이해하도록 이끕니다. 더욱이 이 연륜 있는 예술가는 웅크리거나 기대앉은 이들을 부러 일으켜 세울 필요가 없다고, 부드럽게 말합니다.

‘EARTH’, 2024, 8mm Corten steel, 69.3×48.6×69.5cm. 타데우스 로팍 서울 제공.
‘쉼 XIII(Cotch XIII)’, 2024, Cast iron, 76.4×57.7×56.1cm. 화이트 큐브 제공.

올가을이 가기 전, 뮤지엄 산에서 열리는 <드로잉 온 스페이스>전도 꼭 보고 싶어졌습니다. 서울 도심을 벗어나 강원도의 자연에 둘러싸인 이 미술관에서 곰리의 작업은 또 어떤 순간을 선사할까요. 물리적 공간과 상상적 공간이 어우러지며 또 어떤 풍경을 만들어낼까요. 화이트 큐브 서울 전시는 10월 18일까지, 타테우스 로팍 서울 전시는 11월 8일까지, 그리고 뮤지엄 산 전시는 11월 30일까지 계속됩니다.

‘Ground’, 안토니 곰리, 안도 다다오와 협업, 2025. 뮤지엄 산 제공.
‘Ground’, 안토니 곰리, 안도 다다오와 협업, 2025. 뮤지엄 산 제공.
안토니 곰리 개인전 ‘Drawing on Space’ 모습. 뮤지엄 산 제공.
정윤원(미술 애호가, 문화 평론가)
사진
타데우스 로팍, 화이트 큐브, 뮤지엄 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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