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서 한 번쯤 읽어야 할 최고의 로맨스 소설 10권
죽어서도 이어지는 사랑, 끝내 응답받지 못한 사랑, 금지됐기에 더 뜨거워지는 사랑… <보그> 프랑스가 선정한 ‘200년 동안 출간된 소설 중 가장 아름다운 로맨스 소설’을 소개합니다.

사랑은 ‘중요한 주제 중의 주제’라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사랑은 큰 열정을 불러일으키고, 위대한 작품을 탄생시키기도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랑은 ‘에로스’로 인간을 위대한 존재, 혹은 비열한 자로 만들기도 하는 마음이죠.
히스클리프와 캐서린의 억눌린 열정(<폭풍의 언덕>, 에밀리 브론테)에서, 정신병원에서 만난 사랑(<바이바이 블론디(Bye Bye Blondie)>, 비르지니 데팡트), 이페멜루와 오빈제의 엇갈린 운명(<아메리카나>,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에 이르기까지, 다소 주관적이지만 사랑을 가득 담아 선정했어요.
<제인 에어>, 1847 — 샬럿 브론테

1847년, 샬럿 브론테는 남성 필명 ‘커러 벨(Currer Bell)’로 그 유명한 소설 <제인 에어>를 발표합니다. <제인 에어>는 사랑 이야기이자, 주인공 제인의 ‘해방’ 이야기이기도 하죠. 소설 초반부는 그리 밝지 않습니다. 제인은 부모를 여의고 외숙모 집에서 학대받다 보육원 로우드(Lowood)로 쫓겨나고, 그곳에서 가장 친한 친구 헬렌 번스를 만나지만 그녀가 결핵으로 세상을 떠나는 비극을 겪기도 하죠. 그러나 역경 속에서도 성실히 공부해 모교에서 교사로 근무하고, 이후 가정교사로 채용된 손필드 저택에서 운명의 사랑 로체스터를 만나게 됩니다.
스미스, 엘더 & 코(Smith, Elder & Co.)에서 출간된 <제인 에어>는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의 영국에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주인공 제인 에어는 현대적이고 불복종적인 인물로, 자신의 독립을 거듭 주장하고 빅토리아 시대의 규범과 편견을 끊임없이 의심하는데도 말이죠. 이에 따라 제인 에어는 ‘시대를 앞선 페미니스트’의 대명사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이 첫 소설의 성공은 곧바로 샬럿의 자매들이 쓴 두 작품, 앤 브론테의 <애그니스 그레이>와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출간을 앞당기기도 했습니다.
<폭풍의 언덕>, 1847 — 에밀리 브론테

사랑은 사람을 어디까지 몰고 갈 수 있을까요? 영국 요크셔의 거친 자연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폭풍의 언덕>은 폭풍이 그칠 줄 모르는 황야처럼 언쇼(Earnshaw)가와 린튼(Linton)가의 격렬한 관계를 다룹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언쇼 씨가 데려온 고아 히스클리프와 그의 딸 캐서린 사이의 비극적인 사랑이 있죠. 발표 당시 반도덕적이라는 비난을 받았을 정도로 사랑에 빠진 인물의 강한 애증과 격정, 광기를 직설적으로 표현합니다.
30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난 에밀리 브론테의 유일한 소설인 <폭풍의 언덕>은 언니 샬럿마저도 ‘어쭙잖은 작업장에서 간단한 연장으로 하찮은 재료를 다듬어 만든 것’이라고 서문을 쓸 정도로 당시에는 외면받았죠. 그러나 빅토리아 시대의 교훈적이고 도덕적이던 사회적 분위기에도 인간 본성의 궁극적인 진실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20세기에 재평가되었습니다. 또 영문학 3대 비극으로 꼽힐 만큼 뛰어난 소설의 감수성과 강렬한 필치는 시대 규범을 뛰어넘는 한 여성의 열망을 상상하게 합니다.
<낯선 여인의 편지>, 1922 — 슈테판 츠바이크

슈테판 츠바이크의 <낯선 여인의 편지>만큼 집요한 사랑을 그린 이야기는 드뭅니다. 짧은 단편소설이지만, 이 목록에서 빼놓을 수 없었습니다. 츠바이크의 문장은 사랑의 큰 병폐 중 하나, 바로 ‘환멸’을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성공한 소설가 R의 애정을 굳게 믿는 ‘그녀’의 환멸이 아니라, 독자들의 환멸 말이죠. 독자는 읽는 내내, 평생 한 남자를 바라봤지만 기억조차 되지 못한 그녀에게 연민을 느끼게 됩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에 영향받은 슈테판 츠바이크의 탁월한 심리 묘사는 짝사랑의 고통을 겪어본 이의 가슴을 깊이 울립니다.
원어 초판본은 <말레이의 광인(Amok)>과, 한국어 번역본은 <체스 이야기>와 묶여 출간된 이 작품은, 8년 동안 7만 부 이상 팔리며 츠바이크의 첫 대중적 성공작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개츠비>, 1925 — F. 스콧 피츠제럴드

미국 드라마 <댈러스>와 <가십 걸>, 테일러 스위프트의 노래에 이르기까지. 개츠비라는 인물은 1920년대 미국 상류사회를 풍자하는 상징으로 대중문화에 깊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소설은 피츠제럴드의 젊은 날의 연인, 지네브라 킹(Ginevra King)과 1922년 롱아일랜드 노스쇼어에서 벌인 방탕한 파티들에서 영감을 받았죠. 롱아일랜드를 배경으로, 화자 닉 캐러웨이는 미스터리한 백만장자 제이 개츠비와 그의 옛 연인 데이지 뷰캐넌의 관계에 병적으로 집착하며 수소문합니다.
전작들과 달리 <위대한 개츠비>는 출간 당시 상업적으로 크게 실패했고, 1940년 피츠제럴드가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작품은 잊혔죠.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군 병사들에게 이 책이 무료로 배포되면서 상황이 반전됩니다. 1950년대 대중과 비평계의 급격한 재조명을 거쳐, 오늘날 미국 대중문화의 필수 고전이 되었습니다.
<오렐리앵>, 1944 — 루이 아라공

첫 이별을 겪고 루이 아라공의 <오렐리앵>을 읽는 것은 최악이거나, 최고의 선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만큼 이 소설은 이별 직후의 모든 감정을 활활 태워버립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대로 시인이기도 한 아라공의 초현실주의적인 문장 덕분에 <오렐리앵>을 읽는 동안 독자는 잃어버린 연인의 ‘유령’에 사로잡힌 듯한 감각을 맛보게 됩니다. 위로와는 거리가 멀지만, 그 아름다움과 서정으로 독자의 가장 깊은 슬픔까지 정면으로 끌어안습니다. 마치 눈물이 다 마를 때까지 울게 만든 뒤, 앞으로 나아가게 하려는 듯이요.
과거의 유령을 넘어, 아라공은 1920년대 파리의 젊은 부르주아 오렐리앵을 통해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상실감과 혼란, 흥청대는 사회의 공허함을 로맨틱하게 구현합니다. 부유층의 향락적인 생활, 복잡한 정치적 이해관계 등 실감 나는 시대 묘사는 작가 자신이 문학과 정치 맨 앞에 서서 레지스탕스로 활약한 인물이었기에 가능했어요. 실제 소설 속 오렐리앵의 친구 아르망은 아라공의 친구였다가 정치적으로 갈라선 프랑스 소설가 드리외 라 로셸에게 영감을 얻어 탄생한 인물이기도 합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1984 —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의 토마시와 테레자의 사랑 이야기는 어쩌면 평범하기에 더 아름답습니다. 전처와 이혼한 후 진지한 만남을 부담스러워하던 토마시는 테레자를 만나 자신의 신조인 ‘가벼움’을 어쩔 수 없이 거스르게 됩니다. 우연한 첫 만남 후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여행 가방만 들고 불쑥 찾아온 그녀에게 토마시는 ‘강물에 떠내려온 아기’ 같은 연약한 매력을 느꼈죠. ‘무거움’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던 그가 고아를 떠맡듯 그녀와 함께 살며 ‘무거움’을 택한 시기는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에 침공당하던 때였습니다. 프라하의 봄 이후 정치적 박해를 피해 프랑스로 망명한 체코 출신 작가의 경험이 녹아 있죠.
대중 노출을 꺼리는 쿤데라는 1984년 마지막으로 출연한 프랑스의 유명 TV 독서 토론 프로그램 〈아포스트로프(Apostrophes)〉에서, 그의 소설의 특징인 ‘에로티시즘’에 대해 언급하며 한 여성 독자가 보낸 편지를 농담 섞어 소개했습니다. 동유럽에서 온 반체제적 메시지를 기대했던 독자는 “서구 문학의 ‘성(性) 집착’에서 벗어나 쉬어가려고 했는데 기대와 달리 결국 읽은 건 ‘섹스, 오직 섹스뿐’이었다”라고 하죠.
<단순한 열정>, 1991 — 아니 에르노

“나는 작가이고, 창녀이고, 외국 여자이며, 또한 자유로운 여자다. 사람들이 소유하고, 과시하고, 위안을 받는 ‘사유재산’이 아니다.” 2001년 출간된 <탐닉(Se perdre)>의 단호하고 군더더기 없는, 아니 에르노다운 문장입니다. 이 책은 1991년 출간 직후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킨 <단순한 열정>의 모티브가 된 일기를 모은 책으로, ‘직접 체험하지 않은 허구를 쓴 적은 한 번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작가의 선언대로 과거 러시아 유부남 외교관과 나눈 연애를 적나라하게 다루며 품위 논란을 촉발하기도 했죠.
<단순한 열정>은 해부에 가까울 정도로 철저하게 객관화된 시선으로, 사랑에 의한 보편적인 열정을 분석합니다. 그녀의 정확하고 차가운 문장은 ‘이별과 외로움이라는 무익한 수난’을 겪은 모든 사람의 속내를 대변하죠.
스위스 TSR의 TV 문학 프로그램 〈오텔(Hôtel)〉에 출연한 에르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사랑에 빠진 여성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것은 완전한 변신이자 무엇보다 ‘기다림’, 오늘의 운세를 들여다보는 일, 나와 같은 사랑을 다룬 책을 찾아 헤매는 일 같은 것의 연속이었습니다.”
<바이 바이 블론디(Bye Bye Blondie)>, 2004 — 비르지니 데팡트

수많은 ‘불가능해 보이는’ 사랑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바이 바이 블론디>의 뿌리에는 계급 투쟁이 놓여 있습니다. 비르지니 데팡트의 여섯 번째 장편인 이 소설에서 작가는 펑키한 주인공 글로리아를 탄생시키죠. 부모에 의해 정신병원에 감금된 그녀는 출구 없는 공간에서 낭시의 대부르주아 가문 출신인 에릭을 만납니다. 불붙듯 시작한 그들의 사랑은 중간에 끊어졌다가 수년 뒤 다시 이어지지만, 그녀는 실업수당으로 연명하는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그는 유명한 TV 진행자가 되죠. 저자는 2012년 이 작품을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직접 연출하며 동성 서사로 바꿨고, 프랑스에서 악동으로 유명한 베아트리스 달이 글로리아 역을 맡았습니다.
*<바이 바이 블론디(Bye Bye Blondie)>는 현재 한국어 역본이 없으며 프랑스어 원서와 영어 역본이 있습니다.
<아메리카나>, 2013 —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세 번째 소설 <아메리카나>는 한번 잡으면 좀처럼 내려놓기 어렵습니다. 2013년 출간된 이 작품은 성장 서사와 맹렬한 연애 소설의 결을 동시에 지닙니다. 나이지리아의 젊은 여성 이페멜루가 대학 진학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했다가,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기까지의 궤적을 따라가며, 고등학교 동창 오빈제와의 사랑이 바탕을 이뤄요.
작가의 설명에 따르면 ‘아메리카나(Americanah)’는 미국으로 갔다가 돌아온 나이지리아인을 가리키는, 다소 비아냥거리는 뉘앙스가 담긴 말입니다. 미국식 억양으로 말하며, 나이지리아의 방언을 이해하지 못하는 척하는 사람들을 가리키죠. 이처럼 ‘아메리카나이제이션’은 작품의 핵심 주제 중 하나입니다. 미국이 희망과 부의 상징이자, 결국은 실망의 상징이 되기도 하는 현실 속에서 뿌리와 과거를 갈망하지만 끝내 손에 잡히지 않는 것들에 대해 사유하게 합니다.
<왕만큼 부유하게(Aussi riche que le roi)>, 2021 — 아비가일 아소르

이 작품을 로맨스 소설 범주에 넣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1990년대 모로코 카사블랑카 빈민가의 사라와 왕만큼 부유한 드리스의 관계는 설명하기 어렵기에 더 들여다보게 되죠. 권력과 경제, 계급을 넘어서기 위해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연합 속으로 온몸을 던지는 두 사람의 절박함 때문일까요? 원래대로라면 피어날 수 없었을 감정이 자라나는 방식 때문일까요? 혹은 소설이 전형적이고 관습적인 사랑 이야기의 외피 아래, 억압적인 시대 속 개인에게 허락된 선택의 협소함을 날카롭게 비추기 때문일까요?
<왕만큼 부유하게>는 폭력으로 너덜너덜해진 세계에서 안식처를 찾으려 애쓰는 두 인물의 (‘거의’ 사랑이라 부를 수 있는) 이야기를 읽기 위해, 동시에 절대 사그라지지 않는 태양 아래 펼쳐지는 1990년대 모로코의 풍경과 그 햇볕 아래서 타오르는 인간의 열정을 그려낸 장대한 프레스코화를 보기 위해서도 읽어야 합니다.
*<왕만큼 부유하게(As Rich as the King)>는 현재 한국어 역본이 없으며 프랑스어 원서와 영어 역본이 있습니다.

샬롯 브론테제인에어
(2004, 민음사)
구매하러 가기
에밀리 브론테폭풍의 언덕
(2005, 민음사)
구매하러 가기
슈테판 츠바이크낯선 여인의 편지
(2010, 문학동네)
구매하러 가기
F. 스콧 피츠제럴드위대한 개츠비
(2023, 열림원)
구매하러 가기
루이 아라공오렐리앵
(2023, 창비)
구매하러 가기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2009, 민음사)
구매하러 가기
아니 에르노단순한 열정
(2012, 문학동네)
구매하러 가기
비르지니 데팡트바이 바이 블론디
(2016, 페미니스트 프레스)
구매하러 가기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아메리카나
(2019, 민음사)
구매하러 가기
아비가일 아소르왕만큼 부유하게
(2023, 푸쉬킨 프레스)
구매하러 가기
최신기사
추천기사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