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 포티의 변명, 우리는 왜 ‘영 포티’가 되었나
밈이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그는 다만 하나의 40대에 지나지 않았다.

10월 1일, 조나단 앤더슨, 내 꿈의 남자가 회색 베스트에 보타이를 맨 블랙핑크 지수와 머쓱히 웃고 있다. 이 수줍은 내향인이 로에베를 떠나 크리스챤 디올의 여성복, 남성복, 오뜨 꾸뛰르의 총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됐다. 그리고 이어지는 각국 앰배서더와의 촬영. 컬렉션 준비보다 스포트라이트 받는 일정이 고돼서 앓아누웠을지 모른다. 단출한 외양인데 어찌 그런 창의성과 세련미가 넘치는지, 신기해하다가 팬이 되었다. 일가를 이룬 그의 나이 41세. 두 살 동생아, 환영한다 디올, 그리고 40대.
2026 봄/여름 컬렉션을 통해 데뷔를 치른 14개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중에는 40대가 꽤 눈에 띄었다. 그들은 나를 모르지만, 또래 친구들이다. 샤넬의 아티스틱 디렉터 마티유 블라지(41세), 메종 마르지엘라의 글렌 마르탱(42세), 구찌의 뎀나(44세), 로에베의 잭 맥콜로(47세)와 라자로 에르난데스(46세), 베르사체의 다리오 비탈레(42세), 질 샌더의 시모네 벨로티(46세).
그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So what? 하긴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그런데 한국은 여전히 구구절절 나이와 세대 타령이 끊이지 않는다. 가을이 오며 ‘영 포티’ 밈을 접했다. AI가 생성한 영 포티 남성은 스냅백을 쓰고 조던을 신고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 음악에 맞춰서 춤을 췄다. 배가 나왔고 자세히 보니 한 손에 아이폰 17 프로 오렌지색이 들려 있다. 댓글이 달린다. “아이폰이 부장님 폰이 됐네. 갤럭시엔 기회군요.”
영 포티는 10여 년 전 나온 마케팅 용어로, 자기 관리를 잘해 젊어 보이는 40대를 의미했다. 지금은 조롱의 대상이다. 젊은 척하려 애쓰고, 젊음을 강요하는 세대란다. 마의 손처럼 그들이 선택한 아이템은 순식간에 촌스러운 것이 돼버렸다. 애널리스트들은 호카의 주가가 떨어진 이유는 영 포티가 신어서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2020년 지드래곤이 입었던 회색 카디건을 걸치고 옆구리에 클러치를 낀 ‘양아치 밈’이 떠오른다. 이 정도 귀여운 그림은 웃어넘길 수 있지만(브랜드 입장에선 아니겠지만), 영 포티에 대한 조롱은 더 심하다.
하긴 우리가 세대 갈라치기를 멈춘 때가 언제던가. X세대부터 밀레니얼, MZ, 영 포티, 하나라도 더 팔기 위해 마케터들이 고민해 만든 집단군을 두고 왈가왈부할 일인가. 그러려니 하다가 AI가 묘사한 여성 영 포티를 보고 긁혀버렸다. 그들은 따로 이름을 부여받았다. ‘82년생 김지영 포티’. 흰색 셔츠에 스카프를 하고 가방에는 라부부 참이 달려 있다. C컬 헤어 펌에 곧추세운 자세의 그녀가 은은히 웃고 있다. 뭔가, 나랑 닮았다. 저렇게 입고 저런 표정도 지었던 것 같다. 그게 우스워? 나 젊어 보이려고 애쓴 거야?
솔직히 오늘이 제일 젊다는 마음으로 산다. 안 그러면 속절없는 세월이 슬퍼서다. <슈퍼맨이 돌아왔다>의 추사랑이 다 커서 모델 데뷔 하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먹먹해진다. 사랑아, 너 잡지 촬영할 때 내가 코 닦아준 이모다. 모두 성장하고 있는데 나만 멈춘 것 같다. 1990년대 빅 브랜드에 20~30대의 천재로 등장한 알렉산더 맥퀸, 존 갈리아노보다 지금 새로운 하이레벨이 된 40대 디자이너들이 더 부럽다. 동년배니까. 난 뭐 했지? 아, 난 재주가 없구나. 그저 직장력이 조금 올라간, 군살이 붙은, 요가 하는 40대구나. 비교의 슬픔은 다른 세대도 비슷한가 보다. 아트 페어에 동행한 작가가 동갑인 1964년생 우고 론디노네의 그림을 보면서 말했다. “이 사람이 세계적인 작가가 될 동안 전 뭘 했을까요?” 우고 론디노네가 루체른에서 늦둥이를 보고 행복에 겨워 그렸다는 핑크색 풍경화였다. 작품은 정말이지 포근해 보였고, 그녀는 슬퍼 보였다. 사실 우리와 ‘난사람’을 어찌 비교하겠는가. 내 굴레에서 나름의 행복으로 살면 된다. 그들이 미혹되지 않는 마흔을 맞이할 때 나처럼 평범한 인간은 ‘나이×0.7’의 법칙을 적용해야 한다. 그러면 서른 청춘이다. 혹시 이런 게 저들이 조롱하는 영 포티인가.
다시 82년생 김지영 포티 사진을 본다. 한 손에 체인점 커피가 들려 있다. 미국에서 해당 커피 브랜드가 속절없이 문을 닫는 마당이다. 가만 보면 AI가 생성한 영 포티의 이미지에 세련미는 없다. 한때 추종되다 쓸쓸한 유행의 그림자가 된 아이템만 있을 뿐. 이런 비슷한 여자 그림을 20년 전에도 본 적 있다. 일간지에 ‘된장녀’ 삽화가 실렸는데 같은 테이크아웃 컵을 들고 있었다. ‘밥보다 비싼 커피’라는 캡션과 함께. 커피 가격은 지금과 비슷하니, 2000년대 초에는 정말 밥값 정도였을 거다. 기사는 된장녀, 고추장녀, 골드미스, 실버미스 같은 신조어를 1면에 걸쳐 분석했다. 골드미스는 뮤지컬을 원할 때 보고 실버미스도 취미는 같지만 밥값을 아껴 예매한다는 식이었다. 이런 기사가 실렸다니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세상에, 야만의 시절이었다.
이것만 봐도 조롱은 최소 20여 년째 이어왔다. 인터넷의 발달 때문일까. 익명으로 할 수 있어서? 눈을 마주치지 않고 평균 400타로 칼날을 쏟아낼 수 있어서? 물론 아래 세대는 언제나 위 세대에 반감을 갖고 반항하고 전복의 기회를 엿보았다. 메소포타미아 수메르 점토판에 ‘요즘 애들 버릇없어’가 써 있듯이 자연스러운 현상이고, 그래야 한다. 문제는 조롱과 혐오로 변질되고 특정 그룹마다 철새처럼 옮겨 다니며 갈등을 조장한다는 것. Z세대도 예외 없었다. 물어봐도 뻔히 쳐다보기만 한다는 ‘젠지 스테어’ 밈에 솔직히 동조했다. 요즘 애들 왜 그러냐며 동료들과 뒷담화도 했다. 듣던 친구가 한마디 했다. “걔도 이름 있어. 자꾸 젠지래.” 하지만 나는 그 나이대를 그냥 Z세대로 합쳐버렸다. 자아가 충만하고 그만큼 만만치 않으며, 디지털 네이티브인 만큼 현실에선 각종 어려움을 토하는 이들. 내가 화날 때 생각한 정의다. 이렇게 분류하니 그들을 대할 때 편해졌다(그러니 영 포티라 비난받아도 할 말 없다).
혈액형, 별자리에 이어 MBTI도 비슷하다. “MBTI가 어떻게 되세요?”는 “취미가 뭐예요? 어떤 일을 하세요?” 등의 귀찮은 절차를 생략하는 한마디다. 그 사람이 짓는 표정, 내는 에너지, 동작의 의미를 가늠할 필요 없다. MBTI에 따라 분류하고 그 틀에 상대를 맞춘 뒤 대적한다. 편하다. 사람마다 우물을 다 들여다볼 순 없지만 너무 단편적으로 정리한다. <케데헌>에 맞춰 춤을 추는 촌스러운 영 포티 캐릭터도, 현재의 40대를 말하는 편리한 한 줄이다.
미디어는 왜 영 포티가 멸칭이 됐는지 분석하기 시작했다. 혹시 MZ세대의 복수인가. 직장 생활도, 경제력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마용성’으로 가는 마지막 사다리를 탄 그들에게 느끼는 젊은 세대의 박탈감의 발로라고 했다. 그 분석은 분명 ‘포티’ 혹은 ‘피프티’가 했을 거다. 물론 덧붙인 문장은 공감 갔다. “우린 세대가 아니라 계층, 계급과 싸워야 합니다.” 영 포티는 ‘젊음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슬픈 운명’이라는 동정론도 있다. 청소년기에 IMF를 맞이하며 젊음을 향유하지 못했기에 지금 보상받으려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견해. ‘X세대’라는 카피(이병헌과 김원준이 나온 화장품 광고였다)와 함께 신인류로 대접받던 그들은 10대 시절부터 PC통신의 태동과 함께 온라인과 문화를 주도했는데, 그 오랜 왕좌를 다음 세대에게 내놓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런 식의 분석에 달린 댓글은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다.
내 의견도 다르진 않다. 한국 사회는 언제나 나이를 말해왔고, 우리뿐 아니라 어디든 세대 간 조롱을 하는 중이다. 영국 <인디펜던트>에는 ‘Z세대가 싫어하는 밀레니얼의 특징’ 기사가 실렸다. 발목 양말을 신고 베이지색 치노 팬츠를 입고 브런치에 목을 매며 아보카도 토스트를 주문한다고 비아냥거린다. 해외에선 영 포티의 자리를 밀레니얼 세대가 맡았나 보다.
나는 그저 이렇게 마음먹었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나처럼 쉽게 긁히는 자들은 좀 아프겠지만, 조롱은 또 다른 대상을 찾아낼 것이다. 이 거대한 불신과 혐오의 세상을 내가 어찌하겠는가. 다만 우리끼리 싸울 때, 이 세대 갈라치기를 이용하는 검은 무리들이 있다는 사실에 종종 억울해진다. 정치 팟캐스트에 나올 법한 음모론 제기도 영 포티의 특징이라 하니 말을 멈춘다. VK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아티스트
- 홍은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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