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와 호랑이는 언제부터 정다웠을까?
대중문화의 영향력을 새삼 실감하는 요즘입니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가 불러일으킨 돌풍의 양상은 일일이 꼽을 수 없을 정도지만, 특히 더피와 수지를 향한 인기는 더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대사 한마디 없이도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을 사로잡은 이들의 존재는 평소 별 관심이 없었던 조선 시대로 미술 여행을 떠나게 할 정도였지요. 리움미술관이 시의적절하게 기획한 <까치호랑이 虎鵲(호작)>전 소식에 망설임 없이 예매 버튼을 눌렀습니다. 할머니부터 손주까지, 3대가 모두 이 전시를 보는 데 적극 동의하더군요. <케이팝 데몬 헌터스>에 등장한 서울 곳곳을 임장하는 관광객처럼, 더피와 수지, 즉 역사 속 호랑이와 까치의 원류를 만나보자는 마음으로 미술관으로 향했습니다.


11월 30일까지 열리는 <까치호랑이 虎鵲(호작)>전은 호랑이와 까치라는 친근한 소재를 통해 한국인의 미의식과 해학, 시대적 풍자를 담은 전통 미술의 정수를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물론 단 7점만 소개되지만, 16세기부터 19세기에 이르는 옛 예술 속에서 까치호랑이가 어떻게 인식되고 존재해왔는지 일별하느라 꽤 오랜 시간 머물렀는데요. 특히 국내 최초로 소개되며 호작도의 원형으로 평가받는 1592년 작을 비롯해 19세기 신재현의 작품으로 추정되는 ‘호작도’, 추상 기법으로 표현해 일명 ‘피카소 호랑이’로 불리는 ‘호작도’, 단원 김홍도가 솜씨를 발휘한 ‘송하맹호도’까지, 그 스타일도 다양해 비교하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생각보다 많은 관람객과 함께 전시를 천천히 둘러보며, 여러 생각이 들더군요. 그동안 무심히 보아온 옛 그림 속 호랑이와 까치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라는 사실이 새삼스럽게 다가왔습니다. 산신이 까치를 시켜 호랑이에게 신탁을 전달했다는 민속신앙적 해석도 흥미로웠고, 호랑이를 탐관오리로, 까치를 민중으로 해석해 풍자했다는 것도 새롭게 알게 된 이야기입니다. 전형적인 까치호랑이와 더 자유로운 형태의 까치호랑이를 찾아내고, 어미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들을 하나하나 좇아가느라 그림 앞에서 꽤 오래 머물렀던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 당시 민화와 전통 회화, 문인화가 서로 뒤섞이며 영향을 주고받았다는 사실은 무척 고무적입니다. 요컨대 호피 장막을 그린 ‘호피장막도’도 처음 보는 작품이었는데요. 호피가 악한 기운을 물리친다는 벽사의 의미와 함께 다산 정약용의 시가 등장한다는 것도 놀랍더군요. 신분과 계층을 막론하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호랑이의 존재를 애정했고, 그렇게 조선 미술이 역동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을 겁니다. 문득 열심히 호랑이 그림을 그리던 어느 이름 없는 화공들이 떠올랐습니다. 이들은 수백 년 후 자신들이 그린 이 호랑이가 K-컬처의 아이콘이 될 것을 예상했을까요? 문화의 진정한 힘은 그 경계를 허물고 기꺼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 때 배가됨을, 우리는 일상에서 배웁니다. 오래된 까치호랑이 그림은 문화 예술의 유례없는 풍요 속에서 잊고 지내던 당연한 사실을 상기시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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