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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의 까마득한 백년 세월을 나의 하루로 만끽하기

2025.11.07

서울역의 까마득한 백년 세월을 나의 하루로 만끽하기

어떤 도시의 오래된 건축물은 그 이상의 가치를 지닙니다. 어느 건축물의 과거를 돌아본다는 건 그 자리에 머물렀던 존재를 통해 역사를 실감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죠. 올해가 옛 서울역이 탄생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되었는데요. 마침 옛 서울역사인 문화역서울284에서 11월 30일까지 <백년과 하루: 기억에서 상상으로>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전시가 열린다 해서 더욱 반가운 마음으로 향했습니다. 과연 서울역 앞에 서니 수십 년 전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서울역에 당도한 그날이 선명히 떠오르더군요. 가족과 함께였는지, 저 혼자였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분명한 건 이 건축물이, 그리고 이 공간이 서울의 근현대사뿐만 아니라 나라는 사람, 그리고 우리의 역사까지 모두 품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문화역서울284 ‘백년과 하루: 기억에서 상상으로’ 전시 모습.

서울역은 탄생한 이래 줄곧 근대화, 침략과 지배, 분단과 해방, 산업화와 민주화 같은 역사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1925년 ‘경성역’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해방 후 비로소 ‘서울역’이라 불리게 되었죠. 서울의 격랑을 견인하기도, 목격하기도 하는 한편 도시 관문의 기능을 충실히 이행해오던 서울역은 지난 2004년에 새 단장을 했습니다. 한편 1981년 문화재로 지정된 옛 서울역사는 복원을 거쳐 2011년에 복합 문화 공간 ‘문화역서울284’로 재탄생했습니다. 예상하겠지만, 284란 사적 번호를 의미하는데요. 즉 옛 서울역사의 굳건한 정체성을 잃지 않겠다는 의지가 담긴 이름인 셈이죠. 무엇보다 우리가 무시로 지나간 이 익숙한 건물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삶과 서사가 녹아 있는지 떠올려보는 것만으로도 이곳은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아주 특별한 공간으로 변모합니다.

문화역서울284 ‘백년과 하루: 기억에서 상상으로’ 전시 모습.
문화역서울284 ‘백년과 하루: 기억에서 상상으로’ 전시 모습.

<백년과 하루>전은 역사와 상상이 활발하게 교차하는 무대를 각 공간에서 펼쳐 보입니다. 맨 먼저 ‘엮어내는 기억’ 섹션에서는 옛 서울역사가 간직한 1백년의 기억을 정성스레 돌아보는데요. 김수자, 신미경, 이완, 권민호, 김병호, 이수경, 전혜주 등 현대미술 작가의 작품이 문화역서울284의 소장품, 사진, 그리고 영상 등을 예술적으로 엮어냅니다. 두 번째 섹션인 ‘이어지는 기억’에서는 켜켜이 쌓인 서사와 기억을 현재로 소환합니다. 옛 서울역은 당대인들에게도 진일보한 생활과 문화, 심미와 감성 등을 앞서 누릴 수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최초의 양식당 ‘그릴’을 운영했고, 대합실에서는 여행객들을 위해 신식 맥주를 판매하기도 했다는군요. 동시대 다양한 브랜드와의 협업으로 변모한 이곳에서 그때의 미각과 미감이, 기쁨과 환희가 생생하게 재현됩니다.

문화역서울284 ‘백년과 하루: 기억에서 상상으로’ 전시 모습.
문화역서울284 ‘백년과 하루: 기억에서 상상으로’ 전시 모습.

세 번째 섹션인 ‘읽어내는 상상’은 옛 서울역사에 가득한 무수한 이야기를 미래의 상상으로 견인합니다. 지금까지 그랬듯 앞으로도 이곳의 기억은 필연적으로 미래의 역사 속 크고 작은 서사로 펼쳐질 테니까요. 전시는 서울역을 배경으로 한 문학작품을 소개하는 한편 동시대 각 분야 필자(박솔뫼, 안희연, 윤혜정, 정성갑, 최유수, 국동완)의 문학적 상상력을 빌려, 여전히 도래하지 않은 내일을, 미래를 고스란히 기념합니다. 상상을 함께 읽는 이 공감의 장 중간에는 다름 아닌 <조선말 큰사전>이 놓여 있는데요. 일제강점기에 행방이 묘연했으나 해방 직후 역 창고에서 원고가 발견되며 비로소 세상에 나온 보물 같은 존재죠. 그렇게 이 역사적 사전은 언어와 상상, 그리고 시간의 관계를 증언하며 감동을 더합니다.

문화역서울284 ‘백년과 하루: 기억에서 상상으로’ 전시 모습.
문화역서울284 ‘백년과 하루: 기억에서 상상으로’ 전시 모습.

특히 이번 전시를 맞아 그동안 외부에 개방되지 않았던 옛 서울역과 신고속철도(KTX) 서울역사의 연결 통로를 최초로 선보였습니다. 서울역이라는 건축물을 매개로 서로 이어진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감각하듯, 고속철도를 이용하는 승객과 전시 관람객 역시 결코 서로 분리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시도라고나 할까요. 그 통로를 천천히 걸으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오랜 세월 묵묵히 살아남은 상징적 건축물을 향한 새로운 시선과 다정한 마음이 숱한 일상과 역사, 기억과 상상을 가장 소중한 오늘, ‘지금, 여기’에 빚어낸다고 말이죠. 꿈처럼 까마득한 1백년이라는 시간을 나의 하루로 만끽해 되살리는 순간으로 오래 기억될 겁니다.

정윤원(미술 애호가, 문화 평론가)
사진
문화역서울284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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