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을 넘어, 안토니 바카렐로가 만드는 영화?
안토니 바카렐로는 오랫동안 로스앤젤레스의 영화 같은 삶을 사랑해왔다. 이제 그는 패션을 넘어 자신의 취향을 담은 영화를 제작하고자 한다.

1990년대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이브 생 로랑이 되길 꿈꾸지는 않았을 거다. 1950~1970년대를 풍미한 패션 천재이자 현대 여성의 옷장을 구축한 디자이너로 일컬어지는 그는 1990년대에 이미 기성복 컬렉션을 어시스턴트에게 넘겼다. 그들은 부르주아 파리지앵의 우아함이라는 하우스 신조를 율법처럼 고수했다. 헬무트 랭의 미니멀리즘, 초기 마크 제이콥스의 그런지, 베르사체의 강렬한 글래머, 장 폴 고티에의 도발적인 유머, 요지 야마모토의 해체주의 등 1990년대를 경험한 세대에게는 더 새로운 자극이 넘쳐났다.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는 이탈리아 <보그>에서 뜯어낸 페이지를 침실 벽에 붙이며 디자이너가 된 미래를 꿈꾸는 타입의 10대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수학 시간에 공책에다 하이힐 따위를 그리는 쪽이었다. 바카렐로를 패션으로 이끈 것은 음악과 MTV로 대표되는 시각 문화였다. 1993년 ‘Violently Happy’ 뮤직비디오의 비요크와 1990년 ‘블론드 앰비션(Blond Ambition)’ 월드 투어 무대에서 고티에의 핑크 콘 브라를 처음 선보인 마돈나처럼 말이다.
“솔직히 학생 때는 이브 생 로랑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 내년이면 생 로랑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한 지 10년이 되는 바카렐로가 고백했다. “아주 옛날 사람처럼 느껴졌거든요. 향수 브랜드 혹은 그가 제시해온 우아하고 세련된 여성상으로 더 익숙했죠. 하지만 고객들은 변함없이 그를 찾았고, 그 또한 시대를 초월하는 놀라운 여자들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 점이 정말 좋았어요. 요즘은 그가 완벽한 여성상에 몰두했던 1990년대에 더 관심이 갑니다. 당시 DNA를 오늘날의 여성에게 적용한다는 개념이 마음에 들어요. 예를 들면, 에러헌(Erewhon, 로스앤젤레스의 고급 식료품 마트)에서 마주칠 법한 여자를 위해 저지 요가복에 꽃무늬를 더하는 거죠.”
지금 우리가 에러헌에 있는 건 아니지만, 거리 풍경이나 인구밀도 측면에서는 그다지 다를 것도 없다. 웨스트 할리우드에 있는 샤토 마몽 호텔 정원의 야자수 사이로 늦봄의 시린 빛이 드리우고, 가벼운 운동복 차림의 몇몇 커플이 오트 라테를 마시고 있다. 바카렐로에게 알록달록한 람보르기니와 시끌벅적한 파티 피플로 번잡한 이 동네는 다소 부담스럽지만, 그는 달걀프라이와 슬라이스한 아보카도로 구성된 이 호텔의 전형적인 캘리포니아식 아침 식사를 좋아한다.
벨기에에 살며 시칠리아 출신 부모 밑에서 성장한 바카렐로는 1년에 두 번, 대체로 3월과 11월을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낸다. 여성복 쇼가 끝난 뒤 휴식과 재충전을 위한 것으로, 4년 전 아들 루카(Luca)가 태어나면서 갖게 된 전통이다. 바카렐로는 팬데믹 시기에 남편이자 디자인 파트너 아르노 미쇼(Arnaud Michaux)와 함께 콜로라도에서 대리모를 찾았다. 당시 캘리포니아의 대리모 대기 명단이 엄두도 못 낼 정도로 길었기 때문이다(프랑스에서는 대리모를 통한 출산이 불법이다). 이들 가족은 루카가 태어나고 첫 한 달을 로스앤젤레스에서 보낸 뒤 파리로 돌아갔다. 아이의 생모와 함께한 경험이 모두에게 뜻깊었기에, 지난해 딸 롤라(Lola)가 태어났을 때도 같은 방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바카렐로는 지난 몇 년간 가정을 꾸려나가는 동시에 자신이 이끌고 있는 패션 하우스의 문화적 영향력을 확장해왔다. 2023년 독립 영화 제작자를 후원하기 위해 생 로랑 프로덕션을 설립했으며,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단편영화와 장 뤽 고다르의 유작으로 시작을 알렸다. 2024년 칸영화제에서는 생 로랑 프로덕션이 제작한 세 편의 작품이 상영됐다. 자크 오디아르(Jacques Audiard)의 <에밀리아 페레즈>, 데이비드 크로넨버그(David Cronenberg)의 <더 슈라우즈>와 파올로 소렌티노의 <파르테노페>다. 늦여름에는 짐 자무쉬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를 베니스영화제에서, 클레르 드니(Claire Denis)의 <더 펜스>를 토론토영화제에서 첫선을 보였다.

바카렐로는 영화 의상을 디자인했다. 그런 점에서 생 로랑 프로덕션은 이브 생 로랑의 공연 영화 의상 디자인 작업의 연장으로도 볼 수 있다. 무슈 로랑의 디자인으로 유명한 루이스 부뉴엘(Luis Buñuel)의 1967년 작품 <세브린느>의 카트린 드뇌브 의상처럼 말이다. 그러나 바카렐로의 주된 목적은 좋아하는 예술가와 자신이 이끄는 하우스 사이에 접점을 만들어, 생 로랑을 패션 하우스를 넘어선 뭔가로 키우는 것이다.
“모든 것은 감독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바카렐로는 자신이 후원하는 작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어린 시절의 나를 성장시키고, 오늘날 내 관점을 형성시킨 인물들이죠. 보답의 개념은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그들이 하던 일을 계속하도록 돕는 것일 뿐이죠. 블록버스터는 후원하지 않습니다. 마블 시리즈에는 관심이 없거든요. 주로 독립 영화를 지원하지만, 동시에 생 로랑이라는 브랜드가 더 큰 주목과 사랑을 받으며 오래 지속되는 뭔가로 확장되도록 만드는 일입니다. 패션쇼를 하고 광고 캠페인을 찍는 것도 멋진 일이지만, 아무래도 일회성이니까요. 이렇게 말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영화는 20~30년이 지나도 여전히 남아 있겠죠. 생 로랑의 이름 역시 영화와 함께 있을 겁니다.”
생 로랑 프로덕션이 참여한 자무쉬의 영화는 제82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그는 2021년 브랜드를 위한 단편영화를 제작해달라는 제안을 받으며 처음 생 로랑과 인연을 맺었다. ‘프렌치 워터’라는 제목의 이 작품은 줄리안 무어, 샬롯 갱스부르, 인디아 무어, 클로에 세비니 등 쟁쟁한 출연진을 자랑한다. 이후 바카렐로는 그에게 광고 캠페인까지 맡겼다. 감독은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곧바로 바카렐로에게 연락했다. “미적으로 정말 완벽했습니다. 전적으로 나를 믿고 맡겨줬거든요.” 자무쉬가 당시를 떠올렸다. “5년 동안 새 작품에 들어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자금 조달 방식에 지쳐 있었죠. 주도권을 완전히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편이거든요. 예산 초과에 대한 압박이 심했고,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생 로랑은 영화 제작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에만 집중합니다. 영화계 사람들처럼 사사건건 한마디씩 보태면서 참견하지 않죠. 르네상스 시대 후원자를 가진 기분이랄까요?”
2016년 에디 슬리먼이 떠나고 후임으로 바카렐로가 합류했을 때, 생 로랑은 슬리먼이 로스앤젤레스의 음악계와 그곳에 사는 스타일리시한 젊은이들에게 매료되어 오픈한 로스앤젤레스 디자인 스튜디오를 폐쇄한 상태였다. 분명히 말하지만 바카렐로가 로스앤젤레스에 오는 건 일 때문이 아니다. 이 도시에서는 그다지 영감을 얻지 못한다. “늘 로스앤젤레스를 좋아했습니다. 쾌청한 날씨와 1950년대가 떠오르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있으니까요. 물론 지난 20년간 너무 많이 변했죠. 파리에서는 불가능한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 차이가 너무 커서 내게 꼭 필요한 시간이죠. 하지만 파리를 떠나서는 디자인 작업이 되지 않더라고요.”
43세의 바카렐로는 자신이 ‘구식’ 디자이너라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다. 유명 틱톡커의 환심을 사거나, 유행에 편승하거나, 온라인 바이럴과 잇 백에 의존하는 것을 거부한다는 뜻이다. 이 모든 것을 21세기 패션 게임이라고 느끼며, 그에 대한 경멸을 표하는 데도 거침없다. 내성적이고 상냥한 말투를 지닌 바카렐로는 존 갈리아노나 마크 제이콥스처럼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 않은데도 거대 패션 하우스를 장악했다. 유니폼처럼 청바지와 티셔츠, 낡은 운동화 차림을 고수하기에 자신이 디자인한 남성복을 입은 모습이 상상조차 되지 않는다. “난 이제 아빠예요. 반바지에 주황색 셔츠를 입을 이유가 있겠어요? 누구를 위해서?”
생 로랑에 오자마자 바카렐로는 흥미로운 인물들을 불러 모았다. 아르헨티나 출신 영화감독 가스파 노에(Gaspar Noé)와 배우 베아트리스 달, 샬롯 갱스부르를 시작으로 원조 생 로랑 크루의 확장판을 구성한 것이다. 원조 크루의 주요 멤버로는 브라질 출신 사교계 인사이며 인테리어 디자이너 프랑수아 카트루(François Catroux)의 아내인 베티 카트루(Betty Catroux), 영국계 프랑스 귀족 출신 주얼리 디자이너 룰루 드 라 팔레즈를 비롯한 드뇌브 3인방이 있다. 바카렐로는 조 크라비츠, 클로에 세비니, 기네스 팰트로 등 자신이 좋아하는 미국 배우와 헤일리 비버 같은 젊은 모델, 프랭키 레이더 같은 베테랑 모델과도 함께 일하며 가까워졌다.

“진정한 뭔가를 갖고 있는 진짜 셀러브리티죠. 인플루언서가 아닙니다.” 바카렐로가 말을 이었다. “자기 생각이 있고, 깊이가 있는 여성입니다.” 그는 팔꿈치 안쪽에 솜을 대고 붙인 테이프를 잡아당겼다. 그는 오늘 아침 로럴 캐니언에 임대한 주택에서 비타민 수액을 맞았다. 전형적인 할리우드식 자기 관리 방법이다. “멋쟁이가 되고 싶지 않습니다. 소셜 미디어에 끊임없이 등장하거나 팝업 스토어에 가고 싶지도 않고요. 생 로랑 고객이라면 그런 것에 끌리지 않습니다. 고상하고 품위 있으니까요. 앞서 말한 것들 전부 어리석게 느껴집니다. 럭셔리 매장 밖에 늘어진 줄은 전혀 럭셔리하지 않아요. 뭔가를 위해 줄을 선다는 생각 자체가 세련되지 않습니다.” 이브 생 로랑과 마찬가지로 바카렐로도 그런 여성에게 익숙해져 있다. 좋은 취향을 얻길 기대하며 브랜드를 찾는 게 아니라 이미 좋은 취향을 지닌 채 매장을 방문하는 여성 말이다.
“그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 잘 알고, 우스꽝스럽거나 유행을 따르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 옷을 고를 줄 압니다.” 바카렐로가 설명했다. “그런 여성에게서 더 많은 영감을 얻습니다. 젊음에 집착하진 않지만, 제대로 된 제품이라면 젊은 세대도 찾아오겠죠. 그렇다고 그들의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해 애쓰진 않아요.” 생 로랑의 꾸뛰르 작업실은 아직 닫혀 있지만, 바카렐로는 패션의 민주화 흐름을 안타깝게 여긴다. 패션은 본질적으로 엘리트주의라고 보기 때문이다. “패션이 점점 손에 넣기 더 어렵고, 개인적인 것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길 바라기도 하고요. 우리는 패션이 모두를 위한 것이고, 누구나 거대 패션 하우스의 옷과 가방을 살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어떤 면에서는 패션이라는 개념을 죽이고 있어요. 우리가 럭셔리를 대하던 과거 방식으로 돌아가길 바랍니다.”
이브 생 로랑은 여성에게 “클래식한 기본 의상”을 제공해 “찰나의 유행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한 적 있다. 그가 떠올린 옷장은 턱시도, 피 코트, 사파리 재킷, 팬츠, 팬츠 수트, 블레이저, 트렌치 코트 등 하우스에 명성을 가져다준 중성적인 코드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바카렐로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카이브를 연구했다. 매끄럽고 간결하며 쿨하고 매혹적인 무슈 로랑의 의상과 비슷하면서도, 동시대 세련된 여자들을 위한 유니폼을 구축한 것이다. “이브 생 로랑은 아주 많은 것을 다뤘습니다. 덕분에 그 안에서 흥미로운 것을 찾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일이 수월했어요. 그에게 패션은 결코 화려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각적인 반전이 있는 진짜 옷이었고, 입는 사람과 그 사람의 태도로 정의되는 것이었죠.”
바카렐로와 여러 차례 광고 캠페인 작업을 한 클로에 세비니는 창립자에게 경의를 표하는 그의 디자인 방식에 감탄한다. 9월 초, 그녀는 검정 레이스 보디수트에 짧은 새틴 벌룬 스커트를 입고 베니스영화제에 참석했다. 이 룩은 바카렐로의 2018 봄/여름 컬렉션으로, 이브 생 로랑의 1990 가을/겨울 쇼에서 모델 야스민 가우리(Yasmeen Ghauri)가 입은 의상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안토니의 옷에는 진짜 관능미가 있습니다. 누구라고 말할 순 없지만, 요즘 뜨고 있는 미니멀리스트 스타 디자이너들은 보여주지 않는 거죠.” 세비니는 말을 이었다. “그들은 여성의 몸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최근 컬렉션만 봐도 다른 사람들이 시도하지 않은 실루엣을 다뤘어요. 색상 조합이나 커다란 비즈 장식처럼 늘 무슈 로랑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모던한 느낌을 주는 약간 어둡거나 고딕적인 감성도요.”
6월 말 어느 오후, 바카렐로는 파리 부르스 드 코메르스(Bourse de Commerce)의 원형 홀에서 생 로랑 2026 봄/여름 남성복 컬렉션을 발표했다. 과거 곡물 거래소였으나 현재는 생 로랑의 모회사 케어링 그룹 소유주 프랑수아 피노의 아트 컬렉션을 소장하고 있다(같은 날, 몇 블록 떨어진 퐁피두 센터에서는 비욘세가 루이 비통 남성복 쇼에 참석해 큰 이슈가 되었다. 바카렐로는 이런 ‘구경거리’ 만들기를 기피하는 편이다). 부르스 드 코메르스에는 프랑스 음향 설치 작가 셀레스트 부르시에 무주노(Céleste Boursier-Mougenot)가 원형 수조 안에 띄운 도자기 그릇이 서로 부딪치며 청아한 소리를 내고 있었다. 피아노와 현악기가 만들어내는 애절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바카렐로의 모델들이 수조 주위로 천천히 원을 그리며 걸었다. 오버사이즈 선글라스를 코에 얹고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날렵한 어깨선과 잘록한 허리가 돋보이는 수트를 입고 있었다. 진한 자주색과 주황색, 연두색으로 구성된 팔레트는 지난 3월 선보인 2025 가을/겨울 여성복 컬렉션의 컬러 블록을 한층 차분하게 해석한 것이었다. 디자이너는 매번 대대적인 변화를 감행하는 대신, 성별을 넘나들며 하나의 쇼에서 다음 쇼로 아이디어를 증류하고 농축한다.
“내가 제시하는 남성상이 여성에 비해 다소 약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쇼가 끝난 후 바카렐로가 말을 꺼냈다. “여자는 강하지만, 남자는 그녀들의 아들 같은 면이 있었죠. 남녀를 동일한 수준으로 맞추고 싶었어요. 그 결과 남자는 여자의 연인이나 친구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10대가 아니죠. 이제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대화할 수 있습니다.”
쇼 노트에는 1950년경 이브 생 로랑이 알제리 오랑에서 찍은 오래된 사진이 끼워져 있었다. 사진 속 소년은 밑단을 접은 주름 잡힌 반바지 아래 가는 허벅지를 훤히 드러내고 있다. 바카렐로는 이 사진이 시작점이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작은 환상이 펼쳐졌다. 만약 이브 생 로랑이 1970년대 뉴욕 파이어 아일랜드에서 여름을 보냈다면 어떤 모습일까? 무슈 로랑도, 바카렐로도 파이어 아일랜드에 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과 무관하게 말이다. 2025 가을/겨울 컬렉션에서는 생 로랑과 사진가 로버트 메이플소프의 만남을 상상했다. 한 명은 자신의 욕망을 사회적으로 수용 가능한 방식으로 승화시켰고, 다른 한 명은 욕망을 있는 그대로 분출한 예술가다. 2026 봄/여름 쇼에 초대받은 게스트 중 몇몇이 지난 컬렉션에서 선보인 남성용 가죽 싸이하이 부츠를 신고 있었다. 4,500달러라는 비싼 가격에도 해당 부츠는 매진되었다.
바카렐로는 이브 생 로랑 작업의 핵심 주제를 ‘성(Sex)’ 그리고 ‘거리감(Distance)’ 두 가지로 요약한다. “성과 수치심이요. 단정한 셔츠에 달린 리본을 잡아당기면 어느 순간 나체로 거울 앞에 서 있고, 헬무트 뉴튼이 그걸 사진으로 찍고 있는 거죠.” 바카렐로는 겉으로 보이는 표면적인 효과와 암묵적 발화(Non-dit) 사이의 긴장감을 높이 평가한다. 이런 긴장은 영화 <세브린느>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난 주제다. 영화에서 중산층 가정주부 세브린느 세리지는 성관계 없는 결혼 생활의 탈출구로 오후에는 사창가에서 일한다. 아름다움과 퇴폐에서 동일한 매력을 느낀 무슈 로랑은 카트린 드뇌브의 의상을 통해 그 분열을 드러냈다. 흰색 칼라와 소매가 달린 얌전한 검정 드레스에서 검정 비닐 트렌치 코트로 갈아입은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생 로랑의 이중성입니다.” 바카렐로가 말했다. “무척 섹시하면서도 차가움을 동시에 유지한다는 그런 아이디어요. 그녀를 가질 수 있다고 여기지만, 실제론 절대 가질 수 없습니다.”
바카렐로는 위태로움이 주는 전율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대부분 밤에 파리 건물이 뿜어내는 주황빛 광채의 위태로움, 로스앤젤레스와 그곳에서 일어난 악명 높은 범죄 역사의 위태로움, 아벨 페라라(Abel Ferrara)가 만든 네오누아르 영화의 위태로움, 마녀가 떠오르는 안젤리나 졸리의 스타일에 내재된 위태로움, 마약에 취한 1970년대 밤 문화의 위태로움 같은 거다. 모두 그가 하우스 창립자와 공유하는 감성이다. “이브 생 로랑이 1971년 ‘스캔들’ 컬렉션(당시 선보인 초록색 여우 모피 코트는 하우스의 상징이다)을 발표했을 때 모두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1940년대 매춘부에 대한 것이었으니까요.” 바카렐로가 말했다. “그들은 매우 자유로운 방식으로 옷을 입었고, 그건 꽤 매력적으로 다가왔습니다. 1990년대에 우리는 섹시한 제시카 래빗(Jessica Rabbit) 캐릭터를 보고 자랐습니다. 큰 가슴 사이로 십자가 목걸이를 늘어뜨린 마돈나도 있고요. 패션에서는 그런 종류의 나쁜 취향도 매우 중요합니다. 뭔가를 창조하려면 겪어야 하는 과정이죠.” 생 로랑은 스캔들 컬렉션을 준비할 당시 전후 시대 패션 아이템을 찾기 위해 플리 마켓을 샅샅이 뒤지고 다닌 친구 팔로마 피카소에게서 영감을 얻었다.
피부와 신체의 곡선을 찬양하고, 가죽과 레이스를 자주 활용하는 바카렐로 의상을 이야기하면서 어떻게 성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를 패션계 중심에 올려놓은 건 상반신을 가로지르는 사선 절개와 골반뼈가 드러날 정도로 슬릿이 깊이 들어간 흰색 실크 이브닝 드레스였다. 공개 직후 전 세계로 퍼져나간 이 디자인은 본인 이름을 딴 브랜드를 통해 선보였으며, 친구인 모델 안야 루빅이 2012년 멧 갈라에서 입었다.
루빅은 당시 바카렐로와 1990년대 대표 영화 <원초적 본능>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 기억을 떠올렸다. “많은 사람이 그의 옷을 보고 정말 섹시하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안토니는 그런 걸 원하지도, 의도하지도 않습니다.” 루빅이 강조했다. “크고 화려하다고 해서 도발적인 게 아니에요. 오히려 그의 의상은 절제하는 방식으로 도발했죠. 비율도 매우 중요하지만, 디자인을 이해하지 못하면 비율 뒤에 숨겨진 아름다움과 디테일을 놓칠 수 있습니다. 옷이 사람을 압도해서는 안 돼요. 만약 방에 들어오는 여성이 대담하고 자신감 넘치고 당당하다면, 그녀는 분명 섹시해 보일 겁니다.”
“즐거운 시절이었습니다.” 바카렐로는 드센 10대 무리에서 자랐지만 거친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회상했다. “바보 같은 짓도 많이 했죠. 직접 하기보다는 구경하는 쪽이었지만요. 마약도 하고 클럽에도 다녔지만 1990년대의 가벼운 방식이었습니다. 지금처럼 과격하지 않았어요. 요즘은 10대로 살기 무서워요. 그렇지 않나요?”
그의 부모는 시칠리아 남부 아그리젠토에서 벨기에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웨이터로, 어머니는 사무직으로 일했다. 바카렐로는 어린 시절을 아주 애틋하게 기억한다. 사랑이 넘치는 가족이 있고, 원하는 건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가득했다. 부모를 온전히 소유하는 외아들의 특권을 누렸고, 형제가 없어 친구를 사귀는 재능을 키울 수 있었다. 어릴 적 그는 부모, 조부모와 함께 매년 시칠리아를 방문했다. 그 시기의 이탈리아 음악은 그에게 여전히 달콤하면서도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지금 바카렐로는 매년 바로크식 건물과 아몬드 그라니타로 유명한 시칠리아 노토 외곽의 대저택에서 여름을 보내며 추억을 되짚어본다. 오랜 친구들을 초대해 ‘큰 바자회’라고 부르는 모임을 열기도 한다.
바카렐로가 성장하는 동안에는 누구도 성 정체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의 가족도,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일종의 암묵적 발화였습니다.” 그가 회상했다. “알면서도 신경 쓰지 않는 거죠. 친구들과 어울리면서도 자기 인생을 살 뿐 굳이 내가 게이라고 말하지 않았죠. 부모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무것도 묻지 않으셨으니까요. 이해해주셨을 거라 여기지만, 그에 대해선 한마디도 꺼내지 않으셨어요. 설명할 필요가 없으니 오히려 좋았습니다. 부모님이 천주교 신자여서 나는 세례도 받았어요.” 그는 마돈나로부터 천주교 신자이면서도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법을 배웠다. “마돈나에게는 늘 역설적인 면이 있습니다. 종교를 비판하면서도 여전히 믿음을 갖는 그녀의 태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죠.”
바카렐로는 늘 패션을 사랑했지만, 직업으로 상상해본 적은 없었다. “브뤼셀에는 패션이라고 할 만한 게 없습니다. 매우 실용적인 도시거든요. 다들 변호사나 의사가 되겠다고 하죠. 전혀 세련된 장소가 아닙니다. 그래서 벨기에 출신 디자이너가 많은 게 아닐까요? 거긴 너무 지루하니까요. 그렇다고 앤트워프를 꿈꾼 적도 없습니다. 브렌트우드와 웨스트 할리우드만큼 가까워서 기차로 겨우 30분 거리였는데도 말이죠. 말이 안 되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이랍니다.”
18세의 바카렐로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법대에 진학했다. 1990년대 법률 코미디 드라마 <앨리 맥빌>을 정말 좋아했는데, 그 정도면 괜찮은 이유라고 생각했다. “화장실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이 쿨해 보였어요.” 그는 변호사들이 커다란 공용 화장실에서 배리 화이트(Barry White)의 노래에 맞춰 립싱크를 하며 춤추는 드라마 속 장면을 언급했다. “변호사라는 직업에 그런 환상을 가진 거죠.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더군요. 정말 싫었어요.” 2년 만에 학교를 그만둔 그는 브뤼셀에 있는 예술 학교 라 캉브르(La Cambre)에 등록했다. 최근 프랑스 패션계는 이 학교에서 배출한 디자이너들이 이끌고 있다(바카렐로 외에 라반의 줄리앙 도세나, 꾸레주의 니콜라 디 펠리체, 샤넬의 마티유 블라지 모두 이 학교 출신이다). 앤트워프에 있는 왕립예술학교 출신으로는 드리스 반 노튼, 앤 드멀미스터 등 1980년대 ‘앤트워프 식스’로 유명한 디자이너들이 있다. 그러나 바카렐로의 상상 속 왕립예술학교는 지적이고 미니멀한 분위기이기에 그의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패션 학교에 갈 용기를 낸 건 1998년 마돈나의 ‘Frozen’ 뮤직비디오 의상을 제작한 올리비에 테스켄스 때문이었습니다. 그도 라 캉브르를 다녔죠. 아시다시피 나는 마돈나의 팬이잖아요! 당시 마돈나는 고딕 스타일을 추구했어요. 브뤼셀 출신인 테스켄스가 라 캉브르에 가서 마돈나 의상을 디자인할 수 있다면, 내게도 희망이 있다고 여겼습니다. 거기서부터 모든 게 시작됐죠. 마돈나, 올리비에 테스켄스, 라 캉브르.”
라 캉브르를 졸업한 바카렐로는 로마로 가서 펜디 디자인 팀에 합류했다. 그곳에서 칼 라거펠트의 스케치를 실제 모피 코트로 만드는 일을 담당했다. 동시에 자신만의 브랜드를 운영하기 시작했는데, 파리의 유명 바이어 마리아 루이자 푸마이유(Maria Luisa Poumaillou)의 후원으로 루빅 같은 모델들 사이에서 빠르게 팬층을 확보해나갔다. 2013년 도나텔라 베르사체가 베르수스의 책임자로 그를 영입했다. 로에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발탁된 조나단 앤더슨의 후임이었다. 그때만 해도 그에게 생 로랑은 아득한 꿈처럼 느껴졌다. 바카렐로는 자신의 브랜드도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하우스는 생 로랑이 유일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2016년 슬리먼에 이어 생 로랑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됐을 때 실제로 그렇게 했다.
“다른 후보는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생 로랑 CEO였으며 최근 구찌 CEO로 임명된 프란체스카 벨레티니(Francesca Bellettini)가 말했다. “그의 작업을 볼 때마다 동시대적이고 날카로우며, 시대를 초월한다고 느꼈습니다. 하지만 나는 디자인을 넘어 브랜드의 진정한 가치를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을 원했어요. 과거를 반복하기보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재해석할 인물이 필요했죠. 안토니는 자유, 우아함, 욕망이라는 생 로랑의 본질을 존중합니다. 내가 바란 건 혁명이 아니라 진화였습니다. 브랜드가 장기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절대적인 명확성과 일관성이죠.”
바카렐로와 나는 스시 파크(Sushi Park)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소박한 상점과 식당이 늘어선 선셋스트립 몰 2층에 위치한 작은 식당이다. 음식 평론가의 관심은 끌지 못했지만, 씀씀이가 큰 후디 차림의 스시 마니아와 영화배우의 데이트 장소로 수년간 사랑받아온 곳이다. 그리고 바카렐로가 로스앤젤레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레스토랑이기도 하다. “나 때문일지도 몰라요.” 그가 레스토랑 바깥으로 보이는 몇몇 망원렌즈에 대해 말했다. “내가 헤일리 비버를 이곳에 데려왔고, 그녀가 다시 킴과 켄달을 데리고 왔거든요. 그랬더니 파파라치가 모여들기 시작했죠.”
생 로랑 프로덕션은 그가 디자인 스튜디오를 벗어나 펼친 가장 야심 찬 프로젝트다. 하지만 그런 시도가 한 번으로 끝나진 않았다. 바카렐로는 파리 7구 그르넬 거리, 생 로랑 액세서리와 가방을 팔던 옛 매장 자리에 ‘바빌론(Babylone)’이라는 서점을 열었다.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끼는 예술가와 사진가의 작업을 조명하는 작은 출판사 ‘SL 에디션(SL Editions)’도 설립했다. 올 초에는 새롭게 단장한 생토노레 거리의 생 로랑 플래그십 스토어 지하에 스시 파크 분점을 열었다. 어두운 조명과 인테리어 덕분에 본점에 비하면 훨씬 세련된 분위기지만, 맛은 똑같다. 피에르 앙게 카를로티(Pierre-Ange Carlotti)가 촬영하고, 루데스 레온과 팔레스타인 출신 싱어송라이터 생 르방(Saint Levant)이 등장하는 단편영화를 통해 오픈 소식을 알리기도 했다. 생 로랑의 레스토랑다운 선택이다(기념품을 원한다면 온라인에서 흑단으로 만든 생 로랑 젓가락을 495유로에 구입할 수 있다).
“안토니는 좋아하는 것이 생기면 일단 그것을 공유하고, 투자하고, 지키고 싶어 합니다.” 조 크라비츠가 말했다. 둘은 바카렐로가 그녀에게 2017년 생 로랑 광고 캠페인 출연을 제안하며 처음 만났다.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브랜드에 반영하고 싶어 합니다. 생 로랑은 하나의 공동체예요. 우리 모두는 서로를 잘 알고, 지지하며, 성장하는 걸 지켜봅니다. 매년 인스타그램에서 인기를 얻는 사람들로 채워진다면, 이 커뮤니티의 영혼은 사라져버릴 거예요.”
스스로 수줍음이 많다고 말하는 영화감독 클레르 드니는 이전에도 생 로랑 쇼에 여러 차례 참석했지만, 언제나 쇼가 끝나면 서둘러 빠져나가곤 했다. 두 사람이 우정을 쌓기 시작한 건 바카렐로가 베니스의 한 호텔에서 연 베아트리스 달의 생일 파티에 드니를 초대하면서부터다. “바카렐로가 내 영화에 참여하고 싶어 한다는 걸 알고 놀랐지만, 무척 기쁘기도 했습니다. 공동 제작자뿐 아니라 의상 디자이너로도 함께하고 싶다고 했거든요.” 그녀가 말을 이었다. “배우와 함께 캐릭터를 구축할 때 의상만큼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옷과 신발로 시작하다 보면 점차 캐릭터가 모습을 드러내거든요.”
물론 모든 시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되는 건 아니다. 영화 <에밀리아 페레즈>는 크게 이슈가 됐지만, 주연을 맡은 스페인 출신 트랜스젠더 배우 카를라 소피아 가스콘(Karla Sofía Gascón)의 편협한 트위터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쉬운 결과를 냈다. 그렇지만 바카렐로는 가스콘의 사례가 하우스가 영역 밖의 프로젝트에 관여할 때 발생하는 위험한 예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영화 제작에는 리스크가 수반됩니다. 그런 것들이 나를 자극하죠. 오늘날 패션이 지닌 불만스러운 점은 모두가 지나치게 두려워한다는 겁니다. 함께 작업할 아티스트, 가수, 배우를 선택할 때 철저히 재고 따지죠. 그들이 브랜드 가치를 높일 테니까요. 물론 나 역시 인종차별주의자와는 일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모든 사람을 일일이 통제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죠.”
생 로랑 프로덕션은 현재 차기 투자를 검토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대본을 받고 있지만, 현재로서는 바카렐로의 관심을 끄는 프로젝트가 없다. 그가 갱스부르의 뮤직비디오 감독으로 데뷔한 것을 제외하고 말이다. “기준이 꽤 높습니다. 아직 마음이 가는 건 없군요.” 럭셔리 시장이 분명한 침체기를 겪고 있는 지금, 생 로랑은 바카렐로가 원하던 방향으로 세계를 확장하고 있다. 수년간 전례 없는 성장을 기록한 생 로랑이지만, 2025년 상반기 매출은 10% 감소했다. 케어링 산하 브랜드 중 가장 규모가 큰 구찌의 매출이 25%나 떨어진 덕분에 상대적으로 덜 부각됐다. 지정학적 불확실성, 인플레이션 압박, 관세, 중국의 경기 침체 등 매출 하락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지난 9월, 케어링은 루카 데 메오(Luca de Meo)를 그룹의 신임 CEO로 임명했다. 프랑스 자동차 기업 르노(Renault) 그룹 CEO로 재임하는 동안 회사의 실적 개선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다. 패션 전문가는 아니지만, 어쩌면 바로 그 점이 핵심일지도 모른다.
“압박감을 느끼진 않습니다. 내 어깨에 지워진 책임도 아니고요.” 바카렐로는 비즈니스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한 시즌 부진했거나 CEO가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해서 디자이너를 교체하는 건 비상식적인 일입니다. 상황이 나빠지면 으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탓을 하죠. 우리는 창조하고 구축하는 작업을 합니다. 그동안 너무 높이 올라와 있었다면, 조금 내려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에요.” 소비자와 럭셔리 브랜드의 교착 상태를 반영하듯, 지난해 패션계에는 이직 광풍이 불었다. 뎀나가 구찌로, 피엘파올로 피촐리가 발렌시아가로, 마티유 블라지가 샤넬로, 루이스 트로터가 보테가 베네타로, 조나단 앤더슨이 디올로, 잭 맥콜로와 라자로 에르난데스가 로에베로, 다리오 비탈레가 베르사체로, 시모네 벨로티가 질 샌더로, 마이클 라이더가 셀린느로, 글렌 마르탱이 메종 마르지엘라로, 하이더 아커만이 톰 포드로 이동한 일련의 사태 말이다. 그러나 바카렐로는 어디로도 가지 않는다.
“제안을 받았지만 응하지 않았습니다. 내게는 생 로랑이 궁극적인 하우스이기 때문이죠.” 그가 고백했다. “오늘날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이 이브 생 로랑의 작업과 이어져 있습니다. 위태로움, 부르주아, 드러내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방식, 성 유동성 같은 것들이죠. 샤넬과 생 로랑은 문화이자, 프랑스의 자산입니다. 왜 다른 곳으로 가겠어요? 돈이나 명성을 위해? 명성에는 관심 없어요. 창의성을 100% 통제할 수 있는 하우스에 소속돼 있다는 사실로 충분히 행복합니다. 이 점을 절대 놓치지 않을 거고요.”
지난해 바카렐로와 미쇼는 브렌트우드 언덕에 있는 주택을 매입했다. 미드 센추리 건축의 거장 크레이그 엘우드(Craig Ellwood)가 설계한 건물로, 도심의 반짝이는 불빛부터 태평양에 이르는 전망을 자랑하는 유리 상자 같은 집이다. 모더니즘 양식의 건축물 복원으로 유명한 인테리어 회사 마몰 레지너(Marmol Radziner)가 대대적인 수리를 진행 중이다. 바카렐로가 일을 염두에 두지 않는 순간은 거의 없지만, 그럼에도 로스앤젤레스의 삶은 대체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으로 채워진다고 그가 말했다. 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하이킹을 하고, 해변에 가는 것처럼 말이다(단, 수영은 하지 않는다. 바카렐로는 물에 들어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로스앤젤레스에 머물고 있는 지금은 루카가 학교 수업을 빠져도 괜찮지만, 이 상황이 영원히 지속될 순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태하게 지내도 괜찮은 건 올해가 마지막입니다. 고작 네 살배기가 학교에서 얼마나 대단한 걸 배우겠어요? 여행을 다니고, 미국에서 영어로 말하고, 거리에서 친구와 놀면서 배우는 게 더 많죠. 학교에서는 칼로 바나나 자르는 법이나 배울 거예요.”
이 기사가 공개될 때면 바카렐로와 그의 가족은 아마도 로스앤젤레스의 생활 리듬에 다시 적응하고 있을 것이다. 파리 패션 위크가 끝난 직후일 테니까. 2026 봄/여름 컬렉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지난 7월, 그는 일종의 기본값과도 같은 검정과 남색을 바탕으로 더 강렬한 옷을 만들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근 그의 여성복은 부드럽고 화려했지만, 그의 마음속을 파고든 위험한 상상력이 다시 한번 날뛰고 있다. 그는 1980년대 밤 파트너를 찾아 튈르리 정원을 헤매던 남자들처럼 트로카데로(Trocadéro)를 배경으로 여자들이 서로를 탐색하는 쇼를 구상 중이다.
“더 거친 컬렉션입니다. 정치적인 메시지는 담지 않으려고요. 그렇다고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못 본 척하지도 않아요. 분명 연결 고리가 있습니다. 이제 한 살 난 어린 딸이 있고, 그 아이가 더 강해지길 원하니까요.”
사람들이 좋아할까? 바카렐로는 자신의 비전에 대한 확신과 고객에 대한 인내심을 겸비한 디자이너다. 그는 고객을 재촉하지 않는다. 그들은 준비가 끝나면 저절로 자신에게 응답할 테니까. “패션 비즈니스의 마법은 욕망을 창조하는 것입니다.” 그가 설명했다. “그렇다고 유행만 따라가다 보면 패션은 죽고 말아요. 어떤 브랜드가 잘되면 다른 모든 브랜드가 따라 하죠. 똑같은 가방, 똑같은 코트. 나는 소비자가 내일 무엇이 필요한지 모를 때 브랜드가 성공한다고 믿습니다. 사실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거든요. 끼니를 때우고, 집세를 내고, 아이들만 잘 챙기는 걸로도 충분하죠. 그럼에도 우리는 ‘필요하다’고 여깁니다. 그게 바로 이 직업의 가장 마법 같은 부분이에요.” VK
- 글
- Rob Haskell
- 사진
- Annie Leibovitz
- 헤어
- Lorenzo Martin
- 메이크업
- Georgie Eisdell
- 그루밍
- Jenna Nelson
- 네일
- Ashlie Joh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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