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는 따뜻하게 다가온다
“나는 누군가를 원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는 것도 좋아한다.” ─ 에릭 로메르, 〈봄 이야기〉 중



내년 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을 당신에게.
“감히, 디올 하우스에 들어와보시겠어요?” 디올 2026 봄/여름 패션쇼가 열린 튈르리 정원의 커다란 컨테이너, 그 천장에 설치된 뒤집힌 피라미드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그것은 그저 뒤집힌 피라미드였을까? 뚜껑이 열린 채 바닥에 놓여 있던 디올 상자에 주목한 이들이 있었을 것이다. 어쩌면 피라미드는 모래시계를 상징할지도 모른다. 그 시계 속 모래는 상자 안으로 들어갔을까, 아니면 상자 밖으로 흩뿌려졌을까?
여러 면에서 이 피라미드는 예술의 핵심을 잘 보여준다. 우리를 계속 추측하게 만들지 않나. 그리고 얼마 전 이 하우스에서 첫 여성복 컬렉션을 선보인 조나단 앤더슨(Jonathan Anderson)은 동시대적 패션을 창조하는 재능이 있다. 그의 패션쇼는 존경받는 영국 다큐멘터리 감독 아담 커티스(Adam Curtis)의 영상으로 시작되었다. 공포 영화 장면이 조금씩 삽입된 이 영상은 크리스챤 디올 시대부터 많은 변화를 거쳐온 디올 하우스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 그리고 멋진 신발과 가방도 등장했다. 특히 라 시갈(La Cigale)은 무슈 디올이 1952년 디자인한 동명의 아이코닉 드레스에서 영감을 받은 가방이다.
앤더슨은 디올 하우스를 먼저 거쳐간 모든 이에게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이제 자신이 이끌어갈 때임을 분명히 했다. 커티스는 70세의 나이에도 영국 밀레니얼 세대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라나 델 레이 역시 마찬가지다. 커티스의 영상 속 사운드트랙으로 사용된 라나 델 레이의 ‘Born To Die’는 흥미롭게도 “어려운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나아가, 끝까지 이겨내게 해줘(Feet don’t fail me now, take me to the finish line)”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의상에는 전복된 비율을 비롯한 앤더슨의 특기와 디올 하우스의 코드가 골고루 뒤섞여 있었다. 꼬여 있는 커머번드와 과장된 등 선, 짧고 타이트한 소매가 특징인 스커트 수트, 미니스커트, 뷔스티에, 드레스의 테일로 변신한 리본 장식이 돋보였다. 알레산드로 미켈레, 글렌 마르탱, 샤를리즈 테론, 조니 뎁, 제니퍼 로렌스, 그레타 리, 마이키 매디슨 등 500여 명의 게스트가 이 모든 것을 직접 관람했다.
LVMH 회장 겸 CEO 베르나르 아르노는 지난 4월 열린 회사 연례 주주총회에서 조나단 앤더슨을 디올 맨을 이끌던 킴 존스 후임으로 발표하면서 참석자들을 놀라게 했다. 그러나 여기까지 오는 데는 긴 시간이 걸렸다. 앤더슨이 로에베 2025 봄/여름 컬렉션을 많은 동료 디자이너 앞에서 선보인 후에도 꽤 오랫동안 소문만 무성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앤더슨이 디올에 발탁된 것은 하룻밤 사이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북아일랜드 출신의 이 디자이너는 로에베에서 11년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며 로에베를 유서 깊은 패션 하우스에서 가장 핫한 럭셔리 브랜드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모건 스탠리 추산 2014년 당시 로에베 매출은 약 2억3,000만 유로(약 3,895억원)였으며, 번스타인의 애널리스트 루카 솔카(Luca Solca)에 따르면 지난해 매출은 15억~20억 유로(약 2조5,403억~3조3,871억원)로 증가했다고 한다.
앤더슨은 마리아 그라치아 키우리가 여성복 디자이너 자리를 사임하고 그가 디올의 유일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된 지 4주 만에 첫 남성복 컬렉션을 선보였다. 그리고 바로 사브리나 카펜터, 미아 고스, 나탈리아 보디아노바를 통해 그의 여성복 티저 의상을 처음 공개했다. 그레타 리, 알바 로르와처(Alba Rohrwacher), 모니카 바바로(Monica Barbaro)는 지난 8월 말 베니스영화제에서, 9월 초 토론토영화제에서는 안야 테일러 조이가 그가 만든 디올 의상을 착용했다.
하지만 2013년(LVMH가 JW 앤더슨의 지분을 일부 인수하고 조나단 앤더슨이 로에베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임명된 당시)부터 이 디자이너와 함께 일해온 디올 회장 겸 CEO 델핀 아르노는 그가 이 자리의 적임자임을 확신했다. “조나단의 가장 큰 강점은 과거를 현대적이고 여성스러운 방식을 통해 극단적으로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무슈 디올 코드를 재해석한 그의 방식은 매우 현대적으로 느껴지죠.” 그녀가 패션쇼가 끝난 후 말했다. “그 짧은 시간에 이뤄낸 업적은 놀랍습니다. 그는 6월부터 작업을 시작했어요. 저는 가방, 특히 작은 리본 장식이 달린 ‘라 시갈’이 마음에 쏙 들었어요.”
여성복, 남성복, 액세서리, 꾸뛰르 등 매년 10번의 컬렉션을 선보여야 하는 조나단 앤더슨은 지금 패션계에서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가 듀오 이네즈와 비누드,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 스타일리스트 로 로치 등이 이 역사 깊은 프랑스 패션 하우스의 새 시대에 대한 생각을 적극적으로 밝혔다. VK
패션 디자이너 스테파노 필라티(Stefano Pilati)
정말 좋았어요. 남성 쇼는 어떤 면에서는 이전 작업과 너무 비슷했죠. 새로운 방식에 적응한다는 게 쉽진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결국 이번 쇼를 통해 그는 완벽하게 해냈어요.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존경하는 관계입니다.
포토그래퍼 이네즈 & 비누드(Inez & Vinoodh)
이 쇼에 등장한 모든 것이 탐나요. 그게 문제죠. 가방과 신발은 지금 살 수 없나요? 3월까지 기다릴 순 없어요. 다 입고 싶고, 촬영할 의상도 아주 많아요. 몹시 자신감 넘치는 컬렉션이었어요. 그런 영상을 제작하는 데도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고요. 우리가 아담 커티스의 열렬한 팬이거든요.
삭스 피프스 애비뉴 & 니만 마커스 패션 디렉터 루팔 파텔(Roopal Patel)
조나단 앤더슨의 데뷔 무대는 훌륭했습니다. 도회적이고 자연스러우면서도 시대정신에 부합하는 스타일이었죠. 디올의 새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습니다. 오프닝 무대에 등장한 화이트 드레스, 조각 같은 재킷과 코트, 카고와 유틸리티 디테일, 아름다운 레이스 드레스, 꾸밈없는 멋이 깃든 데님과 꾸뛰르 이브닝 웨어는 아름다웠습니다. 런웨이에서 처음 선보인 아이코닉한 액세서리와 슈즈는 어느 때보다 풍성했고요. 조나단 앤더슨은 우리 시대의 디자이너입니다.
작가 겸 평론가 데릭 블라스버그(Derek Blasberg)
디올 고객이 무척 기뻐할 것 같아요. 패션이 언어라면 앤더슨은 다국어에 능통한 사람이죠. 그래서 아주 많은 것을 할 수 있어요. 쇼를 소개하는 영상은 디올을 거쳐간 모든 이에게 바치는 훌륭한 헌사라고 여겼어요. 보통 마지막 쇼에서는 기립박수를 치지만, 첫 쇼에선 그렇지 않죠. 그래서 사람들이 이번 쇼에 대해 정말 기대하고 있을 것 같아요.
영국 <보그> 에디토리얼 콘텐츠 책임자 치오마 나디(Chioma Nnadi)
조나단이 디올 아카이브를 그만의 스타일로 비틀어 표현한 방식이 마음에 들었어요. 오리지널 바 재킷 길이에 딱 맞춰서 재단한 줄어든 스커트 수트처럼요. 그는 비율을 가지고 노는 천재답게 척척 잘해냈죠.
셀프리지스 그룹 CEO 앙드레 메더(André Maeder)
환상적이고 여성스러웠지만,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어요. 스타일, 모양, 컬러, 모든 게 신선했죠.
패션 & 이미지 디렉터 알라스테어 맥킴(Alastair McKimm)
영화 <시계태엽 오렌지> 스타일의 세뇌 장면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쇼 시작 전 상영된 글리칭 효과가 들어간 아카이브 영상에서 볼 수 있었는데요, 덕분에 그 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어요. 소재와 비율의 유희, 축소된 실루엣, 미래의 시대극과 오늘날 기성복의 대비가 정말 마음에 들었습니다. 하우스 코드가 컬렉션 전반에 걸쳐 섬세하게 반영되어 있었죠.
스타일낫컴 에디터 베카 그비시아니(Beka Gvishiani)
지금 당장 여성이 되어 모든 작품을 입어보고 싶어요. 저 역시 쇼 시작 전에 나온 그 영상이 마음에 들었죠. 하우스에 대한 존중을 보여주면서도 미래를 살짝 암시하고 있었거든요.
영화감독 로익 프리장(Loïc Prigent)
마음에 꼭 들었어요. 조명도, 가독성도 아주 정확했죠. 아담 커티스 감독의 영상은 컴퓨터 초기화 같은 느낌이 있었어요. 좀 더 미묘한 뭔가가 담겨 있었고요. 모든 걸 다 이해하진 못했지만, 오히려 그 점이 좋았어요. 볼 게 더 많으니까요.
셀프리지스 여성복 & 남성복 디렉터 보스 미르(Bosse Myhr)
이 컬렉션은 장인 정신과 현대적인 볼륨감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심지어 미니 사이즈로 선보인 벌룬 스커트는 신선하면서도 디올의 정체성에 뿌리를 둔 듯했습니다. 액세서리, 특히 퀼팅과 스무드 버전으로 출시된 새로운 로고 백도 돋보였고요. 자수 장식 꽃 모티브, 질감을 살린 패브릭, 구조적인 코트와 케이프가 풍성함을 더했고, 일관된 모자 실루엣은 엄선된 룩에 포인트가 됐습니다. 전체적으로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디올의 이야기를 더 발전시킨 매력적인 컬렉션이었어요.
스타일리스트 로 로치(Law Roach)
최고였어요. 많은 걸 보여줬죠. 모든 이를 위한 선물과도 같았고요.
<i-D> 매거진 글로벌 에디토리얼 디렉터 스테프 요트카(Steff Yotka)
압도적인 새로운 분위기, 독특하고 개성 넘치는 의상을 보여주었죠. 많은 여성과 다양한 미학, 독보적인 옷차림을 아우르는 디올의 비전이었습니다. 저지 조거 팬츠부터 수국에서 영감을 받은 이브닝 드레스까지 모두 근사했습니다. 미니스커트가 특히 마음에 들었죠. 부자로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다른 사람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바로 고급스러운 내면과 개인적인 취향을 가지고, 스타일을 스스로 정의할 수 있다는 점이죠. 조나단은 그것을 잘 꿰뚫고 있습니다.
패션 에디터 안나 델로 루소(Anna Dello Russo)
아주 놀라워요. 그는 잘해냈어요. 제게 조나단은 딱 그런 사람입니다. 패션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이해하죠. 설렘과 기대가 커요. 큰 울림이 느껴지죠. 최고의 컬렉션이에요. 그는 현시대 리더이자 최고의 스승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 포토그래퍼
- 윤송이
- 패션 에디터
- 신은지
- 모델
- 자기, Rosanna Ovalles
- 헤어
- 배경화
- 메이크업
- 안세영
- 로케이션
- 양재꽃시장 화훼공판장 가동 3호 아름난원, 4호 플라워타운, 21호 보람농원, 57호 뿌리농원, 58호 한일식물원
- 글
- Elektra Kotsoni
- SPONSORED BY
- DIOR
추천기사
-
패션 트렌드
지금 유행하는 운동화 10종, 이런 바지에 신어야 어울린대요
2026.01.28by 소피아, Christina Holevas
-
패션 아이템
트렌드가 진짜 바뀔까? 런던에서는 다들 '이 청바지'를 입더군요
2026.01.30by 하솔휘, Daisy Jones
-
아트
전설적인 꾸뛰리에, 발렌티노 가라바니의 세계가 담긴 책과 다큐
2026.01.20by 오기쁨
-
뷰티 트렌드
'펫 케어'가 진짜 뷰티의 세계로 진입했다
2026.01.27by 이주현
-
패션 트렌드
따라만 하면 단숨에 멋져지는 그레이 & 네이비 조합법 4
2026.01.29by 김현유, Laura Tortora
-
패션 아이템
2000년대에 가장 크게 유행한 청바지가 돌아온다
2026.01.27by 안건호
인기기사
지금 인기 있는 뷰티 기사
PEOPLE NOW
지금, 보그가 주목하는 인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