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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하얗더군요! 2026 팬톤 컬러 ‘클라우드 댄서’

2025.12.05

온 세상이 하얗더군요! 2026 팬톤 컬러 ‘클라우드 댄서’

첫눈이 온 어제, 택시비 3배를 내고 퇴근했습니다. 살금살금 걷느라 휴대전화도 주머니에 집어넣고, 이어폰마저 뺐죠. 그런데 내리막이 끝나는 골목길에서 대여섯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둘이 CF 속 한 장면처럼 뛰놀더군요. “와, 눈이다! 나~ 구름에 빠진다!” 눈은 성가시지만, 아이들 웃음소리는 듣기 좋았습니다. “내일 몇 시에 출발해야 하냐?”라면서 투덜거리다가 그제야 새하얀 풍경을 둘러봤습니다. 지붕이며, 나무며 구별 없이 포근하게 덮은 눈을요.

@kristinervb

이 포근함이 2026년에는 옷장을 덮을 예정입니다. 눈 같기도 하고, 구름 같기도 한 올해의 컬러, 화이트요. 팬톤은 ’클라우드 댄서(Cloud Dancer)’라 이름 붙였습니다. 팬톤 전무이사 리트리스 아이즈먼(Leatrice Eisman)은 이 컬러를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듯 고요한 화이트’라고 표현했죠. 그러고 보니 비행기를 탈 때마다 ‘불멍’처럼 ‘구름멍’을 하게 됩니다. 끝도 없이 펼쳐진 구름 위를 굴러봤으면 싶죠. ‘난 구름 위를 둥둥 사랑인가 봐’ 같은 노랫말이나 애니메이션에 구름 위를 뛰노는 장면이 자주 나오는 걸 보면, 다 비슷한 상상을 한 번쯤 해봤나 봅니다.

Courtesy of Pantone

그렇다면 왜 하필 지금, 화이트가 2026년의 컬러가 되었을까요? 잠시 피곤한 단어를 몇 개 꺼내겠습니다. 인공지능, 기후 위기, 관세, 침공, 대형 화재… 하루가 멀다 하고 놀라움을 갱신하는 뉴스가 쏟아집니다. 그 뉴스에 놀랄 새도 없이 내일 출근, 연말정산, 겨울 휴가 숙소 예약, 보험 다이어트를 고민해야 하고요. 친구들 섭섭하지 않게 인스타그램 ‘좋아요’도 눌러야 합니다. 아, 리셋이 필요합니다. 팬톤은 바로 그 점에 주목했습니다. “우리는 전환기에 살고 있어요. 모두 진실과 가능성, 무엇보다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갈구하는 시기죠.” 팬톤 컬러 연구소 부사장 로리 프레스먼(Laurie Pressman)은 긴장과 자극으로 꽉 찬 일상에서 잠시 멈추고 숨을 고르자고 말합니다.

익숙한 색이라는 점도 한몫합니다. 새로운 게 너무 많으니, 컬러라도 익숙한 곳에서 시작하는 거죠. 화이트는 우리가 가장 자주 마주하는 색입니다. 건축 외벽, 자동차, 벽지와 가구, 심지어 음식까지. 흰색은 기본이고, 안전하고, 깨끗하고, 무엇보다 시대를 타지 않습니다. 어떤 유행이든 비껴가는 담백한 바탕이 되어주죠.

Alaïa 2026 S/S RTW
Issey Miyake 2026 S/S RTW

패션 속 화이트도 마찬가지입니다. 클래식하고, 절대 유행을 타지 않으며, 어떤 컬러와도 곧잘 어울립니다. 2026 봄/여름 컬렉션에서도 화이트는 다양한 소재와 실루엣으로 등장했습니다. 레이스, 코튼, 실크처럼 어느 소재든 녹아들며, 모든 컬러를 포용하는 여백처럼 존재하죠. 때론 부드럽고 따뜻하게, 때론 차분하면서도 날렵하게요. 정제와 자유도 동시에 품고 있습니다.

Jil Sander 2026 S/S RTW
Ashlyn 2026 S/S RTW
Fforme 2026 S/S RTW
Vaquera 2026 S/S RTW

프레스먼은 화이트가 처음부터 다시 디자인할 수 있는 기회라고 전합니다. “사람들이 ‘클라우드 댄서’를 통해 창의력을 발휘하길 바랍니다. 지금 자신의 모습, 다른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내 모습, 그리고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싶은지 생각하면서요.” 공허한 빈 곳이 아니라, 나만의 이야기와 감정을 담을 수 있는 캔버스처럼요.

평화, 조화, 통합, 결속. 화이트는 지금 이 시대가 간절히 원하는 단어를 조용하고 확실하게 말해주는 색입니다. 팬톤이 ‘클라우드 댄서’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입니다. 다 같이 춤을 추자고 포근한 구름 속으로 초대한 거죠. 피곤함에 내몰려 투덜거리고, 그런 내 모습이 참 못나 보였다면 클라우드 댄서로 살포시 덮어주세요. 다시 시작하기 좋은 새해가 우리 앞에 있습니다.

@jordyyhard
Laia Garcia-Furtado
사진
Courtesy of Pantone, GoRunway
섬네일 디자인
Courtesy of US Vogue
출처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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