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완벽한 한 잔의 맥주를 찾아서

2025.12.05

완벽한 한 잔의 맥주를 찾아서

맛도, 내일도 모른 체하며 마셨던 맥주여, 안녕. 이제 완벽한 한 잔을 마실 줄 안다.

한 잔으로 끝나는 법이 없던 대학 시절, 맥주는 사치였다. 당시엔 술자리 끝장을 보는 것이 어른의 멋이었다. 새내기의 재정으로 부어라 마셔라 긴 밤, 여러 날을 감당하려면 소주가 최고였다. 그러다가 신입 사원이 됐다. 회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하루에 익숙해질 무렵 맥주에 맛을 들였다. 처음에는 ‘퇴근 후 한잔’을 흉내 냈다. 맥주 몇 잔은 다음 날 나를 방해하지 않았고, 그러니 한잔하자고 동료 옆구리를 꾹 찌르기에도 적당했다. 찌르기가 통하지 않는 날엔 혼자 한잔 걸쳤다. 저녁 겸 반주를 하고, 딱 털고 일어나면 은근히 뿌듯했다. 하지만 생맥주의 맛이 늘 들쭉날쭉했다. 텁텁하거나 밍밍하거나. 심할 때는 물때 맛이 났다. 잔을 얼려 살얼음 컵에 시원하게 내오는 곳이어도 몇 모금 뒤엔 금세 김이 빠졌다. 어딜 가야 맥주가 맛있을지, 장사가 잘되는 곳에 가서 신선한 맥주를 마시면 되는지 늘 궁금했다.

그러다 지난 10월, 엄격한 규칙으로 따른 삿포로 생맥주를 마시고 나서야 그동안 맥주와 내 혀 사이에 많은 방해물이 있었음을 깨달았다. 삿포로의 목표는 단순히 맛있는 맥주가 아니라 ‘맛을 완벽히 구현하는 맥주’다.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맥주잔부터 따르는 방법까지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도쿄 에비스역의 에비스 브루어리 도쿄(Yebisu Brewery Tokyo) 지하에는 이 철학을 실천하는 ‘비어 트레이닝 센터’가 있다. 생맥주 따르는 방법을 연구하고, 삿포로 전문 태퍼(Tapper)를 교육하는 공간이다. 1979년부터 근속한 이가모토 히로시(Igamoto Hiroshi)가 현장을 이끈다. 이가모토는 맥주 탭을 관리하고 맥주를 따르고 손님에게 서빙하고 다시 맥주 탭을 정리하기까지 수십 가지 매뉴얼을 지긋이 알려줬다. 그리고 모든 매뉴얼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 지키지 않았을 때 좋지 않은 예를 덧붙였다. 매뉴얼을 위한 매뉴얼이 아니라 오랜 고민 끝에 찾아낸 방법이었다.

삿포로의 품질 기준은 ‘3C(Cold, Clear, Creamy)’다. 차가움, 깨끗함, 부드러움 세 가지가 맞아떨어질 때의 한 잔을 ‘퍼펙트’라 부른다. 맥주는 2~6도의 온도에서 유지한다. 맥주 맛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 잔은 하루 한 번만 사용한다. 완벽하게 씻어도 남을 수 있는 미세한 비눗기가 맛을 해치기 때문이다. “잔 속에 맺힌 크고 불규칙한 기포는 탄산이 아닙니다. 기포는 더러움의 증거예요.” 맥주를 따르는 관은 매일 분해 세척한다. 고압으로 여러 번 물 세척한 뒤 손끝에 올려두면 금방이라도 날아갈 만큼 작은 ‘마이크로 스펀지’를 쏘아 올려 마무리한다. “고다와리(こだわり)라고 하죠. 아주 작은 디테일도 타협하지 않는 태도요.” 빽빽한 매뉴얼을 통역하던 담당자가 목을 축이며 말했다.

비어 태퍼에 특허를 낸 거품관 ‘퍼펙트 체인저 3.0’을 끼운다. 잔의 옆 벽에 대고 천천히 따를 때 부드러운 거품이 층을 이루며 쌓인다. 맥주와 거품 비율은 7:3, 그 층을 일정하게 만들어야 마지막 한 모금까지 탄산과 온도가 유지된다. 왜 맥주에 거품이 있는지 처음 알았다. 그렇게 거품 아래 안개처럼 일렁이는 ‘프로스티 미스트(Frosty Mist, 차가운 안개)’가 생기면 완성이다. 잔 안쪽 맥주 표면에 생기는 차가운 수증기층으로, 맥주와 공기가 닿지 않았다는 증거다. 온도와 거품, 잔의 상태가 완전히 맞아떨어질 때만 생긴다. “맥주를 따른다기보다 거품을 만든다고 여겨요.” 태퍼는 손님의 속도를 살피며 다음 맥주를 준비한다. 맥주를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거품 벽면에 남는 얇은 띠 ‘레이스(Lace)’를 보면 속도를 가늠할 수 있다. 부드러운 거품 모양이 꼭 옷감 레이스와 닮아서 붙인 이름이다. 세 모금 만에 벌컥벌컥 마시면 레이스가 세 개, 조금씩 여러 번 마시면 레이스가 여러 개 남는다. “깨끗한 잔과 좋은 탄산, 완벽한 서빙이 만나야만 레이스가 남아요.”

‘퍼펙트’를 마실 수 있는 곳은 도쿄 긴자의 ‘삿포로 생맥주 블랙라벨 더 바(Sapporo Draft Beer Black Label The Bar)’다. ‘가장 맛있는 맥주는 그날의 첫 잔’이라는 신념으로 1인당 단 두 잔만 판매한다. 퍼펙트 외에도 빠른 속도로 따라 탄산감을 살린 ‘퍼스트’, 퍼펙트의 부드러운 거품과 퍼스트의 탄산감을 결합한 ‘하이브리드’ 세 가지가 있다. “우리는 맥주 판매가 아니라 ‘퍼펙트를 허락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삿포로의 글로벌 매니저 타나베 토시히로(Tanabe Toshihiro)가 흔들림 없는 눈으로 블랙라벨을 설명한다. 일본에서 퍼펙트를 제공하려면 검증과 복면 조사를 거친 뒤 ‘퍼펙트 블랙라벨 인증점’이 되어야 한다. 아쉽게도 한국에는 아직 없지만 지난 7월, 성수에 문을 연 ‘삿포로 프리미엄 비어스탠드(Sapporo Premium Beer Stand)’에서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삿포로 맥주의 첫 해외 매장이다. 도쿄 매장과 동일한 교육을 받은 전문 태퍼가 서브한다. 메뉴는 3C 원칙을 지킨 ‘퍼펙트 푸어’, 맥주와 거품을 한 번에 따라 탄산감을 살린 ‘클래식 푸어’ 두 가지다. 1인당 세 잔까지 주문할 수 있다.

술맛을 알고 음주를 시작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 주변 사람이나 미디어의 이미지를 계기 삼아 첫 잔을 입에 댄다. 삿포로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삿포로는 경쟁사가 ‘강력한 탄산’이나 ‘첫 즙’ 같은 기능적 키워드를 내세울 때 ‘어른의 한 잔’을 제안한다. 사람과 사람이 건배하는 순간의 감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전하고, 그 순간을 오롯이 즐기기 위한 차분한 한 잔을 제안한다.

밤은 짧다. 아침은 금세 온다. 완벽하게 보장된 한 잔이 필요하다. 투어가 끝난 후 삿포로 관계자들과 둘러앉은 저녁 식탁, 이번 투어를 진행한 사토시 코다(Satoshi Koda)가 홀가분한 표정으로 말했다. “도리아에즈, 나마비루(우선 생맥주 주세요).” 오늘도 고생했으니 일단 첫 잔은 생맥주로. VL

    웹 에디터
    하솔휘
    포토
    COURTESY OF SAPPORO BREWERIES LTD.
    SPONSORED BY
    SAPPORO BREWERIES LTD.

    SNS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