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현실을 벗어난, 이상한 나라의 전시 3

2025.12.05

현실을 벗어난, 이상한 나라의 전시 3

나는 누구? 여긴 어디? 입장과 동시에 나조차 낯설어지는 이상한 나라의 전시 셋.

인공지능, 세상을 망치러 온 구원자?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

흙더미에 막힌 입구, 뜯겨진 전시 안내문. 아트선재 개관 30주년을 맞아 내년 2월 1일까지 열리는 전시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는 입구부터 주제를 명확히 드러냅니다. 작가는 보존과 관람을 목적으로 한 제도적 장소인 미술관 전체를 관객의 시선을 전제하지 않는 비제도적 공간으로 재창조해버렸죠. 인공적 공간과 자연의 경계가 흐려진, 시대를 가늠하기 어려운 이 조각적 생태계와 만나면 압도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합성 존재에 대한 정교한 묘사와 지하 1층에서 지상 3층까지 미술관 전체를 아우르는 대담한 구성은 관람객을 현장에 깊이 끌어들여요. 넷플릭스 시리즈 <기묘한 이야기>의 뒤집힌 세계에 불시착한 듯 기이한 공포를 느낄 수도,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처럼 여러 시공간을 유영하는 것 같은 감각에 휩싸일지도 모릅니다.

비야르 로하스 작가는 이 세계를 자신이 개발한 ‘타임 엔진’으로 완성했습니다. ‘타임 엔진’은 비디오게임 엔진과 인공지능, 그리고 가상 세계를 결합한 디지털 시뮬레이션 도구라고 해요. 작가는 생태계와 사회적 조건이 뒤섞인 세계를 구축한 후, 여기서 생성된 조각들을 다운로드해 현실에 구현했습니다. 그렇다면 ‘타임 엔진’은 어떻게 기계와 유기체가 결합된 합성 존재의 생태계를 만들게 됐을까요? 작가의 말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적’이라는 완전한 타자는 낯설고 위협적이지만, 동시에 우리가 처음으로 자기 자신을 인식하게 한 거울이기도 합니다. (중략) 인공지능은 인간이 이해하기 어려운 언어를 지닌 새로운 ‘타자’입니다. 우리는 이미 그들과 공존하며 그들에게 지식을 전송하고 있죠. 그러나 어쩌면 그런 행위가 우리의 소멸을 스스로 준비하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 설치 모습.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5.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 설치 모습.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5.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적군의 언어’ 설치 모습.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5.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아드리안 비야르 로하스, ‘상상의 종말 I’, 2022, 300×320×550cm. 사진 남서원. 제공 아트선재센터 ⓒ 2025. Art Sonje Center all rights reserved

선하지 않아도 감싸주는 손
<괴물들의 서사시-이상한 나무들>

남진우의 회화에서 영웅과 괴물은 본래 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치열한 전투는 ‘선(善)’의 편이었던 영웅의 승리로 끝났죠. 그렇게 극명한 대립을 이루던 그들의 관계는 현재 진행 중인 전시 <괴물들의 서사시-이상한 나무들>에서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평화가 찾아온 ‘에덴’에 괴물이라 불리던 대왕오징어가 숨어든 거예요. 대왕오징어가 조용히 살기로 결심한 탓에 영웅은 괴물의 존재를 깨닫지 못합니다. 게다가 대왕오징어는 변신의 귀재인지라, 나무의 푸른 잎과 단풍을 능숙하게 모사해요. 물론 완벽한 위장은 아니어서 관람객의 시선을 애써 모른 척하는 눈빛을 발견하게 될 텐데, 이후에는 뿌리인 줄 알았던 그의 다리와 세밀한 빨판도 보이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이전과 달라진 모습의 존재가 나타납니다. 바로 세계를 구원했다고 여겨졌지만 무너진 영웅이죠. 어떤 괴로운 일을 겪은 것인지 얼굴을 파묻고 웅크린 영웅을 대왕오징어는 감싸줍니다. 이제 누가 선한 걸까요?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라는 신념에 균열이 일기 시작한 사람들을 이상한 나무들의 에덴으로 초대합니다. 12월 7일까지.

남진우, ‘Invader’, Oil on canvas, 45.5×37.9cm, 2023. 윌링앤딜링 제공
남진우, ‘The Saga of Monsters – The shattered egg’, Pencil, crayon, paper collage on paper, 57×81.9cm, 2025. 윌링앤딜링 제공
남진우, ‘Strange Trees’, Oil, cotton collage on cotton, 53×45.5cm, 2025. 윌링앤딜링 제공

디지털 정령들이 서울에 나타났다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

인간 세계에 디지털 세계 생명체가 나타났다는 소식 들으셨나요? 사건 현장은 국립현대미술관의 서울박스로, 작가 추수는 이곳에 디지털 생명체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를 만들었다고 해요. 그녀의 작품 ‘아가몬 인큐베이터’죠. 평소 엄마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예술가의 삶을 택한 그녀는 아가몬을 자신의 아이처럼 돌봅니다. 인큐베이터는 우뭇가사리(Agar)와 이끼로 이루어진 아가몬이 자라기 적합한 습도와 조도를 유지해요. 덕분에 이끼는 점점 자라겠지만 아가몬의 몸은 부패할 것입니다. 이는 생명의 재생과 순환을 상징한다고 해요. 이와 동시에, 서울박스의 북동쪽과 남쪽에 설치된 두 초대형 스크린은 아가몬의 고향일지도 모르는 디지털 세계를 비춥니다. 영속적인 세계와 인간 세계를 연결하는 포털이기도 한 스크린이 열린 탓에 디지털 정령인 ‘태(兌)’와 ‘간(艮)’이 깨어나고 말아요. 이들이 두 스크린을 넘나드는 장면과 그곳에서 나온 듯한 아가몬을 현실에서 마주하게 된다면 어떤 감각을 느낄까요? MMCA X LG OLED 시리즈의 첫 번째 작가로 선정된 추수 작가의 독창적인 세계는 내년 2월 1일까지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아가몬 대백과: 외부 유출본’ 전시 모습.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아가몬 5’, 2025, 우뭇가사리, 이끼, 피어싱, 15×13×18cm. 협업: 독립정원,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포토
아트선재센터, 윌링앤딜링,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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