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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피에르 폴랑의 공간, 파리의 음악과 디자인이 공존하는 곳

2025.12.09

디자이너 피에르 폴랑의 공간, 파리의 음악과 디자인이 공존하는 곳

파리의 음악과 디자인이 공존하는 ‘사운즈 라이크 폴랑’은 전위적 디자이너 피에르 폴랑의 비전을 이어받고 있다.

사운즈 라이크 폴랑에는 음향 기기와 함께 피에르 폴랑의 엘리제 램프, 빅 C 소파, 문 테이블과 F572 체어, 알파 소파 등을 두었다.

오스테를리츠 거리를 걷다 보면 새하얗고 가느다란 문이 눈에 들어온다. 초인종을 누르는 순간, 자연스럽게 폴랑의 세계로 스며든다. 눈앞에 펼쳐진 새하얀 안뜰에는 푸른 식물이 자라고, 너머에 U 자 형태의 ‘사운즈 라이크 폴랑(Sounds like Paulin)’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벤자민과 알리스 폴랑(Benjamin & Alice Paulin) 부부의 특별한 실험 무대다. 시대를 앞서간 디자이너 피에르 폴랑(Pierre Paulin)의 아들 벤자민과 그의 아내 알리스는 ‘폴랑 폴랑 폴랑(Paulin Paulin Paulin)’이라는 이름으로 아버지의 길을 이어가고 있다. 크지 않은 규모로 운영되는 이 스튜디오는 1960~1970년대를 상징하는 가구와 퐁피두·미테랑 시절 엘리제궁 인테리어 작업으로 찬사를 받은 프랑스 디자이너를 기념하며 전시와 서적, 맞춤형 에디션을 선보이고 있다.

한때 빵집이었던 이 건물은 인테리어 건축가 장 미셸 빌모트(Jean-Michel Wilmotte)의 집으로 사용되었는데, 네 개 층에는 갤러리 공간과 사무실, 개인 아파트가 자리한다. “일반적으로 쇼룸은 가구를 예술품처럼 전시하죠. 그보단 친근하게 보여주며 내구성과 실용성을 직접 검증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이곳에선 다양한 문화권에서 온, 여러 장르의 뮤지션이 폴랑의 세계를 중심으로 교류한다. 벤자민의 과거를 안다면 그리 놀랍지도 않다. “열다섯 살에 랩을 하겠다고 학교를 그만두고 퍼즐이란 그룹에서 활동을 시작했어요. 10년 넘게 음악에 열정을 쏟았죠.” 지하와 1층에는 음향적 특색을 달리하는 5개 사운드 존을 마련했다. 그리고 지하에는 부드러운 색감의 타타미(Tatami)와 듄(Dune) 시리즈가 놓여 있다. 음악을 들을 때 가구가 중요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낀다.

안뜰과 이어지는 위층은 햇빛이 드는 공간으로, 아름다운 가구뿐 아니라 음악, 역사, 건축 관련 책이 가득한 서가가 있다. 벽에는 구스타브 볼린(Gustav Bolin)의 회화와 솔 르윗(Sol LeWitt)의 작품이 걸려 있다. 알리스는 “사운즈 라이크 폴랑은 기존 녹음 스튜디오와는 달라요. 사람들이 편하게 이곳을 찾아 서로 다른 소리와 영감을 만나면서 창의적인 뭔가를 만들어내죠.” 두 사람은 또한 바우하우스의 정신에서 영감을 받아 커뮤니티를 만들 계획이다. 벤자민은 “거품을 깨뜨려서 예상치 못한 만남”을 만들어내고 싶어 했다. “이를테면 세르주 갱스부르의 ‘Ballade de Melody Nelson’을 작곡한 장 클로드 바니에(Jean-Claude Vannier)와 트래비스 스캇(Travis Scott)이 마주한 순간처럼요.”

예술적인 관점에서 보면, 폴랑의 사운드를 처음 포착하는 특별한 경험이 탄생할지도 모른다. 동시에 2009년 피에르 폴랑이 사망한 후 두 사람이 이어온 디자인 여정을 한층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어머니가 준비하시던 전시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럽게 빠져들었어요. 그렇게 아버지의 아카이브 속으로 들어간 거죠. 어릴 때부터 그 미학 속에서 자라며 자연스럽게 흡수했어요. 그래서 이 세계를 단순히 이론이 아니라 몸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느끼죠.”

이곳은 기존 녹음 스튜디오와 다르다. 피에르 폴랑의 가구로 꾸민 아늑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시도하며 창의성이 발현되길 기다린다.

1972년 그들은 피에르 폴랑이 허먼 밀러(Herman Miller)를 위해 구상했지만, 끝내 실현하지 못했던 피에르 폴랑 프로그램에 다시 생명을 불어넣었다. 이 프로그램은 벽 하나 없이 공간 전체를 모듈형 가구로 완성하도록 설계하는 시스템이다. 석유파동으로 큰 타격을 입은 당시 사회에선 사람들이 하루의 대부분을 사무실에서 보내는 탓에 집에 투자하지 않았지만 오늘날엔 그 의미가 빛을 발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치관이 바뀌었죠. 모두 집 안에 갇힌 채 자신을 돌아볼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바로 그때, 이 유토피아적 프로젝트가 등장했죠. 러그 체어, 듄 시리즈 등 대부분의 모델이 바로 여기서 비롯되었어요.” 그들은 사적인 공간의 감각을 되살리고, 그 안의 소리를 포착하며,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창의적인 세계를 하나로 이어가고 있다. V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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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처 디렉터
    김나랑
    Jade Simon
    사진
    Adrien Dir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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