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사수하라
점심으로 자신의 삶을 가늠할 수 있다. 이 한 끼는 바쁜 아침과 약속 많은 저녁 대신 여유를 누리는 최후의 보루이며, 때로는 권력을 드러내거나 고독을 치유한다.

1962년 파리지앵 주부 록산 드뷔송(Roxane Debuisson)이 마레 지구에서 산책하던 날이었다. 바버숍 간판이 떨어져 드뷔송의 머리를 칠 뻔했다. 바버숍 주인이 간판을 네온사인으로 바꾸려다 일어난 일이었다. 당시는 ‘영광의 30년’이라 불리는 프랑스 호황기였다. 전후 프랑스 사회가 현대화를 위해 빠르게 나아가면서 대규모 국가 주도 건설 사업이 불러일으키는 먼지에 과거가 묻히던 시기였다. 드뷔송은 그 낡은 구형 간판을 집으로 가져왔다. 그렇게 한때 파리를 장식했던 물건(예전에는 흔했지만 이제 눈앞에서 사라져가던 물건)을 모으는 드뷔송의 특별한 수집이 시작됐다. “이 컬렉션은 파리와 그 거리에 대한 애정에서 시작됐어요”라고 드뷔송은 회상했다. 수십 년간 그녀는 홀로 구조 작업을 벌였다. 명판, 측량 기준점, 교량 조각, 가로수 보호대, 도로 표지판, 분수, 교수대, 지하철 좌석, 우체통과 상업용 송장 7만 장 정도를 주워 모았다. 1970년에는 친구이자 사진가인 로베르 두아노(Robert Doisneau)가 찍은 사진을 통해 퐁뇌프 다리 근처 빵집에서 구조한 낡은 몰리에르 흉상을 살피려고 코트를 입고 스카프를 두른 채 인도에 쪼그려 앉은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드뷔송은 베이지색 상자 속 파일에 자신의 수집품을 상세히 기록했으며, 앙리 4세 대로 19번지 아파트에 전시하며 파리 최고의 사립 박물관이라 할 만한 풍경을 만들어냈다(그녀는 사람들이 박물관을 둘러보도록 흔쾌히 허락했는데, 그때 그곳에 가지 못해 두고두고 애석하다). 부엌을 제외한 모든 방이 보물로 가득했다. 방문객은 (구두 수선공의 구두, 장갑 제작자의 손, 2m 높이의 가위, 기어가는 달팽이 두 마리 같은) 상점 간판이 빼곡하게 걸린 복도를 지나서야 주방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주방 한쪽 벽면에는 문 닫은 제과점에서 가져온 에나멜과 유리 패널이 장식되어 있었다. 2018년 드뷔송이 세상을 떠난 후, 그녀의 자녀들은 유품 다수를 경매에 내놓았다. 한 기사는 그녀를 ‘프루스트 같은 인물‘이라고 추모했다.
하지만 드뷔송에게는 파리 컬렉션보다 더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노년의 드뷔송이 음식 분야에서도 열정을 드러내며 또 다른 삶을 이어갔기 때문이다.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된 건 어느 날 프랑수아 레지스 고드리(François-Régis Gaudry)와 여러 필자가 쓴 <파리를 맛보다(On Va Déguster Paris)>라는 요리 백과사전을 넘길 때였다. 이 책에는 드뷔송의 상징적인 모습(프린트 블라우스, 윤기 나는 백발, 실내에서도 착용한 선글라스)을 담은 삽화가 실렸다. 푸드 저널리스트 에제키엘 제라(Ezéchiel Zérah)가 쓴 기사에선 그녀가 ‘파인다이닝의 대모’로 불렸으며, 수십 년간 ‘미쉐린 레스토랑이나 파인다이닝’에서 식사했다는 걸 알렸다.
평생 그녀는 매일 아침 네이비 블루 컬러 롤스로이스 팬텀 V를 타고 도시를 누비며, 운전사와 함께 프랑스 샹송의 고전을 목청껏 불렀다. 가사를 인덱스카드에 적어두곤 가방에서 꺼내 보았다. 1990년대에 남편의 IT 회사가 IBM에 매각된 덕분에 드뷔송은 기념품을 모으는 것만큼 마음껏 식사를 즐길 수 있었다. 파인다이닝마다 그녀의 최애 요리가 있었다. 쇼송 오 트뤼프(Chausson aux Truffes, 랑부아지), 뷔뉴(Bugnes, 리츠 호텔), 클라푸티 에 라 카롤린 오 카페(Clafoutis et la Caroline au Café, 플라자 아테네 파리), 폼 수플레(Pommes Soufflées, 르 뫼리스), 밀푀유(르 그랑 베푸르), 허니 아이스크림과 타르트(드루앙). 그녀는 어딜 가든 병에 든 매그넘 와인을 즐겼다.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샴페인 루이나르 블랑(Ruinart Blanc)이 없으면 직접 주문했다. 한 번은 운전사를 랭스까지 보냈다. 까다로울 때도 있었지만 팁은 후하게 줬다.
드뷔송에게 바치는 추도사는 이렇게 알렸다. “드뷔송은 프랑스 레스토랑의 모든 절차를 하나하나 다 사랑했다. 셰프, 보조 셰프, 부주방장, 파티시에, 치즈 전문가, 다이닝 룸 매니저, 외투 보관소 담당자, 웨이터, 플로리스트, 벨보이, 발레파킹 직원까지 그녀는 모든 이의 이름을 기억했다.” 그와 같은 식사 방식은 또 다른 형태의 분류와 수집이었다. 드뷔송은 요리사 친구들과 음식 이야기를 즐겁게 나눴다. 말년에는 분홍색 목욕 가운과 스카프 차림으로 아파트에서 음식 분야 전문가들을 맞이했다. 요리사 마흔 명이 모두 하얀 셰프 모자를 쓰고 장례식에 참석하기도 했다. <Food & Sens>는 드뷔송을 ‘미식가 귀부인’으로 추모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녀의 미식가 경력은 오로지 낮에만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녀는 저녁을 먹지 않았다. 점심이 더 중요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점심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든, 점심이야말로 최초의 식사였을 것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인간은 음식을 구하고 요리할 연료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잠에서 깬 지 한참 지난 뒤에야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 문제와 더불어 초기 인류의 육체노동 강도가 높았기에 인류는 먹을 수 있을 때 가능한 한 하루에 필요한 칼로리 대부분을 섭취해야 했을 것이다. “해가 중천에 솟았을 때쯤의 식사를 점심이라고 정의한다면, 식사한다는 것 자체가 곧 점심을 의미했다”고 식문화 연구가 메건 엘리아스(Megan Elias)가 <점심: 역사(Lunch: A History)>라는 책에 기록한다. 그러다 사회계층이 나뉘면서 부유층이 하루에 여러 번 식사하기 시작했다. 중산층도 이를 따랐고, 조명 기술의 발전으로 일일 활동 시간이 연장되면서 식사 시간도 늘었다. 하루 한 끼만 먹던 식사 문화가 1850년에 이르러 세끼 식사 패턴으로 분화됐으며, 지금은 서양 문화의 주류가 되었다.
사무엘 존슨(Samuel Johnson)의 사전에 따르면 ‘Lunch’라는 단어는 ‘Clunch’ 또는 ‘Clutch’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이는 ‘손에 쥘 수 있는 만큼의 음식’을 의미한다. 그만큼 점심은 빠르고 간편하게 이루어진다. 토마토 수프, 그릴드 치즈, 부리토, 참치 샐러드, 남은 팟키마오(Pad Kee Mao), 사무실 전자레인지에 데운 미소 연어 따위도 점심이 된다. 점심은 끊임없이 효율을 추구하는 세상에서 여유와 사치를 누릴 보루가 되기도 한다. 푹 끓인 선데이 라구 소스, 한낮의 마티니, 오후 2시에 차려놓고 더위가 가실 때까지 치우지 않은 휴가 테이블도 점심에 포함된다. 점심 종류는 다양하지만 사람들의 시간은 부족해서 따뜻한 점심, 차가운 점심, 마실 걸로 때우는 점심, 벌거벗은 점심 같은 것도 점심에 포함된다. 점심은 추수감사절 같은 식사 시간이다.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너무 소박하지도 않으며, 다양한 상황과 구성에 유연하게 맞춘다. 르 그랑 베푸르에서 미냐르디즈(Mignardises)를 즐기든, 어제 남은 콩 요리를 허겁지겁 해치우든 점심은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아침 식사와 달리 점심은 다양성을 제공하면서도 저녁 식사와 달리 반복을 허용한다. 나는 점심으로 내 삶을 가늠할 수 있다. 차가운 통밀 햄 샌드위치, 포춘 쿠키처럼 슬쩍 구운 생선, 기묘한 시트러스 향이 내 점심 도시락에 담겼다(노스캐롤라이나에 살던 다섯 살부터 열여덟까지). 칠면조, 스위스 치즈, 매운 머스터드 소스가 들어간 베이글(열여덟 살부터 스물둘까지의 대학 시절), 재택근무자가 급하게 먹어치울 수 있는 인스턴트 냉동식품과 함께 종종 달걀을 곁들이고 늘 차 한 잔과 다크 초콜릿 두 조각으로 마무리했던 점심(서른 이후). 주말 점심은 또 다른 이야기다. 뒷마당의 바비큐, 딤섬 천국, 결혼식 점심이 함께하는 주말은 여러 세대가 여유로운 사교로 어우러진다. 주말 점심은 모두 정신이 말짱한 데다가, 밤에 운전할 필요도 없다. 낮을 한껏 즐기다가, 산책하거나 영화를 봐도 좋다.
최근 음식 전문 매체 <매시드(Mashed)>는 약 3만4,000명을 대상으로 식사 패턴을 조사했다. 응답자의 52%가 세끼 식사 중 저녁을 가장 선호한다고 답했다. 아마도 이들은 똑같은 레스토랑 요리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소화불량을 견디며, 베이비시터 고용을 즐기는 모양이다. 그중 한 명은 점심을 ‘사치’로 여긴다는 찰스 3세 영국 국왕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침을 거르고 점심도 자주 거른 채 최대 16시간 굶다가 저녁에 ‘빅맥’ 두 개와 ‘필레 오 피쉬’ 두 개를 초콜릿 셰이크와 함께 먹어치운다는 도널드 트럼프일 수도 있다. 식사 대결을 한다면 차라리 나는 드웨인 ‘더 록’ 존슨에게 판돈을 걸겠다. 그는 하루에 여섯 끼를 먹는다고 알려졌는데, 그중 점심 비중이 높을 것이다. 이 식단 덕분에 그는 연간 370kg의 대구를 소비했다.
점심을 크게 옹호하지 않아도, 오로지 점심 식사만이 먹는 사람에게 긴 시간 동안 음식의 맛과 자연의 빛을 함께 누릴 특권을 준다. 점심을 끝내고도 남은 하루가 길어서 다른 식사보다 시간에 얽매이지 않는 느낌을 준다. 그것은 8월의 휴일처럼 시간을 초월한 순간이다. 도시락 상자, 소풍 바구니, 찬합 등 다양한 전용 용기가 필요한 유일한 식사도 점심이다. 예전에는 땀방울을 떨어뜨리는 직장인들이 분주한 보행자 통로에서 놀랍도록 맛있는 식사를 하고 도시 광장 잔디에 널브러졌고, 미국 작가 프랭크 오하라(Frank O’Hara)는 “지저분하고 번들거리는 몰골로 샌드위치와 코카콜라를 먹는 노동자들이 노란 헬멧을 쓰고”라는 글을 쓰기도 했다. 그런 풍경 또한 점심이었다.
의심할 여지 없이 점심은 가장 공적인 식사다. 이에 대해 식문화 연구가 엘리아스는 점심이 “사회적 지위를 확립하고 동맹을 공고히 하는 오랜 역사를 지녔다”고 쓴다. 점심은 집 밖에서 가장 자주 먹는 식사이자, 직계가족이 아닌 사람들과 함께하는 식사다. 직계가족과 점심을 먹는 이들은 LVMH 그룹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의 자녀들에 불과할 것이다. 보도에 따르면 아르노 회장은 한 달에 한 번 가족을 소집해 “정확히 90분 동안 점심”을 함께 먹으며 “자식들에게 회사 전략과 관리자의 성과를 철저히 교육한다”고 한다. 그들은 코니아일랜드 레스토랑 운영자 네이선 핸드워커(Nathan Handwerker)의 사례를 참고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핸드워커는 대학생을 고용해 그들에게 흰 가운을 입히고 자신이 운영하는 핫도그 가게 주변을 배회하게 했다. 사람들이 점심을 먹기 위해 병원에서 나온 의사들이라고 생각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 네이선의 유대인다운 상술을 아주 잘 증명하는 일이었다.
요리사 겸 작가인 페를라 세르방 슈레베르(Perla Servan-Schreiber)는 점심을 잘 먹지 않는다. 50여 년간 세르방 슈레베르와 그녀의 남편 장 루이는 아침을 함께 먹고 하루 종일 일한 뒤 오후 4시에 차와 케이크를 즐기며 휴식을 취했다. 그러다 2020년 장 루이가 코로나로 세상을 떠났다. 세르방 슈레베르의 젊은 친구인 에밀리앙 크레스프(Émilien Cresp)와 파니 페시오다(Fany Péchiodat)가 ‘매직 런치’라는 행사를 제안했다. 세르방 슈레베르가 요리하고, 재미난 손님들을 식사에 초대했다. 하지만 세르방 슈레베르 자신은 식사 자리에 함께하지 않았다.
왜 하필 점심이 싫을까? “반항적인 느낌이에요”라면서 세르방 슈레베르가 만든 붉은 쌀밥과 양고기 미트볼을 먹으며 크레스프가 설명했다. “사람들에게 식사 시간이 오후 4시까지 이어질 수 있으니 모든 일정을 취소하라고 하는 게 좀 짓궂다는 기분이 들어요. 하지만 혼자일 땐 좋죠. 서둘러 먹는 아침이나 격식 있는 저녁보다 점심이 더 여가 활동 같은 느낌을 줘요.”
지난가을 런던에서 셰프 휴 코코란(Hugh Corcoran), 출판인 프랜시스 암스트롱 존스(Frances Armstrong-Jones), 그들의 친구 오이신 데이비스(Oisín Davies)가 점심만 제공하는 레스토랑을 열었다. 레스토랑을 평가하는 이들의 작디작은 세상 속 사람들 대부분이 흥분했다. 레스토랑의 이름은 ‘The Yellow Bittern’이다. 18세기 아일랜드의 시 ‘포도주 없는 곳’ 중 슬픈 새를 묘사한 부분에서 이름을 따왔다. 지하에는 서점도 있다. 레스토랑은 평일에만 영업하며, 전화 혹은 엽서로만 예약을 받는다. 카드 결제는 불가하며, 따로 작성된 와인 리스트도 없다. 날씨가 추울 때도 초인종을 눌러야 들어갈 수 있다. 옐로 비턴의 특이한 면모는 거기서 끝이 아니다. 그곳의 가장 독특한 점은 정오부터 오후 4시 30분까지만 수프와 라이스 푸딩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3월에 나는 편집자 친구 한 명을 옐로 비턴에 초대해 오후 2시에 점심을 먹으려 했다. 재미 삼아 그림엽서로 예약을 시도해보았다. 몇 주가 지나도 답장이 오지 않았다. 엽서가 분실된 것 같아 암스트롱 존스에게 이메일을 보내 테이블을 예약했다. 예약한 날에 초인종을 눌렀다. 암스트롱 존스가 영국산 참나무 의자가 놓인 방을 지나 주방 근처 아늑한 테이블로 나를 안내했다. 주방에는 오븐 하나와 인덕션 버너 두 개가 있었고, 셰프 코코란은 버건디색 스웨터 조끼를 입은 채 오늘의 메뉴를 설명했다. 식사 후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기다렸다. 왜 하필 점심에 초점을 맞췄는지 물었다. “우리는 끊임없이 생산해야 한다고 몰아세우는 사회에 살잖아요. 좋은 일꾼이 되라고 압박하죠. 그런 것들을 모두 끊어버리고 ‘사실 나는 한낮에 와인 한 병 마시고 포식할 거야’라고 말하려는 거예요.” 저녁 식사 자리는 청혼이나 이별 같은 일이 벌어지는 내밀한 공간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점심은 더 화기애애해요”라고 셰프 코코란은 말했다. “사람들이 다투는 경우가 거의 없어요”라고 레스토랑 공동 오너인 암스트롱 존스가 덧붙였다.
옐로 비턴에서 쓴 돈은 영양분만이 아니라 시간 또한 얻게 했다. 컴퓨터와 휴대폰에서 벗어난 시간, 가족의 영역을 벗어난 시간, 오랜 친구와 재회하는 시간을 산 것이다. 모든 사치품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은 얻기 어려운 즐거움이다. 점심이 코코란이 말한 것 같은 반자본주의의 천국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노동자들이 일과 중 기력을 회복할 권리와 연결되어 있다. 저널리스트 그랜토프 서들리(Granthorpe Sudley)는 1901년에 ‘100만 인분의 점심’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작업대 앞 노동자들이 도구를 내려놓고, 계단에는 서두르는 발소리가 울려 퍼지며, 모든 출구에서는 벌떼 같은 군중이 쏟아져 나온다.” 1896년 대통령 선거에서 윌리엄 맥킨리(William McKinley)는 ‘가득 찬 식사 바구니’를 약속하며 노동자 표심을 공략했다(당시에는 사람들이 저녁 식사를 ‘야식’이라고 불렀기에 여기서 ‘식사’는 ‘점심’을 의미한다). 점심시간과 관련한 가장 유명한 사진에서는 철공 노동자들이 펑퍼짐한 모자와 작업복 차림으로 지상 250m 높이의 강철 빔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샌드위치와 커피를 즐기는 듯하지만, 사실 RCA 빌딩 건설 당시 홍보 목적으로 한 쇼였다.
최근 뉴욕을 방문했을 때 플랫아이언(Flatiron)에 위치한 S&P 런치에서 사람들이 주문하려고 줄을 섰다. (그곳은 1928년에 S&P 샌드위치 숍으로 시작됐으나, 2021년까지는 아이젠버그스로 알려졌으며, 이후 새 주인이 리모델링했다.) 그곳의 점심 카운터는 이전부터 까다로운 예약을 요구하거나 엘리트 전용 테이블 같은 것을 두지 않았다. 평등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보여준 것이다. 1960년에 노스캐롤라이나 A&T 주립대학의 흑인 학생 네 명이 백인 전용 점심 테이블에서 인종차별을 당하자 이에 맞서기로 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네 학생은 15센트짜리 레몬 머랭 파이를 광고하는 플래카드 아래 놓인 의자에 앉아 저항을 시작했다. 그 시위와 그로부터 촉발된 이미지는 미국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었으며, 여론을 형성하고 운동에 추진력을 더했다. 그저 소박한 식사를 요구하는 시민이 끊임없이 줄을 이으며 그들 곁에서 연대했다.
10여 년 후, 베티 프리단(Betty Friedan)은 여성의 평등한 권리를 위해 점심의 상징적 힘을 활용했다. 그녀와 동료 시위자 15명은 맨해튼의 남성 전용 오크 룸에 자리 잡고 테이블 주변에 앉았다. 점원들이 여성을 쫓아내지 못하자 테이블 자체를 치워버렸다. 하지만 시위의 의의는 전달되었다. 몇 달 뒤,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 여성 출입을 금지하던 수십 년 묵은 정책은 철회되었다.
사회정의는 경영진급의 점심 메뉴에 자주 오르는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경영진의 점심 역시 일에 대한 과도한 헌신과 그로 인해 얻은 권력을 과시하는 사회적 전시장이기도 했다. 1901년에 서들리가 지적했듯, 벽돌공과 철공 노동자들은 “음식을 허겁지겁 삼키거나 게걸스럽게 먹지” 않았다. 그와 달리 월가의 은행가들은 “코트 자락을 휘날리며 문턱을 넘어” 가장 가까운 식당에서 샌드위치나 파이를 낚아채거나, 하얀 앞치마를 두른 웨이터가 재빨리 인파를 헤치며 김이 모락모락 나는 접시를 가득 쌓은 쟁반을 들고 빠르게 배달하게 했다. (배달하는 소년들은 소시지와 사워크라우트를 사려고 카트 앞에서 줄을 섰다. “여기 핫도그 하나요!”)
경영진의 점심에선 끼니를 거르는 것이 그 자체로 과시다. 권력자의 점심 식사에 나타나는 권력적 행동이 메뉴판에 없는 요리를 주문하는 거라면(어느 CEO가 뉴욕의 레스토랑 21 클럽에서 땅콩버터와 젤리 샌드위치를 요구한 일화처럼), 가장 강력한 형태의 권력적 점심은 아예 식사를 단념하는 것이다(“점심은 겁쟁이들이나 먹는 것”이라고 영화 <월 스트리트>에서 고든 게코가 선언했듯이 말이다). 한때 출판인 마이클 코다(Michael Korda)는 경비 처리되는 점심을 “목수의 끌처럼 작업에 필수적인 도구”라고 칭송했다. 하지만 그와 함께 일하던 로버트 고틀리브(Robert Gottlieb)는 매일 과도하게 지출하게 된다고 예측해 경비 처리하지 않을 것을 제안하면서 점심 비용을 학생 비폭력 조정 위원회(Student Nonviolent Coordinating Committee, SNCC)에 기부할 것을 동료들에게 촉구했다. ‘마티니 석 잔의 점심’이라고 불리는 경영진의 화려한 점심은 2003년까지 명맥만 유지되다가, 한 패션지 편집장이 점심을 먹던 중 뇌졸중을 일으키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하지만 유력자의 점심은 여전히 건재하다. 경제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인색해지는 시기에는 잠시 퇴색했다가, 지배계급의 허리띠와 절제가 주기적으로 느슨해질 때만 다시 모습을 드러낸다. 최근 <로브 리포트(Robb Report)>는 “유력자의 점심이 돌아왔다”고 선언했으며, <뉴욕 포스트>는 “마이클스(Michael’s)나 프레스코 바이 스코토(Fresco by Scotto) 같은 미드타운의 대표 레스토랑이 도시의 유력 인사로 북적인다”고 보도했다. 시그램 빌딩 내 그릴(The Grill) 레스토랑을 들여다보면 사업 수완을 발휘하려는 사람들이 여전히 돈을 아끼지 않는 풍경을 확인할 수 있다.
점심은 실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가교이자 연결 고리다. 식문화 연구가 엘리아스는 이렇게 말한다. “점심은 문화적 행위를 위한 풍부한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변화한다.” 심리학자와 교육자들은 우리 시대의 특징이 고독이라고 말한다. 2023년 미국 공중보건국장의 권고에 따르면, 미국은 ‘고독이라는 유행병’에 시달리고 있으며, 성인 절반이 고립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는 하루 담배 열다섯 개비를 피우는 것과 맞먹을 만큼 조기 사망 위험을 높인다. 팬데믹과 소셜 미디어에 의해 소외된 젊은이들은 결속의 원천으로 종교를 찾는다. 신은 위대하지만, 때로는 사회적 공간에 존재하는 특정 방식의 인간적 교제가 참치 샌드위치만큼 간단한 방편일 수도 있다. 피클도 곁들이지 않나. VL
- 피처 디렉터
- 김나랑
- 글
- Lauren Collins
- 삽화
- Robert Samuel Han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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