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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고난 위트, ‘키치’를 대표하는 사진가 마틴 파 별세

2025.12.09

타고난 위트, ‘키치’를 대표하는 사진가 마틴 파 별세

지금은 너무 당연한 것들의 처음을 상상해봅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근접한 얼굴, 정면 플래시, 쨍한 색감. 이제는 ‘마틴 파스럽다’라고 표현되는 모든 것을 창조해낸 마틴 파(Martin Parr)를요.

@martinparr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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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를 대표하는 사진가 마틴 파가 향년 73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년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마틴은 키치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단어라며, 자신을 그렇게 표현해주니 기쁘다고 했죠. “누군가 나를 ‘키치’를 대표하는 사진가로 소개한다면 나는 그 수식어를 최고의 칭찬으로 여길 것”이라면서요. 마틴 파 재단은 지난 6일, 마틴이 브리스틀 자택에서 영면했다고 밝혔습니다. “마틴 파 재단과 매그넘 포토는 앞으로 마틴의 유산을 보존하고 공유하는 데 협력할 예정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추후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마틴의 빈자리는 매우 클 것입니다.”

@martinparrstudio

마틴은 최근까지도 현역으로 활동했기에 이 사실이 더 믿기지 않습니다. 60권이 넘는 사진집, <파월드(ParrWorld)>를 비롯한 90회 이상의 국제 순회전 등 숫자만으로도 마틴의 커리어는 충분히 전설적입니다. 패션 작업에도 두루 참여했는데요. <보그>, 루이 비통, 자크뮈스와 협업했고, 알레산드로 미켈레가 구찌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던 시절에는 함께 캠페인과 화보를 작업했습니다. 마틴 파는 사진을 자신의 커리어나 돈벌이 수단으로만 여기지 않았습니다. 2015년에는 약 50년 동안 거주한 브리스틀에 마틴 파 재단(Martin Parr Foundation)을 설립해, 자신의 아카이브는 물론 영국 및 아일랜드 작가들의 작품과 갤러리를 보존했습니다. 후배들을 위한 교육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고요.

@martinparrstudio

“사진가가 되려면 겁이 없어야 해요. 주눅 들 시간이 없죠.” 1980년대, 마틴 파는 흑백 사진이 다큐멘터리 사진의 표준이던 시절, 컬러 사진을 고집하며 문법을 바꿨습니다. ‘문법을 바꾼다’라는 말은 멋져 보이지만, 실제로는 꽤 많은 논란을 동반하죠. 1994년, 매그넘 포토 정회원 심사를 단 한 표 차로 통과한 일화만 봐도 그 논란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매그넘 포토 공동 설립자이자 ‘결정적 순간’으로 알려진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Henri Cartier-Bresson)은 마틴을 두고 “다른 태양계에서 온 외계인 같다”고 했습니다. 마틴은 이에 응수했죠. “무슨 말인지는 알겠지만, 왜 ‘전달자’를 그렇게 공격하죠?” 결국 마틴은 메신저로서 시대를 앞서간 개척자로 자리매김합니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는 매그넘 포토 회장을 지내기도 했죠.

2019년의 마틴 파. Getty Images

마틴 파를 세계적으로 알린 대표작은 1986년 작 ‘라스트 리조트: 뉴 브라이턴의 사진들(The Last Resort: Photographs of New Brighton)‘입니다. 노동계급의 여름휴가 풍경을 담은 연작으로, 마틴의 시그니처가 된 강한 색감과 정면 플래시, 복잡하고 어수선한 구도가 압권입니다. 마거릿 대처 총리 시절, 복지 예산은 깎이고 빈부 격차는 커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해변으로 떠났습니다. 그곳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일광욕을 즐겼죠. 그 고단한 현실 위에 깔린 작고 단단한 생존의 유머를 마틴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martinparr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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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은 이 스타일을 완성하기까지 긴 여정을 거쳤습니다. 1952년 영국 서리(Surrey)주 엡솜(Epsom)에서 태어난 마틴은 14세에 사진가가 되기로 결심했고, 아마추어 사진가였던 할아버지 조지 파(George Parr)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후 맨체스터 폴리테크닉(Manchester Polytechnic)에서 사진을 공부하며 브라이언 그리핀(Brian Griffin), 대니얼 메도스(Daniel Meadows) 같은 동료들을 만났습니다. 이후 메도스와 해변 리조트 버틀린스(Butlin’s)에서 순회 사진가로 일하며 존 하인드(John Hinde)의 엽서를 접하게 됩니다. 향수를 자극하는 존 하인드의 엽서는 훗날 마틴의 시각적 언어를 결정짓는 전환점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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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이 처음부터 컬러 사진을 찍은 건 아닙니다. 1970년대 중반부터 1980년대까지는 웨스트 요크셔(West Yorkshire)에 머물며 농촌과 종교 공동체를 흑백으로 기록했습니다. 이 시기의 대표작인 ‘순응을 거부한 사람들(The Non-Conformists)’은 보다 섬세하고 조용한 관찰자의 시선을 보여주는 연작입니다. 1980년, 수전 미첼(Susan Mitchell)과 결혼한 마틴은 아일랜드 서부 로스코먼(Roscommon)으로 이주해 ‘배드 웨더(Bad Weather)'(1982), ‘칼더데일 사진들(Calderdale Photographs)'(1984), ‘어 페어 데이: 아일랜드 서해안에서 찍은 사진들(A Fair Day: Photographs from the West Coast of Ireland)'(1984) 같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Bad Weather / Errata Edition', 249×186mm, 90 pages, 50 b&w photographs, Hardback. Courtesy of Martin Parr
'Calderdale Photographs', 1984, 219×208mm, 14 pages, 13 b&w photographs, Paperback

1982년, 영국 북부의 월러시(Wallasey)로 돌아온 마틴은 본격적으로 컬러 사진을 시작합니다. 피터 프레이저(Peter Fraser), 피터 미첼(Peter Mitchell), 조엘 메이어로위츠(Joel Meyerowitz), 윌리엄 이글스턴(William Eggleston), 스티븐 쇼어(Stephen Shore) 같은 작가들의 영향을 받았고, 앞서 말한 존 하인드의 엽서 스타일은 ‘라스트 리조트’를 완성하는 데 결정적인 영감을 주었습니다.

1987년부터 브리스틀에 정착한 마틴은 ‘코스트 오브 리빙(The Cost of Living)'(1987~1989), ‘스몰 월드(Small World)'(1987~1994), ‘커먼 센스(Common Sense)'(1995~1999) 같은 연작을 통해 각각 중산층의 소비, 관광산업, 세계 소비문화의 민낯을 탐구하죠. 햇볕이 내리쬐는 해변, 미용실에서의 수다, 교회 바자회, 도그 레이스, 관광지의 진풍경까지. 마틴 파의 카메라는 일상이라는 작은 무대를 끝없이 들여다봤습니다.

'Small World', 2018, 240×295mm, 104 pages, 80 colour photographs, Hardback. Courtesy of Martin Parr
'The Cost of Living', 1989, 224×285mm, 80 pages, 60 colour photographs. Courtesy of Martin Parr
'Common Sense', 1999, 213×303mm, 160 pages, Hardback. Courtesy of Martin Parr

“나는 오락처럼 보이지만 진지한 사진을 찍어요.” 마틴은 사람들의 웃음 너머 불편한 진실까지 담아냈습니다. 두 눈을 뜬 것보다 더 정확하게, 뷰파인더로 일상을 들여다봤죠. 저는 아직 마틴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데요. 잠시 그가 남긴 사진들 속 작은 유머와 진실을 들여다보며 아쉬움을 달래려 합니다. 그것이 마틴이 우리에게 남긴 가장 큰 선물일 테니까요.​​​​​​​​​​​​​​​​

Anna Cafolla
사진
Instagram, Getty Images, Courtesy of Martin Parr
출처
www.vog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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